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61자) · 위단 · 이월 초하루

고개가 열리는 날

십 년 만에 칼을 찾으러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이월 초하루 새벽, 대장간에 사람이 열여덟 모였다.

유월이 정한 일이었다. 벽의 칼은 여덟 자루였다. 한 자루에 둘씩 붙어서, 한 사람은 물을 대고 한 사람은 갈았다. 가는 사람이 셋째 번에 손을 빼면 유월이 뒤에서 손등을 눌렀다. 남는 두 사람은 물을 데워 날랐다. 대장간 화덕 하나로는 모자라서 집집이 불을 땠다. 모루 위에 숫돌이 여덟 벌 놓였다. 굵은 것과 중간 것은 집집에서 가져온 부엌 숫돌이었고, 고운 것은 재구의 반쪽 돌과 내가 깎은 청석 둘뿐이라 마무리는 유월이 도맡았다.

강쇠도 왔다. 도치가 모르게 새벽에 빠져나왔다고 했다. 강쇠는 가는 일은 못 하고 물만 날랐다. 초하루에 나르면 콩 한 줌이라던 곤 노인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장간 안은 사람과 김으로 꽉 찼다. 누가 숫돌을 밀면 옆 사람 팔꿈치가 닿았다. 돌금댁은 둘째 순금의 칼을 갈다가 말복 영감에게 물을 너무 많이 붓는다고 세 번 소리를 질렀고, 영감은 세 번 다 못 들었다. 개울 아래 집 부부는 넷째 상길의 칼을 두고 누가 갈지를 다퉜다. 삼출은 제 아들 칠성의 칼 앞에 앉아서, 누가 오면 비키라고 손을 저었다. 제 아들 칼은 제가 갈겠다고 했다. 손이 서툴러서 셋째 번마다 칼이 숫돌에서 미끄러졌다. 유월이 그 뒤에 가서 삼출의 손등을 눌렀다. 삼출이 처음으로 남에게 손을 맡겼다.

해가 고개 마루에 걸렸을 때 여덟 자루가 다 끝났다. 유월이 기둥에 백스물셋째 금을 그었다. 반나절이 아니라 한나절도 안 걸렸다. 열 해 동안 나흘 반 걸리던 초하루였다.

나는 대장간을 나와 비탈을 조금 올라가 마을을 봤다. 굴뚝 연기가 열한 줄이었다. 동짓달 그믐 전날 고개 마루에서 셋을 셌던 지붕들이었다. 열한 줄이 한꺼번에 오르니 골짜기 위에 옅은 구름이 한 장 덮인 것 같았다. 숯 냄새가 비탈까지 올라왔다. 그 냄새 밑에 쇠 비린내와 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한 골짜기가 통째로 칼을 가는 냄새였다.

*

한낮에 고개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다.

고개가 열렸다는 말은 소금 행상 목노인이 먼저 들고 왔다. 등에 소금 가마니를 지고,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눈 속에서 반쯤 기다시피 내려와서는 대장간 문간에 가마니를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소금 한 줌에 소문 하나요. 오늘은 소문이 셋이라 소금도 셋 줌 사셔야 하오.”

“무슨 소문이오?”

“첫째는, 뒤에 아전 나리가 오시오. 둘째는, 그 뒤에 철문 문주가 오시오. 셋째는, 셋째는 소금 세 줌 산 다음에.”

곤 노인이 콩 한 줌을 내밀었다. 목노인이 콩을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품에 넣었다.

“셋째는, 문주가 한내 벽을 보러 온다는 거요. 고개 넷에 벽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돌았소. 누가 돌렸는지는 콩 한 줌으로는 말 못 하오.”

목노인이 그제야 나를 알아본 척했다. 사실은 문간에서부터 알아봤을 것이다.

“아, 당신. 작년 가을 북쪽 장터에서 내가 소문 하나 판 사람이구려. 올겨울 도치가 한내로 간다는 소문. 그 값을 소금 반 줌만 받았지. 나머지 반 줌은 언제 주려오?”

“살아서 봄을 넘기면 주겠소.”

“그럼 떼인 셈 치지.” 목노인이 벽을 보고 한참 칼을 셌다. “여덟이군. 떼인 셈 치기엔 벽이 너무 성하오. 반 줌은 받으러 오리다.”

뒤이어 아전 박도겸이 관노 둘을 데리고 내려왔고, 그 뒤로 철문 문주 주사헌이 제자 넷을 데리고 내려왔다.

주사헌은 쉰 줄이었다. 키가 크지 않았고, 허리에 찬 칼이 몸에 비해 짧았다. 눈보다 코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대장간 문턱을 넘자마자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켰다. 그러고 벽 앞으로 갔다.

*

아전이 먼저 벽을 셌다.

“여덟이오. 작년 가을에 셀 때는 아홉이었는데.”

“하나를 내렸소.”

삼출이 대답했다. 아전이 붓을 들고 무언가를 적으려다 멈췄다.

“여덟이면 한 해 열여섯 섬이오. 이 벽의 칼 주인들은 호적에 산 사람으로 올라 있으니, 산 사람은 냅니다.”

“알고 있소.”

“한내가 이걸 열 해 동안 냈다는 것도 알고 있소? 대장간 몫에 얹어서 냈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몰랐을 거요.”

아전이 사람들을 둘러봤다. 대장간 안에 아직 열여덟이 남아 있었다. 돌금댁이 팔짱을 끼고 앞으로 나왔다.

“몰랐소. 그런데 몰랐어도 낸 건 낸 거요.”

“그럼 앞으로는 벽을 비우실 거요? 비우면 안 냅니다.”

“비우면 우리 시숙이 무적이 되오. 그러면 철문이 찾아가 베겠지.” 돌금댁이 벽의 첫째를 봤다. “이제는 알고 내지. 알고 내는 거하고 모르고 내는 거는 다르오.”

돌금댁 뒤에서 말복 영감이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들은 얼굴이었다. 삼출이 손가락을 꼽다가 그만두고 팔짱을 꼈다.

“열여섯 섬이오. 가을에 걷으시오.”

아전이 붓을 내렸다. 한참 벽을 보고 있다가 적었다. 적으면서 한 마디 했다.

“나는 이 벽을 해마다 셉니다. 세는 게 내 일이오. 그런데 올해는 셀 맛이 좀 나는군.”

*

주사헌은 그동안 칼마다 코를 대고 있었다.

손은 대지 않았다. 코만 댔다. 제자 넷은 문간에 서서 제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한 번도 벽 쪽을 보지 않았다. 벽을 보는 것은 문주의 일이라는 얼굴이었다. 여덟 자루를 다 맡고 나서 비어 있는 다섯째 못 앞에 섰다. 못 밑의 벽에 칼집이 눌러 놓은 자국이 있었다. 한 자국 위에 다른 자국이 겹쳐 있었다. 열 해 동안 재구의 칼이 눌러 놓은 넓은 자국 위에, 하룻밤 걸렸던 한석의 칼이 남긴 좁은 자국이 새로 나 있었다.

“여기 두 자루가 걸렸었군. 하나는 오래, 하나는 짧게.”

곤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오래 걸렸던 것은 죽은 자의 칼이었소. 내가 걸었소. 열 해 동안. 지난달에 내렸소.”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주사헌이 곤 노인을 봤다. 한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걸려 있지 않으면 지금 벽은 거짓말을 안 하는 거요. 법도는 지금을 보오. 짧게 걸렸던 건?”

도치가 대장간 문간에 서 있었다. 언제 왔는지 몰랐다. 억보가 그 뒤에 서 있었다. 도치가 허리춤에서 칼 한 자루를 풀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주사헌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문주, 거둔 칼을 바칩니다. 구름재 한석, 무적. 정월 열여드레 새벽 한내 개울에서 법도대로 벴습니다.”

장터에서 은자 두 냥 주고 샀다던 그 칼이었다. 무른 쇠, 들쭉날쭉한 날. 나는 앞으로 나갔다.

“그 칼은 정월 보름날 밤 한내 벽 다섯째 못에 걸렸소. 곤 어른이 이름을 불렀고, 유월이 갈았소. 사흘 뒤 새벽에 한석이 죽었고, 그 새벽에 칼이 벽에서 없어졌소.”

도치가 웃었다.

“한내 사람들 말이오. 문주께서는 고개 넷의 법도를 한내 사람 말로 재지 않으십니다.”

주사헌이 칼을 받아 들었다. 칼집에서 뽑았다. 날을 코에 댔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물비린내가 나는군.”

주사헌이 도치를 내려다봤다.

“무적의 칼이 어째서 이렇게 갓 간 냄새가 나나. 벽 없는 자가 새벽마다 제 칼을 가나?”

“제 놈이 갈았겠지요.”

“이 결로?”

주사헌이 날을 햇빛 쪽으로 기울였다. 날 가장자리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줄이 촘촘히 비스듬하게 나 있었다. 유월이 앞으로 나와 반쪽짜리 숫돌을 내밀었다. 주사헌이 그 돌을 받아 쪼개진 면과 날의 결을 번갈아 봤다. 코에 돌을 댔다. 돌에서도 같은 비린내가 났을 것이다.

“이 골짜기에 하나뿐인 돌이에요. 반쪽이 된 뒤로는 제 손으로만 갈았어요. 열다섯으로 눕혀서요.”

주사헌이 칼집을 뒤집었다. 칼집 끈 고리 안쪽에 쇳녹이 둥글게 묻어 있었다. 대장간 벽의 못은 열 해 동안 녹이 슨 무쇠 못이다. 한 번 걸린 칼집에는 그 녹이 고리 안쪽에 묻어난다.

주사헌이 칼을 칼집에 넣고 일어섰다.

“성한 칼을 벽에서 내렸다. 벽 있는 자를 벴다. 그러고 그 칼을 거둔 칼이라며 내게 바쳤다.”

도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번이 제일 오래갔다.

“도치. 철문에서 네 이름을 내린다.”

대장간 안이 조용해졌다. 주사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오늘 해 질 때까지는 아무도 너를 쫓지 않는다. 법도다. 내일부터 너는 무적이다. 고개 넷 어디서든.”

도치가 일어섰다. 한참 주사헌을 보다가 나를 봤다. 그러고 다시 웃었다. 이번 웃음은 이까지 보였다.

“해 질 때까지면 넉넉하지.”

도치가 돌아서서 문을 나갔다. 억보를 부르지 않았다. 억보는 문간에 선 채로 도치의 뒷모습을 봤다. 따라가지 않았다. 도치가 눈길 끝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억보가 대장간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벽 끝의 빈 못을 봤다. 그러고 제 어미가 서 있는 쪽을 봤다.

“이제 나는 어디에도 안 걸린 사람이오. 철문에도, 도치한테도.”

노파가 지팡이로 억보의 정강이를 가볍게 한 번 쳤다.

“그럼 집에나 걸려 있어라. 방 식는다.” 강쇠는 물 단지를 안은 채 화덕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주사헌이 나를 봤다.

“너는 열 해 전 곰손을 벴다. 거두는 칼을 벤 자는 철문이 벤다. 네 칼이 이 벽에서 성해서 열 해를 기다렸다.”

“알고 있소.”

“지금 너는 벽 앞에 서 있다. 벽은 떠난 사람만 지킨다. 돌아온 자는 한 철 안에 정한다. 다시 떠나서 벽에 기대든지, 철문에 걸리든지, 칼을 내려 제 발로 서든지.”

주사헌이 대장간 기둥의 금을 봤다. 백스물셋째 금이 아직 나무 가루를 달고 있었다.

“제 발로 서면 어찌 되오?”

“무적이다. 무적은 철문이 벤다.” 주사헌이 잠깐 말을 끊었다. “다만 법도대로 벤다. 등 뒤에서가 아니라 정면에서. 개울에서가 아니라 벽 앞에서.”

“삼월 초하루까지다.”

주사헌이 제자들을 데리고 나갔다. 아전도 붓을 챙겨 뒤를 따랐다.

목노인만 남았다. 소금 가마니를 다시 지다가 내 옆으로 와서 목소리를 낮췄다.

“넷째 소문은 공짜요. 도치가 동쪽 고개로 갔소. 새목 쪽이지. 새목 벽이 올겨울 녹슬었다오. 열두 자루 가운데 아홉이. 가는 노인이 동짓달에 죽었다더군. 이름이 내려진 놈이 제 값을 다시 사려면, 녹슨 칼을 한 아름 안고 북쪽 흑산에 가서 바치면 되지. 흑산 칼잡이들은 법도 같은 거 안 따지니까.”

유월이 내 옆에 와 섰다. 반쪽 숫돌을 쥔 채였다.

“새목 것까지요. 약속하셨어요.”

“새목은 고개 둘이오. 그리고 내일이면 도치가 거기 먼저 닿소.”

“그럼 오늘 가요.”

유월이 곤 노인을 돌아봤다. 노인이 걸상에 앉아 굽은 손으로 무릎을 짚었다.

“벽은 열여덟이 가네. 가 보고 싶었다며. 고개 너머.”

유월이 대답 대신 숫돌 상자를 끌어안았다. 상자 속에서 숫돌들이 서로 부딪혀 달그락거렸다. 열 해 동안 이 대장간 밖으로 한 번도 나가 본 적 없는 소리였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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