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43자)

화분 속 반지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월요일 아침 일곱 시⁠, 원장은 207호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오 분 만에 나왔다⁠. 나는 문 위에 붙은 종이 아래 엎드려 있었다⁠. 원장이 문을 닫으며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네⁠, 오늘 아홉 시 예약 취소할게요⁠. 표성만 어르신이요⁠. 네⁠, 손이 펴져서요⁠. 다 펴진 건 아니고 반쯤이요⁠. 반쯤이면 주사 안 맞으셔도 된대요⁠, 요양원에 다니러 오시는 의사 선생님이⁠.⁠”

원장은 전화를 끊고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이번에는 무언가를 세고 있었다⁠.

“⁠이송비⁠, 주사비⁠, 동행 인력 반나절⁠.⁠”

손가락이 세 개 접혔다⁠. 원장은 접힌 손가락을 내려다보다 담당자를 보았다⁠.

“⁠이건 숫자네요⁠.⁠”

“⁠그죠⁠? 그죠⁠, 원장님⁠?⁠”

“⁠목요일 밤에 맨발로 나가신 것도 숫자예요⁠. 사고 보고 한 건⁠.⁠”

원장은 접은 손가락 가운데 하나를 도로 폈다⁠. 담당자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원장은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참에서 원장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원장이 받았다⁠. 보호자 대표님⁠, 네⁠, 취소했어요⁠, 네⁠, 반쯤 펴지셨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미옥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새어 나왔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숨이 길었다⁠. 미옥은 오지 않았다⁠. 점심 무렵 현관 신발장 위에 깍두기 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통에 붙은 쪽지를 요양보호사가 읽었다⁠. 「⁠207호⁠. 아버지 드시게⁠.⁠」

*

나는 이제 2층 복도에서 잔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앉는 간호 카트 옆에 담요 한 장을 깔고⁠. 야간 요양보호사는 예순이 넘은 여자였고⁠, 큰 개를 무서워했다⁠. 첫날 밤 내가 담요에 엎드리자 의자를 카트 반대편 끝까지 끌고 가서 앉았다⁠.

새벽 세 시⁠, 카트 아래 서랍에서 냄새가 났다⁠. 마른 면과 분말 수프⁠. 나는 일어나 서랍 앞에 앉았다⁠. 가슴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서랍 손잡이에 겨누고⁠.

야간 요양보호사가 의자에서 굳었다⁠. 손에 든 볼펜이 떨어졌다⁠.

“⁠뭐여⁠. 뭐여⁠, 거기 뭐 있어⁠? 폭탄이여⁠?⁠”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덜덜 떨며 서랍을 열었다⁠. 컵라면 두 개가 나왔다⁠. 야간 요양보호사는 컵라면을 내려다보고⁠, 나를 내려다보고⁠, 다시 컵라면을 내려다보았다⁠.

“⁠너 이거 원장님한티 말허믄 죽어⁠. 근무 중에 먹는 거 걸리믄 나 시말서여⁠.⁠”

나는 말을 하지 못한다⁠. 야간 요양보호사는 개가 고자질을 못 한다는 것을 몰랐다⁠. 컵라면 하나를 서랍에 도로 넣고⁠, 하나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뚜껑을 덮고 삼 분을 기다리는 동안 나를 보았다⁠. 의자가 조금씩 내 쪽으로 끌려왔다⁠. 라면이 다 익었을 때 의자는 내 담요 옆에 와 있었다⁠.

“⁠너 국물 먹으믄 안 되지⁠?⁠”

나는 꼬리를 쳤다⁠.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꼬리는 먹고 싶다는 뜻이었다⁠. 야간 요양보호사는 면 한 가닥을 물에 헹궈 내 앞에 놓았다⁠.

야간 요양보호사는 라면을 먹으며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았다⁠. 작은 화면에서 먼 나라 말이 흘러나왔다⁠. 무너진 담장 아래 들판을 개 한 마리가 코를 땅에 대고 천천히 걸었고⁠, 뒤에서 군인 하나가 긴 줄을 쥐고 따라갔다⁠. 개가 멈춰 앉자 군인이 손을 들었다⁠. 화면 속 사람들이 모두 뒤로 물러났다⁠.

“⁠너도 저런 거 혔냐⁠?⁠”

나는 화면 속 개의 앉은 엉덩이를 보았다⁠. 내 엉덩이도 저렇게 앉았다⁠. 아홉 해 동안 내가 앉은 자리마다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고⁠, 물러난 사람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화면을 끄고 국물을 마셨다⁠. 국물을 마시는 소리가 복도 끝까지 갔다⁠.

*

라면을 다 먹고 나서 야간 요양보호사가 순찰을 돌았다⁠. 나는 줄 없이 따라갔다⁠. 복도는 길고⁠, 문은 스무 개였다⁠. 문마다 다른 숨이 새어 나왔다⁠. 코를 고는 숨⁠, 얕은 숨⁠, 자다가 이를 가는 숨⁠. 201호 앞에서 나는 멈춰 앉았다⁠. 문틈에서 오줌 냄새가 났다⁠. 막 젖은 냄새였다⁠.

“⁠여기는 왜⁠? 여기는 컵라면 없는디⁠.⁠”

야간 요양보호사가 문을 열었다⁠. 201호 할머니의 기저귀가 넘쳐 시트까지 젖어 있었다⁠. 기저귀를 갈고 시트를 바꾸는 동안 나는 복도에 앉아 있었다⁠. 다시 걸었다⁠. 209호 앞에서 또 앉았다⁠. 문틈에서 새는 숨이 너무 조용했다⁠. 침대 위에서 나야 할 숨이 바닥에서 나고 있었다⁠.

209호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미끄러져 바닥과 침대 사이에 끼어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끼어 있었다⁠. 야간 요양보호사가 할아버지를 일으켜 침대에 눕히고 나서 복도로 나와 나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너⁠, 앉는 데마다 뭐가 있구먼⁠.⁠”

이튿날 밤부터 야간 요양보호사는 내가 앉으면 문을 열었다⁠. 나는 복도 끝까지 걸었다가 207호 앞에서 엎드렸다⁠. 문 위에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문 안에서 조교가 숨을 쉬었다⁠. 길게⁠, 고르게⁠. 반쯤 펴진 손이 이불 위에서 가끔 바스락거렸다⁠.

고백하자면 나는 밤마다 207호 숨을 세다가 잠들었다⁠. 스무 개 문 가운데 하나만 세는 것은 일이 아니다⁠. 나는 알면서 그렇게 했다⁠.

*

“⁠내 반지⁠! 누가 내 반지 훔쳐 갔어⁠!⁠”

목요일 오전⁠, 205호에서 비명이 났다⁠. 화투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보행기를 밀고 복도로 나와 요양보호사의 앞치마를 붙잡았다⁠.

“⁠너지⁠? 어제 니가 내 방 청소혔지⁠? 우리 영감이 준 금반지여⁠! 결혼할 때 소 한 마리 팔아서 해 준 거여⁠!⁠”

“⁠어머니⁠, 나 반지 구경도 못 혔어유⁠.⁠”

“⁠경찰 불러⁠! 우리 아들 불러⁠!⁠”

요양보호사의 얼굴이 하얘졌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소시지 냄새보다 땀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억울한 땀은 냄새가 시다⁠. 원장이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할머니는 원장에게도 소리를 질렀고⁠, 원장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요양보호사를 감싸지도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보호자가 경찰을 부르면 원장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원장의 손가락이 접히지도 펴지지도 않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원장님⁠, 군번한테 찾게 해 보면 어때요⁠?⁠”

담당자가 말했다⁠.

“⁠개 들어오믄 나 죽어⁠!⁠”

해병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와서 205호 문 앞을 가로막았다⁠.

“⁠할매⁠. 반지 찾을라믄 개 들이고⁠, 개 싫으믄 반지 포기혀⁠. 둘 중 하나여⁠.⁠”

“⁠저 늙은이가 해병 나왔다고 맨날 명령이여⁠.⁠”

할머니는 한참 씩씩거리다 보행기를 붙잡고 복도 벽에 몸을 붙였다⁠.

“⁠문간에서만 혀⁠. 침대 근처에 오믄 나 소리 지른다⁠.⁠”

*

“⁠군번⁠, 찾아⁠.⁠”

찾아는 아는 소리다⁠. 담당자가 할머니의 손수건을 내 코앞에 대 주었다⁠. 동백기름과 박하사탕과 화투패의 종이 냄새⁠. 금은 냄새가 거의 없다⁠. 그래서 금을 찾을 때는 금을 끼던 손을 찾는다⁠. 반지 안쪽에 손가락의 기름이 수십 년 동안 배어 있다⁠.

나는 205호 문지방을 넘었다⁠. 할머니가 숨을 들이켰다⁠. 나는 침대로 가지 않았다⁠. 침대는 할머니의 냄새로 가득해서 오히려 찾을 수가 없다⁠. 옷장⁠, 아니다⁠. 서랍⁠, 약과뿐이다⁠. 창가로 갔다⁠. 창틀에 화분이 둘 놓여 있었다⁠. 군자란과 제라늄⁠. 제라늄 흙에서 동백기름 냄새가 아주 가늘게 올라왔다⁠.

나는 제라늄 앞에 앉았다⁠.

요양보호사가 숟가락으로 흙을 팠다⁠. 한 숟갈⁠, 두 숟갈⁠. 세 숟갈째에 숟가락 끝이 딱 소리를 냈다⁠. 흙 묻은 금반지가 나왔다⁠. 반지와 함께 화투패 한 장⁠, 틀니 통 뚜껑⁠, 그리고 백 원짜리 동전 네 개가 나왔다⁠.

“⁠비광이 왜 거기서 나와⁠!⁠”

해병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복도에 모인 노인들이 한꺼번에 웃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빨개졌다가 노래졌다⁠. 나는 사람 얼굴빛을 잘 못 읽는다⁠. 대신 할머니의 목덜미에서 시큼한 냄새가 사라지고 뜨거운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맡았다⁠. 창피할 때의 냄새였다⁠.

할머니는 반지를 받아 손가락에 끼우고 서랍을 열어 약과 하나를 꺼냈다⁠. 요양보호사의 손에 쥐여 주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약과를 하나 더 꺼냈다⁠. 이번에는 나를 노려보며 문지방 쪽으로 던졌다⁠. 약과가 바닥을 굴러 내 앞발에 닿았다⁠.

“⁠옜다⁠, 이 도둑개야⁠.⁠”

나는 약과를 먹지 않았다⁠. 담당자의 허락이 없었다⁠. 약과 앞에 앉아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혀를 찼다⁠.

“⁠먹으라고 준 거여⁠. 안 먹으믄 서운허지⁠.⁠”

“⁠군번⁠, 좋아⁠.⁠”

나는 약과를 먹었다⁠. 할머니가 종아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일곱 살 때 동네 누렁이가 물었다고⁠. 이후로 칠십 년을 개 근처에 안 갔다고⁠.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보행기를 밀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지 않았다⁠.

*

오후에 원장실로 불려 갔다⁠. 원장의 책상 위에 식단표와 종이 한 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원장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었다⁠.

“⁠사료 한 달⁠, 진료비 한 달 평균⁠, 배상 보험⁠, 담요 세탁⁠, 선생님 업무 시간 가운데 절반⁠. 다 합치면 이거예요⁠. 이걸 식재료비에 넣으면 반찬 한 가지⁠, 아니면 가족분들한테 한 달에 몇 만 원씩 더 받아야 해요⁠.⁠”

“⁠오늘 반지 찾았잖아요⁠. 도난 신고 들어갔으면 선생님 한 분이 경찰 조사받으셨어요⁠. 월요일엔 병원 안 갔고요⁠. 밤에 기저귀 넘친 거⁠, 침대에서 떨어지신 거 군번이 찾았어요⁠.⁠”

“⁠알아요⁠. 다 알아요⁠.⁠”

원장이 손가락을 접지 않았다⁠.

“⁠작년에 이웃 면 요양원 하나 문 닫은 거 아시죠⁠. 서른 분이 한 주 만에 흩어지셨어요⁠. 거기 원장님도 좋은 거 많이 하셨어요⁠. 노래 교실⁠, 원예 치료⁠, 나들이⁠. 좋은 거 하다가 문 닫았어요⁠. 저는 좋은 걸 하나씩 빼서 문을 안 닫으려는 거예요⁠.⁠”

“⁠몇 만 원 못 내는 집이 많아요⁠?⁠”

“⁠대표님 댁도 그래요⁠.⁠”

원장이 말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말이 먼저 나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담당자도 입을 다물었다⁠. 원장은 식단표를 뒤집어 놓았다⁠. 뒤집힌 식단표 뒷면에서 볼펜 자국이 비쳤다⁠. 숫자들이 몇 번이나 고쳐 쓰여 있었다⁠. 담당자는 원장실을 나와 계단에 앉아 볼펜 뚜껑을 씹었다⁠. 뚜껑 끝이 하나 더 갈라졌다⁠.

*

저녁 식사 시간⁠, 식당 입구에서 지팡이 하나가 내 앞을 막았다⁠. 반들반들한 나무 지팡이였다⁠. 지팡이 끝 고무에서 왁스 냄새가 났다⁠. 지팡이를 쥔 사람은 다리미질한 셔츠를 목 끝까지 잠근 할아버지였다⁠. 요양보호사가 교장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개는 밥 먹는 데 못 들어온다⁠. 위생은 기본이야⁠. 기본이 무너지면 다 무너져⁠.⁠”

“⁠교장 선생님⁠, 군번은 식당 안까지는 안 들어가요⁠. 문 앞에서 어르신들 인사만⁠…⁠.⁠”

“⁠개털은 문 앞에서 안 멈춰⁠. 국에 들어가⁠. 나는 사십 년 동안 급식실 위생 검사를 받은 사람이야⁠.⁠”

나는 지팡이 끝에서 멈췄다⁠. 안 된다는 소리는 몰라도 안 된다는 목소리는 안다⁠. 교장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반듯했고⁠, 반듯한 목소리 밑에 겁이 깔려 있었다⁠. 할아버지의 오른쪽 귀에서는 귀지 냄새가 짙었고⁠, 왼쪽 귀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귀에 끼우던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군청에 민원 넣을 거다⁠. 요양원이 개를 기르는 데냐고⁠.⁠”

이튿날 아침 원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원장은 복도 끝에서 전화를 받았고⁠, 나는 207호 앞에서 들었다⁠. 군청⁠, 위생 점검⁠, 다음 주 화요일⁠. 원장은 전화를 끊고 내 앞에 와서 담당자를 보았다⁠.

“⁠점검에 걸리면요⁠, 선생님⁠. 석 달 기다릴 것 없어요⁠. 그날로 끝이에요⁠.⁠”

원장의 겉옷 주머니에서 말린 소고기 냄새가 났다⁠. 오늘도 원장은 육포를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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