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06자) · 위단 · 섣달 초닷새

숫돌을 벽에 거는 집

배신자의 칼을 마을이 십 년 동안 지켰다 · 한도윤

초하루의 벽은 초닷새 한낮에 끝났다.

아홉 자루에 나흘 반이 걸렸다. 유월은 하루에 두 자루씩 갈았고, 해가 지면 등잔을 켜고 반 자루를 더 갈았다. 나는 칼 대신 물을 길었다. 우물 얼음을 깨고, 단지에 물을 받아 화덕에 얹고, 식으면 다시 얹었다. 풀무도 밟았다. 곤 노인은 화덕 옆 걸상에 앉아 입으로만 일했다. 물이 식었다, 숯을 반 덩이만 더 넣어라, 그건 너무 넣었다, 하는 식이었다. 닷새째 한낮에 유월이 아홉째를 헹궈 코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을 때, 여섯째에서는 더 이상 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 강쇠가 대장간 문간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재, 할매가 좀 오라오.”

“어느 할매 말이냐?”

“억보 형님 어머니요. 아재 이름을 대면서, 문 열어 두지 말고 빨리 오라고요.”

강쇠는 그 말을 전하고도 가지 않고 화덕 쪽을 기웃거렸다. 곤 노인이 부지깽이로 숯을 가리켰다.

“쬐고 가려면 한 덩이 값은 두고 가게.”

강쇠는 제 주머니를 뒤지다가 콩 세 알을 꺼내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노인이 콩을 한참 내려다보더니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었다.

*

숫돌이 담벼락에 놓인 집이었다.

십 년 전부터 그 숫돌이 거기 있었다고 했다. 가운데가 배처럼 파인 숫돌이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담 위에 얹혀 있었다.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

“들어와요. 문 열어 두면 방이 식어.”

노파는 여든쯤이었다. 눈이 흐렸는데 흐린 눈이 사람을 더 정확히 보는 때가 있다. 방바닥은 뜨겁지 않았다. 도치 일행이 묵으면서 장작을 먼저 쓴 모양이었다. 윗목에 이불 세 채가 개어져 있었고, 그 위에 도치의 짐 보따리가 얹혀 있었다.

방 벽에 숫돌이 셋 걸려 있었다.

크기가 달랐다. 굵은 것부터 고운 것까지 나란히, 벽에 못을 박고 새끼줄로 묶어 걸어 두었다. 숫돌을 벽에 거는 사람은 없다. 숫돌은 바닥에 두는 물건이다. 줄은 여러 번 갈아 맨 흔적이 있었고, 숫돌 표면에는 먼지 한 점 없었다.

“내 아들 것이오.”

노파가 내 눈길을 따라 벽을 봤다.

“열여섯에 고개를 넘으면서 대장간 벽에 칼을 걸었소. 스물여섯에 철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지. 그날 밤 자네가 그 애 팔을 가져간 뒤에, 마을이 그 애 칼을 벽에서 내렸소. 한 사람이 벽에도 걸리고 철문에도 걸릴 수는 없다고.”

노파가 손등을 문질렀다.

“칼이 없으니 숫돌이라도 걸었소. 초하루마다 닦지. 갈 칼이 없는데 닦으면 뭘 하나 싶어도, 안 닦으면 그 애가 정말 어디에도 없는 사람 같아서.”

나는 그 벽 앞에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대장간 벽에는 떠난 사람의 칼이 걸리고, 이 방 벽에는 마을이 내린 사람의 숫돌이 걸려 있었다. 이 방은 한내가 세지 않는 벽이었다.

“자네를 부른 건 욕하려는 게 아니오.”

“욕하셔도 됩니다.”

“욕은 젊을 때 다 했소. 그보다 열 해 동안 어디 있었소?”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고개 넷을 다 넘었고, 사흘 넘게 한곳에 있은 적이 없습니다.”

“뭘 먹고 살았소?”

“표사 일을 했습니다. 행상 짐을 지켜 주고 삯을 받았지요. 삯이 없을 때는 장터 뒷방에서 이것저것 했습니다.”

노파가 나를 오래 봤다. 이것저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이것저것 가운데 두 번은 이 방에서 입에 올릴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애도 장터 뒷방에서 이것저것 하다가 철문에 들어갔소. 뒷방은 사람을 다 그렇게 만드나 보오.”

노파가 말을 끊고 한숨 대신 기침을 두 번 했다.

“그날 밤 자네가 그 애 목숨은 남겨 뒀지. 곰손이라는 자는 베고, 우리 애는 팔만 가져갔어. 나는 그걸 열 해 동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원망해야 하나 정하지 못했소.” 노파가 벽의 숫돌을 봤다. “그래서 둘 다 안 했지.”

문이 열렸다. 찬 바람이 방바닥을 훑었고 노파가 문 쪽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닫아라. 방 식는다.”

억보가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한 손으로 문을 닫는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열 해쯤 하면 그렇게 된다. 억보는 제 어미 곁에 앉지 않고 벽의 숫돌 밑에 섰다.

“어머니가 부탁하려는 게 있소. 어머니 입으로는 못 하겠다고 해서 내가 하겠소.”

“말하시오.”

“내 칼을 다시 걸어 주시오.”

억보가 나를 똑바로 봤다. 눈매가 노파를 닮았다.

“어머니가 여든이오. 올겨울을 넘길지 모르오. 죽기 전에 대장간 벽에 내 칼이 걸린 걸 보고 싶어 하시오. 걸어 주면 나는 도치를 떠나겠소. 도치가 이 겨울에 무엇을 하려는지도 다 말하겠소.”

“그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오. 벽은 한내 것이고, 나는 열 해 동안 한내를 떠나 있던 사람이오.”

“그러니까 당신한테 부탁하는 거요. 떠났다 돌아온 사람이 곤 어른 앞에서 말해 주면, 어른이 들을 거요.”

*

대장간까지 억보와 나란히 걸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길 양쪽 울타리에 눈이 가슴 높이까지 쌓여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의 눈 골목이 되어 있었다. 억보의 빈 소매가 바람에 내 쪽으로 펄럭였다가 도로 제 쪽으로 붙었다. 해가 벼랑 소나무 뒤로 넘어가면서 눈 위의 그림자가 파랗게 길어졌다. 삼출 집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다가 바람에 꺾여 마을 쪽으로 누웠다.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도치 일행 몫의 쌀이 그 솥에 들어갔을 것이다.

대장간에서 곤 노인은 억보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유월은 숫돌 상자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있었다.

노인이 걸상에서 일어나 모루 밑 선반으로 갔다. 굽은 손으로 기름 먹인 무명 뭉치 하나를 꺼내 모루 위에 풀었다. 칼이 한 자루 나왔다. 날 전체에 붉은 녹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자루는 멀쩡했다. 녹슨 쇠에서 나는 쓴 냄새가 대장간 안에 확 퍼졌다.

억보가 그 칼을 내려다봤다.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녹슬었군. 그럼 나는 죽은 사람이오?”

“벽에 없는 칼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네. 그냥 쇠지.”

“어른이 열 해 동안 이걸 버리지도 않고 갈지도 않고 쥐고 있었소?”

“버리면 자네 어미가 알 테고, 갈면 벽이 거짓말을 하게 되네. 그래서 쥐고만 있었지.”

곤 노인이 왼손을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말려 있었다. 녹슨 칼 옆에 그 손이 놓이자 둘이 비슷해 보였다.

“자네는 그날 밤 이 모루 옆에 서 있었네.”

억보가 눈을 내리깔았다.

“도치가 망치를 들었을 때 나는 옆에 있었소. 말리지 않았소. 곰손이 뒤에서 어른 어깨를 누르고 있었고, 나는 칠성이 칼을 벽에서 뽑으려고 손을 뻗고 있었소. 칠성이는 내 동무였소. 어릴 때 개울에서 같이 가재를 잡았지. 나는 그 녹을 거두러 온 거요.”

“알고 있네.”

나도 그날 밤을 안다. 잊으려고 열 해를 썼는데 하나도 안 잊혔다.

동짓달 그믐 전날이었다. 재구 아저씨가 가을부터 앓아눕는 바람에 벽을 석 달 못 갈았고, 여섯째가 제일 먼저 녹슬었다. 해 지고 나서 고개 쪽에서 등불 넷이 내려왔다. 곤 노인은 여섯째를 모루에 눕히고 굵은 숫돌부터 댔다. 해 뜰 때까지 녹을 벗기면 거둘 수 없다. 나는 대장간 문 앞에 서 있었다. 넷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 도치가 먼저 웃었고, 곰손이 모루 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문 앞의 둘을 막느라 안쪽을 못 봤다. 쇠가 쇠를 치는 소리가 아니라, 쇠가 무언가 무른 것을 치는 소리가 났다. 돌아봤을 때 노인의 손이 모루 위에 있었고 망치가 그 위에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칼을 뽑았다. 매듭 때문에 반 뼘이 늦었다. 그 반 뼘 사이에 망치가 한 번 더 내려왔다.

그다음은 빨랐다. 곰손이 쓰러졌고, 억보의 오른팔이 눈 위에 떨어졌고, 도치와 넷째가 마당 밖으로 물러났다. 곤 노인은 부서진 손으로 숫돌을 다시 밀었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밀었다. 해가 고개 마루에 걸렸을 때 여섯째에는 붉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안 걸어 주시겠다는 거요?”

“걸 수가 없네. 거두는 칼이었던 사람의 칼을 벽에 거는 날, 철문은 한내 벽을 제 편 벽으로 볼 걸세. 그러면 도치 같은 자가 봄마다 올라와서 이 벽을 제 집처럼 세겠지. 한 사람이 벽에도 걸리고 철문에도 걸릴 수는 없네.”

“나는 이제 철문 사람이 아니오. 팔 하나 없는 놈은 거두는 칼로도 안 써 주오. 도치가 나를 데리고 다니는 건 내가 한내 길을 알아서요.”

“그럼 자네는 누구 사람인가?”

억보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서 있었다. 억보의 팔을 가져간 것이 나였고, 곤 노인의 손이 모루 위에서 부서질 때 달려오느라 한 걸음 늦은 것도 나였다. 둘 다 나한테 무엇을 말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거웠다.

“어르신.”

“말하게.”

“이 사람 칼을 걸면 도치가 무얼 할지 억보가 말해 준다고 합니다. 이 겨울을 넘기려면 그게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곤 노인이 나를 봤다.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 밑에서 그 눈이 무엇을 재는지 알 수 없었다.

“자네는 열 해 전에도 셈부터 했지.”

그 말에 나는 입을 닫았다. 노인은 녹슨 칼을 도로 무명에 싸서 선반에 넣었다.

억보가 문간으로 갔다. 문을 열기 전에 등을 보인 채 말했다.

“그럼 나는 도치 편이오. 끝까지.”

“그 말은 나한테 할 것이 아니라 자네 어미한테 하게.”

억보가 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와 화덕 불을 한 번 눕혔다. 억보는 문을 닫으려다가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하나만 공짜로 알려 주지. 그날 밤 팔 값이오.”

“말하시오.”

“도치는 다음 초하루를 기다리지 않소. 칼은 못 건드리니 사람 손을 볼 거요. 저 아가씨가 쓰는 고운 숫돌이 재구 아저씨가 깎은 거라는 것도 도치는 알고 있소. 그런 숫돌은 이 골짜기에 하나뿐이지.”

억보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유월이 숫돌 상자 뚜껑을 천천히 덮었다. 뚜껑을 덮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상자 안에 크기가 제각각 닳은 숫돌이 여섯 개 누워 있었고, 그중 가운데가 제일 깊이 파인 것이 고운 숫돌이었다.

그날 밤 나는 헛간에서 자지 않았다. 숫돌 상자를 끌어안고 대장간 화덕 옆에 누웠다. 곤 노인이 그것을 보고 이불을 한 채 던져 주었다.

“자네가 그걸 안고 자면 상자가 더 불안해하겠네.”

나는 상자를 안은 채 화덕 옆에 누워 동쪽 벽을 봤다. 불빛이 닿는 데까지 칼 아홉 자루가 희미하게 빛났고, 그 끝에 빈 못 셋이 그림자를 달고 있었다. 빈 못 하나는 억보 것이었을 것이다. 떠난 사람의 칼은 벽에 걸리고, 마을이 내린 사람의 칼은 선반에서 녹슨다. 그리고 돌아온 사람의 칼은, 아직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아무도 정하지 못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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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6.06· 3화

    조용한데 계속 긴장돼요. 이런 톤 좋아합니다.

    • 한도윤작가2026.06.07

      큰 소리 없이 끝까지 당기는 쪽을 골랐어요. 그 톤이 닿았다니 다행입니다.

    • 달밤에책2026.06.07

      이 댓글 보고 다시 읽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