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3자)

막차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4월 13일 목요일 새벽 한 시 십 분⁠, 최소영은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린 창 앞에 앉아 있었다⁠. 천장 등은 켜 두었다⁠. 닷새째 불 켠 창 앞에서 한 시 십일 분을 기다렸다⁠. 밝은마트 유리문 안 계산대에 조끼 입은 남자가 보였다⁠.

한 시 십일 분⁠, 유리문이 열리지 않았다⁠.

한 시 십이 분⁠. 한 시 십오 분⁠. 소영은 손목시계 초침을 보다가 휴대전화 앱을 열었다⁠. 「⁠가해자 위치 · 밝은마트 비산점 · 피해자와의 거리 약 101m⁠」⁠. 빨간 점은 계산대 자리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한 시 삼십 분이 지나도⁠, 두 시가 지나도 유리문은 열리지 않았다⁠. 계산대의 남자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소영은 새벽 세 시 오 분까지 앉아 있었다⁠. 빨간 점이 골목 반대편으로 멀어지고 나서야 무릎을 폈다⁠. 다리가 저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서른 밤 동안 소영은 한 시 십일 분이 무서웠다⁠. 한 시 십일 분이 오지 않는 밤은 더 무서웠다⁠. 나오지 않는 사람은 어디서 다른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 해 전 신고한 다음 날 아침의 약국 봉투가 몸에 먼저 떠올랐다⁠. 「⁠신고했네요⁠. 괜찮아요⁠.⁠」 조사를 받은 사람은 누가 고소했는지 알았다⁠.

이튿날 새벽에도 유리문은 열리지 않았다⁠. 소영은 한 시 십일 분부터 세 시까지 창 앞에 앉아 있다가⁠, 천장 등을 켠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웠다⁠. 잠은 짧게 몇 번 들었다 깼다⁠. 꿈속에서 현관 도어락이 혼자 삐삐 소리를 내며 번호를 눌렀다⁠. 여섯 자리 가운데 다섯 자리까지 맞았다⁠. 소영은 여섯째 자리가 눌리기 전에 깼고⁠, 깨자마자 현관으로 가서 도어락의 빨간 불을 확인했다⁠. 걸쇠도 제자리에 있었다⁠. 아침 일곱 시에 소영은 도어락 번호를 다섯 번째로 바꿨다⁠.

그날부터 소영은 신발장 위 검은 배낭을 메고 출근했다⁠. 여권과 통장과 속옷 세 벌이 등에서 덜컥거렸다⁠. 약국 조제실 의자 밑에 배낭을 밀어 넣고⁠, 퇴근할 때 다시 멨다⁠. 언제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

*

4월 13일 오전 열한 시⁠, 골목의 벚나무는 꽃이 거의 지고 가지마다 연두색 잎이 돋아 있었다⁠. 빌라 정문 옆 게시판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테이프 네 귀퉁이가 반듯했다⁠.

「⁠안내 · 밝은마트 비산점 앞 도로 무단 도색에 대하여 · 도색한 분은 4월 28일까지 원상복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기한 내 복구하지 않으면 구에서 제거하고 비용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동안구청 건설과⁠」

소영은 안내문 앞에서 열쇠 꾸러미를 쥔 손을 내렸다⁠.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적혀 있지 않아도 빌라 사람들은 알았다⁠. 점심때 휴대전화에 입주민 단톡방 알림이 몰려 들어왔다⁠.

「⁠301호 · 편의점 앞 노란 글씨 누가 쓴 거예요⁠? 정문에 구청 안내문 붙은 거 보셨어요⁠?⁠」

「⁠102호 · 201호 아가씨래요⁠. 편의점 사장님이 그러던데⁠」

「⁠301호 · 요즘 밤에 경찰차 자주 오던데 그것 때문이에요⁠?⁠」

「⁠202호 · 애들 학원 끝나고 저 길로 다니는데 좀 그렇네요⁠」

「⁠102호 · 동네 소문나겠어요⁠」

소영은 조제실 의자에 앉아 입력 칸에 글자를 쳤다⁠. 「⁠201호예요⁠. 죄송합니다⁠.⁠」 엄지가 전송 단추 위에서 멈췄다⁠. 죄송할 일을 한 사람은 소영이 아니었다⁠. 엄지는 그것을 알았는데도 단추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소영은 글자를 한 자씩 지웠다⁠. 「⁠죄송합니다⁠」가 「⁠죄송⁠」이 되고⁠, 「⁠죄⁠」가 되고⁠, 빈 입력 칸이 되었다⁠. 단톡방 숫자 옆에 읽음 표시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202호는 옆집이었다⁠. 이사 온 첫해 겨울에 귤 한 봉지를 문고리에 걸어 준 집이었다⁠.

선을 그은 것이 잘못이었을까⁠. 소영은 오후 내내 처방전 스무 장을 받는 동안 같은 물음을 스무 번 했다⁠. 스무 번 모두 대답이 오기 전에 다음 손님이 왔다⁠.

*

4월 14일 금요일 낮 열두 시 반⁠, 약국 뒤 비상계단에서 소영은 모르는 번호를 받았다⁠. 차분한 여자 목소리였다⁠.

“⁠최소영 씨죠⁠? 피해자 국선변호사 장서희입니다⁠. 사건 배정받아서 연락드렸어요⁠. 잠정조치 결정이 나왔는데요⁠, 기각이에요⁠.⁠”

소영은 계단 난간을 잡았다⁠. 쇠 난간이 차가웠다⁠.

“⁠이유가 뭐예요⁠?⁠”

“⁠이미 부착명령 준수사항으로 백 미터 접근금지가 있고요⁠, 근무지에서의 업무 중 행위와 구별할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어요⁠. 판사는 쓰레기 버리는 사람으로 본 거예요⁠. 다시 신청할 수 있어요⁠. 새 자료가 있으면요⁠. 관제센터 위치 기록 같은 거요⁠.⁠”

“⁠그 기록⁠, 제가 받을 수 있어요⁠?⁠”

“⁠피해자가 직접은 못 받아요⁠. 수사기관이 요청해야 해요⁠. 제가 경찰에 요청서 넣을게요⁠.⁠”

“⁠얼마나 걸려요⁠?⁠”

“⁠몇 주요⁠. 짧으면 두 주⁠.⁠”

몇 주⁠. 소영은 손가락으로 날을 세어 보았다⁠. 두 주면 열네 번의 한 시 십일 분이었다⁠. 서희는 조사에 같이 들어갈 수 있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밤이라도 전화하라고 했다⁠. 재판이 다시 열리면 법정에서 가림막 뒤에 앉을 수도 있고⁠, 원하면 가림막 없이 말할 수도 있다고 했다⁠. 소영은 두 해 전 가림막 뒤에서 판사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퇴근길 열네 번⁠, 도어락 일곱 번⁠, 차⁠. 가림막 너머의 사람은 세 가지를 다 듣고도 한 시 십일 분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소영의 얼굴을 보여 줘도 달라질 것이 없을지⁠, 소영은 알 수 없었다⁠. 소영은 고맙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메시지 창을 열었다⁠. 「⁠과천 관제실 하동욱⁠」⁠. 4월 9일 새벽에 영상을 보낸 뒤로 받은 답은 한 줄뿐이었다⁠. 「⁠받았습니다⁠.⁠」 소영은 새로 쳤다⁠. 「⁠기록 있어요⁠? 그 사람 점 기록이요⁠.⁠」 전송 단추를 눌렀다⁠. 읽음 표시는 오후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오후 두 시에는 안양동안경찰서 오수경 경사가 전화했다⁠. 피의자 조사를 한 번 했고⁠, 본인은 업무 중에 쓰레기를 버렸을 뿐이라고 진술했다고 했다⁠. 수경은 맞춤형 순찰을 신청해 두었다고⁠, 밤 열한 시부터 새벽 세 시 사이에 순찰차가 골목을 두 번씩 돈다고 했다⁠. 소영은 순찰차가 골목을 도는 동안 성진이 계산대 안에서 순찰차를 보는 장면을 떠올렸다⁠. 수경은 계산대 안의 눈을 떠올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고⁠, 소영은 고맙다고 말했다⁠. 하루에 고맙다는 말을 세 번 했다⁠. 세 번 모두 무엇이 고마운지 몰랐다⁠.

*

오후 세 시⁠, 약국 유리문이 열렸다⁠. 털모자를 쓴 작은 여자가 처방전을 들고 들어왔다⁠. 왼쪽 소매 아래로 반창고 두 장이 보였다⁠. 금요일 오전 투석을 마친 평촌 병원은 약국에서 길 하나 건너였다⁠. 한경자는 대기 의자에 앉지 않고 곧장 계산대로 왔다⁠. 처방전과 함께 흰 봉투 하나를 계산대에 올렸다⁠.

“⁠약사님⁠, 약 지으러 왔어요⁠. 그리고 이거⁠.⁠”

소영은 봉투를 보았다⁠. 손이 먼저 계산대에서 떨어졌다⁠. 봉투 모서리가 계산대 유리에 닿아 있었다⁠. 두 해 전 현관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 봉투와 크기가 같았다⁠. 귀 뒤에서 맥이 뛰었다⁠. 경자가 봉투를 열어 보였다⁠. 반으로 접은 종이 한 장과 오만 원권 여섯 장⁠. 종이 맨 위에 「⁠처벌불원서⁠」라고 인쇄되어 있었고⁠, 서명란이 비어 있었다⁠.

“⁠우리 애가 집에서 약사님 얘기할 때는 얼굴이 펴져요⁠. 약사님 덕분에 사람 됐다고⁠. 그런 애가 또 들어가면 나 죽어요⁠. 나 투석 누가 데려가요⁠? 버스 두 번 갈아타는 거 나 혼자 못 해요⁠. 약사님⁠, 한 번만 봐주세요⁠.⁠”

“⁠어머니⁠, 저 이거 못 받아요⁠. 그리고 여기 오시면 안 돼요⁠.⁠”

“⁠나는 접근금지 아니잖아요⁠.⁠”

경자의 말이 맞았다⁠. 판결문의 백 미터는 성진의 발목에만 채워져 있었다⁠. 성진의 어머니와 성진의 사장과 성진의 거리뷰에는 아무것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소영은 반박할 법을 찾지 못했다⁠. 대기 의자의 학부모 둘이 휴대전화를 보는 척 고개를 들고 있었다⁠. 소영은 처방전을 집었다⁠. 인결합제⁠, 혈압약⁠, 비타민⁠. 투석 환자의 처방이었다⁠. 손이 떨려 약포지를 두 번 다시 셌다⁠. 약 봉투를 경자 앞에 내밀며 소영은 늘 하던 말을 했다⁠.

“⁠이 약은 식사 바로 전에 드세요⁠. 밥 먹기 직전에요⁠. 혈압약은 아침에 한 번이요⁠.⁠”

경자는 약 봉투를 받고 흰 봉투는 계산대에 둔 채 나갔다⁠. 소영은 흰 봉투를 맨손으로 만지지 않았다⁠. 지은이 조제실에서 위생 장갑과 지퍼 비닐을 가져왔다⁠. 소영은 장갑을 끼고 봉투를 비닐에 넣어 입구를 눌러 닫았다⁠. 날짜와 시각을 비닐 위에 유성펜으로 썼다⁠. 4월 14일 15시 08분⁠. 약국장 김혜숙은 계산대 끝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다⁠.

*

밤 아홉 시⁠, 셔터를 반쯤 내린 약국에서 혜숙이 소영을 조제실로 불렀다⁠.

“⁠소영 약사⁠, 한 달만 쉬어⁠. 이번 달은 유급으로 해 줄게⁠. 손님들이 물어⁠. 아까 그 아줌마 누구냐고⁠, 돈 봉투가 뭐냐고⁠. 소영 약사도 좀 쉬어야지⁠. 얼굴이 반쪽이야⁠.⁠”

혜숙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친절해서 거절할 말이 없었다⁠. 소영은 의자 밑의 배낭을 보았다⁠.

“⁠제가 쉬면 그 사람은요⁠?⁠”

“⁠그 사람은 내 약국 직원이 아니잖아⁠.⁠”

“⁠저는 약국 직원이에요⁠.⁠”

혜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영은 배낭을 메고 셔터 밑으로 몸을 숙여 나왔다⁠. 휴직하겠다고도⁠, 안 하겠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밤 아홉 시 사십 분⁠, 평촌 학원가 큰길 정류장에서 엄마 전화가 왔다⁠.

“⁠소영아⁠, 오늘 내려와⁠. 서울 남부터미널 가서 대전 가는 거 타⁠. 엄마가 터미널 나가 있을게⁠. 짐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짐은 있어⁠.⁠”

“⁠있어⁠? 어디⁠?⁠”

“⁠등에⁠.⁠”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엄마가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숨을 참는 것을 소영은 들었다⁠. 열 시 이 분⁠, 남부터미널로 가는 광역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앞문을 열었다⁠. 앞문 계단에 하얀 불이 켜졌다⁠. 기사가 소영을 보았다⁠. 소영은 배낭끈을 두 손으로 쥐고 계단을 보았다⁠. 한 걸음이면 됐다⁠. 대전 엄마 방의 이불 냄새와⁠, 이사 간 피해자의 이름 없는 동네가 계단 위에 있었다⁠. 기사가 문을 닫았다⁠. 버스가 떠났다⁠.

“⁠엄마⁠, 나 안 가⁠.⁠”

“⁠소영아⁠.⁠”

“⁠안 가⁠. 잘못한 사람이 가야지⁠. 그 사람은 안 가니까⁠, 내가 가서 가게 할 거야⁠.⁠”

소영은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 메모를 열었다⁠. 과천 관제실 개소 기사에 실린 건물 사진을 저장해 둔 것이 있었다⁠. 정부과천청사 뒤편⁠, 낮은 회색 건물⁠. 열 시 이십 분⁠, 과천 가는 버스 막차가 왔다⁠. 소영은 배낭을 멘 채 올라탔다⁠. 교통카드 찍는 소리가 났다⁠. 창밖으로 학원가 간판들이 지나갔다⁠. 소영은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아 배낭을 무릎에 안았다⁠. 버스 안에는 소영과 기사⁠, 졸고 있는 교복 차림 학생 하나뿐이었다⁠. 차창에 비친 얼굴 위로 가로등이 하나씩 지나갔다⁠. 소영은 정류장 이름을 세었다⁠. 인덕원을 지날 때 휴대전화를 꺼내 동욱에게 쓸 말을 쳤다가 지웠다⁠. 기록을 보여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보여 주지 않으면 보여 줄 때까지 정문 앞에 있을 생각이었다⁠. 배낭에는 속옷 세 벌이 있었다⁠. 하룻밤은 버틸 수 있었다⁠.

밤 열한 시 오 분⁠, 과천 관제센터 정문 경비실 창에 노란 불이 켜져 있었다⁠. 차단기가 내려와 있었고⁠, 경비실 안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영은 경비실 창을 두 번 두드렸다⁠. 창이 열리자 배낭끈을 쥔 손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하동욱 주임 만나러 왔어요⁠. 피해자예요⁠. 배성진 사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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