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21자) · 위단 · 정월 초하루

백스물두 번째

배신자의 칼을 마을이 십 년 동안 지켰다 · 한도윤

정월 초하루 새벽에 나는 숫돌 소리를 기다리며 누워 있었다.

한 달 전 이맘때 그 소리에 깼다. 세 번 길게 밀리고 한 번 물을 찍는 소리. 오늘은 그 소리에 깨려고 일부러 일찍 깨어 있었다. 닭이 한 번 울었고, 조금 있다가 두 번 울었다. 화덕 속 숯이 사그라들면서 작게 튀는 소리가 났다. 처마 끝 고드름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져 문지방 앞 얼음을 쳤다.

숫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 앉았다. 숫돌 상자는 내 옆에 그대로 있었다. 문간 쪽으로 가서 밖을 봤다. 유월의 집 쪽 길에 발자국이 없었다. 밤새 내린 눈이 길을 한 번 덮었고, 그 위에 아무도 걷지 않았다. 유월은 열 해 동안 초하루 새벽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고 곤 노인이 말했었다. 앓아누운 해에도 기어 나왔다고 했다.

그 겨울, 초하루에 숫돌이 나오지 않았다.

*

전날 저녁은 섣달 그믐이었다.

한내는 그믐 저녁에 대장간에 모여 떡을 나눈다고 했다. 불이 제일 오래 살아 있는 집이 대장간이니까 거기서 한 해의 마지막 불을 같이 쬐는 것이다. 돌금댁이 떡 한 시루를 이고 왔고, 말복 영감이 식혜 한 단지를 들고 왔다. 삼출은 빈손으로 와서 제일 먼저 떡을 집었다. 곤 노인이 모루 위에 떡을 한 줄로 늘어놓고 굽은 손으로 한 쪽씩 나눠 주었다. 콩 한 줌도 볶아서 내놓았다. 강쇠가 모루에 올려놓았던 그 콩이었다. 강쇠는 문간에서 그것을 알아보고 제 콩을 제가 사 먹는 얼굴을 했다.

삼출은 떡을 먹으면서 셈을 했다. 시루 하나에 떡이 서른두 쪽, 모인 사람이 일곱, 그러면 한 사람에 네 쪽 반이라고 했다. 반 쪽은 누가 먹느냐를 두고 돌금댁과 한참 다퉜다. 돌금댁은 떡을 해 온 사람이 먹는다고 했고, 삼출은 존위가 먹는다고 했다. 말복 영감이 무슨 이야기냐고 두 번 물었고, 돌금댁이 반 쪽 이야기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영감이 그 반 쪽을 집어 제 입에 넣었다. 대장간 안이 웃음으로 한 번 들썩였다. 유월도 웃었다. 곤 노인은 웃지 않고 콩을 한 알 씹었는데,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그 웃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도치가 들어왔다.

억보는 오지 않았다. 도치는 떡을 한 쪽 집어 들고 벽 앞으로 가더니, 벽에 등을 기대고 먹었다. 칼 아홉 자루를 등에 지고 서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떡 씹는 소리를 멈췄다.

“설인데 이야기나 하나 합시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치는 떡을 마저 삼키고 손가락을 빨았다.

“이 양반이 열 해 동안 뭘 하고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소? 표사를 했다더군. 맞소, 표사도 했지. 그런데 표사 삯이 없는 해가 두 번 있었소. 그 두 번은 우리 일을 했소.”

돌금댁이 떡을 든 채로 나를 봤다. 삼출도 봤다. 유월은 보지 않았다. 유월은 도치를 보고 있었다.

“새목이라는 골짜기가 있소. 이 양반이 난 데요. 거기 벽에 녹슨 칼이 있었소. 덕삼이라는 사람 칼 하나, 만호라는 사람 칼 하나. 해 뜰 때 새목 사람 셋 앞에서 녹이 보였고, 이 양반이 철문 삯을 받고 그 두 자루를 벽에서 거뒀소. 한 자루에 은자 석 냥이었지. 덕삼은 그해 겨울에, 만호는 이듬해 봄에 철문에 베였소.”

도치가 벽에 기댄 채 셋째 칼을 엄지로 톡 쳤다. 칼이 못에서 작게 흔들렸다.

“그동안 이 칼은 여기서 성했지. 한내 아가씨가 백스무 번 갈아 줬으니까. 제 칼은 남이 갈게 하고, 남의 칼은 제가 거뒀소. 거둬 가던 손이오, 저게.”

대장간 안에서 숯 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말복 영감이 귀가 어두워서 옆의 돌금댁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돌금댁이 대답하지 않자 제 발밑에 대고 한 번 더 물었다.

유월이 나를 봤다.

“맞아요?”

거짓말을 하려면 할 수 있었다. 도치는 증거를 들고 오지 않았다. 새목은 고개 둘 건너이고, 고개는 막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열 해 동안 그 두 자루 이야기를 제 입으로 한 번도 안 했고, 안 한 말은 얇아지지 않고 두꺼워지기만 했다.

“맞소.”

유월이 들고 있던 떡을 모루 위에 내려놓았다. 한 입도 안 먹은 떡이었다. 그러고 문간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닫지 않았다. 찬 바람이 들어와 화덕 불을 눕혔고, 곤 노인이 굽은 손으로 문을 닫으러 일어났다.

도치는 떡을 한 쪽 더 집어 들고 나갔다. 나가면서 강쇠를 불렀다. 강쇠는 떡을 두 쪽 품에 넣고, 나를 한 번 보고, 나갔다.

돌금댁이 시루를 도로 이고 일어서면서 나한테 한 마디만 했다.

“우리 시숙 칼이 첫째요. 덕보. 그 사람도 어디서 그런 일 하고 있을까 봐, 나는 그게 제일 무섭소.”

그 밤에 나는 유월의 집 앞에 갔다.

우물에서 몇 걸음 떨어진 작은 집이었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지 않았다. 나는 문 앞 눈 위에 섰다. 두드리지 않았다. 한참 서 있으니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새목 벽에도 누가 갈았어요? 그 두 자루?”

“아무도 안 갈았소. 가는 사람이 죽고 나서 아무도 안 갈았소. 그래서 녹슬었소.”

“그럼 아저씨 칼은요. 제가 안 갈았으면요?”

“누가 거둬 갔겠지. 나 같은 사람이.”

문 안쪽이 조용해졌다. 한참 뒤에 한 마디가 더 나왔다.

“저는 열 해 동안, 새목 같은 데서도 누가 저처럼 갈고 있는 줄 알았어요.”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발밑에서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 짚신 바닥에 붙었다. 한 식경쯤 더 서 있다가 돌아섰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

그래서 초하루 새벽에 숫돌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상자를 열었다. 굵은 것, 중간 것, 그리고 내가 깎은 거친 청석. 물 단지를 화덕에 얹고, 풀무를 밟아 불을 살렸다. 벽에서 여섯째를 내렸다.

칼을 내리는 순간 손이 한 번 멈췄다. 열 해 전 새목 벽 앞에서 녹슨 칼을 못에서 뺄 때도 손이 이렇게 한 번 멈췄다. 그때는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도 다시 움직였다. 같은 손이 같은 동작으로 칼을 벽에서 내리는데, 하나는 거두는 일이었고 하나는 가는 일이었다. 손은 그 차이를 몰랐다.

굵은 숫돌에 칼을 뉘었다. 각을 열다섯으로 잡았다. 세 번 밀고 한 번 물을 찍었다.

해 뜰 무렵 도치가 문간에 섰다.

“주인이 남의 칼을 가는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치가 문설주에 기대어 한참 보다가 웃었다.

“아가씨는 안 나왔군. 한 번 안 나오면 두 번은 쉽소. 녹이 사람보다 부지런하지.”

그러고 갔다.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도치 말이 맞게 될 것 같았다.

설날 아침인데 대장간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여느 해라면 마을 사람들이 초하루 새벽 숫돌 소리를 듣고 한 해를 시작한다고 했다. 오늘은 그 소리가 늦게 났고, 소리도 달랐을 것이다. 내 손은 세 번 밀 때 셋째 번이 늘 짧았다. 문 밖으로 삼출이 한 번 지나갔는데, 대장간 안을 들여다보고는 숫돌 앞에 앉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돌금댁 집 굴뚝에서는 아침 연기가 올랐다가 금방 끊겼다. 떡국 끓일 불만 땐 모양이었다. 대장간 안에는 숯 냄새와 쇳물 냄새, 그리고 내 손바닥에서 나는 비린내가 섞였다.

*

반나절이면 한 자루라고 했다. 유월 손으로 반나절이었다. 내 손으로는 해가 한가운데 올라올 때까지 여섯째 하나를 끝내지 못했다. 굵은 숫돌에서 중간 것으로 넘어가는 때를 몰랐다. 너무 일찍 넘어가면 녹이 남고, 너무 늦게 넘어가면 날이 깎여 나간다. 코에 대 보고, 다시 갈고, 다시 코에 댔다. 쓴 냄새는 옅어졌는데 물비린내가 올라오지 않았다.

한낮에 강쇠가 문간에 얼굴을 내밀었다. 누가 보냈느냐고 물으니 아무도 안 보냈다고 했다. 떡을 너무 먹어서 배가 아파 걷는 중이라고 했다. 강쇠는 화덕 옆에 쪼그려 앉아 내 손을 한참 보더니 물 단지를 가리켰다.

“아재, 그거 내가 길어다 줄까요? 공짜로.”

“도치가 알면 어쩌려고.”

“아재가 말 안 하면 모르지요.”

강쇠가 단지를 들고 우물로 뛰어갔다. 돌아올 때는 절반을 흘려서 단지에 물이 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강쇠는 단지를 화덕에 얹고 제 손을 쬐었다. 멀리서 도치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강쇠는 벌떡 일어나 손을 바지에 닦고, 떡값이라고 중얼거리며 뛰어나갔다.

물이 식었다. 단지를 다시 화덕에 얹으려고 일어서는데 곤 노인이 먼저 물그릇을 들고 내 옆에 앉았다.

노인은 물그릇을 굽은 왼손 손바닥에 얹고 오른손으로 가장자리를 잡았다.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그릇 밑으로 말려 들어가 받침처럼 그릇을 받쳤다. 그릇이 떨렸다. 물이 가장자리에서 찰랑거렸다.

“물을 찍게. 세 번 밀고 한 번.”

나는 세 번 밀고 노인이 든 그릇에 칼을 한 번 찍었다. 그릇이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다시 세 번 밀고 한 번.

노인은 해가 벼랑으로 넘어갈 때까지 그릇을 들고 있었다. 물이 식으면 내가 단지에서 새로 따라 부었고, 노인은 그릇을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굽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가 푸르게 변했다. 그만 내려놓으시라고 두 번 말했다. 두 번 다 노인은 대답 대신 그릇을 조금 더 높이 들었다.

“열 해 전에 이 손으로 여섯째를 밀었네. 손바닥으로. 그때 생각하면 그릇 하나는 가볍지.”

“어르신.”

“자네가 새목에서 무엇을 했는지 나는 몰랐네. 오늘 알았지. 알고 나니 이 그릇이 조금 무거워졌네.” 노인이 그릇을 내려다봤다. “그래도 들고 있지. 칼에는 죄가 없으니까.”

*

해가 지고 등잔을 켰을 때 여섯째와 첫째와 둘째가 끝났다. 셋째는 건드리지 않았다. 내 칼이다.

“셋째는 왜 안 가나?”

“제 칼은 제가 안 갑니다.”

“열 해 동안은 남이 갈게 두더니.”

노인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바닥에 물집이 세 개 잡혔다가 두 개가 터져 있었다. 쇳가루가 터진 자리에 스며 검게 번졌다. 유월 손의 하얀 굳은살이 그 물집이 백 번쯤 터지고 아문 자리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손으로 알았다.

자정 무렵 벽 앞에 서서 칼마다 코를 대 보았다. 첫째와 둘째에서는 물비린내가 났다. 여섯째에서도 물비린내가 났는데, 그 밑에 가느다란 실 같은 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거친 청석으로 마무리한 날에는 보이지 않는 긁힌 자국이 남는다. 긁힌 자국은 습기를 먹는다. 그래서 오늘 간 칼이 오히려 먼저 녹이 든다.

나는 여섯째를 다시 내리려다 멈췄다. 손바닥이 칼자루를 쥐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기둥 앞으로 갔다. 참나무 기둥에 금이 백스물하나 그어져 있었다. 맨 아래 것 밑이 비어 있었다. 칼끝을 대려다 그만두었다. 그 금은 내가 그을 것이 아니었다.

백스물둘째 금은 그날 그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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