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80자)

카네이션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5월이 되자 논에 물이 찰랑찰랑 들어찼다⁠. 물 위로 바람이 지나가면 흙탕 냄새와 어린 모 냄새가 한데 섞여 창으로 들어왔다⁠. 모 냄새는 풀보다 비리고 쌀보다 풋내가 난다⁠. 아침마다 이앙기 소리가 논두렁을 따라 오갔다⁠. 노인들은 창가에 휠체어를 붙이고 모 심는 것을 구경했다⁠. 해병 할아버지가 저 집 모는 줄이 삐뚤다고 했고⁠, 화투 할머니가 니 인생보다는 곧다고 했다⁠.

화요일 오전 열 시⁠, 군청 차가 마당에 들어왔다⁠. 주무관 둘이 내렸다⁠. 하나는 서류철을 들었고 하나는 천 가방을 멨다⁠. 천 가방에서 참기름과 단무지와 달걀부침 냄새가 났다⁠. 점심 도시락이었다⁠.

원장이 현관에서 고개를 숙였다⁠. 담당자가 내 줄을 짧게 감아쥐었다⁠. 짧게 쥐었는데도 늦었다⁠. 주무관이 신발을 벗으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내 엉덩이가 현관 타일에 붙었다⁠. 가슴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은 천 가방 한가운데⁠.

주무관이 굳었다⁠. 서류철 든 주무관도 굳었다⁠. 휴게실에서 해병 할아버지가 목청껏 외쳤다⁠.

“⁠폭탄이다⁠! 전원 엎드려⁠!⁠”

휴게실 노인 몇이 진짜로 고개를 숙였다⁠. 화투 할머니는 보행기 뒤로 몸을 숨겼다⁠. 요양보호사가 박수를 치며 웃다가 재채기를 했다⁠. 원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사람 얼굴은 잘 못 읽어도 원장의 손에서 핸드크림 냄새가 땀에 녹아내리는 것은 맡을 수 있었다⁠.

“⁠주무관님⁠, 죄송합니다⁠. 부대에서 화약 앞에 앉도록 배운 애라서요⁠. 김밥이요⁠. 김밥 앞에 앉은 거예요⁠.⁠”

천 가방 주무관이 가방을 열었다⁠. 은박지에 싼 김밥 두 줄이 나왔다⁠. 주무관이 김밥을 들고 나를 내려다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엄마가 싸 준 건데⁠. 폭탄 맞네요⁠, 이거⁠. 맛이 폭탄이에요⁠.⁠”

*

점검은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주무관들은 식당과 주방과 마당과 2층 복도를 차례로 보았다⁠. 마당 견사는 비어 있었다⁠. 원장이 비상구에 새로 단 경보기를 보여 주었다⁠. 담당자가 내 예방접종 서류와 검진표와 치료견 평가서를 차례로 내밀었다⁠. 서류철 주무관은 서류를 넘기면서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았다⁠. 사람은 서류를 볼 때 숨이 얕아진다⁠.

식당 앞에서 교장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셔츠 단추는 목 끝까지 잠겨 있었고 지팡이 끝 고무는 왁스로 반들거렸다⁠.

“⁠민원 넣은 사람입니다⁠. 사십 년 교직에 있었어요⁠. 급식실 위생 점검은 제가 제일 잘 압니다⁠.⁠”

“⁠네⁠, 어르신⁠. 말씀 들으러 왔습니다⁠.⁠”

“⁠개털은 국에 들어갑니다⁠. 개 침은 노인 손에 묻습니다⁠. 여기 당뇨 있는 사람이 절반이에요⁠. 상처 하나 덧나면 다리를 자릅니다⁠. 저 개가 하는 일이 사람 손 핥는 겁니다⁠.⁠”

“⁠교장 선생님⁠, 군번은 식당 안에는⁠…⁠.⁠”

담당자가 끼어들었다⁠. 교장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바닥을 한 번 쳤다⁠. 탁⁠. 담당자의 말이 거기서 끊겼다⁠.

“⁠선생님은 개 편이니까 개 얘기를 하죠⁠. 나는 사람 얘기를 합니다⁠.⁠”

서류철 주무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적었다⁠. 점검이 끝나고 현관에서 주무관이 원장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원장이 받아 읽었다⁠. 위반 사항 없음⁠. 권고⁠, 식당과 조리실 출입 제한⁠, 털 관리 철저⁠. 원장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내쉰 숨에서 커피 냄새가 다 빠져 있었다⁠.

“⁠아⁠, 그리고 원장님⁠. 군에서 군청으로 공문이 하나 왔더라고요⁠. 퇴역견 입양 홍보에 협조해 달라고요⁠. 여기 군견 있다니까 저희 과장님이 관심 있어 하세요⁠.⁠”

“⁠관심은 고맙습니다⁠. 관심으로 사료는 안 사지더라고요⁠.⁠”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주무관도 웃었다⁠. 둘의 웃음은 냄새가 달랐다⁠. 주무관의 웃음에서는 김밥 냄새가 났고 원장의 웃음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

휴게실 구석 창가에 이발사 할아버지가 있었다⁠. 요양보호사는 이발사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읍내에서 쉰 해 동안 이발소를 했고⁠, 재작년 겨울 쓰러진 뒤로 말을 하지 않았다⁠. 오른손은 움직였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혀만 있었다⁠. 할아버지의 오른손 손가락 끝에서 아직 포마드 냄새가 났다⁠. 쉰 해 동안 배어서 몇 해 씻어도 안 빠지는 냄새였다⁠.

담당자가 털 관리하라는 권고를 받아 들고 빗을 꺼내 왔다⁠. 할아버지가 빗을 보았다⁠. 오른손이 들렸다⁠. 담당자가 빗을 할아버지 손에 쥐여 주고 나를 휠체어 옆에 앉혔다⁠.

할아버지는 빗을 내 정수리에 댔다⁠. 처음에는 머뭇거렸고⁠, 두 번째부터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빗이 정수리에서 목덜미로⁠, 목덜미에서 등으로 곧게 내려갔다⁠. 한 번 내리고⁠, 털을 손바닥으로 쓸어 정리하고⁠, 다시 내렸다⁠. 빗질에 박자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귀 뒤에 이르자 빗을 세워 짧게 끊어 빗었다⁠. 가위질하던 손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빗살이 살갗을 지나갈 때마다 등줄기가 저릿했다⁠.

털이 빠졌다⁠. 할아버지의 무릎에⁠, 휠체어 바퀴에⁠, 바닥에⁠. 셰퍼드는 봄에 털을 갈고⁠, 나는 열 살이고⁠, 열 살 셰퍼드의 봄 털은 끝이 없다⁠. 휴게실 바닥에 털 뭉치가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아이고⁠, 강아지 한 마리 더 나오겄네⁠.⁠”

화투 할머니가 문지방 밖에서 말했다⁠. 이번에는 문지방 안으로 보행기 바퀴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이거 모아서 방석 만들어도 되겄어⁠. 교장 영감 방석⁠.⁠”

해병 할아버지가 말했다⁠. 노인들이 웃었다⁠. 이발사 할아버지는 웃지 않고 빗질만 했다⁠. 등을 다 빗고 꼬리까지 빗고 나서⁠, 할아버지는 빗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으로 내 등을 한 번 길게 쓸었다⁠. 손님 머리를 다 깎고 어깨의 머리카락을 털어 주던 손이었다⁠. 할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다음⁠.⁠”

휴게실이 조용해졌다⁠. 요양보호사가 행주를 떨어뜨렸다⁠. 담당자가 숨을 멈췄다⁠. 할아버지는 다시 빗을 들고 휴게실을 둘러보았다⁠. 다음 손님을 찾는 눈이었다⁠. 해병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갔다⁠.

“⁠나여⁠, 나⁠. 나 해병 머리로 깎아 줘⁠.⁠”

“⁠영감은 머리카락이 없잖여⁠.⁠”

화투 할머니가 말했다⁠. 휴게실이 다시 터졌다⁠. 이발사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해병 할아버지는 웃다가 창밖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월남에서 미군 개 한 마리가 소대 앞에서 앉는 걸 봤다고⁠. 다들 엎드렸고 아무도 안 죽었다고⁠. 개 이름은 몰랐다고⁠. 해병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서 은단 냄새와 오래된 화약 냄새가 같이 났다⁠. 쉰 해가 지나도 사람 손에서 화약은 다 안 빠진다⁠.

*

화요일 저녁⁠, 담당자가 퇴근하고 나서 나는 야간 요양보호사를 따라 쓰레기를 내놓으러 뒷마당에 나갔다⁠. 원장이 비상구 계단에 앉아 있었다⁠. 겉옷 주머니에서 비닐 소리가 났다⁠. 원장은 육포 한 봉지를 꺼내 무릎에 올려놓고 들여다보았다⁠. 봉지를 뜯지는 않았다⁠. 봉지 귀퉁이가 닳아서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여러 번 꺼냈다가 넣은 봉지였다⁠.

원장이 나를 보았다⁠. 나는 앉지 않았다⁠. 내가 앉으면 사람은 들킨 것을 숨긴다⁠. 컵라면도 약과도 그랬다⁠.

“⁠너 주려고 산 거 아니야⁠.⁠”

원장은 봉지를 주머니에 도로 넣고 일어났다⁠. 비상구 경보기의 작은 불빛이 원장의 안경에 비쳤다⁠. 원장은 경보기를 손가락으로 한 번 눌러 보고 들어갔다⁠. 나는 원장이 앉았던 계단에 코를 댔다⁠. 늙은 리트리버의 털이 한 올⁠, 계단 틈에 끼어 있었다⁠.

*

토요일은 어버이날이었다⁠. 아침부터 현관이 붐볐다⁠. 가족들이 꽃을 들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카네이션이 빨갛다고 했다⁠. 내 눈에는 누런 회색이었다⁠. 냄새는 정확했다⁠. 카네이션은 정향 냄새가 난다⁠. 맵고 달다⁠. 요양원 전체가 정향 냄새로 가득 찼다⁠. 해병 할아버지의 아들은 오지 않았다⁠. 해병 할아버지는 아침 내내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 놓았다⁠.

미옥은 오후에 왔다⁠. 국밥집 점심 장사를 끝내고 온 냄새였다⁠. 손에 카네이션 한 송이와 깍두기 통이 들려 있었다⁠. 미옥은 207호 문 앞에 엎드린 나를 넘어 들어갔다⁠. 넘어가면서 내 꼬리를 밟지 않으려고 발을 높이 들었다⁠.

문은 한 뼘 열려 있었다⁠.

“⁠아빠⁠. 나 왔어⁠.⁠”

“⁠누구요⁠.⁠”

“⁠미옥이⁠. 아빠 딸⁠.⁠”

“⁠면회 신청했소⁠? 여기는 외부인 출입 금지요⁠.⁠”

침대 시트가 바스락거렸다⁠. 미옥이 카네이션을 아버지의 가슴에 달아 주는 소리⁠, 핀이 환자복 천을 뚫는 작은 소리⁠. 이어 조교의 손이 카네이션을 잡아 뜯는 소리⁠. 꽃이 바닥에 떨어졌다⁠. 정향 냄새가 문틈으로 쏟아졌다⁠.

“⁠미옥이는 학교 갔어⁠. 저녁에 와⁠.⁠”

“⁠아빠⁠. 나 마흔셋이야⁠.⁠”

“⁠군번이는⁠.⁠”

조교의 목소리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군번이 밥은 먹었냐⁠. 아침에 내가 못 줬다⁠.⁠”

미옥이 대답하지 않았다⁠. 조교가 다시 물었다⁠.

“⁠군번이 밥 먹었냐고⁠.⁠”

“⁠군번이 문 앞에 있어⁠.⁠”

미옥의 목소리가 낮고 빨랐다⁠.

“⁠아빠가 두고 온 개⁠, 지금 문 앞에 있다고⁠. 밥 먹었어⁠. 잘 먹었어⁠. 됐어⁠?⁠”

침대가 삐걱거렸다⁠. 조교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였다⁠. 이불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맨발이 바닥을 더듬었다⁠. 미옥이 아버지의 어깨를 붙잡았다⁠. 두 사람의 숨이 엉겼다⁠. 조교의 숨은 문으로 가려 했고 미옥의 숨은 침대로 돌려보내려 했다⁠.

“⁠아빠⁠, 넘어져⁠. 누워⁠. 제발 누워⁠.⁠”

“⁠문 열어⁠. 군번이 왔다며⁠.⁠”

나는 문틈에 코를 박았다⁠. 문을 밀면 열렸다⁠. 한 뼘이 두 뼘이 되면 나는 들어갈 수 있었다⁠. 담당자가 내 줄을 쥐고 있었다⁠. 담당자의 손이 떨렸다⁠. 담당자는 줄을 당기지도 놓지도 않았다⁠.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미옥이 아버지를 침대에 도로 눕히는 소리를 들었다⁠. 이불을 덮는 소리⁠. 미옥이 바닥의 카네이션을 줍지 않고 나오는 소리⁠.

*

주차장에서 담당자가 미옥을 불러 세웠다⁠.

“⁠보호자님⁠. 아버님이 군번을 찾으세요⁠. 오늘 두 번이나요⁠. 출입 금지 풀어 주시면 안 돼요⁠?⁠”

“⁠두 번이요⁠.⁠”

미옥은 차 문을 연 채로 말했다⁠.

“⁠오늘 저는 한 번도 안 찾았어요⁠. 제 이름은요⁠.⁠”

담당자가 말을 잃었다⁠. 미옥은 차 문을 닫지 않고 서 있었다⁠. 차 안에서 국밥집 앞치마의 소뼈 냄새가 흘러나왔다⁠. 미옥은 담당자를 지나 현관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나는 담당자를 끌고 미옥의 냄새를 따라갔다⁠.

“⁠원장님⁠, 운영위원회 앞당기죠⁠. 사고 났고 민원 들어왔고 권고까지 받았잖아요⁠. 7월까지 끌 이유가 없어요⁠.⁠”

“⁠날짜는 그대로예요⁠, 대표님⁠.⁠”

원장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석 달이라고 제가 정했어요⁠. 제가 정한 약속을 제가 깨면⁠, 다음에 제가 정하는 건 아무도 안 믿어요⁠. 대표님이 정한 것도요⁠.⁠”

“⁠그럼 7월에 끝내요⁠.⁠”

“⁠위원회 때 식재료비 안건도 같이 올라가요⁠. 프로그램이 남으면 가족분들한테 한 달에 얼마씩 더 받아야 해요⁠. 대표님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미옥의 목덜미에서 찬 땀이 솟았다⁠. 겁날 때의 땀이었다⁠. 지난가을 철창 앞에서⁠, 그리고 처음 내 이름을 듣던 날 복도에서 맡은 땀이었다⁠. 미옥은 원장실을 나와 207호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207호 문 앞으로 돌아갔다⁠. 문틈 아래로 카네이션 한 송이가 굴러 나와 있었다⁠. 꽃잎 한쪽이 짓눌려 있었다⁠. 나는 코를 대 보았다⁠. 정향 냄새 밑에 소뼈 국물 냄새가 있었고⁠, 국물 냄새 밑에 조교의 손 냄새가 있었다⁠. 꽃을 뜯어낸 손이었다⁠. 두 사람의 냄새가 한 송이에 묻어 있었다⁠. 나는 꽃 옆에 턱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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