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65자)

문을 닫은 손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5월 중순⁠, 요양원 뒷산이 하얗게 피었다⁠. 아카시아였다⁠. 바람이 산에서 내려오면 단내가 건물을 통째로 감쌌다⁠. 소독약도 된장국도 기저귀도 아카시아 밑으로 가라앉았다⁠. 산길로 양봉 트럭이 올라갔고⁠, 트럭 짐칸의 벌통에서 벌 수만 마리가 웅웅거렸다⁠. 나는 창가에 코를 대고 하루 종일 꽃을 맡았다⁠. 꽃 냄새가 짙은 날은 사람 냄새가 흐려져서 일이 어려웠다⁠.

월요일 아침⁠, 담당자의 전화가 울렸다⁠. 복사기 소리가 나는 전화였다⁠. 담당자는 계단참에서 받았고 나는 담당자의 발치에 앉아 들었다⁠.

“⁠네⁠. 네⁠? 다음 주요⁠? 견사를 비워야 한다고요⁠. 새 기수 들어와서요⁠. 네⁠, 알아요⁠. 열한 살이요⁠. 보호소요⁠? 어디 보호소요⁠?⁠”

말리노이즈라는 소리가 세 번 나왔다⁠. 보호소라는 소리가 네 번 나왔다⁠. 전화를 끊은 담당자는 볼펜 뚜껑을 입에 물고 원장실로 올라갔다⁠.

*

“⁠안 돼요⁠.⁠”

원장은 담당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했다⁠. 손가락을 하나도 접지 않았다⁠. 접을 필요가 없는 대답이었다⁠.

“⁠원장님⁠, 한 달만이요⁠. 입양처 찾을 때까지만⁠. 군번이랑 같이 지냈던 애라서 군번도 안정되고⁠…⁠.⁠”

“⁠한 마리도 위원회에서 없앨 판에 두 마리요⁠?⁠”

“⁠보호소 가면 열한 살은 아무도 안 데려가요⁠. 군번도 석 달 공고에 아무도 안 왔어요⁠. 거기서⁠…⁠.⁠”

담당자가 말을 삼켰다⁠. 원장은 책상 위의 식단표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선생님⁠. 저는 마흔 명 원장이에요⁠. 나라 개 원장이 아니에요⁠. 나라가 데려온 개를 나라가 못 데려가는 걸⁠, 왜 우리 어르신들 반찬이 메워야 해요⁠?⁠”

담당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크지 않은 목소리가 원장실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나는 원장의 책상 밑에 엎드려 있었다⁠. 책상 밑에서 원장의 구두를 맡았다⁠. 구두 뒤축이 한쪽만 닳아 있었다⁠. 원장은 서 있을 때 왼발에 힘을 준다⁠.

“⁠선생님 마음은 알아요⁠. 제 마음도 같아요⁠. 마음이랑 계산은 따로 해야 해요⁠. 둘을 같이 하면 둘 다 틀려요⁠.⁠”

담당자가 원장실을 나왔다⁠. 나는 따라 나왔다⁠. 복도 창밖에서 벌 소리가 났다⁠. 말리노이즈는 아홉 해 동안 내 옆 철창에서 밥을 반만 먹고 반을 남겼다⁠. 남긴 반이 누구 몫이었는지 나는 끝까지 몰랐다⁠.

월요일 오후 담당자는 사무실 구석에서 전화를 여러 통 걸었다⁠. 나는 담당자의 의자 밑에 엎드려 소리만 들었다⁠. 전화마다 시작은 밝았고 끝은 짧았다⁠. 퇴역 군견인데요⁠, 열한 살 말리노이즈요⁠. 아⁠, 네⁠. 지금 꽉 찼어요⁠? 네⁠. 대형견은 어렵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다섯 번째 전화를 끊고 담당자는 휴대전화를 책상에 엎어 놓았다⁠. 화면이 아래로 가자 방이 조금 어두워졌다⁠.

“⁠군번아⁠. 너네 나라 일 했잖아⁠. 아홉 해나⁠. 근데 왜 아무도 너네 갈 데를 안 만들어 놨어⁠?⁠”

나는 나라라는 소리를 모른다⁠. 담당자가 나라를 말할 때마다 볼펜 뚜껑을 세게 깨문다는 것만 안다⁠. 담당자의 신발 끝을 핥았다⁠. 신발에서 요양원 복도의 왁스 냄새가 났다⁠.

*

수요일 오후⁠, 휴게실에 일이 났다⁠.

“⁠원장님 안경 없어졌대⁠!⁠”

화투 할머니가 소리쳤다⁠. 소리치는 얼굴이 웃음을 참느라 일그러져 있었다⁠. 원장은 휴게실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안경을 벗은 원장은 처음 보았다⁠. 눈이 작고 순했다⁠.

“⁠제가 탁자에 잠깐 내려놨는데요⁠. 어르신들⁠, 장난치시는 거죠⁠?⁠”

“⁠우리가 뭘⁠. 우리는 몰러⁠.⁠”

해병 할아버지가 시치미를 뗐다⁠. 휠체어 발판 위에 양말 신은 발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양말 한 짝이 이상하게 불룩했다⁠. 담당자가 눈치를 채고 웃음을 삼켰다⁠. 화투 할머니가 손뼉을 쳤다⁠.

“⁠탐지견 불러⁠! 군번이 찾게 혀⁠!⁠”

노인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원장이 한숨을 쉬었다⁠. 담당자가 원장의 손수건을 내 코앞에 대 주었다⁠. 핸드크림⁠, 잉크⁠, 커피⁠.

“⁠군번⁠, 찾아⁠.⁠”

나는 코를 바닥에 대고 휴게실을 돌았다⁠. 탁자 다리⁠, 소파 밑⁠, 텔레비전 뒤⁠. 노인들이 숨을 죽이고 나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내 코는 해병 할아버지의 발 앞을 지나갔다⁠. 은단 냄새와 발 냄새 밑에 핸드크림 냄새가 있었다⁠. 그런데 내 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짙은 냄새가 있었다⁠. 휴게실 한가운데⁠, 원장의 겉옷 오른쪽 주머니⁠.

나는 원장 앞에 앉았다⁠. 가슴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주머니에 정확히 겨누고⁠.

“⁠원장님 몸에 폭탄 있다⁠!⁠”

해병 할아버지가 외쳤다⁠. 휴게실이 뒤집어졌다⁠. 화투 할머니는 보행기를 붙잡고 몸을 접었고⁠, 이발사 할아버지는 오른손으로 무릎을 쳤다⁠. 원장의 귀가 빨개졌다⁠. 나는 사람 얼굴빛을 잘 못 읽지만⁠, 귀에서 열이 오르는 냄새는 맡는다⁠.

원장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다⁠. 귀퉁이가 하얗게 닳은 육포 봉지였다⁠.

“⁠원장님⁠, 그거 개 육포잖아요⁠.⁠”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원장은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휴게실이 조용해졌다⁠. 다들 원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먼저 간 리트리버 주던 거예요⁠.⁠”

원장이 말했다⁠.

“⁠열두 해 동안 여기 있던 애예요⁠. 제가 원장 되던 해에 들어왔어요⁠. 지난겨울에 보냈는데⁠, 마트 가면 손이 먼저 이걸 집어요⁠. 버릇이에요⁠.⁠”

원장은 봉지를 뜯었다⁠. 육포 한 조각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나는 담당자를 보았다⁠.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는 육포를 받았다⁠. 원장의 손가락 끝을 혀로 한 번 쓸었다⁠. 원장이 손을 거두지 않았다⁠. 휴게실 누구도 웃지 않았다⁠. 해병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고 양말 속에서 안경을 꺼냈다⁠.

“⁠발 냄새 땜에 못 찾을 줄 알았지⁠.⁠”

“⁠영감 발 냄새는 폭탄보다 독혀⁠.⁠”

화투 할머니가 말했고⁠, 비로소 다시 웃음이 터졌다⁠. 원장은 안경을 받아 셔츠 자락에 닦으며 웃었다⁠. 이번 웃음에서는 냄새가 났다⁠. 아카시아 같은 단내였다⁠.

*

원장이 원장실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담당자와 2층을 돌았다⁠. 211호 앞에서 담당자가 멈췄다⁠. 211호 할머니는 내가 온 뒤로 한 번도 침대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눈을 감고 누워 천장만 보았다⁠. 문틈에서 마른 입술 냄새와 오래 덮은 이불 냄새가 났다⁠.

침대 난간 사이로 손 하나가 나와 있었다⁠. 뼈만 남은 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담당자를 보았다⁠. 담당자가 줄을 풀어 주었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손바닥 밑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손이 내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손가락이 내 귀를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할머니의 입이 벌어졌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소리가 없어도 웃음에는 숨이 있다⁠.

나는 할머니의 손등을 핥았다⁠. 손등은 종이처럼 얇았고⁠, 얇은 살 밑에서 피가 느리게 흘렀다⁠. 담당자가 휴대전화를 꺼내 시계를 보았다⁠. 할머니의 손은 십오 분 동안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복도로 나오자 211호 맞은편 문 앞에 교장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할아버지는 211호 안을 보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의 손 밑에 머리를 넣은 것부터 다 본 눈이었다⁠. 담당자가 인사를 하자 할아버지는 고개만 까딱하고 몸을 돌렸다⁠. 지팡이 끝 고무가 복도 바닥에 닿을 때마다 끽 소리가 났다⁠. 소리가 평소보다 느렸다⁠. 왼쪽 귀에서는 여전히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보청기 아직 못 찾으셨대요⁠. 한 달 됐는데⁠.⁠”

담당자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는 보청기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할아버지의 왼쪽 귀에 비어 있는 자리를 뜻하는 소리라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

207호는 다시 닫혀 가고 있었다⁠. 어버이날 뒤로 조교는 밥을 다시 밀어냈다⁠. 미음 세 숟갈이 두 숟갈이 되고⁠, 한 숟갈이 되었다⁠. 반쯤 펴졌던 손가락이 하나씩 다시 굽어들었다⁠. 밤마다 문 안에서 침대 난간을 두 번 치는 소리가 났고⁠, 소리는 날마다 약해졌다⁠. 탁⁠, 탁⁠. 다음 날은 탁⁠, 하고 한 번만⁠.

요양보호사가 미음 그릇을 들고 나오며 그릇을 내 코앞에 내밀었다⁠. 그릇은 처음 들어갈 때와 무게가 같았다⁠. 미음 위에 얇은 막이 앉아 있었다⁠.

“⁠너라도 먹을래⁠? 어르신이 오늘 한 숟갈도 안 드셨어⁠. 군번이 밥 먹었냐고만 물으셔⁠.⁠”

나는 미음을 먹지 않았다⁠. 그릇 가장자리에 조교의 입김 냄새가 아주 조금 묻어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원장에게 말했다⁠. 원장이 미옥에게 전화했다⁠. 미옥은 목요일 저녁에 왔다⁠.

담당자가 현관에서 미옥을 기다렸다⁠. 미옥이 2층으로 올라가려 하자 담당자가 앞을 막았다⁠.

“⁠보호자님⁠, 오 분만요⁠. 마당에서요⁠.⁠”

*

마당 뒤편 빈 견사 앞이었다⁠. 견사 문은 닫혀 있었고⁠, 바닥 틈에 늙은 리트리버의 털과 내 털이 섞여 있었다⁠. 해가 넘어가는 중이라 아카시아 단내가 식어 가고 있었다⁠. 담당자가 먼저 말했다⁠. 빠르고⁠, 불안할 때처럼 더 빨랐다⁠.

“⁠아버님 다시 안 드세요⁠. 손도 다시 닫혔어요⁠. 군번 들어갔을 때 손 열렸잖아요⁠. 보셨잖아요⁠. 왜 안 되는지 말씀이라도 해 주세요⁠. 위원회에서 반대하셔도 돼요⁠. 지금은 아버님 밥이요⁠.⁠”

미옥은 견사 철창을 보았다⁠. 손가락이 철창 문고리를 찾았다⁠. 눈으로 찾지 않고 손으로 찾았다⁠.

“⁠아빠가 버린 거 아니에요⁠.⁠”

미옥이 말했다⁠.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작년 가을에 아빠가 진단받았어요⁠. 혈관성이라고⁠, 빨리 나빠질 수 있다고요⁠. 사흘 뒤가 이 개 퇴역하는 날이었어요⁠. 아빠는 일 년 전부터 입양 신청을 해 놨었어요⁠. 마당에 견사도 지어 놓고요⁠. 진단받고 와서도 간다고 했어요⁠. 데리러 간다고⁠.⁠”

미옥의 손가락이 문고리를 젖혔다⁠. 철컥⁠. 견사 문이 열렸다⁠.

“⁠부대 견사 앞에서 아빠가 문을 열었어요⁠. 이렇게요⁠. 그러고는 저를 봤어요⁠. 미옥아⁠, 내가 이놈 밥 주는 걸 까먹으면 어떡하냐⁠. 내가 이놈을 데리고 나갔다가 길을 잃으면 어떡하냐⁠. 아빠가 저한테 물어본 거예요⁠. 처음으로⁠.⁠”

미옥은 열린 문을 보았다⁠. 문이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제가 그랬어요⁠. 아빠⁠, 나는 못 해⁠. 아빠도 봐야 되는데 개까지 나는 못 해⁠. 국밥집 하루 열두 시간 서서 일해요⁠. 아빠 병원비도 제가 내요⁠. 개 사료값⁠, 병원비⁠, 그걸 제가 어떻게 해요⁠.⁠”

미옥이 열린 문을 밀었다⁠. 문이 닫혔다⁠. 철컥⁠.

“⁠문 닫은 건 제 손이에요⁠. 아빠는 철창 사이로 손 넣고 기다려⁠, 그러고 돌아섰어요⁠. 부대 사람한테 입양 취소한다고 말한 것도 저예요⁠. 아빠는 그날 이후로 이 개 얘기를 저한테 한 번도 안 했어요⁠. 다른 건 다 까먹으면서⁠, 그 얘기 안 하는 건 안 까먹었어요⁠.⁠”

담당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볼펜 뚜껑이 손에서 떨어졌다⁠. 미옥은 닫힌 문고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나는 미옥의 손에 코를 댔다⁠. 소뼈 국물⁠, 주방 세제⁠, 손톱 밑의 마늘⁠. 그리고 철창의 쇠 냄새⁠. 지난가을 견사 앞에서 문고리가 닫히던 순간⁠, 고리에 남은 손 냄새가 이것이었다⁠. 열린 소리는 조교의 손이었다⁠. 닫힌 소리는 이 손이었다⁠. 나는 퇴역하던 날 조교의 손바닥만 맡느라 문고리를 맡지 않았다⁠.

미옥이 내려다보았다⁠. 내 코가 자기 손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미옥은 손을 빼지 않았다⁠.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예요⁠. 아빠가 저 개를 다시 보면⁠, 그다음엔 누가 또 문을 닫아야 해요⁠.⁠”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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