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55자) · 위단 · 정월 보름
맡기러 온 사람
십 년 만에 칼을 찾으러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한석은 헛간에서 사흘을 앓았다.
내가 자던 짚자리를 내주었다. 어깨의 쇠뇌 자국은 깊지 않았는데, 고개를 넘는 이틀 동안 얼었다 녹았다 해서 살이 검게 들떠 있었다. 곤 노인이 숯불에 달군 칼끝으로 들뜬 살을 지졌다. 한석은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짚을 한 줌 쥐어 뜯었다. 다 지지고 나니 한석의 손에 짚이 한 움큼 남아 있었다.
유월이 죽을 쑤어 날랐다. 날마다 두 번이었다. 사흘째 저녁에 한석이 죽 그릇을 비우고 나서 처음으로 긴말을 했다.
“구름재에는 산배나무가 많소. 우리 어머니가 그 배로 식초를 담갔지. 초하루마다 벽에 가서 내 칼을 갈고, 돌아오는 길에 식초 단지를 한 번 휘저었다더군. 칼 가는 날이 식초 젓는 날이었소.”
“어머님이 가셨소?”
“작년 봄에. 그 뒤로 아무도 안 갈았소. 마을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우리 어머니 아닌 사람이 내 칼을 갈 까닭은 없지.”
한석이 빈 죽 그릇을 내려다봤다.
“여기는 까닭이 없는데도 간다고 들었소. 장터 뒷방에서. 한내는 남의 칼도 간다고. 그 말 듣고 고개를 넘었소.”
유월이 그릇을 받아 들고 나가다가 문간에서 돌아섰다.
“까닭은 있어요. 갈기로 하면 그게 까닭이에요.”
그날 저녁에 강쇠가 헛간 앞을 두 번 지나갔다. 한 번은 떡을 얻으러, 한 번은 아무 까닭 없이. 두 번째 지나갈 때 헛간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한석이 짚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강쇠의 얼굴이 굳었다. 강쇠는 떡을 받지 않고 돌아갔다.
*
정월 보름날, 한내는 삼출의 집 마당에 모였다.
대보름 달맞이를 삼출 집 마당에서 하는 것이 한내 풍속이라고 했다. 존위 집이니까. 오늘은 달보다 먼저 볼 것이 있었다. 한석의 칼을 벽에 걸지 말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사람 사는 집 열아홉에서 한 사람씩 나왔다. 도치 일행은 부르지 않았는데 노파 집에서는 노파가 나왔다. 억보는 울타리 밖에 서서 마당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삼출이 마루 끝에 서서 손가락을 꼽았다.
“두 섬이오, 두 섬. 성한 칼 하나에 관아가 산 사람 하나로 치고, 산 사람은 한 해 두 섬을 내오. 우리가 받으면 그 두 섬을 한내가 지오. 올해 벌써 여덟 자루에 열여섯 섬이오. 거기에 두 섬을 더 얹자는 거요.”
“여덟이면 열여섯이 맞지요.”
돌금댁이 말했다.
“아홉일 때는 열여덟이었소. 다섯째를 내리고 두 섬이 줄었는데 그 두 섬을 다시 얹자는 거지.”
“셈은 맞소. 그런데 존위 어른, 다섯째 내릴 때는 두 섬 준다고 좋아하시더니.”
“누가 좋아했소?”
“얼굴이 좋아했지.”
마당에 웃음이 한 번 돌았다. 말복 영감이 옆 사람에게 무슨 일로 웃느냐고 물었고, 옆 사람이 존위 얼굴 이야기라고 하자 영감이 삼출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따라 웃었다. 삼출은 웃지 않고 손가락을 하나 더 꼽았다.
“그리고 두 섬만이 아니오. 저 사람은 쫓기는 사람이오. 철문이 쫓는 사람을 한내가 받으면, 철문이 한내를 보오. 봄에 고개가 열리면 도치 같은 자가 다섯이 올지 열이 올지 모르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마당 가운데로 나갔다.
“두 섬은 내가 지겠소. 고개가 열리면 표사 일을 해서라도 봄 안에 갚겠소.”
“자네가 봄에 여기 있을지 누가 아오?”
삼출이 나를 똑바로 봤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열 해 전에도 나는 봄을 못 기다리고 떠났다.
“그리고 철문이 한내를 본다는 건 두 섬으로 갚을 수 있는 셈이 아니오. 자네가 셈을 해 보시오. 그 사람 하나를 받아서 한내가 얻는 게 뭐요?”
마당이 조용해졌다. 얻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 받자고 하는 중이었다. 제 칼 하나로 열 해를 산 사람이 이제 남의 칼을 받자고 하면, 그 값은 한내가 치른다.
한석이 마당 끝에서 한 걸음 나왔다. 칼을 쥔 손이 하얬다.
“나는 한내에 줄 것이 없소. 받아 주면 봄에 고개를 넘어 가겠소. 여기 있으면 철문이 여기로 오니까. 벽에 칼만 걸어 두고, 나는 멀리 가 있겠소. 그게 떠난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들었소.”
한석은 그 말을 하고 도로 마당 끝으로 물러났다.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내 아들 칼은 내렸소.”
사람들이 노파를 봤다. 울타리 밖의 억보도 봤다.
“한 사람이 벽에도 걸리고 철문에도 걸릴 수는 없다고, 한내가 내 아들 칼을 벽에서 내렸소.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오. 그런데 이번에는 철문에 걸릴 데가 없어서 벽을 찾아온 사람이오.” 노파가 한석을 봤다. 한석은 마당 끝에 서서 제 칼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내리는 벽이면 내 아들 때 한 번으로 됐소. 받아 주시오. 받는 벽이 내리는 벽보다 낫소.”
삼출이 한참 노파를 봤다. 그러고 마루에 주저앉더니 제 무릎을 두어 번 쳤다.
“두 섬은 저 사람이 지오. 봄에 못 갚으면 대장간 장작으로 받겠소.”
*
그날 밤 한석의 칼이 다섯째 못에 걸렸다.
한석이 제 손으로 걸었다. 칼을 못에 걸기 전에 곤 노인이 물었다.
“이름을 대게.”
“한석이오. 구름재 한석.”
“다섯째, 한석.”
곤 노인이 그렇게 불렀다. 한석이 그 소리에 칼을 걸다 말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손을 내리고 칼을 걸었다. 칼이 못에서 한 번 흔들리다 멈췄다.
유월이 그 칼을 바로 내려서 갈았다. 첫 번째 갈기였다. 장터에서 산 칼이라 쇠가 무르고 날이 들쭉날쭉했다. 유월이 반쪽짜리 아비의 숫돌로 한밤까지 갈았다. 한석은 그 옆에 앉아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다 갈고 나서 유월이 칼을 한석의 코 밑에 내밀었다.
“물비린내예요. 이게 산 냄새예요.”
한석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 웃었다. 이가 하나 빠져 있었다.
*
정월 열여드레 새벽, 한석이 물 단지를 들고 나갔다.
그날은 초하루가 아니었다. 한석은 제 칼을 갈 물을 제 손으로 길어 두고 싶다고 했다. 다음 초하루까지는 열이틀이 남았는데도 그랬다. 우물이 얼어서, 내가 청석을 캐던 개울 구멍으로 간다고 했다. 거기는 물이 흐르는 자리라 얼음이 얇다. 나는 헛간 문턱에서 그 뒷모습을 봤다. 단지를 옆구리에 끼고 벼랑 쪽으로 걸어갔다. 어깨가 한쪽 조금 처져 있었다. 그게 내가 본 마지막이었다.
닭이 두 번 울었을 때 한석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개울로 갔다. 벼랑 밑 소나무 그늘에 눈이 파랗게 누워 있었다. 개울 구멍 옆에 물 단지가 모로 누워 있었다. 단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눈 위에서 얼어 유리처럼 빛났다. 그 옆에 한석이 엎드려 있었다.
등에 칼자국이 하나 있었다. 한 번이었다. 두 번 벨 필요가 없는 사람이 벤 자국이었다. 눈이 그 밑에서 검붉게 굳어 있었다. 한석의 오른손이 단지 주둥이를 쥔 채로 얼어 있었다. 물을 긷던 손 그대로였다.
발이 눈에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벼랑 위에서 소나무 가지가 눈을 털었고, 그 눈가루가 한석의 등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개울 구멍에서는 물이 얼음 밑을 흐르는 소리가 났다. 어제도 났고 내일도 날 소리였다. 열 해 동안 칼을 거두고 사람을 쫓고 쫓기는 것을 옆에서 봤는데, 쫓긴 끝이 이렇게 조용한 줄은 몰랐다.
나는 한석 옆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돌려 눕혔다. 눈썹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는데, 빠진 이 자리가 보였다. 어젯밤 웃을 때 봤던 그 자리였다.
코에 쇠 냄새가 걸렸다. 피 냄새 밑에, 갓 간 쇠의 물비린내가 아니라 오래 쓴 쇠의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
대장간으로 돌아와 벽을 봤다.
다섯째 못이 비어 있었다.
유월이 기둥 앞에 서 있었다. 먼저 와서 본 것이다. 유월이 빈 못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새벽에 누가 내려 갔어요. 제가 왔을 땐 벌써 없었어요.”
곤 노인이 걸상에 앉은 채로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 굽은 손가락이 무릎을 꽉 쥐고 있었다.
“벽에 칼이 없으면 무적이지.” 노인이 벽을 보며 말했다. “무적을 베는 건 법도다. 누가 한 짓인지 몰라도, 그자는 그렇게 말할 걸세.”
나는 대답하지 않고 대장간을 나왔다. 노파 집 쪽으로 걸었다. 발밑에서 눈이 마른 소리로 부서졌다.
도치는 노파 집 마루에 앉아 칼을 닦고 있었다. 무명 헝겊에 기름을 먹여 날을 천천히 훑었다. 나를 보고 웃었다.
“일찍 나왔구려.”
나는 마루 앞에 섰다. 억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가 내 얼굴을 보고 멈췄다. 강쇠는 부엌 문 뒤에서 머리만 내밀었다.
“한석이 개울에서 죽었소.”
“저런.” 도치가 칼을 뒤집어 반대쪽을 닦았다. “무적이었다더군. 벽에 칼 없는 자가 새벽에 혼자 개울에 가면 그럴 수 있지.”
“그 칼은 어젯밤에 걸렸소. 곤 어른이 이름을 불렀고, 유월이 갈았소. 열아홉 집이 봤소.”
“한내 사람들이 봤다는 말은 고개 넷 밖에서는 안 통하오.” 도치가 칼을 칼집에 넣었다. “지금 벽에 그 칼이 있소? 없잖소. 벽에 없는 칼은 걸린 적이 없는 칼이오.”
나는 마루로 한 걸음 올라서서 도치의 멱살을 잡았다. 도치가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칼을 뽑지 않았다. 내가 먼저 치기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내가 치면, 벽 앞에 선 사람이 먼저 손을 댄 것이 된다.
코에 냄새가 걸렸다. 도치의 손에서, 소매 끝에서. 기름 냄새 밑에 아주 옅은 물비린내가 있었다. 반쪽짜리 청석으로 간 쇠에서 나는 비린내였다. 어젯밤 유월이 한석의 칼을 코 밑에 내밀었을 때 맡았던 냄새였다.
나는 멱살을 놓았다.
“고개가 열리는 날, 문주 앞에서 봅시다.”
“좋지.” 도치가 옷깃을 폈다. “나도 문주께 드릴 것이 있소.”
돌아서는데 부엌 문 뒤에서 강쇠가 나를 보고 있었다. 강쇠의 눈이 벌갰다. 강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쏙 집어넣었다.
그날 낮에 한석을 벼랑 밑 양지에 묻었다. 언 땅이 곡괭이를 튕겨 내서, 불을 피워 땅을 녹여 가며 팠다. 반나절이 걸렸다. 곤 노인이 무덤 앞에서 한 번 이름을 불렀다.
“구름재 한석.”
흙을 다 덮고 나서 삼출이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았다. 품에서 작은 단지 하나를 꺼내 봉분 머리에 놓았다. 식초 단지였다. 삼출네 광에 몇 해 묵은 것이라고 했다.
“구름재 산배 식초만은 못하겠지만.”
삼출이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두 섬은 안 받겠소. 받을 데가 없어졌으니.”
돌금댁이 삼출의 등을 한 번 두드렸다. 삼출은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말복 영감이 무덤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두 번 물었고, 이번에는 아무도 소리 질러 대답하지 않았다. 영감이 그 침묵을 알아듣고 모자를 벗었다.
벽에 칼은 없었지만 이름은 불렸다. 우리가 한 일은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