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145자) · 위단 · 삼월 초하루
빈 못
십 년 만에 칼을 찾으러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한내로 돌아온 것은 이월 열하루였다.
고개 마루에서 연기를 셌다. 넷이었다. 초하루가 지난 지 열흘이라 집집이 다시 숯을 아끼고 있었다. 셋에서 하나가 늘어 있었는데, 그 하나가 노파 집 굴뚝이었다. 억보가 장작을 팬 모양이었다.
곤 노인은 대장간 걸상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문턱을 넘자 풀무를 한 번 밟았다. 불이 확 살아나며 붉은빛이 흙바닥으로 번졌다. 그 한 번이 인사였다.
“새목은?”
“열둘이 성합니다. 빈 못 둘은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그러겠지.”
노인은 그 말만 하고 유월을 봤다. 유월은 등에서 숫돌 상자를 내리고, 옆구리에서 아비의 칼을 풀어 선반에 올렸다. 노인이 그 칼을 한참 보다가 물었다.
“썼느냐?”
“아저씨가 썼어요. 한 번.”
“재구가 알면 좋아하겠구나. 제 칼이 벽에서 내려와서야 제 몫을 했다고.”
강쇠는 따라 들어와서 화덕 옆에 쪼그려 앉았다. 곤 노인이 강쇠를 내려다봤다.
“자네는 이제 누구 사람인가?”
“떡 주는 사람이오.”
“그럼 초하루마다 물을 나르게. 삯은 콩으로 주지.”
강쇠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날부터 강쇠는 대장간 헛간에서 잤다.
*
그달 스무날, 억보가 대장간에 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앞에 섰고, 억보는 그 뒤에서 무언가를 새끼줄에 묶어 어깨에 메고 있었다. 숫돌 셋이었다. 노파 방 벽에 걸려 있던, 열 해 동안 초하루마다 닦기만 하던 그 숫돌이었다.
노파가 곤 노인 앞에 섰다.
“선반에 있는 우리 애 칼, 내가 갈겠소.”
“녹이 깊네. 아홉 해 치 녹이야.”
“그럼 아홉 날 걸리겠지. 나는 시간이 많소. 이 애는 팔이 하나라 숫돌을 못 잡고.”
곤 노인이 억보를 봤다. 억보는 제 어미 등 뒤에서 벽 끝의 빈 못을 보고 있었다.
“자네가 철문에 걸려 있지 않다는 걸 문주가 봤네. 도치한테도 걸려 있지 않고.” 노인이 굽은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럼 남은 건 한내지. 갈아 오게. 성하면 걸겠네.”
삼출이 그 말을 듣고 대장간으로 달려왔다. 문턱에 서서 숨을 고르기도 전에 손가락부터 꼽았다.
“두 섬이오, 두 섬. 그리고 저 사람은 열 해 전에 우리 칠성이 칼을 거두러 왔던 사람이오.”
“알고 있네.”
“알면서 거시오?”
“자네 아들 칼은 그날 밤 안 거둬졌네. 이 손이 대신 갔지.” 곤 노인이 굽은 손을 들어 보였다. “거둬지지 않은 칼 값을 이제 와서 받으려면, 이 손 값부터 셈해야 할 걸세. 자네가 셈하겠나?”
삼출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 그 손을 보다가 억보를 봤다. 억보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삼출이 손가락을 도로 접었다.
“두 섬은 봄에 받겠소. 저 사람 장작으로.”
노파는 아흐레 동안 날마다 대장간에 왔다. 제 방 벽에서 내린 숫돌 셋을 모루 옆에 늘어놓고, 한나절씩 갈았다. 굵은 것으로 녹을 벗기는 데만 닷새가 걸렸다. 손이 떨려서 세 번 밀고 한 번 쉬었다. 억보가 그 옆에서 물을 대고, 제 어미 손목이 풀리면 한 손으로 주물렀다. 둘은 아흐레 동안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숫돌 소리가 났다. 늙은 손의 숫돌 소리는 느리고 무거웠다. 세 번 밀고 한 번 쉬고, 다시 세 번.
*
삼월 초하루 새벽, 열여덟이 대장간에 모였다. 백스물넷째 초하루였다.
동짓달 그믐에 무릎까지 오던 눈이 정강이께로 내려앉아 있었다. 처마 끝 고드름에서 물방울이 쉬지 않고 떨어져 문지방 앞에 작은 구멍을 여럿 팠다. 개울 쪽에서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가 한 달 전보다 굵어져 있었다. 대장간 안에는 숯 냄새와 사람 냄새가 가득했고, 그 사이로 누군가 가져온 쑥떡 냄새가 섞였다. 봄이 골짜기 바닥까지 내려오려면 아직 한 달은 더 걸릴 것이다. 그래도 물 단지가 어는 데 걸리는 숨이 동짓달보다 두어 번 늘어 있었다.
벽의 칼은 여덟 자루였고, 모루 위에 한 자루가 더 있었다. 노파가 아흐레 동안 간 억보의 칼이었다. 유월이 그 칼을 마지막으로 반쪽 숫돌에 대고 마무리했다. 헹궈서 노파의 코 밑에 내밀었다.
“물비린내예요.”
노파가 숨을 들이켰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눈을 감고 있었다.
곤 노인이 그 칼을 받아 들고 벽 끝의 빈 못 앞으로 갔다. 굽은 손으로는 칼을 못에 걸 수가 없어서, 억보에게 내밀었다. 억보가 한 손으로 받아 못에 걸었다. 못이 높아서 억보가 발끝을 들었다. 한 손으로 칼집 고리를 못에 끼우는 데 두 번 헛손질을 했다. 아무도 대신 걸어 주지 않았다. 세 번째에 걸렸다. 칼이 못에서 한 번 흔들리다 멈췄다.
“열째, 억보.”
곤 노인이 불렀다. 억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파가 대신 대답했다.
“예.”
삼출이 그 옆에서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두 섬이 늘었다. 셈을 다 하고 나서도 삼출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제 아들 칼 앞으로 가서 숫돌을 잡았다.
해가 고개 마루에 걸릴 때 셋째 하나만 남아 있었다. 내 칼이었다. 유월이 그것을 벽에서 내려 모루 앞에 앉았다.
아무도 옆에 붙지 않았다. 열여덟이 한 발씩 물러나 둘러섰다. 유월 혼자 갈았다. 굵은 것, 중간 것, 고운 것. 세 번 밀고 한 번 물을 찍었다. 열 해 동안 새벽마다 혼자 하던 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났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강쇠가 물 단지를 든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이 식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곤 노인이 콩 한 알을 던져 이마에 맞히자 그제야 단지를 화덕에 얹었다.
유월이 칼을 헹궈 코에 댔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기둥에 백스물넷째 금을 그었다.
*
한낮에 주사헌이 왔다.
제자 둘만 데리고 왔다. 문턱을 넘어 벽 앞에서 코로 한 번 숨을 들이켰다. 열째 칼 앞에서 한 번 더 들이켰다. 억보를 보고, 노파를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고 나를 봤다.
“정했나?”
“정했소.”
나는 유월을 봤다. 유월이 모루 앞에 앉아 내 칼을 무릎에 얹고 있었다. 방금 백스물네 번째로 간 칼이었다. 셋째 못은 비어 있었다. 유월이 칼을 벽에 도로 걸지 않고 무릎에 두고 있었던 까닭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유월은 내가 무엇을 고를지 알고 있었다.
“벽에서 내리겠소. 이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면 벽이 나를 지킬 까닭이 없소.”
“그럼 무엇이냐?”
“남의 벽을 가는 사람이오. 새목에 봄마다 가기로 했소. 거기 말고도 갈 데가 있을 거요. 벽에 기대 있으면 남의 벽까지 못 가오.”
주사헌이 나를 오래 봤다. 대장간 안에 숯 튀는 소리만 났다.
유월이 일어섰다. 칼을 칼집째 두 손에 받쳐 들고 내 앞으로 왔다. 팔을 뻗었다. 받는 내 손은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눈가루가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가져가세요. 백스물네 번 갈았어요. 그 가운데 백스무 번은 제가 혼자 골랐고, 네 번은 여럿이 골랐어요.”
유월의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이제 아저씨가 고르세요.”
나는 두 손을 올려 칼을 받았다. 칼이 가벼웠다. 동짓달 그믐에 처음 벽에서 내렸을 때보다 보릿짚 한 가닥만큼 더 얇아져 있었다. 열 해가 거기 다 들어 있었다. 칼을 허리에 찼다. 매듭은 그대로였다.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벽의 셋째 못이 비었다. 못 하나와, 열 해 동안 칼집이 눌러 놓은 자국만 남았다. 화덕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그 못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흔들렸다.
주사헌이 말했다.
주사헌 뒤의 제자 하나가 내 허리의 칼을 보고 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주사헌이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한 번 들었다. 제자가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주사헌의 눈은 내 오른손에 가 있었다. 칼자루 위에서 멈춘 손이었다. 반 뼘이 늦는 매듭 위에서.
“그 매듭은 안 고치나?”
“스승이 고치라고 했을 때도 안 고쳤소.”
“고개에서 반 뼘은 목숨 하나다.”
“알고 있소. 그래서 셋째 번에는 손을 안 빼기로 했소.”
주사헌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오늘부터 너는 무적이다. 철문은 마을 안에서 칼을 들지 않는다. 마을을 태우지 않으려고 세운 법도니까. 고개에서 본다. 네가 고개를 넘는 날.”
“넘을 거요.”
“알고 있다.”
주사헌이 돌아섰다. 문간에서 한 번 멈췄다.
“셋째 번에 손을 안 빼더군. 칼 가는 소리를 밖에서 들었다. 열 해 전 네 소리가 아니었다.”
*
해 질 녘에 목노인이 고개에서 내려왔다.
소금 가마니를 내려놓자마자 나한테 손바닥을 내밀었다. 반 줌이라고 했다. 곤 노인이 콩을 반 줌 쥐여 주었다. 목노인은 그것을 품에 넣고 벽을 봤다. 여덟 자루였다. 셋째 못이 비어 있었다.
“빈 못이 하나 생겼군. 그리고 칼이 하나 늘었고.” 목노인이 셈을 하다가 나를 봤다. “이번 소문은 값을 안 받겠소. 받을 사람이 곧 떠날 테니.”
“말하시오.”
“고개 너머 세 골짜기 벽이 녹슬고 있소. 구름재, 돌말, 수리재. 흑산이 녹값을 두 배로 올렸다오. 한 자루에 두 냥. 가는 사람이 늙거나 죽은 데부터 벽을 사들이고 있소.”
구름재였다. 한석이 난 곳이다. 산배나무가 많고, 한석의 어미가 초하루마다 칼을 갈고 식초 단지를 저었다는 곳.
“그리고 하나 더. 도치가 흑산에 들어갔소. 오른손에 헝겊을 감고. 들어가자마자 당신 이름에 값을 얹었다더군. 철문 값 위에 흑산 값이 하나 더. 곱이 됐소.”
목노인이 소금 가마니를 다시 졌다.
“고개 넷에서 제일 비싼 사람이 벽 없는 사람이 됐구려. 소문 장사 하기 좋은 봄이오.”
*
그 밤 나는 대장간 문간에 앉아 고개를 봤다.
달이 고개 마루 위에 떠 있었다. 눈이 푸르게 빛났다. 허리에 찬 칼이 무거웠다. 녹이 없는데도 무거웠다. 벽에 걸려 있을 때는 몰랐던 무게였다.
유월이 기둥 앞에서 새 금 밑에 칼끝을 대고 무언가를 재고 있었다. 다음 초하루 금이 들어갈 자리였다. 곤 노인은 걸상에서 콩을 씹었다. 강쇠는 헛간에서 코를 골았다.
유월이 칼끝을 기둥에서 떼고 내 옆에 와 앉았다. 한참 둘이서 고개를 봤다.
“초하루에 오세요. 못 오시면요.”
“못 오면?”
“고개 마루에서 연기를 세세요. 여기서 몇 줄 오르는지. 저는 그걸로 아저씨가 셌다고 칠게요.”
“그걸 어떻게 아오?”
“몰라요. 그냥 그렇게 칠게요. 열 해 동안도 모르고 갈았어요.”
유월이 일어나 옷에 묻은 눈을 털었다. 헛간에서 강쇠가 잠꼬대로 콩을 달라고 했다. 곤 노인이 콩 씹던 입을 멈추고 혀를 찼다.
벽의 셋째 못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빈 못을 등 뒤에 두고, 달빛 속의 고개를 셌다. 하나를 넘으면 구름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