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14자) · 위단 · 섣달 보름
청석
배신자의 칼을 마을이 십 년 동안 지켰다 · 한도윤
열흘 동안 도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나빴다. 도치는 날마다 한 번씩 대장간 문간에 와서 벽을 한 바퀴 둘러보고, 칼마다 코를 대 보고, 모루 위에 앉아 있는 곤 노인에게 날씨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 날씨는 매일 같았다. 눈이 오거나, 눈이 그치거나 했다. 강쇠는 그 뒤를 따라와서 화덕에 손을 쬐고 콩을 한 알씩 모루에 올려놓았다. 곤 노인은 그 콩을 모아서 볶았다. 열흘째에는 한 줌이 되었다.
나는 그 열흘 동안 숫돌 상자를 안고 잤다. 낮에는 상자를 화덕 옆 걸상 밑에 두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 곤 노인은 나를 보고 닭이 알을 품는 것 같다고 했다. 유월은 한 번도 웃지 않았는데, 닭 이야기가 나온 날 저녁에는 숫돌 물을 갈다가 등을 돌리고 어깨를 한 번 떨었다.
섣달 보름 한낮에 도치가 왔다.
그날은 벽을 보지 않았다. 곧장 내가 앉은 걸상 앞으로 와서 쪼그려 앉더니, 상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구경 좀 합시다. 열흘째 알을 품고 있으니 뭐가 들었나 궁금해서.”
“숫돌이오.”
“알지. 재구라는 사람이 개울에서 캐서 제 손으로 깎은 고운 숫돌이 들어 있다더군. 그런 숫돌은 이 골짜기에 하나뿐이라고.” 도치가 웃었다. “하나뿐인 건 구경할 값이 있지.”
유월이 모루 옆에서 일어섰다. 곤 노인이 걸상에서 허리를 폈다. 나는 상자 위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숫돌은 법도에 없소.”
도치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칼은 성한 칼이든 녹슨 칼이든 손대면 안 된다고 법도에 있소. 벽 있는 자는 베면 안 된다고도 있지. 그런데 숫돌에 손대지 말라는 말은 법도 어디에도 없소. 나는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오.”
그가 몸을 돌려 선반으로 갔다. 선반에 물 단지가 있었고, 그 옆에 유월이 오늘 쓰려고 꺼내 놓은 고운 숫돌이 있었다. 상자 속에 든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내가 꺼내 주었다.
도치가 숫돌을 집어 들었다. 등잔불에 비춰 보는 시늉을 하더니, 손을 폈다.
숫돌이 모루 모서리에 떨어졌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굵은 가지가 눈 무게에 부러질 때처럼 한 번 짧게 났다. 숫돌은 두 쪽이 되어 흙바닥에 굴렀다.
“손이 미끄러졌소. 늙은 모루가 놀랐겠군.”
나는 상자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오른손이 허리로 갔다. 허리에 칼이 없었다. 내 칼은 셋째 못에 걸려 있었다. 도치의 눈이 내 오른손을 따라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뽑을 칼이 없지요? 저 벽에서 내리면 있소.”
유월이 두 쪽이 된 숫돌을 주웠다. 쪼개진 면이 푸르스름했다. 겉은 열 해 동안 손때와 쇳물이 배어 검었는데, 속은 개울 바닥 같은 청색이었다. 유월이 두 쪽을 맞대 보았다. 맞대도 금이 남았다.
“아버지가 깎으신 거예요.”
유월이 그 말을 도치가 아니라 숫돌한테 했다. 도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아버지한테 새로 깎아 달라고 하시오.”
곤 노인이 부지깽이를 들었다. 노인이 그것을 휘두르기 전에 유월이 먼저 도치 앞에 섰다. 키가 도치 어깨에 닿았다. 유월은 숫돌 두 쪽을 가슴에 안은 채 말했다.
“나가세요.”
도치는 한참 유월을 내려다보다가 문간으로 걸어갔다. 강쇠가 콩을 모루에 올려놓으려다가, 분위기를 보고 콩을 도로 제 주머니에 넣었다.
저녁에 삼출이 소식을 듣고 왔다. 문턱을 넘자마자 선반의 숫돌 두 쪽부터 확인하고, 그다음에 벽의 여섯째를 확인했다. 순서가 그랬다.
“깨졌다며?”
“깨졌소.”
“그럼 이번 초하루에 칠성이 것은 어떻게 가나?”
“다른 것도 아홉 자루요, 존위 어른.”
삼출은 내 말을 못 들은 척하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부엌칼 가는 숫돌이었다. 가운데가 너무 파여서 거의 구멍이 날 지경이었고, 한쪽 귀퉁이에 누룽지가 눌어붙어 있었다.
“우리 집 거요. 삼십 년 썼지. 칠성이 것만 이걸로 가면 안 되겠소?”
곤 노인이 그 숫돌을 받아 등잔에 비춰 보더니 말없이 도로 내밀었다.
“자네 집 칼은 요새 뭘 써는가?”
“무 썰지.”
“그럼 칠성이 칼로 무를 썰 작정이 아니면 이건 도로 가져가게.”
삼출은 숫돌을 품에 넣고 나가면서 누룽지를 손톱으로 긁어 떼어 입에 넣었다. 곤 노인이 그 등을 보며 혀를 찼다. 유월이 그 사이에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
고운 숫돌이 없으면 날을 끝까지 세울 수 없다. 거친 자국이 남은 날은 습기를 먹고, 습기 먹은 날은 녹이 빨리 온다. 다음 초하루까지 보름이었다.
“재구가 캐 온 데가 있네.”
그날 밤 곤 노인이 말했다.
“벼랑 소나무 밑 개울이오. 물이 한 번 꺾이는 자리 바닥에 청석이 깔려 있지. 두드리면 소리가 맑은 놈이 좋은 놈이네. 탁하면 속에 금이 갔고.”
“개울이 얼었습니다.”
“그러니 깨야지.”
이튿날 새벽에 유월과 둘이서 개울로 갔다. 나는 쇠지렛대와 망치를 들었고 유월은 빈 자루와 새끼줄을 들었다. 벼랑 밑 개울은 허리 높이까지 눈에 덮여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둑인지 알 수 없었다. 유월이 앞장서서 눈을 발로 헤쳤다. 발밑에서 얼음이 둔하게 울었다.
“여기서부터 물이에요.”
“어떻게 아오?”
“발바닥 소리가 달라요. 둑은 퍽퍽하고, 얼음은 텅텅해요.”
“이 개울이 제가 가 본 데 중에 제일 멀어요. 고개 마루까지는 두 번 가 봤어요. 넘어가 본 적은 없어요. 제가 넘어가면 초하루에 갈 사람이 없으니까요.”
유월이 그 말을 발밑 얼음에 대고 했다. 나는 유월이 밟은 자리를 따라 밟았다. 세 걸음째에 얼음이 꺼졌다.
허벅지까지 빠졌다. 물은 차가운 것이 아니라 뜨거웠다. 그렇게 느껴졌다. 숨이 한 번에 목에서 막혔다가 한참 뒤에 터져 나왔다. 유월이 새끼줄을 던졌다. 나는 그것을 잡고 기어 나와 눈 위에 엎드렸다. 바지가 숨 몇 번 새에 쇠판처럼 굳었다.
유월이 웃었다.
소리 내서 웃었다. 입을 손등으로 가리고 웃다가, 가려지지 않으니까 아예 돌아서서 웃었다. 열 해 전 무릎이 까지고도 울지 않던 아이가 거기서 허리를 굽히고 웃고 있었다.
“아저씨, 열 해 동안 뭘 하셨어요?”
“도망 다녔소. 얼음 위로는 안 다녔지.”
유월이 더 크게 웃었다. 나는 굳은 바지를 두드려 얼음을 털면서, 그 웃음소리가 벼랑에 부딪혀 두 번 돌아오는 것을 들었다.
물이 꺾이는 자리는 유월이 찾았다. 얼음을 지렛대로 깨고, 그 밑의 돌을 망치로 두드렸다. 탁, 하고 둔한 소리가 나는 돌이 있었고, 창, 하고 맑게 울리는 돌이 있었다. 맑은 것은 셋째 구멍에서 나왔다. 두 손을 펴 모은 만 한 푸른 돌이었다. 지렛대 끝을 밑에 넣고 들어 올리자 물 밑에서 돌이 한 번 몸을 뒤척이고 올라왔다. 개울 바닥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이끼와 쇠와 얼음이 섞인 냄새였다.
“그걸 내려놓으시오.”
둑 위에 도치가 서 있었다. 강쇠가 몽둥이를 들고 그 옆에 섰고, 억보는 없었다.
“개울은 법도에 있소?”
내가 물었다. 도치가 웃었다.
“개울은 없지. 그런데 당신은 있소. 당신은 지금 벽 앞에 선 사람도 아니고, 얼음 위에 선 사람이오. 벽이 이 개울까지 따라와서 당신을 지켜 주지는 않소.”
도치가 칼을 뽑았다. 강쇠가 먼저 내려왔다. 몽둥이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돌을 유월에게 넘기고 지렛대를 들었다. 강쇠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지렛대로 받자 몽둥이가 강쇠 손에서 빠져나가 눈 속에 박혔다. 강쇠가 그걸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고, 두 손을 들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아재, 나는 떡값만 받았소.”
도치가 얼음 위로 내려섰다. 열 해 전보다 느렸다. 나도 열 해 전보다 느렸다. 도치의 칼이 첫 번째에 내 왼팔 소매를 가르고 팔뚝 살을 한 치쯤 긁었다. 뜨거운 것이 소매 안으로 흘렀다. 두 번째는 지렛대로 받았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벼랑을 치고 돌아왔다.
유월이 돌을 자루에 넣고 둑 쪽으로 물러나는 것이 곁눈에 보였다. 도치의 눈이 그쪽으로 한 번 갔다. 돌이 물속으로 돌아가면 이 새벽이 헛일이 된다. 도치가 발을 유월 쪽으로 옮기려는 찰나에 나는 한 걸음 들어가 그 앞을 막았다. 도치의 칼끝이 내 턱 밑 한 뼘에서 멈췄다. 입김 두 줄이 우리 사이에서 섞였다.
셋째에 나는 받지 않고 지렛대로 도치 발밑 얼음을 내리찍었다.
얼음이 금이 가더니 한쪽으로 기울었다. 도치가 허리까지 빠졌다. 칼을 쥔 손을 높이 들어 물에 안 적시려고 버둥거렸다. 강쇠가 달려와서 도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둘이 같이 눈 위로 굴렀다.
도치가 일어나 앉아 턱을 덜덜 떨면서 나를 봤다. 웃음이 없었다. 처음이었다.
“얼음이 다 녹으면 봅시다.”
그러고 가다가 둑 위에서 돌아섰다.
“초하루에 저 아가씨한테 들려줄 이야기가 있소. 당신이 열 해 동안 장터 뒷방에서 한 이것저것 말이오.”
*
그날 밤 대장간에서 나는 청석을 깎았다.
곤 노인이 입으로 가르쳤다. 모루 옆에 돌을 놓고 정으로 모서리를 쳐 내고, 굵은 모래를 뿌려 바닥 면을 평평하게 갈았다. 손목을 너무 쓰면 돌이 튀고, 너무 안 쓰면 면이 기운다고 했다. 왼팔 상처가 욱신거려서 오른손만으로 밀었다. 한 면을 평평하게 하는 데 반 밤이 걸렸다. 면이 평평해지자 돌에서 개울 냄새가 빠지고 마른 흙냄새가 났다.
열 해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었다. 표사 일은 남의 짐을 지키는 일이었고, 뒷방 일은 남의 것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남의 손에 쥐여 주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유월은 내가 돌을 가는 동안 옆에서 물을 부어 주었다. 한참 말이 없다가 돌 위에 물을 부으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손이 커서 숫돌도 크게 깎았어요. 제 손엔 처음에 안 맞았어요. 한 해쯤 지나니까 손이 숫돌에 맞춰 커졌어요.”
“돌이 손에 맞추는 게 아니라 손이 돌에 맞추는구려.”
“열두 살 손은 그래요. 지금은 안 커요.”
유월이 제 오른손을 펴 보였다. 엄지 밑이 하얗게 굳어 있었고, 검지 첫마디 옆에도 굳은살이 있었다. 날을 누르는 자리다. 나는 새 돌의 너비를 그 손에 맞춰 한 손가락만큼 줄였다.
유월이 새 돌에 물을 뿌리고 여섯째를 대 보았다. 두어 번 밀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 거칠어요.”
“석 달은 밀어야 길이 드네.” 곤 노인이 말했다. “재구 것도 처음엔 거칠었지.”
유월은 쪼개진 아비의 숫돌 두 쪽을 선반 맨 위 칸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맞대면 금이 보이게, 한 뼘 떨어뜨려서. 그리고 내가 깎은 돌을 상자에 넣었다. 제일 깊이 파였던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거기가 아니라 그 옆에 넣었다.
나는 헛간으로 가지 않고 그 상자 옆에서 잤다. 왼팔의 긁힌 자리가 밤새 욱신거렸다. 욱신거릴 때마다 도치가 둑 위에서 한 말이 같이 쑤셨다. 초하루까지 보름이었다. 도치는 보름 동안 칼도 숫돌도 건드리지 않고, 말 한 마디를 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