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54자) · 위단 · 이월 초엿새

새목

십 년 만에 칼을 찾으러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한내 고개 마루에 올라섰을 때 유월이 뒤를 돌아봤다.

골짜기 바닥에 지붕 스물세 채가 눈 밑에 엎드려 있었다. 초하루를 막 끝낸 굴뚝에서 아직 연기가 올랐다. 열한 줄이었다. 동짓달 그믐에 내가 이 자리에서 셋을 셌던 지붕들이다. 바람이 그 열한 줄을 한쪽으로 눕혔다. 유월은 한참 그것을 봤다. 숫돌 상자를 등에 지고, 아비의 칼을 무명에 싸서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여기서 보면 저렇게 작아요.”

“내려가면 다시 커지오.”

“아저씨는 열 해 전에 여기서 뒤돌아봤어요?”

“안 봤소.”

유월이 나를 한 번 보고 앞으로 돌아섰다. 고개 너머는 처음이라고 했다. 첫걸음을 내리막에 내딛으면서 유월이 발밑을 오래 봤다. 눈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사람을 죽인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처음 내려가는 길이었다.

강쇠가 뒤따라왔다. 한내에 있으면 도치가 돌아올까 봐 무섭다고 했고, 따라오면 도치를 만날까 봐 무섭다고 했다. 둘 중에 떡을 주는 쪽이 낫다며 유월 뒤에 붙었다. 사흘 동안 강쇠는 물 단지를 지고, 가끔 미끄러지고, 미끄러질 때마다 단지부터 끌어안았다.

첫날 밤은 고개 중턱 산막에서 잤다. 사냥꾼들이 쓰는 통나무 움막이었고, 지붕에 눈이 한 자 얹혀 있었다. 불을 피우자 벽 틈으로 연기가 샜다. 강쇠는 불 앞에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유월이 불 너머에서 물었다.

“새목은 어떤 데예요?”

“개울이 한내보다 좁고 차오. 여름에도 발을 오래 못 담그지. 어릴 때 만호하고 누가 오래 담그나 내기를 했소. 만호가 늘 이겼소. 발이 새빨개져서 나오면서도 웃었지.”

말하고 나서야 내가 그 이름을 제 입으로 꺼냈다는 것을 알았다. 유월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불이 한 번 튀었다. 유월이 나뭇가지로 숯을 한쪽으로 모으며 말했다.

“그럼 그 개울 물로 갈면 되겠네요. 차면 쇠가 단단해진다고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

새목에 닿은 것은 초닷새 해 질 녘이었다.

열네 채였다. 한내보다 골이 좁고, 집들이 개울을 따라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굴뚝 연기는 둘이었다. 대장간은 마을 끝에 있었는데 불이 꺼져 있었다. 문짝 하나가 떨어져 눈에 반쯤 묻혀 있었다.

벽에 칼이 열두 자루 걸려 있었고, 못이 둘 비어 있었다.

대장간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쓴 냄새가 문밖까지 났다. 유월이 코를 막지 않고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켰다. 그러고 벽 앞으로 가서 칼마다 코를 댔다. 셋째 칼 앞에서 한 번 멈추고, 여섯째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아홉이에요. 셋은 아직 괜찮고, 아홉은 날에 점이 올라왔어요. 둘째랑 일곱째는 내일 해 뜰 때면 누가 봐도 보여요.”

빈 못 둘은 넷째와 열째였다. 덕삼과 만호의 자리다. 나는 그 두 못을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이 먼저 갔다. 못 밑에 칼집이 눌러 놓은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열 해 가까이 비바람이 들이치는 벽에서도 그 자국은 안 지워졌다.

“위단이냐.”

대장간 문간에 늙은 여자가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등이 굽었고, 눈이 나를 똑바로 봤다. 새목 존위 끝분이었다. 내 고모다.

“스물세 해 만이구나. 그 가운데 두 번은 여기 왔었지. 우리한테 얼굴을 안 보이고.”

“고모.”

“고모라고 부르지 마라. 네가 거둔 두 자루 자리가 저기 비었다.”

끝분 뒤로 새목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도끼를 든 사내도 있었고, 부지깽이를 든 여자도 있었다. 누군가 거두는 칼 위단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사람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았다.

“도치가 왔었다.”

끝분이 말했다.

“어제. 은자를 한 줌 들고. 녹슨 아홉 자루를 해 뜰 때 가져가게 해 주면, 한 자루에 한 냥씩 아홉 냥을 주겠다더라. 우리가 그걸 안 받으면 어차피 녹이 보일 테니 법도대로 거둘 거라고. 제가 이제 철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안 하더라.”

“그자는 어제부터 무적이오. 거둘 수 없소. 가져가면 훔치는 거요.”

“훔치든 거두든 벽에서 칼이 없어지면 우리 아들들은 무적이다.” 끝분이 지팡이로 눈을 한 번 찍었다. “그리고 갈면 관아가 두 섬씩 걷는다. 아홉이면 열여덟 섬이다. 새목은 그걸 못 낸다. 가는 노인이 동짓달에 죽은 뒤로 우리는 셈을 다 해 봤다. 녹슬게 두는 게 싸더라.”

*

나는 새목 대장간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한내에서 유월의 문 앞에 꿇었던 것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사람들 앞이었다. 열 몇 사람의 눈이 내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덕삼의 칼은 열 해 전 겨울에, 만호의 칼은 그 이듬해 봄에 내가 거뒀소. 철문 삯으로 한 자루에 석 냥을 받았소. 덕삼은 그해 겨울에, 만호는 이듬해 봄에 베였소. 만호는 내가 알던 사람이오. 알고도 했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강쇠가 문간에서 물 단지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열여덟 섬은 내가 지겠소. 봄마다 와서 이 벽을 갈겠소. 표사 삯으로 세곡을 대겠소. 도치가 준다는 아홉 냥보다는 늦게 오겠지만, 칼은 벽에 남소.”

“네가 봄마다 온다는 걸 누가 믿냐.”

끝분이 물었다. 삼출이 한 말과 같은 말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유월이 앞으로 나왔다. 무명을 풀고 아비의 칼을 두 손으로 들어 보였다.

“저는 한내에서 열 해 동안 이 사람 칼을 갈았어요. 백스무 번이요. 이 사람을 믿어서가 아니었어요. 제가 갈기로 해서 갈았어요.” 유월이 새목 사람들을 둘러봤다. “이 벽도 누가 갈기로 하면 돼요. 오늘 밤만이라도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열여덟 섬은 봄에 셈하시고요.”

끝분이 유월을 오래 봤다. 그러고 유월의 오른손을 봤다. 엄지 밑의 하얀 굳은살을.

“그 손으로 백스무 번이냐.”

“백스물셋이요. 나흘 전에 셋째가 됐어요.”

끝분이 지팡이를 짚고 돌아섰다.

“물 데워라. 집집이.”

*

그 밤 새목 대장간에 불이 다시 들었다.

유월이 한 사람씩 손을 잡아 가르쳤다. 세 번 밀고 한 번 물을 찍는다. 셋째 번에 손을 빼지 마라. 코로 봐라. 반쪽짜리 아비의 숫돌과 내가 깎은 청석이 새목 사람들 손을 번갈아 오갔다. 굴뚝 연기가 둘에서 다섯이 되고, 자정 무렵에는 여덟이 되었다. 강쇠는 밤새 물을 날랐다. 우물과 대장간 사이 눈길에 강쇠 발자국만 한 줄로 깊게 패었다.

닭이 한 번 울었을 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도치였다. 그 뒤로 사내 둘이 섰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털가죽을 두르고, 허리에 넓적한 칼을 찼다. 북쪽 흑산 사람들이라고 강쇠가 내 귀에 속삭였다. 도치의 오른 손등 흉이 등잔불에 번들거렸다.

“해 뜨기 전에 끝나겠소? 아홉 자루를?”

도치가 벽을 턱으로 가리켰다.

“다 못 끝낼 거요. 그리고 나는 이제 법도를 안 따져도 되는 몸이오. 해 뜰 때까지 기다릴 까닭도 없지.”

흑산 사내 하나가 벽 쪽으로 걸어갔다. 새목 사내가 도끼를 들고 앞을 막았다가 넓적한 칼등에 어깨를 맞고 나동그라졌다.

나는 허리를 더듬었다. 없었다. 내 칼은 한내 벽 셋째 못에 걸려 있었다.

유월이 내 앞에 칼을 내밀었다. 재구의 칼이었다. 칼집째, 두 손으로.

“벽에 안 걸린 칼이에요. 그냥 칼이에요.”

나는 받아서 뽑았다. 자루가 굵었다. 유월 손에는 안 맞던 자루가 내 손바닥에 꽉 찼다. 매듭이 없었다. 반 뼘이 늦지 않았다.

흑산 사내가 벽의 둘째 칼에 손을 뻗는 찰나에 그 손목을 칼등으로 쳤다. 사내가 손목을 감싸 쥐고 물러났다. 도치가 칼을 뽑았다.

열 해 전보다 느렸고, 개울 얼음 위에서보다 빨랐다. 제 값이 걸린 사람의 칼이었다. 첫 번째를 받았다. 두 번째를 흘렸다. 세 번째에 도치의 칼끝이 내 왼쪽 귀를 스쳤다. 뜨거운 것이 목덜미로 흘렀다.

네 번째에 나는 셋째 번에 손을 빼지 않았다.

재구의 칼이 도치의 오른 손등을 갈랐다. 가로 흉 위에 세로로 한 줄. 도치의 칼이 흙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칼끝을 도치 목 밑 한 뼘에 멈췄다. 도치가 나를 올려다봤다. 웃지 않았다.

“베시오. 나는 무적이오. 누가 베도 법도요.”

“알고 있소.”

나는 칼을 거뒀다. 도치를 베면 그것은 법도였다. 그래서 베지 않았다. 열 해 동안 나는 법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그 일들이 빈 못 둘로 남았다.

“가시오. 흑산으로 가든 어디로 가든. 녹슨 칼 없이.”

도치가 피 흐르는 손을 감싸 쥐고 일어섰다. 흑산 사내들이 그를 부축했다. 문간에서 도치가 한 번 돌아봤다.

“당신은 열 해 전에도 날 안 벴지. 그게 당신 셈이 틀린 데요.”

셋이 새벽 눈길로 사라졌다.

문간에서 강쇠가 물 단지를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서 있었다. 흑산 사내가 들어오면 단지로 내려칠 참이었다고 했다. 단지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팔이 떨렸다. 유월이 단지를 받아 내려놓으며 그 물은 칼 갈 물이라고 했다. 강쇠가 그제야 팔을 내리고 주저앉았다.

“누님, 나도 한 번은 싸운 거요?”

“물은 안 쏟았으니까 이긴 거예요.”

*

해가 뜰 때 아홉 자루 가운데 여섯이 끝나 있었다. 나머지 셋은 그날 해 질 녘까지 끝났다. 새목 사람 열넷이 번갈아 갈았다. 끝분도 갈았다. 굽은 허리로 숫돌 앞에 앉아, 유월이 손등을 누르는 대로 밀었다.

나는 그날 저녁 빈 못 둘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새목 대장간 벽은 흙벽이 아니라 통나무를 잇대어 세운 벽이었다. 열 해 가까이 눈바람이 들이친 통나무는 은빛으로 바래 있었고, 못 밑의 칼집 자국만 둘레보다 조금 짙었다. 거기 칼이 걸려 있던 동안 햇빛이 닿지 않았던 자리다. 손바닥을 대 보니 나무가 차가웠다. 옆에 걸린 칼들에서 올라오는 물비린내가, 그 두 자리만 비켜 가는 것 같았다.

초여드레 새벽, 끝분이 벽 앞에서 칼마다 코를 대 보았다. 열두 자루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빈 못 둘만 냄새가 없었다.

“저 둘은 비워 둬라.”

끝분이 넷째와 열째 못을 지팡이로 가리켰다.

“네가 봄마다 와서 볼 수 있게.”

“고모.”

“고모라고 부르지 말라 했다.” 끝분이 나를 봤다. 눈이 젖어 있지 않았다. “네 칼이 한내에서 성하다는 소문은 해마다 들었다. 소금 장수가 날라다 줬지. 우리는 그걸로 네가 산 줄 알았다. 거둬 간 줄은 몰랐어도, 산 줄은 알았다. 그게 열 해 동안 이 늙은이가 들은 좋은 소식 전부였다.”

유월이 새목 기둥에 금을 하나 그었다. 여기 사람들이 매달 그을 첫 금이었다. 칼끝이 나무를 긁는 소리가 한내 기둥에서 나던 소리와 똑같았다. 이튿날 새벽 우리는 한내 쪽 고개로 돌아섰다. 삼월 초하루까지 스무 날이 남아 있었다. 내 칼은 아직 한내 벽 셋째 못에 걸려 있었고, 재구의 칼은 도로 유월의 무명에 싸여 그 옆구리에 끼워져 있었다. 굵은 자루가 무명 밖으로 한 치쯤 삐져나와 있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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