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03자)

두 문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장마가 오기 전 마지막 더위가 요양원에 눌러앉았다⁠. 공기가 물을 머금어 무거웠고⁠, 밤꽃 냄새는 물기에 녹아 끈적해졌다⁠. 2층 복도 창문은 밤낮으로 열려 있었다⁠. 바람은 들어오지 않고 개구리 소리만 들어왔다⁠. 나는 혀를 길게 빼고 다녔다⁠. 셰퍼드는 더위에 약하다⁠. 털이 두 겹이라서⁠.

수요일 아침⁠, 담당자가 휴게실에서 종이를 펼쳐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내가 부대에서 받아 온 서류였다⁠.

“⁠태어난 날⁠, 2017년 6월 16일⁠. 어르신들⁠, 오늘이 군번이 생일이에요⁠!⁠”

해병 할아버지가 휠체어에서 허리를 폈다⁠.

“⁠생일이믄 잔치를 혀야지⁠! 미역국 끓여⁠!⁠”

“⁠개는 미역국 못 먹어유⁠. 짜서⁠.⁠”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노인들이 머리를 맞댔다⁠. 화투 할머니가 두부를 쌓자고 했고⁠, 교장 할아버지가 닭가슴살을 얹자고 했고⁠, 이발사 할아버지는 빗을 들었다⁠. 점심이 끝날 무렵 휴게실 탁자 위에 두부 세 모를 쌓고 삶은 닭가슴살로 덮은 것이 놓였다⁠. 맨 위에 당근 한 토막이 꽂혀 있었다⁠. 촛불 대신이었다⁠.

해병 할아버지가 자기 빨간 모자를 벗어 내 머리에 씌웠다⁠. 모자가 귀에 얹혀 비뚤어졌다⁠. 은단 냄새와 할아버지의 머릿기름 냄새가 내 정수리를 덮었다⁠.

“⁠해병 군번⁠. 오늘부터 너는 해병이여⁠.⁠”

“⁠육군 개라매⁠.⁠”

“⁠생일엔 해병이여⁠.⁠”

할아버지가 휴대전화로 군가를 틀었다⁠. 나는 모자를 쓴 채로 차렷 자세로 앉았다⁠. 노인들이 박수를 쳤다⁠. 군가가 끝나자 요양보호사가 생일 축하 노래를 시작했고⁠, 노인들이 따라 불렀다⁠. 노래가 높아지는 대목에서 내 목구멍이 저절로 열렸다⁠. 나는 울었다⁠. 길게⁠, 높게⁠. 개는 사람 노래가 높아지면 따라 운다⁠. 부대에서는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었다⁠. 부대에는 노래가 없었다⁠.

휴게실이 웃음으로 뒤집혔다⁠. 노래하던 노인들이 노래를 잇지 못했다⁠. 요양보호사는 웃다가 재채기를 했고 재채기하다가 또 웃었다⁠. 교장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헛기침을 했다⁠.

“⁠축사를 하겠습니다⁠. 본 견은 아홉 해 동안 국가에 봉사하였으며⁠…⁠.⁠”

“⁠짧게 혀⁠, 교장⁠! 두부 식어⁠!⁠”

“⁠두부는 원래 식은 거여⁠.⁠”

화투 할머니가 말했다⁠. 교장 할아버지가 축사를 접고 앉았다⁠. 앉으면서 웃었다⁠. 처음 보는 교장 할아버지의 웃음이었다⁠. 입을 다물고 코로만 웃었다⁠.

복도에서 바퀴 소리가 났다⁠. 담당자와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남은 야간 요양보호사가 침대 하나를 밀고 들어왔다⁠. 211호 할머니였다⁠. 침대째로 휴게실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는 눈을 뜨고 있었다⁠. 침대 난간 사이로 손이 나와 있었다⁠. 나는 모자를 쓴 채로 침대 옆에 가서 머리를 손 밑에 넣었다⁠. 손이 내 귀를 쥐었다⁠. 이번에는 놓지 않았다⁠.

원장이 문 앞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원장은 들어와서 겉옷 주머니에서 육포 봉지를 꺼냈다⁠. 한 조각을 두부 위에 얹었다⁠. 당근 옆에⁠.

“⁠생일 축하해⁠, 군번⁠.⁠”

원장이 내 이름을 처음 불렀다⁠. 두부 탑은 노인들이 한 조각씩 떼어 내 입에 넣어 주는 바람에 금방 무너졌다⁠. 당근 토막만 탁자 위에 남았다⁠.

*

오후에 원장이 상담실로 미옥과 담당자와 요양보호사를 불렀다⁠. 미옥은 국밥집 앞치마를 무릎에 접어 놓고 앉았다⁠. 나는 담당자의 발치에 엎드렸다⁠. 해병 할아버지의 모자는 벗겨져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원장이 종이 한 장을 탁자 한가운데에 놓았다⁠.

“⁠위원회 때 올릴 안건이에요⁠. 프로그램을 유지하면 식재료비를 한 달에 사만 원 올려야 해요⁠. 마흔 명 전부요⁠. 유지 안 하면 그대로고요⁠.⁠”

종이 위로 네 사람의 숨이 모였다⁠. 원장의 숨은 고르고⁠, 담당자의 숨은 빠르고⁠, 요양보호사의 숨은 길었고⁠, 미옥의 숨은 멈춰 있었다⁠.

“⁠모금하면 안 돼요⁠? 방송 보고 전화 온 분들한테⁠…⁠.⁠”

“⁠모금은 한 번이에요⁠, 선생님⁠. 사료는 매달이에요⁠. 진료비는 열 살 넘으면 해마다 늘고요⁠.⁠”

원장의 손가락이 하나 접혔다⁠. 미옥이 고개를 들었다⁠.

“⁠저 그날 반대할게요⁠.⁠”

미옥이 말했다⁠.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 않아서 더 단단했다⁠.

“⁠아빠가 제 이름 불렀대요⁠. 들어가고 처음으로요⁠. 개 덕분인 거 알아요⁠. 공 던지면서 부르셨대요⁠. 알아요⁠. 그래도 사만 원은 사만 원이에요⁠. 저 같은 집이 마흔 집 중에 몇 집인지 원장님은 아시잖아요⁠.⁠”

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담당자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담당자의 볼펜 뚜껑이 탁자 위에서 굴렀다⁠.

“⁠저는 남기자고 할 거여유⁠.⁠”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모두 요양보호사를 보았다⁠. 요양보호사는 원장을 보지 않고 탁자 위의 해병대 모자를 보았다⁠.

“⁠직원 대표로 손들라고 허셨잖여유⁠. 저는 남기자고 손들 거여유⁠. 원장님 미안혀유⁠. 원장님 계산 틀린 거 아닌 거 알어유⁠. 근디 해병 어르신 아들 전화 오는 거 저 처음 봤어유⁠. 교장 선생님 웃는 것도요⁠. 그건 사만 원으로 못 사유⁠.⁠”

“⁠선생님 월급도 계산에 들어가요⁠.⁠”

원장이 조용히 말했다⁠. 요양보호사의 숨이 한 번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알어유⁠. 그래도 손들 거여유⁠.⁠”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를 내지 않았다⁠. 원장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육포 봉지 옆이었다⁠. 미옥이 앞치마를 집어 들고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탁자 아래의 나를 내려다보았다⁠. 미옥은 나를 피하지 않았다⁠. 미옥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나는 손등에 코를 댔다⁠. 소뼈 국물과 마늘⁠.

“⁠미안해⁠.⁠”

미옥이 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상담실의 아무도 묻지 않았다⁠.

*

사만 원이라는 소리는 저녁 전에 휴게실까지 올라왔다⁠. 요양보호사가 입을 다문다고 다물었는데 다물어지지 않았다⁠. 해병 할아버지가 담당자를 불러 세웠다⁠.

“⁠사만 원이믄 내 담뱃값이여⁠. 나 담배 끊으믄 되잖여⁠.⁠”

“⁠할아버님 담배 안 피우시잖아요⁠. 은단 드시잖아요⁠.⁠”

“⁠그럼 은단 끊어⁠.⁠”

화투 할머니가 보행기를 밀고 오더니 손가락에서 금반지를 빼냈다⁠. 화분 흙에서 나온 반지였다⁠. 반지를 담당자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이거 팔어⁠. 소 한 마리 값이여⁠.⁠”

“⁠어머니⁠, 이건 영감님이 해 주신 거잖아요⁠.⁠”

“⁠영감은 죽었고 개는 살었어⁠.⁠”

원장이 복도를 지나다 반지를 보았다⁠. 원장은 담당자의 손바닥에서 반지를 집어 할머니 손가락에 도로 끼워 주었다⁠. 손가락이 굽어 반지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원장은 천천히 돌려 가며 끼웠다⁠.

“⁠어르신 반지로 사료 사면 저 잡혀가요⁠. 마흔 명이 다 반지를 빼 주셔도 한 번이에요⁠. 다음 달에는 반지가 없어요⁠.⁠”

“⁠그럼 어쩌라고⁠.⁠”

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것을 노인들이 다 보았다⁠. 화투 할머니가 원장의 손을 탁 쳤다⁠. 세게 치지는 않았다⁠. 교장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쳤다⁠. 이발사 할아버지는 빗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노인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고⁠, 휴게실에는 두부 냄새만 남았다⁠. 나는 탁자 위에 남은 당근 한 토막을 보았다⁠.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

해 질 녘이면 조교는 더 부산해진다⁠. 요양보호사는 이걸 해 질 녘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해가 기울면 조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눕고⁠, 일으켰다가 누웠다⁠. 손이 이불을 걷어 냈다⁠. 발이 바닥을 찾았다⁠. 공은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오늘은 공을 던지지 않았다⁠.

“⁠점호 시간이다⁠. 견사 문 닫았냐⁠.⁠”

조교가 문틈으로 물었다⁠. 나는 문턱 밖에서 앉았다⁠. 조교는 내가 앉은 것을 알았다⁠. 다시 누웠다⁠.

밤이 되어도 더위는 물러가지 않았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땀을 닦으며 복도 끝 계단 방화문을 열어 고무 받침을 끼워 두었다⁠. 바람 길을 내려고⁠. 방들의 문도 하나씩 열어 두었다⁠. 207호 앞에서는 손이 한참 멈췄다⁠.

“⁠이 방은 닫어 놔야 허는디⁠. 어르신 등에 땀띠 났어⁠. 오늘만이여⁠, 군번아⁠. 너는 들어가지 마⁠.⁠”

야간 요양보호사는 내게 다짐을 받듯 말하고 문을 밀었다⁠. 207호 문도 한 뼘에서 두 뼘으로 열렸다⁠. 간호 카트의 작은 라디오에서 내일 밤부터 장맛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왔다⁠. 야간 요양보호사는 비 오면 시원해지겠다고 혼잣말을 하고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했다⁠. 부채 바람이 내 귀털을 흔들었다⁠. 종이는 문에 붙은 채 바람이 없어 움직이지 않았다⁠.

*

새벽 한 시⁠, 205호에서 단내가 났다⁠.

지난번보다 짙었다⁠. 나는 일어나 205호 앞에 앉았다가⁠, 앉지 않고 문을 긁었다⁠. 짖었다⁠. 두 번⁠. 야간 요양보호사가 뛰어왔다⁠. 화투 할머니가 침대에서 떨고 있었다⁠. 떨림이 손에서 팔로⁠, 팔에서 온몸으로 번졌다⁠. 이가 딱딱 부딪혔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바늘로 손가락을 찌르고 숫자를 보더니 휴대전화로 119를 눌렀다⁠.

“⁠군번아⁠, 여기 있어⁠. 어머니 옆에 있어⁠. 나 약 가지고 올게⁠.⁠”

야간 요양보호사가 간호 카트로 뛰어갔다⁠. 할머니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떨리는 손이 내 목덜미의 털을 움켜쥐었다⁠. 세게⁠. 칠십 년 동안 개를 만지지 않은 손이 내 털을 놓지 않았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아팠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몸을 빼면 할머니의 몸이 손을 따라 침대 밖으로 딸려 나왔다⁠. 나는 침대 옆에 바짝 붙어 엎드렸다⁠. 할머니의 손과 몸 사이에서⁠.

바람이 바뀌었다⁠.

복도에서 냄새가 흘러왔다⁠. 구두약⁠, 장갑⁠, 육포⁠. 맨발이 복도 바닥에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한 걸음⁠, 쉬고⁠, 한 걸음⁠. 207호에서 나온 발소리가 205호 열린 문 앞을 지나갔다⁠. 문틀 너머로 환자복 자락이 보였다⁠. 조교는 205호 안을 보지 않았다⁠. 똑바로 앞을 보고⁠, 복도 끝 계단을 향해 걸었다⁠. 견사로 가는 걸음이었다⁠. 새벽마다 견사를 향해 걸어오던 걸음⁠.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의 손이 내 털을 더 세게 쥐었다⁠. 할머니의 숨에서 단내가 끓었다⁠.

고백한다⁠. 나는 조교의 발소리를 들었다⁠. 들었고⁠, 남았다⁠. 내 몸은 일어나려 했고 할머니의 손은 나를 붙잡았다⁠. 손을 뿌리치면 할머니가 떨어졌다⁠. 뿌리치지 않으면 조교가 계단으로 갔다⁠. 아홉 해 동안 나는 앉을 자리 하나만 찾으면 되었다⁠. 화약은 한 번에 한 군데에만 있었다⁠. 오늘 밤은 두 군데였다⁠. 나는 짖었다⁠. 복도를 향해⁠, 있는 힘껏⁠. 조교를 부르려고 짖었는지 야간 요양보호사를 부르려고 짖었는지 나도 모른다⁠.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방화문을 지나는 소리⁠. 계단 첫 칸에 맨발이 닿는 소리⁠. 둘째 칸⁠.

다음 소리는 발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계단을 구르는 소리⁠. 난간이 울리는 소리⁠. 그리고 계단참 바닥에 사람의 몸이 닿는 소리⁠. 짧았다⁠. 소리가 끝나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개구리 소리만 났다⁠.

할머니의 손이 내 털을 놓았다⁠. 떨림이 잦아들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복도로 달렸다⁠. 복도 끝 방화문⁠, 고무 받침⁠, 계단⁠. 계단참에 조교가 누워 있었다⁠. 다리 하나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조교의 눈이 떠져 있었다⁠. 조교가 나를 보았다⁠. 눈이 나를 지나 벽으로 가지 않았다⁠.

“⁠…견사 문⁠.⁠”

조교가 말했다⁠. 나는 조교의 손을 핥았다⁠. 손은 펴져 있었다⁠. 피 냄새가 났다⁠. 아주 조금⁠.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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