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67자) · 위단 · 정월 열흘

다섯째

십 년 만에 칼을 찾으러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초닷새부터 아흐레까지 나는 유월에게 칼 가는 법을 다시 배웠다.

열 해 전에 내가 가르친 것을 이번에는 내가 배웠다. 유월은 입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내 뒤에 쪼그려 앉아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얹고 같이 밀었다. 열 해 전에 내가 그 아이한테 한 것을 그대로 했다. 손바닥이 작아서 내 손등을 다 덮지 못했는데, 누르는 힘은 내 손목까지 내려왔다.

“셋째 번이 짧아요. 아저씨는 셋째 번에 늘 손을 먼저 빼요.”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소.”

“칼 뽑을 때 반 뼘 늦는 거랑 같은 버릇이에요. 끝까지 안 가고 도망갈 자리를 먼저 봐요.”

곤 노인이 걸상에서 콩을 씹다가 사레가 들렸다. 한참 기침하고 나서 유월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라는 뜻이었다.

다섯째와 여덟째와 아홉째를 갈았다. 돌금댁네와 말복 영감네가 번갈아 물을 데워 왔다. 삼출은 물을 데우지는 않았지만 장작 한 짐을 대장간 앞에 부려 놓고 갔다. 값은 봄에 받겠다고 했다. 곤 노인이 그 장작을 내려다보며, 봄이 오기 전에 삼출이 장작 값을 잊어버리기를 빌자고 했다. 유월은 삼출이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을 열 해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섯째를 갈 때 유월이 한 번 손을 털었다.

“이건 자루가 굵어요. 갈고 나면 늘 손가락이 저려요.”

“다른 것보다 한 치쯤 굵구려.”

“열 해 동안 이것만 저렸어요. 손이 큰 사람 칼인가 봐요.”

곤 노인이 콩 씹던 입을 멈췄다. 나는 그것을 봤다. 유월은 못 봤다.

*

정월 열흘 한낮에 도치가 사람들을 몰고 왔다.

억보와 강쇠가 뒤에 섰고, 그 뒤로 삼출과 돌금댁과 말복 영감이 왔다. 개울 아래 부부도 왔다. 도치가 집집마다 다니며 대장간에 볼거리가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볼거리라는 말에 사람들이 모였다. 겨울 골짜기에는 볼거리가 없다.

도치가 벽 앞에 섰다. 이번에는 칼에 코를 대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다섯째를 가리켰다. 손가락이 칼집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이건 죽은 자의 칼이오.”

대장간 안이 조용해졌다. 도치는 사람들을 한 명씩 둘러보았다.

“열 해 전 그믐 전날 밤에 우리가 여기 왔을 때, 이 벽에 칼이 일곱 자루였소. 셋째 못과 다섯째 못이 비어 있었지. 억보가 셌소. 거두는 칼은 벽부터 세거든. 그런데 이듬해 봄에 누가 와서 보니 아홉이더라는 거요. 둘이 늘었는데, 그해 겨울에 한내에서 고개를 넘어 떠난 사람은 이 양반 하나뿐이었소.”

억보는 벽을 보지 않고 제 발끝을 보고 있었다.

“셋째는 이 양반 것이고, 그럼 이 다섯째는 누구 칼이오? 떠난 사람의 칼이 아니면 죽은 사람의 칼이오. 이 골짜기에서 그해 겨울에 죽은 사람은 재구라는 대장장이였지.”

유월이 숫돌 앞에서 일어섰다. 손에 쥔 반쪽 돌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치가 법도를 외는 사람처럼 천천히 말했다.

“죽은 자의 칼이 성하면 벽이 거짓말을 한 것이오. 거짓말한 벽은 벽이 아니오. 고개가 열리면 나는 문주께 아뢰겠소. 문주가 한내 벽을 벽이 아니라고 하는 날, 여기 걸린 칼은 전부 녹슨 칼로 쳐지오. 존위 어른 아들 칠성이, 앞집 아주머니 시숙 덕보, 영감님 딸 순금이, 전부 그날부터 고개 넷 어디서든 무적이오.”

삼출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돌금댁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가 멈췄다. 말복 영감은 무슨 소리냐고 두 번 물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셈을 하나 하지.” 도치가 웃었다.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셋째를 내 손에 넘기시오. 이 양반 칼 하나만. 그러면 나는 다섯째를 못 본 걸로 하겠소. 한 자루로 여덟을 사는 셈이오. 이만한 셈이 어디 있소?”

삼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치가 아니라 곤 노인을 향해서였다.

“어른, 저게 참말이오?”

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삼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참말이면 우리 칠성이가 저 칼 하나 때문에 무적이 되는 거요. 열네 해 동안 내가 두 섬씩 얹어 내면서 산 사람으로 쳐 온 아들이, 남의 집 죽은 사람 칼 하나 때문에.”

“남의 집이라니, 재구가 남이오?”

돌금댁이 삼출의 말을 잘랐다.

“그 사람이 이 대장간에서 스무 해 동안 이 마을 호미 날, 낫 날 다 세워 줬소. 존위 어른네 작두도 그 사람이 벼렸지.”

“작두 얘기가 지금 왜 나오오?”

“작두 날은 공짜로 세워 달라더니, 죽은 뒤엔 남이냐 이 말이오.”

개울 아래 집 사내가 둘 사이를 말렸고, 말복 영감은 작두가 어쨌느냐고 두 번 물었다. 도치는 그 소란을 팔짱을 끼고 구경했다. 겨울 골짜기에서 볼거리가 제일 필요했던 사람은 도치였다.

*

곤 노인이 걸상에서 일어났다. 굽은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벽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걸었네.”

사람들이 노인을 봤다. 유월도 봤다.

“재구는 그해 동짓달 초에 갔네. 그날 밤이 지나고 이 사람이 떠나고 나서, 첫 초하루가 오기 전날 밤에 내가 재구 칼을 벽에 걸었지. 다섯째 자리가 비어 있었네.”

“할아버지.”

유월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아버지 칼이요?”

“그렇다.”

“왜요?”

노인이 벽의 다섯째를 봤다. 굽은 손으로 그 칼집을 짚으려다 손을 거뒀다. 법도를 아는 손이었다.

“첫 초하루에 내가 갈려고 했는데 손이 안 잡혔다. 네가 숫돌을 가져갔지. 벽에 여덟이 걸려 있었는데, 여덟이 전부 남의 칼이었다. 열두 살짜리가 남의 칼만 여덟 자루 가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홉 가운데 하나는 네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셨어요?”

“그래서 법도를 어겼다. 열 해 동안.”

유월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섯째를 보고, 제 오른손을 봤다. 열 해 동안 이 칼을 갈 때만 저리던 손가락이었다.

도치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감동은 좋은데, 셈은 그대로요. 셋째를 넘기시오.”

나는 벽 앞으로 갔다. 셋째 못에 손을 뻗었다. 이것이 맞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제 칼 하나로 여덟이 산다면, 열 해 동안 여덟 사이에 끼어 산 사람이 치를 값으로는 싸다. 도치가 거둬 가면 나는 무적이 된다. 고개가 열리면 철문이 올 것이다. 그것으로 끝난다. 나는 늘 셈부터 했다. 셈을 하면 손이 덜 떨린다.

내 손이 칼집에 닿기 전에 유월이 그 손목을 잡았다.

“그건 아저씨 칼이 아니에요.”

“내 칼이오.”

“제가 고른 거예요. 초나흘에 제가 골랐어요. 아저씨가 넘기면 제 것을 넘기는 거예요.”

유월이 내 손목을 놓고, 다섯째 앞으로 갔다. 두 손을 뻗어 못에서 칼을 내렸다. 자루가 굵어서 유월의 손가락이 벌어졌다. 유월은 그 칼을 가슴 앞에 두 손으로 세워 들었다.

“아버지는 죽었어요.”

유월이 도치를 보고 말했다.

“벽이 거짓말 안 하게 할게요. 이제 이 벽에 죽은 사람 칼은 없어요. 문주님한테 가서 말씀하세요. 열 해 전에 한내 벽이 거짓말을 했다고요. 지금은 안 한다고요.”

도치의 웃음이 굳었다. 법도는 지금 벽에 걸린 칼을 본다. 열 해 전에 무엇이 걸려 있었는지를 보지 않는다. 도치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열 해 동안 거짓말한 벽이라는 건 남소.”

“남겠죠. 그것도 제가 질게요.”

도치는 한참 유월을 봤다. 그러고 억보를 돌아보며 턱짓을 했다. 나가자는 뜻이었다. 억보는 움직이지 않았다. 억보가 벽 끝의 빈 못을 보고 있었다. 제 칼이 걸렸던 자리였다. 도치가 억보의 빈 소매를 한 번 잡아당겼다. 억보가 그제야 돌아섰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삼출은 나가다가 제 아들 칼 앞에서 한 번 멈췄다. 칼을 보지 않고 유월의 등을 봤다. 그러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

벽에 칼이 여덟 자루가 되었다. 다섯째 못이 비었다. 못 하나와, 열 해 동안 칼집이 눌러 놓은 자국만 남았다. 등잔불이 흔들릴 때마다 그 못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흔들렸다.

유월은 아비의 칼을 무명에 싸지 않았다. 칼집째 무릎에 얹고 화덕 앞에 앉았다. 곤 노인이 그 옆에 걸상을 끌어다 앉았다. 둘은 한참 불만 봤다.

“할아버지.”

“말해라.”

“벽에 안 걸어도 갈 수는 있죠?”

곤 노인이 유월을 봤다.

“벽에 안 걸린 칼을 가는 건 법도에 없다. 산 것으로도 안 치고 죽은 것으로도 안 친다. 그냥 칼을 가는 거지.”

“그럼 그냥 갈게요. 초하루마다. 집에서요.”

노인이 굽은 손을 유월의 무릎 위 칼집에 얹었다. 이번에는 거두지 않았다. 벽에 걸린 칼이 아니었으니까.

“재구가 그 칼을 그렇게 굵게 깎은 건, 제 손에 맞추려고 그런 거다. 네 손에는 안 맞는다.”

“알아요. 열 해 동안 저렸어요.”

유월이 웃었다. 울지 않고 웃었다. 나는 대장간 문간에 서서 그 웃음이 끝날 때까지 등을 돌리고 있었다.

*

그 밤 자정이 넘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곤 노인이 먼저 깼다. 나는 숫돌 상자를 옆으로 밀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눈보라가 들이쳤다. 문간에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서른쯤 되어 보였다. 어깨에 피가 얼어붙어 있었고, 눈썹과 수염에 눈이 하얗게 붙었다. 사내가 대장간 안을 들여다보고, 벽을 봤다.

“여기가 한내요?”

“한내요.”

“고개를 넘어왔소. 들어올 때는 뚫린다길래.”

사내가 허리에서 칼을 풀어 두 손으로 내밀었다. 자루에 감긴 실이 해지고, 칼집 끝이 얼어 있었다.

“칼을 걸러 왔소. 한내는 남의 칼도 갈아 준다고 들었소.”

곤 노인이 사내를 화덕 앞으로 끌어다 앉혔다. 사내의 손가락은 칼집에 붙은 채로 굳어 있어서, 칼을 떼어 내는 데 뜨거운 물수건을 두 번 대야 했다. 칼이 손에서 떨어지자 사내가 처음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숨에서 피 냄새와 언 풀 냄새가 났다.

“누가 쫓소?”

내가 물었다. 사내가 나를 올려다봤다.

“철문이오. 다섯 달 됐소.”

“어째서?”

“구름재 사람이오. 고개 북쪽이오. 작년 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벽을 갈 사람이 없었소. 석 달 만에 녹이 났고, 해 뜰 때 셋이 봤고, 거두는 칼이 와서 내 칼을 거둬 갔소. 나는 그때 아랫골 장터에서 짐을 지고 있었소. 내가 무적이 된 걸 장터 뒷방에서 들었지.”

사내가 제 칼을 내려다봤다.

“이건 새로 산 칼이오. 벽에 걸 칼이 없어서 장터에서 은자 두 냥을 주고 샀소. 걸 데가 있어야 걸지.”

곤 노인이 사내의 어깨에 얼어붙은 피를 물수건으로 녹였다. 칼에 베인 자리가 아니었다. 쇠뇌 살이 스친 자리였다.

“이름이 무엇인가?”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한참 대답을 못 하더니 입술을 한 번 적셨다.

“이름 불린 지 오래됐소.”

“그래도 있을 것 아닌가.”

“한석이오.”

벽의 다섯째 못이 비어 있었다. 한석의 눈이 그 빈 못으로 갔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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