13화(5,332자)

매도 의견

복직했더니 내 자리에 연하 본부장 · 여시결

일요일 오후 두 시⁠, 소정의 식탁 위에 노트북 세 대와 노트 파일 하나⁠, 떡뻥 두 봉지가 놓였다⁠. 승겸은 식탁 모서리에 노트북을 맞추어 놓고 앉았고⁠, 두찬은 쌍둥이를 라윤의 방에 풀어놓고 왔다⁠. 라윤의 방에서 토끼 인형이 쌍둥이에게 밟히는 소리가 났다⁠. 아빠 집에서 일찍 돌아온 라윤은 쌍둥이 둘을 데리고 학교 놀이를 하고 있었다⁠. 「⁠자⁠, 받아쓰기⁠. ‘⁠엄마⁠’⁠. 아니⁠, 입에 넣는 거 아니야⁠.⁠」

소정은 식탁 가운데에 개편안 사본을 펼쳤다⁠. 첫 장 위에 빨간 펜으로 큰 글씨를 썼다⁠.

「⁠새마루투자증권 리서치센터 3월 조직 개편안 — 투자의견 매도⁠」

두찬이 떡뻥을 입에 문 채 웃었다⁠.

“⁠우리 회사에 매도 의견 내는 거예요⁠?⁠”

“⁠우리 회사 말고⁠, 개편안에요⁠. 회사 보고서 쓰듯이 써요⁠. 매출⁠, 비용⁠, 위험⁠, 각주⁠.⁠”

승겸이 노트북 화면을 소정에게 돌렸다⁠. 운용사별 수수료 자료였다⁠.

“⁠매출부터 하겠습니다⁠. 본부가 늘린 숫자의 칠 할이 표 수석님 옛 고객입니다⁠. 개편안은 센터 인원을 반으로 줄여도 매출이 그대로라고 가정했습니다⁠. 사람을 빼면 칠 할이 빠집니다⁠. 석 운용역 펀드는 이미 금요일에 줄였고요⁠.⁠”

식탁 맞은편 화면 하나에 채권팀 차장의 얼굴이 떴다⁠. 출산휴가 중인 차장은 아기를 한쪽 팔에 안고⁠, 다른 손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기는 계산기 소리에 맞춰 눈을 끔벅였다⁠.

“⁠비용은 제가 볼게요⁠. 브레인포지 계약서 사본 보내 주신 거⁠, 이거 채권이랑 똑같아요⁠. 첫해는 싸요⁠. 근데 리포트 한 건당 요금이 해마다 올라가게 묶여 있어요⁠. 금리가 오르는 채권처럼요⁠. 그리고 중간에 끊으면 남은 기간 요금의 절반을 물어내요⁠. 오 년 동안 못 나와요⁠.⁠”

“⁠개편안에는 한 해 십이억 줄어든다고 돼 있어요⁠.⁠”

“⁠첫해만이요⁠. 삼 년째부터는 사람 쓰는 거보다 비싸요⁠. 이 사람들⁠, 첫해 숫자만 보여 줬어요⁠. 아⁠, 잠깐만요⁠, 얘가 계산기 먹으려고 해요⁠.⁠”

화면이 흔들리고 아기 손이 화면 가득 찼다가 사라졌다⁠. 두 번째 화면에는 핀테크로 옮긴 퀀트 연구원이 떴다⁠. 새 회사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선배님⁠, 시키신 거 돌려 봤어요⁠. 브레인포지가 지난달에 다른 증권사 두 곳에 낸 리포트 마흔 개요⁠. 숫자를 원자료랑 하나씩 대 봤더니⁠, 근거 없는 숫자가 들어간 리포트가 여덟 개예요⁠. 열네 곳짜리 같은 거요⁠. 다섯 개 중 하나꼴이에요⁠.⁠”

“⁠그거 사람이 다 대 본 거예요⁠?⁠”

“⁠아뇨⁠, 제가 짠 프로그램이요⁠. 인공지능 틀린 거 찾는 프로그램이요⁠. 사람이 짠 거니까 공정하죠⁠.⁠”

두찬이 박수를 쳤다⁠. 라윤의 방에서 쌍둥이가 따라 박수를 쳤다⁠.

*

밤 열 시⁠, 쌍둥이는 두찬의 품에서 잠들었고 라윤은 소정의 침대에서 잠들었다⁠. 승겸은 식탁에서 노트북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경알에 표 하나가 비쳤다⁠.

“⁠표 수석님⁠.⁠”

승겸의 목소리가 낮았다⁠. 소정이 다가가 화면을 보았다⁠. 영어로 된 투자 유치 자료였다⁠. 브레인포지가 지난달 벤처 투자사들에게 돌린 것이라고 했다⁠. 승겸의 대학 동기가 투자사에 있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장에 회사의 고문단이 있었다⁠. 이름 없이 경력만 적힌 줄이 하나 있었다⁠.

「⁠2027년 하반기 합류 예정 — 국내 대형 증권사 경영지원 부사장 출신(⁠현직⁠)⁠. 첫 증권사 고객 계약 주도⁠」

승겸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지 않고⁠, 펜 끝으로 짚었다⁠.

“⁠첫 증권사 고객이 우리입니다⁠. 계약을 주도한 현직 부사장은 한 분뿐이고요⁠.⁠”

소정은 의자에 앉았다⁠. 앉으면서 노트 파일을 끌어당겼다⁠. 휘지 않은 두 장이 맨 뒤에 있었다⁠. 처남의 창고⁠. 그리고 오늘 밤⁠, 부사장의 고문 자리⁠.

“⁠부사장님 계산은 다 맞았어요⁠. 센터는 돈을 잃고⁠, 사람은 비싸고⁠, 인공지능은 싸요⁠. 계산은 맞는데 계산하는 사람이 계산 안에 있었네요⁠.⁠”

“⁠특수관계자 거래입니다⁠. 모아린 처남이랑 같습니다⁠.⁠”

“⁠각주 하나네요⁠.⁠”

“⁠각주 하나입니다⁠.⁠”

두찬이 잠든 쌍둥이를 안은 채 고개를 들었다⁠. 쌍둥이 하나가 두찬의 넥타이를 입에 물고 있었다⁠.

“⁠저 진정서에 이것도 넣어요⁠?⁠”

“⁠아뇨⁠. 이건 이사회에 넣어요⁠. 노동청은 법을 보고⁠, 이사회는 돈을 봐요⁠. 둘 다 봐야 이겨요⁠.⁠”

*

월요일 아침 여섯 시 오십 분⁠, 28층으로 가는 1층 개찰구가 소정의 사원증에 빨간 불을 켰다⁠. 「⁠출입 권한이 정지되었습니다⁠」 두 번 대 보았다⁠. 두 번 다 빨간 불이었다⁠. 경비 직원이 다가왔다가 소정을 알아보고 난처한 얼굴을 했다⁠.

“⁠표 팀장님⁠, 위에서 연락이 와서요⁠.⁠”

“⁠알아요⁠. 방문객으로 들어갈게요⁠. 방문할 사람은 곽두찬 선임이요⁠.⁠”

경비 직원이 방문 기록 화면을 열려다 손을 멈추고 방문객 출입증을 내주었다⁠. 흰 줄에 「⁠방문객⁠」이라고 찍힌 출입증이었다⁠. 소정은 코랄색 줄을 벗어 가방에 넣고 흰 줄을 목에 걸었다⁠. 열세 해 일한 회사에 방문객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생각보다 우스웠다⁠. 개찰구가 초록 불을 켰다⁠.

28층에서 두찬이 소정의 흰 줄을 보고 입을 막았다⁠.

“⁠팀장님 이제 손님이세요⁠?⁠”

“⁠손님이니까 커피 주세요⁠.⁠”

두찬이 떡뻥을 내밀었다⁠. 승겸이 기둥 앞 책상에서 일어나 의자를 비켰다⁠. 방문객과 선임과 선임이 기둥 하나를 둘러싸고 앉았다⁠. 복합기가 더운 바람을 뿜었다⁠. 셋 다 등이 따뜻했다⁠.

*

오후 두 시⁠, 인곤이 28층에 내려왔다⁠. 두 번째였다⁠. 인곤은 곧장 유리방으로 들어갔다⁠. 솔미가 일어났다⁠. 유리방은 방음이 안 되는 방이었고⁠, 사무실 전체가 숨을 죽였다⁠.

“⁠구 팀장⁠. 본부 업무를 이어받았으니 최종안에 동의 서명은 구 팀장이 해야 돼⁠. 진 선임 대신⁠.⁠”

인곤이 출력본을 책상에 올렸다⁠. 솔미는 내려다보지 않았다⁠.

“⁠부사장님⁠, 각서에 서명 먼저 해 주세요⁠. 제 거요⁠. 2년 보장⁠.⁠”

“⁠이사회 끝나고 한다고 했지⁠.⁠”

“⁠그럼 저도 이사회 끝나고 할게요⁠.⁠”

인곤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웃었다⁠.

“⁠구 팀장⁠, 젊은 사람이 계산이 빨라야지⁠.⁠”

“⁠계산은 빨라요⁠. 선배한테 배웠어요⁠.⁠”

솔미는 서랍에서 각서를 꺼냈다⁠. 인곤의 서명 자리가 아직 하얀 종이였다⁠. 솔미는 각서를 출력본 위에 올려놓았다⁠.

“⁠부사장님⁠, 저 임신했어요⁠. 십 주요⁠.⁠”

유리벽 너머에서 막내 하나가 키보드를 치다 멈췄다⁠. 소정은 기둥 앞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솔미는 선배가 보면 말을 멈추는 사람이었다⁠. 신입 때부터 그랬다⁠.

“⁠일곱 번째 조항⁠, 선배 약정서에 있던 거요⁠. 다른 휴직 복귀자들 처리에 이의 없음⁠. 저도 들어가요⁠? 내년에요⁠?⁠”

인곤은 대답하지 않았다⁠. 솔미는 대답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손바닥을 배 위에 한 번 얹었다가 내렸다⁠.

“⁠각서 돌려드릴게요⁠. 부사장님 서명 없는 각서는 종이예요⁠. 선배는 각서도 없었는데 열세 해를 했어요⁠. 저는 종이 말고 규칙을 받을래요⁠. 쉬고 와도 자리가 있다는 규칙이요⁠. 저만 말고⁠.⁠”

“⁠구 팀장⁠, 그런 규칙은 회사를 못 지켜⁠.⁠”

“⁠그럼 회사는 누가 지켜요⁠? 애 안 낳는 사람만요⁠?⁠”

솔미가 유리문을 열었다⁠. 인곤보다 먼저 나왔다⁠. 걸어서 기둥 앞까지 왔다⁠.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소정 앞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메일 한 통이 떠 있었다⁠. 보낸 사람은 부사장실이었다⁠.

「⁠구솔미 팀장⁠. 보직 보장 확인서 건⁠. 조건⁠: 표소정 수석 휴직 중 노트 원본 또는 사본 전량⁠. 이사회 전까지⁠.⁠」

“⁠사람 자리랑 노트를 바꾼 메일이에요⁠. 이것도 각주로 넣어 주세요⁠, 선배⁠.⁠”

인곤이 유리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걸으면서 누구에게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해옥이 센터장실 문을 열고 인곤의 등을 보았다⁠. 측정기를 보지 않았다⁠.

*

화요일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아침 회의가 끝나자 해옥이 소정을 센터장실로 불렀다⁠. 방문객 출입증을 보고 해옥은 웃지 않았다⁠. 책상 위에 서류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리서치센터 인원 감축안 검토 의견 — 센터장 동의⁠」 해옥의 서명이 있었다⁠. 날짜는 1월이었다⁠.

“⁠이거⁠, 내가 1월에 한 거야⁠. 반 감축에 동의한다는 거⁠. 너 복직하기 사흘 전에⁠.⁠”

“⁠알아요⁠.⁠”

“⁠모르는 척하지 마⁠. 너 각주 읽는 애잖아⁠.⁠”

해옥은 서명 위에 볼펜으로 두 줄을 그었다⁠. 그은 자리 옆에 날짜를 새로 쓰고 다시 서명했다⁠. 「⁠동의 철회 — 2027⁠. 3⁠. 9⁠. 마해옥⁠」 글씨가 조금 떨렸다⁠.

“⁠내가 들고 올라간다고 했지⁠. 승겸이 숫자보다 큰 거 가져오면⁠. 가져왔더라⁠. 너 혼자 말고 다섯이서⁠.⁠”

“⁠센터장님⁠, 정년까지 여섯 해 남으셨다면서요⁠.⁠”

“⁠다섯 해 남았어⁠. 오늘 아침에 하나 뺐다⁠. 철회서 내면 한 해쯤은 줄겠지⁠.⁠”

해옥은 왼팔 소매를 걷어 측정기에 휴대전화를 댔다⁠. 화면을 소정에게 돌렸다⁠. 「⁠98⁠」

“⁠봐라⁠. 백도 안 돼⁠. 사표 쓸 각오를 하니까 혈당이 내려가더라⁠. 의사한테 말해 줘야겠다⁠. 약보다 낫다고⁠.⁠”

소정은 웃었다⁠. 웃다가 눈가가 뜨거워졌다⁠. 해옥이 견과류 봉지에서 호두를 골라 소정의 손바닥에 올렸다⁠. 이번에는 아몬드도 하나 같이 얹었다⁠.

“⁠아몬드는 내 거야⁠. 이기면 돌려줘⁠.⁠”

*

화요일 밤 열한 시 사십 분⁠, 28층에는 다섯이 남아 있었다⁠. 소정⁠, 승겸⁠, 두찬⁠, 솔미⁠, 그리고 해옥⁠. 해옥은 센터장실 소파에 누워 견과류 봉지를 배 위에 얹고 있었다⁠. 퇴근하라고 하자 해옥은 혈당 때문에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측정기를 보여 주지는 않았다⁠.

창가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매도 의견 보고서의 목차가 적혀 있었다⁠. 매출⁠, 비용⁠, 위험⁠, 각주 둘⁠. 마지막 장에 솔미의 매장 숫자가 들어갔다⁠. 비 오는 날의 파란 표시가 붙은 표였다⁠. 사람이 쓴 보고서를 고객이 얼마나 끝까지 읽는지⁠, 인공지능 보고서보다 얼마나 자주 다시 찾는지가 거기에 있었다⁠.

솔미는 회의실 구석에서 떡뻥을 하나씩 녹여 먹고 있었다⁠. 저녁 내내 속이 불편해하던 솔미가 떡뻥 세 개째에서 얼굴빛이 돌아왔다⁠.

“⁠이거 진짜 속이 편해지네요⁠.⁠”

“⁠쌍둥이가 인정한 거예요⁠.⁠”

두찬이 뿌듯하게 말했다⁠. 솔미가 웃었다⁠. 소정은 솔미가 웃는 것을 1월 이후 처음 보았다⁠. 승겸은 화이트보드 앞에서 목차를 길이 순서로 다시 맞추려다⁠, 솔미가 웃는 소리에 손을 멈추고 마커 뚜껑을 닫았다⁠.

복합기가 마지막 장을 뱉었다⁠. 소정이 종이를 집었다⁠. 따뜻했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소정은 받았다⁠.

“⁠표 수석⁠.⁠”

인곤의 목소리였다⁠. 부사장실이 아니라 바깥이었다⁠. 바람 소리가 섞여 있었다⁠.

“⁠내일 아홉 시야⁠. 올라오지 마⁠. 이건 협박이 아니야⁠. 경험이야⁠. 내일 35층에 올라오면⁠, 다시는 이 층으로 못 내려와⁠. 이기든 지든⁠. 이사회에 맞선 연구원은 이 업계에서 그렇게 기억돼⁠.⁠”

“⁠부사장님은요⁠? 내일 지시면요⁠?⁠”

전화 너머에서 바람이 한 번 크게 지나갔다⁠.

“⁠나는 내려갈 층이 없어⁠. 처음부터⁠.⁠”

전화가 끊겼다⁠. 휴대전화를 내려놓는 소정의 손이 한 번 미끄러졌다⁠. 회의실의 셋이 소정을 보았다⁠. 아무도 누구 전화였는지 묻지 않았다⁠. 소정은 따뜻한 종이를 가슴에 안았다⁠. 창밖으로 여의도의 불빛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화이트보드 앞 의자에서 승겸이 일어나다 멈춰⁠, 소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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