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36자)

철창

요양원 치료견이 된 퇴역 군견 · 길담이

비가 그친 아침⁠, 요양원 둘레의 논에서 거름 냄새가 올라왔다⁠. 누가 밤사이 논을 갈아엎었다⁠. 젖은 흙이 뒤집히면 땅속 냄새가 한꺼번에 위로 올라온다⁠. 지렁이와 썩은 볏짚과 작년 가을의 낱알⁠. 담당자는 차에서 내리며 코를 막았고⁠, 나는 코를 열었다⁠.

207호를 맡은 지 열흘 만에 나는 다른 노인들에게 배정되었다⁠. 원장이 정한 일이었다⁠. 아침에는 휴게실⁠, 점심 뒤에는 2층 방을 하나씩 돌고⁠, 207호 문 앞은 지나가기만 한다⁠. 지나갈 때마다 방 안에서 탁⁠, 탁⁠, 침대 난간 치는 소리가 났다⁠. 요양보호사가 말하기로는⁠, 주먹은 다시 닫혔다⁠. 원장은 다음 주 월요일로 병원을 잡았다⁠.

휴게실 텔레비전에서는 군대 예능이 나오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민 젊은 연예인들이 연병장에서 뛰었고⁠, 화면 아래로 군가가 깔렸다⁠. 부대 확성기에서 아침마다 나오던 노래였다⁠. 내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엉덩이가 바닥에 붙고⁠, 앞다리가 곧게 펴지고⁠, 가슴이 앞으로 나가고⁠, 귀가 하늘로 솟았다⁠. 눈은 정면에 붙박였다⁠. 아침 점호 때 조교 앞에서 앉던 자세였다⁠.

해병 할아버지가 휠체어 팔걸이를 붙잡고 몸을 앞으로 뺐다⁠.

“⁠어라⁠. 어라라⁠. 이놈 봐라⁠.⁠”

할아버지가 리모컨을 들어 소리를 줄였다⁠. 노래가 작아지자 내 귀가 조금 내려갔다⁠. 할아버지가 다시 소리를 키웠다⁠. 내 귀가 다시 올라갔다⁠.

“⁠차렷이여⁠, 이게⁠! 군가 나오니께 차렷을 혀⁠!⁠”

“⁠아이고⁠, 진짜네유⁠!⁠”

요양보호사가 밀대를 세워 둔 채 뛰어왔다⁠. 노인들이 휠체어를 밀고 지팡이를 짚고 텔레비전 앞으로 모였다⁠. 해병 할아버지가 소리를 껐다가 켰다⁠. 껐다가 켰다⁠. 내 귀는 장단에 맞춰 내려갔다 올라갔다⁠. 노인 하나가 손뼉을 치며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소리 줘 봐⁠, 소리⁠. 차렷⁠!⁠”

할아버지가 목청껏 외쳤다⁠. 차렷은 아는 소리였다⁠. 나는 아까보다 더 곧게 앉았다⁠. 할아버지가 휠체어에서 허리를 펴고 오른손을 이마에 붙였다⁠. 지난주에 못 하던 경례였다⁠. 이번에는 내가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바로⁠!⁠”

나는 바로가 무엇인지 몰라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침이 섞인 웃음이었다⁠. 웃음 끝에 눈가가 젖었다⁠. 은단 냄새 위로 짠 냄새가 올라왔다⁠.

“⁠이놈이 나보다 낫다⁠. 나는 바로 소리 듣고도 손을 못 내리겄네⁠.⁠”

요양보호사가 앞치마 끝으로 할아버지의 눈가를 찍어 주며 담당자에게 속삭였다⁠. 들어와서 처음 웃으신다고⁠. 아들이 안 온 지 한 해가 넘었다고⁠. 속삭임은 큰 목소리보다 냄새가 짙다⁠. 입을 가까이 대고 말하니까⁠.

205호 할머니는 휴게실 문지방 밖에서 보행기를 붙잡고 구경했다⁠. 안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오지 않았다⁠.

“⁠개가 차렷 허믄 나는 열중쉬어 헐란다⁠. 가까이 오지만 말어⁠.⁠”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도 보행기를 돌려 가지 않았다⁠. 군가가 끝날 때까지 문지방 밖에 서 있었다⁠.

*

원장이 휴게실 문 앞을 지나다 멈췄다⁠. 웃음소리를 들은 것이다⁠. 원장의 입꼬리가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나는 보았다⁠. 사람은 웃음을 참을 때 콧구멍이 먼저 벌어진다⁠.

“⁠선생님⁠, 잠깐만요⁠.⁠”

담당자가 복도로 나갔다⁠. 나는 줄에 묶인 채 문틀에 몸을 붙였다⁠.

“⁠웃으시는 거 좋죠⁠. 근데 웃음은 위원회에 못 내요⁠.⁠”

“⁠웃음도 결과예요⁠, 원장님⁠. 해병 어르신 들어오시고 처음이래요⁠.⁠”

“⁠해병 어르신 혈압약은 숫자가 돼요⁠. 식사량도⁠, 낙상도⁠, 진정제도 숫자가 돼요⁠. 웃음은 숫자가 안 돼요⁠. 위원 다섯 명 앞에서 제가 웃음을 몇 개라고 말해요⁠?⁠”

“⁠그럼 웃은 날을 세면 되잖아요⁠.⁠”

원장이 손가락을 접으려다 멈췄다⁠. 접을 것이 없었다⁠.

“⁠207호 월요일 병원 예약했어요⁠. 보호자님 동의도 받았고요⁠. 손 펴는 주사⁠. 선생님⁠, 군번이 못 한 걸 주사가 하면⁠, 그게 위원회 자료예요⁠.⁠”

원장이 걸어갔다⁠. 담당자는 한참 동안 복도 벽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담당자에게서 볼펜 뚜껑을 씹은 플라스틱 냄새가 났다⁠. 담당자는 불안할 때 볼펜 뚜껑을 씹는다⁠.

*

밤이 되면 개구리가 운다⁠. 논에 물이 반쯤 들어온 뒤로 개구리 소리가 하루하루 커졌다⁠. 나는 마당 뒤편 견사에서 턱을 앞발에 얹고 개구리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개구리는 셀 수가 없다⁠.

견사 바닥에 엎드리면 보호소의 겨울이 올라온다⁠. 보호소에는 철창이 두 줄로 마주 보고 늘어서 있었다⁠. 내 맞은편에는 사냥개였다는 늙은 포인터가 있었고⁠, 왼쪽에는 이빨이 다 빠진 진돗개가 있었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와서 철창 앞을 천천히 걸었다⁠. 강아지 철창 앞에서는 오래 머물렀고⁠, 내 철창 앞에서는 걸음이 빨라졌다⁠. 관리인은 사람들에게 내 이력을 말해 주었다⁠. 폭발물 탐지견⁠, 아홉 해 복무⁠, 퇴역⁠. 이력이 끝나면 사람들은 대개 한 걸음 물러났다⁠. 관리인이 철창 문을 닦으며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군대 개는 다들 무서워혀⁠. 나라 일 한 개를 나라가 안 데려가니께 이 꼴이지⁠. 관리인의 손에서는 락스와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관리인이 싫지 않았다⁠.

자정을 넘긴 무렵⁠,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건물 뒤 비상구에서 사람 냄새가 흘러왔다⁠. 맨발이 젖은 흙을 밟는 냄새⁠. 환자복의 표백제⁠. 구두약⁠, 장갑⁠, 육포⁠.

조교였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비상구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문틈으로 복도 불빛이 마당에 길게 누워 있었다⁠. 조교가 불빛을 밟고 나왔다⁠. 한 걸음⁠, 쉬고⁠, 한 걸음⁠. 맨발이 진흙에 빠질 때마다 쩍 소리가 났다⁠. 조교는 마당을 똑바로 가로질렀다⁠.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내가 강아지이던 시절⁠, 조교는 새벽마다 같은 걸음으로 견사를 향해 걸어왔다⁠.

조교가 철창 앞에 멈췄다⁠. 숨이 차서 어깨가 들썩였다⁠. 조교의 손이 문고리를 찾았다⁠. 눈으로 찾지 않고 손으로 찾았다⁠. 문고리는 견사마다 자리가 같다⁠. 손이 기억하는 자리였다⁠. 고리가 젖혀졌다⁠. 철컥⁠. 문이 열렸다⁠.

나는 나가지 않았다⁠. 조교가 들어왔다⁠.

조교는 허리를 굽혀 견사 안으로 들어와⁠, 나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을 철창에 기대고 다리를 뻗었다⁠. 젖은 발바닥에서 흙과 풀 냄새가 났다⁠. 조교가 손을 뻗어 내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주먹 쥔 손이 아니었다⁠. 손바닥이었다⁠. 나는 조교의 무릎에 머리를 얹었다⁠.

“⁠밥 줬냐⁠.⁠”

조교가 물었다⁠. 나는 꼬리를 쳤다⁠.

“⁠춥다⁠. 문 닫아라⁠.⁠”

나는 문을 닫을 줄 모른다⁠. 조교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은 열린 채로 있었고⁠, 우리는 열린 철창 안에 앉아 있었다⁠.

고백한다⁠. 나는 한참 동안 짖지 않았다⁠. 짖으면 사람들이 와서 조교를 데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손전등을 든 사람들⁠, 소독약 냄새⁠, 휠체어 바퀴 소리⁠. 조교의 손바닥이 내 목덜미 위에서 천천히 오르내렸다⁠. 강아지 때 견사 바닥에서 잠들던 밤마다 이 손이 그렇게 움직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손바닥이 오르내리는 수를 셌다⁠. 셀 수 있는 것이었다⁠. 개구리와 달랐다⁠.

건물 안에서 문 여닫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손전등 불빛이 창마다 흔들렸다⁠. 야간 요양보호사의 목소리가 복도를 뛰어다녔다⁠. 어르신⁠, 어르신⁠, 표성만 어르신⁠. 나는 짖지 않았다⁠.

조교의 손이 멈췄다⁠. 손바닥이 차가워졌다⁠.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다⁠. 떨림이 내 턱으로 올라왔다⁠. 맨발의 발가락 끝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냄새가 났다⁠. 사람의 몸이 식을 때는 살갗 냄새가 엷어진다⁠. 조교의 냄새가 엷어지고 있었다⁠.

나는 짖었다⁠. 부대에서 한 번도 짖어 본 적 없는 크기로⁠. 개구리가 일제히 울음을 멈췄다⁠.

*

야간 요양보호사가 손전등을 들고 달려왔다⁠. 불빛이 철창 안을 비췄다⁠. 견사 바닥에 앉은 노인과⁠, 노인의 무릎을 베고 있는 개와⁠, 열린 문⁠.

“⁠어르신⁠! 아이고⁠, 하느님⁠!⁠”

야간 요양보호사는 견사 안으로 기어 들어와 자기 겉옷을 벗어 조교의 어깨에 덮었다⁠. 조교는 겉옷을 밀어내지 않았다⁠. 나는 조교의 맨발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내 배는 따뜻하다⁠. 셰퍼드의 배는 사람의 손보다 따뜻하다⁠. 조교의 발가락이 내 배 밑에서 꼼지락거렸다⁠.

*

새벽 다섯 시⁠, 마당에 미옥의 차가 들어왔다⁠. 미옥은 국밥집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원장은 미옥보다 먼저 와 있었다⁠. 원장의 머리카락에서 베개 냄새가 났다⁠. 조교는 방으로 옮겨져 담요를 두 장 덮고 있었다⁠.

미옥은 방에 먼저 올라갔다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견사 앞에서 원장과 마주 보았다⁠. 열린 철창 문이 둘 사이에서 바람에 삐걱거렸다⁠.

“⁠이게 결과예요⁠? 우리 아버지가 맨발로 비 맞고 개집에 들어가 있었어요⁠.⁠”

“⁠비상구 경보가 안 울린 건 저희 잘못이에요⁠. 야간에 한 분이 마흔 명을 보는데 순찰 도는 사이에 나가셨어요⁠. 공단에 사고 보고 올리겠습니다⁠. 숨기지 않아요⁠.⁠”

“⁠개가 없었으면 아버지가 여기 안 나왔어요⁠.⁠”

“⁠맞아요⁠. 개가 없었으면 어르신이 여기 안 나오셨겠죠⁠.⁠”

원장이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대신 개가 없었으면 어르신이 어디로 가셨을지 몰라요⁠. 비상구 앞은 논두렁이에요⁠. 야간 선생님 말로는 개가 짖어서 찾았대요⁠. 그리고 대표님⁠, 어르신 체온 정상이에요⁠. 개가 발을 덮고 있었대요⁠.⁠”

손가락이 하나 더 접혔다⁠.

“⁠오늘 아침 미음 한 그릇 다 드셨어요⁠. 들어오시고 처음이에요⁠.⁠”

미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앞치마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원장은 열린 견사 문을 손바닥으로 밀어 닫았다⁠.

“⁠견사가 어르신을 부른 거면 견사를 비워야죠⁠. 오늘부터 군번은 2층 복도에서 잡니다⁠. 야간 선생님 곁에서요⁠. 207호 문은 대표님 요청대로 그대로 닫아 둡니다⁠. 비상구에는 오늘 중으로 경보를 새로 달고요⁠.⁠”

“⁠월요일 병원은요⁠? 주사는요⁠?⁠”

“⁠예약은 그대로 둬요⁠. 오늘 손이 어떤지 보고 정해요⁠. 대표님 동의서는 받아 놨으니까요⁠.⁠”

“⁠아예 내보내면 되잖아요⁠. 개를⁠.⁠”

“⁠석 달은 갑니다⁠. 그건 제가 한 약속이에요⁠. 대표님한테도 위원회에서 손들 기회는 그대로 있어요⁠.⁠”

원장은 그렇게 말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원장이 지나간 자리에 말린 소고기 냄새가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

미옥은 가지 않았다⁠. 견사 앞에 쪼그려 앉아 철창을 보았다⁠. 담당자가 내 줄을 쥐고 미옥 곁으로 왔다⁠. 나는 둘 사이에 앉았다⁠. 미옥은 이번에는 나를 보았다⁠. 처음이었다⁠.

“⁠이름은 누가 지었어요⁠?⁠”

“⁠군번이요⁠? 부대에서부터 군번이었대요⁠. 처음 키운 조교님이 지었다고 들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에요⁠.⁠”

미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낮아지는 목소리에서는 목구멍 깊은 데 냄새가 난다⁠.

“⁠아빠가 젖 뗀 강아지 받아 오던 날 밥상에서 그랬어요⁠. 이놈은 이름보다 군번부터 받아야 된다고⁠. 엄마가 그게 무슨 이름이냐고 웃었고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 개 얘기만 했어요⁠. 우리 군번이⁠, 우리 군번이⁠.⁠”

담당자가 숨을 들이켰다⁠. 무언가 물으려다 삼켰다⁠. 미옥이 일어나 무릎의 흙을 털었다⁠. 내 머리 위로 미옥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림자에서도 소뼈 국물 냄새가 났다⁠. 지난가을 철창 앞에서 맡은 냄새와 같았다⁠.

“⁠이 개⁠, 우리 아버지가 버린 개예요⁠.⁠”

미옥은 철창 문고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더 안 돼요⁠.⁠”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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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린독자2026.10.31· 3화

    207호 앞을 지나가기만 하는 군번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니 속상해요.

    • 길담이작가2026.10.31

      군번은 지나가면서도 귀는 문에 두고 있어요. 다음 화에서 군번의 귀가 할 일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