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44자)

빈집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아카시아가 지고 찔레가 피었다⁠. 찔레는 아카시아보다 냄새가 낮게 깔린다⁠. 논두렁마다 하얀 덤불이 엎드려 있었고⁠, 덤불 밑에서 개구리가 울었다⁠. 모는 한 뼘쯤 자라 있었다⁠.

월요일 아침⁠, 담당자가 원장실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원장이 안경을 고쳐 쓰고 읽었다⁠. 원장의 안경에서는 아직 해병 할아버지의 발 냄새가 아주 조금 났다⁠. 나는 발 냄새를 맡을 때마다 꼬리가 저절로 흔들렸다⁠.

“⁠회상 치료요⁠?⁠”

“⁠어르신이 젊을 때 쓰시던 물건을 가져와서 보여 드리는 거예요⁠. 사진이나 옷이나 연장 같은 거요⁠. 표성만 어르신은 부대 물건이요⁠. 보호자님한테 집에 같이 가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군번도 데려가요⁠. 물건 찾는 데는 군번이 최고예요⁠.⁠”

“⁠돈 드는 거예요⁠?⁠”

“⁠기름값이요⁠.⁠”

“⁠그럼 해 보세요⁠. 돈 안 드는 건 다 해 보세요⁠.⁠”

원장은 종이에 서명하고 손가락을 접지 않았다⁠. 접을 것이 없어서 좋은 얼굴이었다⁠.

*

미옥의 차는 작은 짐차였다⁠. 짐칸에서 깍두기 국물과 소뼈와 배추 겉잎 냄새가 났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바람이 내 볼을 뒤로 밀었고⁠, 귀가 뒤집혀 펄럭였다⁠. 담당자가 조수석에서 웃었다⁠. 미옥은 웃지 않았다⁠.

“⁠침 튀어요⁠. 창문 올려요⁠.⁠”

“⁠군번이 좋아해서요⁠.⁠”

“⁠제 차예요⁠.⁠”

담당자가 창문을 반만 올렸다⁠. 나는 반만 내민 머리로 냄새를 받았다⁠. 읍내를 벗어나자 논이 끝나고 축사가 나왔다⁠. 돼지 축사⁠, 소 축사⁠, 다시 돼지 축사⁠. 축사 냄새는 독하지만 나쁘지 않다⁠. 살아 있는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냄새다⁠. 축사가 끝나자 바람이 짜졌다⁠. 바다였다⁠. 갯벌의 진흙과 굴 껍데기와 말린 생선⁠. 나는 바다를 처음 맡았다⁠. 부대는 산속에 있었다⁠.

“⁠아빠가 여기 땅 산 게 정년하던 해예요⁠. 바다 보이는 데서 개 키우면서 살 거라고⁠.⁠”

미옥이 운전대를 쥔 채 말했다⁠. 담당자가 미옥을 보았다⁠. 미옥은 앞만 보았다⁠.

“⁠엄마 돌아가시고 혼자 살면서 마당에 견사를 지었어요⁠. 나무 사다가 손으로요⁠. 일 년 걸렸어요⁠.⁠”

*

집은 낮은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감나무 그늘 아래 견사가 있었다⁠. 미옥이 대문을 열자 나는 줄을 끌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담당자가 줄을 놓쳤다⁠. 놓쳤는데도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견사는 소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송진 냄새가 아직 다 날아가지 않았다⁠. 지붕에는 비가 새지 않게 함석을 덧댔고⁠, 바닥은 땅에서 한 뼘 띄워 올렸다⁠. 겨울에 바닥 냉기가 올라오지 말라고⁠. 부대 견사보다 넓었다⁠. 철창 대신 나무 창살이었고⁠, 창살 사이가 내 주둥이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문고리에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새 자물쇠였는데 비를 맞아 녹물이 흘러 있었다⁠.

나는 견사 둘레를 돌며 냄새를 맡았다⁠. 나무마다 조교의 손 냄새가 배어 있었다⁠. 대패질한 자리⁠, 못을 박은 자리⁠, 손바닥으로 문질러 가시를 없앤 자리⁠. 땀이 나무에 스며 마른 냄새였다⁠. 개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개가 살아 본 적 없는 견사를 나는 처음 맡았다⁠. 개 냄새가 없는 견사는 견사가 아니라 그냥 나무 상자다⁠.

“⁠들어가 보게 해 줄까요⁠?⁠”

담당자가 자물쇠를 만지며 물었다⁠.

“⁠열쇠 없어요⁠. 아빠가 어디다 뒀는지 몰라요⁠.⁠”

미옥이 말했다⁠. 미옥은 견사를 보지 않고 헛간으로 걸어갔다⁠.

*

헛간은 어두웠다⁠. 비료 포대와 녹슨 경운기 바퀴와 장화가 뒤엉켜 있었고⁠, 먼지 냄새가 모든 냄새 위에 깔려 있었다⁠. 미옥이 형광등 줄을 당겼다⁠. 불이 깜박이다 켜졌다⁠.

“⁠부대 물건은 저 위 선반 상자에 있을 거예요⁠.⁠”

담당자가 선반에 손을 뻗는 동안 나는 비료 포대 앞에 앉았다⁠. 가슴을 펴고 귀를 세우고⁠. 비료 냄새 밑에 다른 냄새가 있었다⁠. 마른 담뱃잎⁠, 그리고 쌀로 빚은 독한 물⁠.

“⁠거기 뭐 있어⁠?⁠”

미옥이 비료 포대를 들췄다⁠. 포대 뒤에서 비닐에 싼 담배 한 보루와 소주 두 병이 나왔다⁠. 소주병 하나는 반쯤 비어 있었다⁠. 미옥이 담배 보루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 듣는 미옥의 웃음이었다⁠. 웃음이 헛간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아빠⁠. 끊었다며⁠. 엄마 산소에서 끊는다고 맹세했잖아⁠.⁠”

미옥은 웃다가 비료 포대에 주저앉았다⁠. 담당자도 웃었다⁠. 미옥이 소주병을 흔들어 보며 말했다⁠.

“⁠이거 진단받기 전이에요⁠. 병 뚜껑에 먼지 앉은 거 봐요⁠. 사람이 숨길 땐 기억하는데 숨긴 걸 까먹으면 이렇게 돼요⁠.⁠”

미옥은 담배 보루를 나에게 내밀었다⁠.

“⁠너는 다 찾는구나⁠. 아빠가 숨긴 거⁠.⁠”

나는 담배 냄새를 맡았다⁠. 조교의 손톱 사이에 남아 있던 냄새였다⁠. 끊은 지 오래된 사람이 아니었다⁠. 끊었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미옥은 담배 보루를 비닐째 다시 비료 포대 뒤에 밀어 넣었다⁠. 소주병도 나란히 세워 두었다⁠.

“⁠원장님한테는 비밀이에요⁠. 아빠 거니까 아빠 자리에 둬요⁠.⁠”

담당자가 손가락으로 입술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미옥이 담당자의 손가락을 보고 한 번 더 웃었다⁠.

*

선반 상자에는 조교의 부대가 들어 있었다⁠. 낡은 전투복 상의⁠, 군견 훈련용 소가죽 장갑 한 켤레⁠, 사진 몇 장⁠, 목줄 두 개⁠. 장갑 손등에 이빨 자국이 수없이 나 있었다⁠. 개들의 이빨이었다⁠. 수십 마리의 이빨⁠. 나는 장갑에 코를 박았다⁠. 수십 마리 가운데 하나가 나였다⁠.

상자 맨 밑에 고무공 하나가 있었다⁠. 주먹만 한 빨간 공이라고 담당자가 말했다⁠. 내 눈에는 거무스름한 공이었다⁠. 고무가 삭아 표면이 갈라져 있었고⁠, 갈라진 틈마다 작은 이빨 자국이 박혀 있었다⁠. 강아지 이빨이었다⁠.

나는 공을 물었다⁠. 물자마자 알았다⁠. 입이 먼저 알았다⁠. 생후 석 달⁠, 조교의 손을 물던 날 빼앗겼다가 돌려받은 공⁠. 이 공을 물고 견사를 뛰어다녔고⁠, 물고 잠들었고⁠, 화약 냄새 앞에 처음 앉던 날 상으로 받았다⁠. 내가 세 살 되던 겨울 조교가 부대를 떠나던 날 이 공도 사라졌다⁠. 조교가 가져갔다⁠.

미옥이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았다⁠. 젊은 조교가 견사 앞에 쪼그려 앉아 강아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강아지는 공을 물고 있었다⁠.

“⁠이게 너구나⁠.⁠”

미옥은 사진을 뒤집었다⁠. 사진 뒤에 볼펜 글씨가 있었다⁠. 미옥이 소리 내어 읽었다⁠.

「⁠군번⁠. 석 달⁠. 손 물었음⁠. 잘 놓음⁠.⁠」

*

마당에 나와 미옥과 담당자가 견사 앞에 나란히 멈췄다⁠. 해가 바다로 기울고 있었다⁠. 담당자는 상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당자가 먼저 말했다⁠. 이번에는 천천히⁠.

“⁠보호자님⁠. 보호자님이 입양하시면 되잖아요⁠. 여기 견사도 있고⁠, 마당도 있고⁠. 프로그램 없어져도 군번이 여기 살면서 아버님 뵈러 가면⁠…⁠.⁠”

“⁠원장님이 식비 오른다고 하셨죠⁠.⁠”

미옥이 말을 잘랐다⁠.

“⁠프로그램 남으면 한 달에 몇 만 원⁠. 저 그거 못 내요⁠. 지금도 국밥집 월급 절반이 아빠 요양원비예요⁠. 나머지 절반으로 제가 살아요⁠. 몇 만 원 오르면 아빠를 더 싼 데로 옮겨야 돼요⁠. 읍내에서 한 시간 걸리는 데로요⁠. 개 때문에 아빠를 옮겨요⁠?⁠”

담당자가 입을 다물었다⁠.

“⁠개를 데려오면 사료값이 나가요⁠. 열 살이면 병원비도 나가고요⁠. 아빠가 남긴 돈 없어요⁠. 이 집이랑 저 견사가 다예요⁠. 원장님 편 드는 거 저도 싫어요⁠. 근데 원장님 계산이 제 계산이랑 똑같아요⁠.⁠”

미옥은 견사 자물쇠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녹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선생님은 개를 지키시고⁠, 원장님은 마흔 명 밥을 지키시고⁠, 저는 아빠 침대 하나 지켜요⁠. 다 맞는 말이에요⁠. 다 맞으니까 누가 하나는 져야 돼요⁠.⁠”

나는 공을 문 채 미옥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 미옥의 발목에서 하루 열두 시간 서 있는 사람의 냄새가 났다⁠. 부은 살갗 밑으로 피가 무겁게 고이는 냄새였다⁠.

*

돌아오는 길에 미옥이 운전석 창문 단추를 눌러 내 쪽 창을 끝까지 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끝까지 내밀었다⁠. 갯벌 냄새가 멀어지고 축사 냄새가 다가왔다⁠. 라디오에서 장마가 예년보다 일찍 올라올 것 같다는 예보가 흘러나왔다⁠.

“⁠선생님은 왜 개를 해요⁠?⁠”

미옥이 앞을 본 채 물었다⁠. 담당자가 상자를 무릎에 고쳐 안았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셨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요⁠. 말을 안 하셨는데⁠, 한 달에 한 번 봉사자가 개를 데려오면 그날만 제 이름을 부르셨어요⁠. 개 이름 부르다가 제 이름도 같이요⁠.⁠”

“⁠그래서 이 일 해요⁠?⁠”

“⁠그래서 이 일 해요⁠. 근데 지금 저 원룸 살아요⁠. 큰 개 안 되는 데요⁠. 웃기죠⁠. 개를 살리자고 하는 사람이 개를 못 데려가요⁠.⁠”

미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췄다⁠. 미옥의 손이 기어봉 위에서 한 번 쥐어졌다 펴졌다⁠. 사람이 속으로 돈을 셀 때의 손이었다⁠. 원장의 손가락과 닮아 있었다⁠.

*

요양원에 돌아오니 원장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의 휴대전화 화면이 켜져 있었다⁠.

“⁠선생님⁠, 지역 방송국에서 연락 왔어요⁠. 군청 과장님이 얘기하셨나 봐요⁠. 퇴역 군견 치료견⁠, 찍고 싶대요⁠. 다음 주에요⁠.⁠”

“⁠방송이요⁠? 원장님이 허락하셨어요⁠?⁠”

“⁠했어요⁠.⁠”

원장이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방송 나가면 입소 문의가 와요⁠. 빈자리 안 생기게요⁠. 지금 마흔 명 꽉 차 있어도⁠, 한 분 돌아가시면 다음 분 들어오실 때까지 그 침대는 적자예요⁠. 그게 밥값이에요⁠. 방송이 반찬 한 가지 지켜 주면 저는 찍어요⁠.⁠”

미옥이 상자를 내려놓고 원장 앞으로 갔다⁠.

“⁠우리 아빠는 안 돼요⁠. 아빠 얼굴 방송에 나가는 거 싫어요⁠.⁠”

“⁠207호는 안 찍어요⁠. 약속드려요⁠. 해병 어르신이랑 화투 어르신이 벌써 찍겠다고 난리셔요⁠.⁠”

“⁠날짜는요⁠? 위원회요⁠.⁠”

“⁠그대로예요⁠. 방송 나가도 계산은 그대로예요⁠.⁠”

미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담당자가 보았다⁠. 담당자의 손이 상자 모서리를 꽉 쥐었다⁠.

*

저녁에 요양보호사가 상자에서 공을 꺼내 207호에 들고 들어갔다⁠. 나는 문턱 바깥에 엎드려 있었다⁠. 「⁠출입 금지⁠」 종이가 문 위에서 바람에 팔락였다⁠.

“⁠어르신⁠, 이거 보셔유⁠. 공이유⁠. 어르신 집에서 가져왔어유⁠.⁠”

조교의 손이 시트 위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펴지는 소리⁠. 고무가 손바닥에 닿는 소리⁠. 주먹이 아니었다⁠. 손이 공을 쥐는 소리였다⁠. 쥐는 것과 움켜쥐는 것은 소리가 다르다⁠.

“⁠물어 와⁠.⁠”

조교가 말했다⁠. 공이 침대에서 날아왔다⁠. 문틈을 지나 복도로 굴러 나왔다⁠. 내 앞발 사이에서 멈췄다⁠.

나는 공을 물었다⁠. 문턱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몸을 낮춰 문턱 바로 앞에 공을 내려놓고 코끝으로 밀었다⁠. 공이 문틈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침대 다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조교가 웃었다⁠. 쉬고 갈라진 웃음이었다⁠. 공이 다시 날아왔다⁠. 나는 다시 물었다⁠. 다시 밀었다⁠. 요양보호사가 문 안에서 손뼉을 쳤다⁠. 재채기도 했다⁠.

계단참에 미옥이 서 있었다⁠. 미옥은 올라오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종이에는 개가 들어가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공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미옥은 종이를 떼지 않았고⁠, 공을 막지도 않았다⁠. 공은 열한 번 문턱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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