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41자)
오타
복직했더니 내 자리에 연하 본부장 · 여시결
금요일 아침 아홉 시 칠 분, 소정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석계환 운용역」이 떴다. 영상통화가 아니라 음성이었다. 석계환이 음성으로 거는 날은 화가 난 날이었다.
“표 팀장, 이거 네가 썼어?”
“제가 안 썼어요.”
“문장은 네 건데.”
“문장은 제 거예요.”
수화기 너머에서 사탕 봉지 뜯는 소리가 났다. 한 번이 아니었다.
“여섯 번째 장. 모아린 해외 대리점이 「열네 곳으로 확장」이래. 열네 곳? 하나잖아. 처남 하나. 너희 회사가 석 달 전에 그걸로 나한테 비중 줄이라고 했잖아. 근데 같은 회사 이름으로 열네 곳이 나와. 내가 이걸 위에 어떻게 올려?”
“인공지능이 지어낸 숫자예요. 근거가 없어요.”
“근거 없는 숫자를 너희 회사 로고 밑에 박아서 서른 곳에 뿌렸어. 그리고 오타까지 네 거야. ‘회전률’. 십 년 동안 내가 너한테 세 번 말했지.”
“네 번이요.”
석계환이 웃지 않았다. 사탕 깨무는 소리만 났다.
“표 팀장, 우리 펀드는 새마루 보고서를 사람 때문에 봤어. 사람이 없으면 굳이 너희 거 볼 이유가 없어. 인공지능 리포트는 다른 데서도 사. 더 싸게.”
전화가 끊겼다. 소정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유리방 안에서 승겸이 다른 전화를 받고 있었다. 승겸의 얼굴이 하얬다. 센터장실 문이 열리고 해옥이 측정기 화면을 들고 나왔다.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않고 혼자 보더니 다시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해옥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백이십. 이건 내가 잘못 먹은 게 아니야.”
솔미는 자기 자리에서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여섯 번째 장이 떠 있었다. 솔미는 열네 곳이라는 숫자를 한참 보다가 화면을 껐다.
*
화요일 아침 일곱 시 사십 분, 라윤의 2학년 첫날이었다. 소정은 교문 앞에서 라윤의 실내화 가방 끈을 고쳐 매 주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의 이웃집 아주머니였다.
“소정이니? 너희 엄마가 아파트 입구 경사로에서 미끄러졌어. 밤새 진눈깨비가 얼었더라고. 손목을 짚었는데, 영 안 좋아 보여. 구급차 불렀어.”
라윤이 소정의 손을 꽉 잡았다. 소정은 라윤의 손을 놓지 않고 무릎을 굽혔다.
“라윤아, 할머니가 넘어지셨대. 엄마가 병원 갔다 올게. 오늘 돌봄교실 첫날이니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있어.”
“할머니 아파?”
“손목이 아프대.”
“그럼 차가운 거 대 드려. 수경 없으면 아이스크림이라도.”
라윤은 실내화 가방을 들고 교문 안으로 걸어갔다. 세 걸음 가다가 돌아보았고, 다섯 걸음 가다가 또 돌아보았다. 소정은 라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포의 정형외과 응급실에서 엄마는 왼손목에 부목을 대고 누워 있었다. 의사는 금이 갔다고 했다. 수술까지는 아니고 깁스를 여섯 주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소정을 보자 오른손으로 소정을 밀었다.
“회사 가. 오늘 뭐 있다며.”
“엄마.”
“라윤이 하교는 어떻게 할 거야? 나 이 손으로 라윤이 가방 못 든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목 때문이 아니었다. 일 년 동안 소정의 복직을 받쳐 온 손목이 금 간 것이 엄마는 미안했다. 소정은 엄마의 오른손을 잡았다.
“엄마, 손목 금 간 거 미안해하지 마. 내가 일 년 동안 엄마 무릎 썼잖아.”
“그 말이 더 미안하다.”
열 시 이십 분, 소정은 응급실 의자에서 사내 메신저를 열었다. 「브레인포지 시연회 — 오늘 11:00, 35층 대회의실. 리서치센터 팀장 이상 참석」 소정은 이제 팀장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어났다. 엄마가 부목 댄 손을 흔들었다.
“가. 가서 이겨. 이기고 와서 깁스에 이름 써 줘.”
*
열한 시 사 분, 35층 대회의실 문이 열렸을 때 시연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소정의 사원증은 35층 유리문에서 울었다. 「출입 권한이 없습니다」 문 안쪽에서 두찬이 보고 달려와 자기 사원증으로 열어 주었다. 두찬의 권한도 없었다. 두찬은 보안 직원이 한눈판 사이 문을 몸으로 밀어 열었다.
“팀장님, 실내화 가방은 왜 들고 계세요?”
소정은 그제야 손에 라윤의 실내화 가방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았다. 교문 앞에서 끈을 고쳐 매다 그대로 들고 온 것이었다. 라윤은 실내화 없이 2학년 첫날을 맞고 있었다.
대회의실 긴 탁자에 임원 몇과 센터 팀장들이 앉아 있었다. 화면 앞에는 브레인포지 대표가 서 있었다. 인곤은 탁자 끝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화면에는 금요일에 나간 모아린 리포트가 떠 있었다.
“지난주 시범 발행에서 고객사 열한 곳이 끝까지 읽었습니다. 사람이 쓴 리포트의 평균보다 높습니다.”
소정이 손을 들었다. 실내화 가방을 든 손이었다. 몇이 웃었다. 인곤은 웃지 않았다.
“표 수석. 말해.”
“여섯 번째 장, 해외 대리점 열네 곳. 근거가 뭔가요?”
브레인포지 대표가 화면을 넘겼다. 「해외 확장 관련 업계 평균 데이터 기반 추정」
“업계 평균이요. 모아린은 업계 평균이 아니에요. 대리점이 하나예요. 대표 처남 거요. 그 하나 때문에 석 달 전에 우리 회사 고객이 비중을 줄였어요.”
“그 부분은 학습 자료에 없어서…….”
“없죠. 그 두 장이 없으니까요.”
솔미가 탁자 맨 끝에서 고개를 들었다. 소정은 솔미를 보지 않았다. 화면의 표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거. ‘재고자산회전률’. 오타예요. 제 오타요. 열세 해 동안 고치지 못한 거요. 인공지능은 제 눈을 배운 게 아니에요. 제 글씨를 배웠어요. 글씨는 베낄 수 있는데 눈은 못 베껴요.”
회의실이 조용했다. 임원 하나가 펜을 내려놓았다. 인곤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받침과 잔이 소리 없이 맞닿았다.
“표 수석 말이 다 맞아.”
인곤의 목소리는 느리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표 수석 노트가 다 필요한 거야. 두 장이 빠져서 열네 곳이 나왔다며? 그럼 두 장을 넣으면 하나가 나오겠지. 오타도 고쳐 주면 고쳐. 인공지능은 한 번 가르치면 다시는 안 틀려. 사람은 열세 해를 가르쳐도 ‘률’이라고 쓰잖아.”
몇이 웃었다. 이번에는 소정을 보며 웃지 않았다. 인곤을 보며 웃었다. 인곤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소정은 실내화 가방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끈이 손가락 마디를 하얗게 조였다.
“사람은 열세 해를 틀려도, 처남은 찾아요.”
“그러니까 처남 찾는 법을 넣어 달라는 거야. 표 수석. 우리 둘 다 같은 걸 원해. 각주를 읽는 회사. 다른 건 그 각주를 누가 읽느냐지.”
인곤이 일어났다. 시연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의자를 밀었다. 소정은 맨 마지막까지 앉아 있었다. 실내화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화면의 오타를 끝까지 보았다.
*
오후 네 시 반, 소정은 실내화 가방을 들고 학교 돌봄교실 문을 열었다. 라윤은 창가 책상에서 색종이로 학을 접고 있었다. 발에는 흰 양말뿐이었다. 양말 바닥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라윤아, 미안해. 엄마가 실내화를 회사에 들고 갔어.”
“알아. 선생님이 엄마 바쁘시대.”
라윤은 학을 마저 접고 나서야 실내화를 신었다. 신으면서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양말 신고 다녔는데 아무도 몰랐어. 미끄러지지 않게 천천히 걸었거든. 복도에서 뛰지도 않았어.”
“발 안 시렸어?”
“조금. 근데 친구들이 실내화 없냐고 물어볼까 봐 계속 천천히 걸었어. 천천히 걸으면 아무도 안 봐.”
돌봄 선생님이 다가와 라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2학년 첫날 실내화 없이 온 아이가 하루 종일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했다. 소정은 고개를 숙였다. 숙인 눈앞에 라윤의 회색 양말 바닥이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걸은 하루가 양말 바닥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라윤이 종이학을 소정의 손바닥에 올렸다.
“이거 할머니 갖다 드려. 손목 낫게.”
“라윤이가 갖다 드리자. 오늘 할머니 집에서 자.”
“엄마는?”
“엄마는 회사에 다시 가.”
라윤은 실내화 가방을 스스로 메고 소정의 손을 잡았다. 교문을 나서며 라윤이 한 번 더 말했다.
“엄마도 회사에서 천천히 걸어. 그럼 아무도 안 봐.”
소정은 대답하지 못하고 라윤의 손을 더 꽉 잡았다.
*
밤 아홉 시, 라윤을 마포 엄마 집에 재우고 돌아온 소정은 28층 탕비실에서 정수기 물을 받고 있었다. 승겸이 들어왔다. 손에 얇은 서류철 하나를 들고 있었다. 승겸은 서류철을 탕비실 탁자에 내려놓고 모서리를 맞추지 않았다.
“아직이 끝났습니다.”
소정은 컵을 내려놓고 서류철을 열었다. 운용사별 수수료 자료였다. 본부장만 볼 수 있는 숫자였다. 지난 일 년 동안 늘어난 리서치 몫 수수료가 운용사별로 나뉘어 있었고, 오른쪽 끝에 비고가 있었다. 여섯 곳의 비고가 같았다.
「자료 요청 시 소비재팀 내부 자료(표소정 작성분) 포함 요청」
“늘어난 숫자의 칠 할이 그 여섯 곳입니다. 표 팀장님 옛 고객들이요. 제 보고서를 찾은 게 아니었습니다. 각주 세 번째를 찾은 겁니다.”
“알고 계셨어요?”
“처음부터요. 저는 일 년 동안 표 팀장님 이름 없이 표 팀장님을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넷을 빼는 계산을 맞췄고요.”
승겸은 탕비실 벽에 등을 댔다. 커피 머신이 혼자 세척을 시작하며 쉭쉭 김을 뿜었다.
“이걸 왜 지금 줘요?”
“오늘 시연회에서 부사장님 말이 맞았습니다. 인공지능은 한 번 가르치면 다시 안 틀립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표 팀장님 오타까지 영원히 안 틀리게 됩니다. 그리고 표 팀장님은 영원히 필요 없어집니다. 그러면 제 숫자 칠 할도 같이 없어집니다.”
“본부장님 계산이에요?”
“제가 다시 한 계산입니다. 숫자가 바뀌었으니까요.”
소정은 서류철을 덮었다. 덮고 나서 승겸을 보았다. 승겸의 넥타이가 반쯤 풀려 있었다. 넥타이를 풀어 둔 승겸을 소정은 처음 보았다.
“이거 주면 본부장님은 어떻게 돼요?”
“모르겠습니다. 그걸 처음으로 계산 안 하고 왔습니다.”
소정은 손을 뻗어 승겸의 넥타이를 바로 매 주었다. 매듭을 올리는 손이 승겸의 목울대에 닿았다.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소정은 매듭을 끝까지 올리지 않고 반쯤에서 멈췄다.
“반만 돌려줬네요. 라윤이 말대로.”
*
수요일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아침 회의실 문이 열리고 인곤이 들어왔다. 부사장이 28층 아침 회의에 들어온 것은 소정이 일한 열세 해 동안 처음이었다. 해옥이 측정기를 보려다 그만두고 일어났다. 인곤은 앉지 않았다.
“3월 이사회를 당긴다. 24일에서 10일로. 브레인포지 시범 결과가 좋아서 위에서 서두르자고 하네.”
회의실이 술렁였다. 인곤은 승겸을 보았다.
“진 본부장. 최종안 이메일로 보냈어. 금요일까지 동의 서명해서 올려. 센터 인원표 맨 끝에 한 줄 추가했어. 확인해.”
승겸이 노트북을 열었다. 소정은 승겸의 등 뒤 자리에서 화면을 보았다. 안경알이 아니라 화면을 직접 보았다. 최종안 맨 끝 줄이 떠 있었다.
「특별분석팀 폐지 — 표소정 수석연구원 권고사직(위로금 지급)」
인곤이 소정을 보았다. 분재의 가지를 볼 때와 같은 눈이었다.
“서명은 진 본부장이 해. 표 수석 이름 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