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51자)

방송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6월 첫 주⁠, 뒷산의 밤나무가 꽃을 피웠다⁠. 밤꽃 냄새는 비리고 무겁다⁠. 아카시아처럼 바람을 타고 오지 않고⁠, 산에서 흘러내려 논 위에 고여 있다가 저녁이면 창틈으로 기어 들어왔다⁠. 노인들은 밤꽃이 피면 장마가 가깝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는 밤꽃 냄새를 맡으면 시집오던 해가 생각난다고 했고⁠, 해병 할아버지가 시집 얘기는 방송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

방송국 차는 화요일 아침에 왔다⁠. 기자 하나와 촬영기자 하나였다⁠. 촬영기자는 어깨에 큰 사진기를 얹고 있었고⁠, 조끼 주머니마다 건전지와 초코바가 들어 있었다⁠. 나는 앉지 않았다⁠. 담당자가 전날 밤 나를 붙잡고 세 번이나 말했기 때문이다⁠. 내일은 아무 데도 앉지 마⁠, 군번⁠. 나는 앉지 마라는 말을 모른다⁠. 담당자가 줄을 손목에 두 번 감은 것은 알았다⁠.

휴게실이 무대가 되었다⁠. 노인들은 아침부터 옷을 갈아입었다⁠. 해병 할아버지는 빨간 해병대 모자를 새로 빨아 썼고⁠, 화투 할머니는 입술에 연지를 발랐다⁠. 이발사 할아버지는 빗을 무릎에 올려놓고 기다렸다⁠.

“⁠군가 틀어⁠. 내가 시킬 테니께⁠.⁠”

해병 할아버지가 기자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기자가 웃으며 군가를 틀었다⁠. 내 엉덩이가 바닥에 붙었다⁠. 가슴이 펴지고 귀가 솟았다⁠. 사진기의 둥근 유리가 내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유리에서 렌즈 닦는 약 냄새가 났다⁠.

“⁠차렷⁠!⁠”

나는 더 곧게 앉았다⁠. 해병 할아버지가 오른손을 이마에 붙였다⁠. 기자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촬영기자가 사진기를 할아버지와 나 사이로 천천히 돌렸다⁠.

“⁠바로⁠!⁠”

할아버지가 손을 내렸다⁠. 나는 이번에도 바로가 무엇인지 몰라 그대로 앉아 있었다⁠. 휴게실이 웃었다⁠. 지난번보다 크게 웃었다⁠. 사진기가 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더 크게 웃는다⁠.

“⁠나도 찍어⁠. 나 출연료 줘야 찍혀⁠.⁠”

화투 할머니가 화투 상자를 흔들며 끼어들었다⁠. 기자가 출연료는 없다고 하자 할머니가 화투 상자를 품에 꼭 안았다⁠.

“⁠그럼 내 얼굴은 반만 찍어⁠.⁠”

*

기자는 반대하는 사람도 찍어야 한다고 했다⁠. 교장 할아버지가 셔츠 단추를 목까지 잠그고 식당 앞에 앉았다⁠. 사진기가 할아버지를 향했다⁠.

“⁠어르신⁠, 치료견에 반대하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위생입니다⁠. 사십 년 교직에 있으면서⁠…⁠.⁠”

“⁠어르신⁠, 혹시 개가 손을 핥는 것에 대해서는⁠…⁠.⁠”

교장 할아버지가 고개를 기울였다⁠. 오른쪽 귀를 기자에게 돌렸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고개를 기울였고⁠, 이번에는 왼쪽 귀가 기자를 향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듣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사진기가 굳은 얼굴을 찍고 있었다⁠.

“⁠다시⁠, 다시 한 번만⁠.⁠”

나는 할아버지의 왼쪽 귀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귀⁠. 비어 있는 자리⁠. 한 달이 넘도록 비어 있는 자리였다⁠. 비어 있는 자리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는 냄새로 안다⁠. 할아버지의 귀지 냄새와 작은 건전지의 쇠 냄새가 섞인 무엇⁠. 이 냄새를 나는 맡은 적이 있다⁠.

휴게실이었다⁠. 화투 할머니의 품⁠.

나는 담당자의 손목에 감긴 줄을 끌고 휴게실로 갔다⁠. 담당자가 말렸지만 줄은 손목에서 한 바퀴 풀렸다⁠. 나는 화투 할머니 앞에 앉았다⁠. 가슴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화투 상자에⁠.

“⁠또 약과여⁠? 이번엔 약과 없어⁠! 다 먹었어⁠!⁠”

할머니가 상자를 열어 보였다⁠. 화투패 사이에 작고 살구색인 물건이 하나 끼어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어머니⁠, 이거 교장 선생님 보청기잖여유⁠!⁠”

“⁠그게 왜 거기 있어⁠! 난 몰러⁠! 귀신이 넣었어⁠!⁠”

해병 할아버지가 휠체어 팔걸이를 두드리며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이발사 할아버지도 오른손으로 무릎을 쳤다⁠. 촬영기자는 웃음을 참느라 사진기를 흔들었다⁠. 요양보호사가 보청기를 닦아 교장 할아버지 왼쪽 귀에 끼워 주었다⁠. 할아버지는 잠깐 눈을 감았다⁠. 휴게실의 웃음소리가 할아버지의 왼쪽 귀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눈을 떴다⁠. 나를 보았다⁠. 지팡이 끝 고무가 바닥에서 한 번 끽 소리를 냈다⁠.

“⁠…기자 양반⁠. 아까 그 질문 다시 해 줘요⁠.⁠”

“⁠개가 손을 핥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장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사진기가 기다렸다⁠.

“⁠개털 얘기는 빼 줘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무릎 사이에 세우고⁠, 마른 손을 내 쪽으로 천천히 내밀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냄새를 맡으라고 내미는 손이었다⁠. 개를 아는 사람만 그렇게 내민다⁠. 나는 손등에 코를 댔다⁠. 분필 냄새가 났다⁠. 사십 년 동안 배어 몇 해 씻어도 안 빠지는 냄새였다⁠.

*

기자는 원장과 담당자도 찍었다⁠. 담당자는 퇴역 군견들이 갈 데가 없다는 말을 했다⁠. 데려가는 사람이 적다고⁠, 크고 늙은 개는 더 적다고⁠. 원장은 사진기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도 접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7월에 끝날 수도 있습니다⁠. 저희 형편으로는 어렵습니다⁠. 좋은 걸 다 할 수 있는 요양원은 많지 않아요⁠.⁠”

“⁠원장님⁠, 그럼 군번은 어떻게 되나요⁠?⁠”

원장은 대답하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촬영기자가 사진기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나는 원장의 겉옷 주머니를 보았다⁠. 육포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앉지 않았다⁠.

*

공은 날마다 문턱을 넘었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나면 요양보호사가 207호에 들어가 조교의 손에 공을 쥐여 주었고⁠, 조교는 공을 문틈으로 던졌다⁠. 나는 물었다가 밀었다⁠. 조교는 다시 던졌다⁠. 사흘째부터 조교는 공을 던지기 전에 말을 붙였다⁠.

“⁠앉아⁠.⁠”

나는 문턱 밖에서 앉았다⁠.

“⁠엎드려⁠.⁠”

나는 엎드렸다⁠. 조교는 문틈 너머로 나를 보지 못했다⁠. 침대에서 문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조교는 내가 앉고 엎드리는 것을 알았다⁠. 공이 정확히 내 앞발 사이로 굴러왔다⁠. 아홉 해 전에 가르친 손은 개가 어디에 앉는지 눈 없이도 안다⁠.

목요일 저녁⁠, 공을 다섯 번 던지고 나서 조교가 요양보호사에게 물었다⁠.

“⁠우리 미옥이 밥은 먹고 다니냐⁠.⁠”

요양보호사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들어온 지 넉 달 만에 조교가 처음으로 딸 이름을 불렀다고⁠, 요양보호사가 복도로 나와 전화기를 붙잡고 미옥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복도 끝까지 들렸다⁠. 전화기 너머에서 미옥은 한참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국밥집 주방의 국자 소리와 손님 부르는 소리만 났다⁠. 미옥이 말했다⁠. 알겠어요⁠. 그러고 끊었다⁠. 요양보호사가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재채기를 했다⁠.

*

방송은 금요일 저녁에 나왔다⁠. 노인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휴게실 텔레비전 앞에 모였다⁠. 화면에 내가 나왔다⁠. 화면 속의 나는 진짜 나보다 작았고 냄새가 없었다⁠. 화면 속에서 해병 할아버지가 경례했고⁠, 화투 할머니의 얼굴이 반만 나왔고⁠, 교장 할아버지가 개털 얘기는 빼 달라고 말했다⁠. 휴게실 노인들이 화면을 보며 다시 웃었다⁠. 이미 웃었던 일을 다시 보며 웃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한다⁠.

간호 카트 옆 전화가 울렸다⁠. 요양보호사가 받았다가 휴게실로 뛰어왔다⁠.

“⁠해병 어르신⁠! 아드님이유⁠! 방송 보셨대유⁠!⁠”

해병 할아버지가 전화기를 받았다⁠. 휴게실이 조용해졌다⁠. 텔레비전 소리만 났다⁠.

“⁠어⁠. 어⁠. 밥 먹었다⁠. 어⁠. 그려⁠. 끊어라⁠.⁠”

할아버지는 전화기를 요양보호사에게 돌려주고 텔레비전 소리를 키웠다⁠. 크게⁠, 더 크게⁠. 아무도 소리를 줄이라고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해병대 모자 챙 밑에서 짠 냄새가 났다⁠. 나는 할아버지의 무릎에 턱을 얹었다⁠.

*

전화는 밤늦게까지 울렸다⁠. 원장이 사무실에서 받았고⁠, 담당자가 옆에서 받았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엎드려 전화 소리를 셌다⁠. 셀 수 있었다⁠. 열한 통이었다⁠.

입소 문의가 세 통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고⁠, 개가 있는 요양원이냐고⁠. 퇴역견을 받아 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네 통이었다⁠. 다른 보호소⁠, 다른 단체⁠, 개인⁠. 나머지는 잘 봤다는 전화였다⁠. 마지막 전화는 군청이었다⁠. 원장이 받았다⁠.

“⁠네⁠, 과장님⁠. 네⁠, 감사합니다⁠. 네⁠. 아⁠, 예산은 없으시고요⁠. 네⁠. 관심 있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원장은 전화를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가 폈다⁠.

“⁠방송 나가도 밥값은 안 나와요⁠, 선생님⁠.⁠”

“⁠입소 문의 세 통이요⁠, 원장님⁠. 원장님이 원하신 거잖아요⁠.⁠”

“⁠세 통은 빈자리가 생겨야 숫자예요⁠. 지금 빈자리 없어요⁠. 빈자리 생긴다는 건 누가 돌아가신다는 뜻이고요⁠.⁠”

“⁠그럼 퇴역견 네 통은요⁠? 다 갈 데 없는 애들이에요⁠. 여기가 길이 될 수 있잖아요⁠. 요양원이랑 퇴역견을 잇는⁠…⁠.⁠”

“⁠선생님⁠.⁠”

원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졌다⁠.

“⁠저 길 못 만들어요⁠. 길은 나라가 만드는 거예요⁠. 저는 마흔 명 밥 하는 사람이에요⁠. 방송 한 번 나갔다고 제가 나라 일까지 하면⁠, 여기 문 닫아요⁠. 이웃 면처럼요⁠.⁠”

“⁠원장님은 결국 끝내실 거잖아요⁠. 결과가 있어도요⁠.⁠”

“⁠결과는 있어요⁠.⁠”

원장이 담당자를 똑바로 보았다⁠.

“⁠결과가 있는 거랑 돈이 있는 건 달라요⁠. 저도 결과 봤어요⁠. 해병 어르신 웃는 거⁠, 교장 선생님 귀⁠, 211호 손⁠. 다 봤어요⁠. 다 보고 나서 따지는 게 제 일이에요⁠.⁠”

담당자가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세게 닫혔다⁠. 원장은 닫힌 문을 보다가 겉옷 주머니에서 육포 봉지를 꺼냈다⁠. 한 조각을 꺼내 내 앞에 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담당자의 허락 없이 육포를 먹었다⁠. 처음이었다⁠. 원장의 손등을 한 번 핥았다⁠. 원장의 손등에서 짠맛이 났다⁠.

*

새벽 두 시⁠, 복도에서 단내가 났다⁠.

밤꽃 냄새가 아니었다⁠. 사람의 숨에서 나는 단내였다⁠. 과일이 너무 익었을 때처럼 달고 시큼했다⁠. 숨이 바뀌기 전에 몸이 먼저 바뀐다⁠. 나는 담요에서 일어나 복도를 걸었다⁠. 201호⁠, 아니다⁠. 203호⁠, 아니다⁠. 205호 문 앞에서 냄새가 짙어졌다⁠.

나는 205호 앞에 앉았다⁠. 앉아서 기다렸다⁠. 야간 요양보호사는 간호 카트에서 졸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 문을 앞발로 긁었다⁠. 긁고 앉았다⁠. 긁고 앉았다⁠. 세 번째에 짖었다⁠. 짧게⁠, 한 번⁠.

야간 요양보호사가 뛰어왔다⁠. 문을 열었다⁠. 화투 할머니가 침대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반쯤 뜨고 있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손가락 끝에 작은 바늘을 찔러 무언가를 쟀다⁠. 숫자를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저혈당이여⁠. 어머니⁠, 어머니⁠. 사탕⁠, 사탕 어디 있어⁠.⁠”

나는 서랍 앞에 앉았다⁠. 약과는 없었다⁠. 박하사탕 한 줌이 있었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사탕을 녹여 할머니 입에 넣고⁠, 당이 든 물을 숟가락으로 흘려 넣었다⁠. 십오 분이 지났다⁠. 할머니의 숨에서 단내가 빠져나갔다⁠. 눈이 떠졌다⁠. 할머니가 침대 옆에 앉은 나를 보았다⁠.

“⁠…니가 왜 여기 있어⁠.⁠”

“⁠군번이가 찾었어유⁠, 어머니⁠. 숨 냄새로⁠.⁠”

할머니는 한참 나를 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교장 할아버지처럼⁠. 칠십 년 동안 개 근처에 안 간 손이었다⁠. 나는 손등에 코를 댔다⁠. 동백기름과 식은땀⁠.

“⁠니가 날 물었어야 혔는디⁠. 물지는 않고 살렸네⁠.⁠”

야간 요양보호사가 복도로 나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숨을 고르며 나를 보았다⁠.

“⁠이제 너 205호도 지켜야겄다⁠.⁠”

나는 복도 한가운데 엎드렸다⁠. 왼쪽에 205호⁠, 오른쪽 끝에 207호⁠. 문이 둘이 되었다⁠. 두 문 사이는 내 몸으로 네 번이면 닿는 거리였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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