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28자) · 위단 · 정월 초나흘
연기 여섯
십 년 만에 칼을 찾으러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초사흘 해 질 녘까지 나는 다섯 자루를 갈았다.
첫째, 둘째, 넷째, 여섯째, 일곱째. 다섯째와 여덟째와 아홉째가 남았고, 셋째는 건드리지 않았다. 손바닥 물집은 터진 자리 위에 또 잡혀서, 칼자루를 쥘 때마다 헝겊을 두 겹 감아야 했다. 곤 노인은 사흘 내내 물그릇을 들었다. 사흘째에는 그릇 밑에 제 무릎을 괴었다. 유월은 사흘 동안 대장간에 오지 않았다.
해가 벼랑 소나무에 걸렸을 때 도치가 왔다.
도치는 곧장 여섯째 앞으로 가서 코를 댔다. 오래 댔다. 그러고 칼을 못에 건 채로 날을 등잔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기울일 때 손가락이 칼에 닿지 않게 칼집 끝만 밀었다. 법도를 아는 손이었다.
“보이시오?”
나는 가서 봤다. 날 가운데, 칼끝에서 한 뼘쯤 올라간 자리에 좁쌀 만 한 붉은 점이 하나 있었다. 그 옆에 하나 더 있었다. 초하루에 내가 거친 청석으로 마무리한 자리였다. 눈에 안 보이는 긁힌 자국마다 습기가 들어앉아, 사흘 만에 쇠를 먹기 시작했다.
“거친 돌로 간 칼은 안 간 칼보다 빨리 녹이 드오. 몰랐소?”
도치가 웃었다. 이번 웃음은 길지 않았다.
“내일 해 뜰 때 셋을 세우겠소. 존위 어른, 앞집 아주머니, 개울 건너 영감. 셋이 붉은 점을 보면 나는 이 칼을 거두오. 존위 어른은 제 아들 칼이라 안 오고 싶어 하겠지만, 안 오면 다른 셋을 찾으면 되오. 이 마을에 눈 있는 사람은 많으니까.”
그러고 나가다가 문간에서 선반을 가리켰다.
“반쪽짜리 숫돌로는 하룻밤에 안 되오.”
*
선반 맨 위 칸에 재구가 깎은 숫돌 두 쪽이 한 뼘 떨어져 놓여 있었다. 쪼개진 면이 푸르스름했다. 반쪽이라도 고운 돌은 고운 돌이다. 날을 끝까지 세울 수 있는 돌은 한내에 그 두 쪽밖에 없었다.
나는 그 돌에 손을 대지 않았다. 유월의 아비가 깎은 돌이고, 유월이 한 뼘 떨어뜨려 놓아둔 돌이다. 대신 유월의 집으로 갔다.
문 앞에 섰을 때 달이 떠 있었다. 이번에도 문틈으로 불빛이 새지 않았다. 나는 문 앞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것은 뉘우쳐서가 아니라 서 있으면 문 안쪽에 앉은 사람과 말이 너무 위에서 오갈 것 같아서였다.
“여섯째에 붉은 점이 났소. 내가 거친 돌로 갈아서 그렇소. 내일 해 뜰 때 도치가 셋을 세운다고 하오.”
문 안쪽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아버님 숫돌 반쪽을 쓰게 해 주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할 말이 있소.”
말하려고 숨을 들이켰다. 찬 공기가 목구멍 끝까지 들어와 한 번 멎었다.
“처음 거둔 것은 덕삼의 칼이었소. 그 해는 표사 일이 끊겨서 사흘을 굶었소. 도치가 삯을 내밀었고, 나는 녹슨 칼은 이미 죽은 칼이라고 제게 말했소. 덕삼이 누군지 몰랐소. 몰라서 할 수 있었소. 이듬해 두 번째는 만호의 칼이었는데, 그때는 만호를 알았소. 어릴 때 새목에서 같이 멱을 감던 사람이오. 알고도 했소. 은자 석 냥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소. 한 번 해 본 일은 두 번째가 쉬웠소. 그게 전부요.”
바람이 한 번 불어 처마 끝에서 눈가루가 떨어졌다.
“그러니 이제 내 칼은 갈지 마시오. 녹슬게 두시오. 도치가 거둬 가면 나는 무적이오. 그게 맞소. 열 해 동안 당신 손으로 산 것도 맞지 않았소.”
문이 열렸다.
유월이 문지방에 서 있었다. 저고리 위에 솜옷을 걸쳤고, 머리는 사흘 동안 안 빗은 모양이었다. 유월이 무릎 꿇은 나를 내려다봤다.
“안 갈면 아저씨가 죽고, 갈면 제가 아저씨를 살려 두는 거예요.”
유월의 입김이 달빛 속으로 흩어졌다.
“저는 살려 두는 쪽을 골라요. 열 해 동안 그렇게 골랐고, 오늘도 그래요. 아저씨가 무슨 사람이었든 그건 제가 고른 거예요. 대신 이제 저 혼자는 안 해요.”
“무슨 말이오?”
“아저씨도 남의 칼을 가세요. 한내 것만 말고요. 새목 것까지요. 아저씨가 거둔 두 자루는 이제 없지만, 그 벽에 남은 것들이 있잖아요. 녹슨 채로요. 고개가 열리면 가서 가세요. 그게 제가 아저씨 칼을 가는 값이에요.”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월이 솜옷 앞섶을 여미고 대장간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일어나서 그 뒤를 따랐다. 무릎이 저렸다.
*
재구의 숫돌 반쪽은 유월 손에 딱 맞았다. 온쪽일 때는 컸던 돌이 반이 되니까 손바닥 안에 들어왔다. 유월이 칼을 숫돌에 대는 게 아니라 숫돌을 칼에 대고 밀었다. 반쪽 돌을 쥐고 날 위를 문지르는 모양이 옷감의 주름을 펴는 사람 같았다.
나는 물을 댔다. 문제는 물이었다. 고운 돌은 물을 많이 먹는다. 단지 하나를 데우는 동안 그릇의 물은 숨 몇 번 새에 살얼음이 끼었다. 화덕 불로는 단지 하나밖에 못 데웠다.
자정쯤 문이 열렸다.
돌금댁이 김이 오르는 가마솥 뚜껑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다. 뚜껑 위에 수건을 두르고 그 위에 물동이를 올렸다. 솥째 들고 올 수는 없어서 제일 뜨거운 물을 동이에 퍼 온 것이다.
“떡국 끓이고 남은 불에 데웠소. 모자라면 또 데우지.”
돌금댁이 물동이를 내려놓고 벽을 봤다.
“우리 시숙 칼도 저기 있으니까.”
한 식경 뒤에 말복 영감이 물 단지를 안고 왔다. 무엇 하러 왔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는데 영감은 순금이 순금이, 하고 제 딸 이름을 두 번 부르고 화덕 옆에 앉았다. 그 뒤로 노파가 왔다. 억보 어미가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 작은 뚝배기를 들고 눈길을 건너왔다. 뚝배기에 뜨거운 물이 반쯤 들어 있었다. 노파는 대장간 안에 들어서더니 여섯째 칼을 보지 않고 벽 끝의 빈 못을 봤다.
“우리 애 칼 걸던 자리가 저기요.”
그 뒤로 둘이 더 왔다. 개울 아래 집 부부였다. 한 사람은 셋째 칼, 내 칼을 보고 왔다고 했다. 열 해 전에 내가 그 집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워 준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축시쯤 창호 밖에 그림자 하나가 서성였다. 삼출이었다. 삼출은 들어오지 않고 문틈에 눈을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물동이가 몇 개인지 세는 모양이었다. 돌금댁이 문을 벌컥 열자 삼출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들어오든지 가든지 하시오. 문틈으로 김 새오.”
“동이가 몇이오?”
“다섯이오. 왜요?”
“다섯 동이면 장작이 한 짐 반이오. 한 짐 반이면 이 겨울에…….” 삼출이 셈을 하다가 벽의 여섯째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 칠성이 거 가는 거요?”
“당신 아들 거 가는 거요.”
삼출은 대답 없이 돌아서서 제 집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이 빨랐다. 돌금댁이 문을 닫으며 혀를 찼다.
“저 양반은 제 아들 칼 가는 데도 장작 셈부터 하네.”
물이 끊기지 않았다. 여섯 집이 번갈아 물을 데워 날랐다. 집으로 돌아가서 불을 때고, 물이 끓으면 동이에 퍼서 눈길을 건너왔다. 한 집이 오면 한 집이 돌아갔다. 대장간 안에 김이 가득 차서 등잔불이 흐려졌고, 유월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세 번 밀고 한 번 물을 찍는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나는 유월 옆에서 물을 대면서 그 손을 봤다. 반쪽 돌이 날 위를 지날 때마다 쇳물이 회색으로 번졌다가 물에 씻겨 나갔다. 붉은 점이 있던 자리를 지날 때는 유월의 손이 조금 느려졌다. 그 자리만 두 번씩 문질렀다. 등잔불이 김에 흐려져 날이 잘 안 보이는데도 유월은 눈이 아니라 코로 날을 봤다. 몇 번 밀고는 칼을 코 밑으로 가져가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다시 밀었다. 열 해 동안 새벽마다 혼자 이렇게 했을 것이다. 등잔 하나, 물 단지 하나, 숨 한 번.
*
닭이 두 번 울었을 때 유월이 여섯째를 헹궈 코에 댔다. 그러고 그 칼을 내 코 밑에 내밀었다.
물비린내가 났다. 개울 바닥 같은 비린내였다. 쓴 냄새는 한 올도 없었다.
해 뜰 무렵 도치가 왔다. 억보와 강쇠가 뒤에 섰고, 그 뒤로 삼출이 끌려오다시피 왔다. 돌금댁과 말복 영감은 이미 대장간 안에 있었다. 밤새 물을 나르다가 거기 앉아 졸고 있었다.
도치가 셋을 벽 앞에 세웠다.
“보시오. 여섯째 날 가운데, 칼끝에서 한 뼘 위요.”
삼출이 제 아들 칼 앞에 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날을 봤다. 오래 봤다. 그러고 코를 킁킁거리더니 도치를 돌아봤다.
“뭘 보라는 거요?”
“붉은 점이오.”
“없는데.”
돌금댁이 하품을 하며 봤다. 없다고 했다. 말복 영감은 귀가 어두워서 무엇을 보라는지 두 번 물었고, 돌금댁이 녹이라고 소리치자 칼을 보고 없다고 두 번 말했다.
도치가 직접 칼에 코를 댔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칼집 끝을 밀어 날을 해 쪽으로 기울였다. 아침 햇살이 날 위를 한 줄로 흘렀다. 붉은 점은 없었다.
도치가 유월을 봤다.
“당신 숫돌은 깨졌을 텐데.”
“반쪽이 남았어요.”
유월이 반쪽짜리 돌을 들어 보였다. 돌 쪼개진 면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도치는 그 돌을 한참 봤다. 그러다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갔다. 억보가 따라 나가다가 문간에서 제 어미를 봤다. 노파는 화덕 옆에서 뚝배기를 무릎에 얹고 졸고 있었다. 억보는 한 걸음 들어오려다 말고 나갔다.
강쇠만 남아서 화덕에 손을 쬐었다. 곤 노인이 물었다.
“자네는 안 가나?”
“밤새 물 나르는 거 봤소. 나도 한 번쯤은 나를 걸 그랬소.”
곤 노인이 볶은 콩 한 줌을 강쇠 손바닥에 쏟아 주었다. 강쇠가 그걸 받아 들고 멀뚱히 쳐다봤다. 제가 모루에 올려놓았던 콩이 볶여서 돌아온 것을 알아보는 데 한참 걸렸다.
“다음 초하루에는 나르게. 그러면 한 줌 더 주지.”
강쇠는 콩을 한 알 입에 넣고 씹으면서, 대답 대신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
나는 대장간 문을 나와 벼랑 쪽 비탈을 조금 올라갔다. 무릎까지 오는 눈을 헤치고 소나무 밑까지 올라가서 돌아섰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붕 스물세 채가 눈 밑에 엎드려 있었다. 굴뚝 연기가 여섯 줄 올라오고 있었다. 대장간, 돌금댁, 말복 영감, 노파 집, 개울 아래 부부의 집, 그리고 삼출의 집이었다. 삼출은 물을 나르지 않았지만, 새벽에 제 아들 칼 앞에 서러 나오기 전에 불을 땐 모양이었다. 여섯 줄이 아침 바람에 한쪽으로 휘면서 올라갔다. 동짓달 그믐에 고개 마루에서 셋을 셌던 그 지붕들이었다.
내려와 보니 유월이 기둥 앞에 서 있었다. 칼끝으로 백스물하나째 금 밑에 새 금을 하나 그었다. 사흘 늦은 금이었다. 금을 긋고 나서 유월이 내 쪽으로 칼을 내밀었다. 셋째 칼, 내 칼이었다. 밤새 여섯째를 끝내고 나서 유월이 따로 갈아 두었다.
“이건 제가 고른 거예요.”
유월이 말했다. 나는 칼을 받아 셋째 못에 걸었다. 손바닥의 터진 물집이 칼자루에 쓸려 따가웠다. 그 따가움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