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62자)

구 초의 출처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4월 11일 화요일 오전 열한 시⁠, 배성진은 안양 박달동 반지하 방 부엌 바닥에서 빨간 플라스틱 대야를 보았다⁠. 대야 바닥에 노란 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어머니 한경자는 방바닥에 앉아 왼팔 반창고를 새것으로 바꾸고 있었다⁠. 투석하는 팔의 혈관이 피부 밑에서 굵게 불거져 있었다⁠.

“⁠엄마⁠, 이거 뭐야⁠?⁠”

“⁠가게 앞에 누가 낙서를 해 놨더라⁠. 접근금지 백 미터⁠. 사장님이 너 자른다고 해서 내가 지웠어⁠. 안 지워지더라⁠.⁠”

성진은 대야를 들어 올렸다⁠. 노란 물때가 대야 벽에 둥글게 테를 두르고 있었다⁠. 어젯밤 열 시 오십 분에 출근할 때 문턱 앞 노란 선은 반쯤 흐려져 있었다⁠. 받침이 다 번진 글씨를 넘으면서 성진은 누가 문질렀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약사님이 내려왔어⁠. 그 아가씨가 그었대⁠.⁠”

성진의 손에서 대야가 기울었다⁠. 마른 노란 가루가 장판에 떨어졌다⁠.

“⁠약사님이 엄마를 봤어⁠?⁠”

“⁠봤지⁠. 내 앞에 서서 그러더라⁠. 너 밤마다 그 선 넘는다고⁠.⁠”

경자는 반창고 끝을 손톱으로 눌러 붙였다⁠.

“⁠근데 성진아⁠, 그 아가씨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 한 시 십일 분마다 너한테 문자를 받았대⁠. 여덟 달 동안⁠. 그거 너 엄마한테 전화하는 시간이잖아⁠.⁠”

“⁠옛날 일이야⁠. 시간이 우연히 같은 거야⁠.⁠”

“⁠우연이야⁠?⁠”

“⁠엄마⁠, 거기 가지 마⁠. 다시는 가지 마⁠.⁠”

성진은 대야를 싱크대에 엎었다⁠. 수도를 틀고 노란 물때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물때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손바닥이 빨개질 때까지 문지르는 동안 성진의 머릿속에는 한 장면만 있었다⁠. 약사님이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반창고와 털모자와 수세미를 보았다⁠. 약사님은 이제 성진이 누구의 아들인지 알았다⁠. 두 해 반 동안 약사님이 성진에 대해 아는 것은 박카스와 문자와 판결문뿐이었다⁠. 이제 하나가 늘었다⁠. 성진은 그것을 가까워졌다고 불렀다⁠. 투석한 팔로 대야를 안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돌아온 어머니의 오후는 가까워졌다는 말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후 네 시에 윤미숙의 전화가 왔다⁠.

“⁠성진 씨⁠, 내일 오후 두 시에 보호관찰소로 나와요⁠. 신속수사팀 조사예요⁠. 나는 조사에 못 들어가요⁠.⁠”

“⁠선생님⁠, 저 뭐 잘못했어요⁠?⁠”

“⁠내일 얘기해요⁠.⁠”

미숙이 먼저 끊었다⁠. 출소하고 다섯 달 동안 미숙이 먼저 끊은 적은 없었다⁠. 성진은 휴대전화를 오래 보았다⁠.

저녁 여섯 시⁠, 성진은 벽 콘센트 앞에 앉아 발목에 충전 케이블을 꽂았다⁠. 두 시간 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휴대전화로 골목 거리뷰를 열고 손가락으로 2층 왼쪽 창을 크게 늘렸다⁠. 작년 여름 사진 속 창은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었다⁠. 성진은 약사님에게 할 말을 다시 고쳤다⁠. 우리 엄마 보셨죠⁠. 저 이런 사람이에요⁠. 엄마 약 챙기는 사람이에요⁠. 고칠 때마다 약사님의 얼굴은 조금씩 풀렸다⁠. 머릿속의 얼굴은 성진이 고치는 대로 바뀌었다⁠.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린 창도⁠, 노란 선도⁠, 휴대전화를 든 손도 머릿속 얼굴을 바꾸지 못했다⁠.

*

밤 열 시 오십 분⁠, 밝은마트 유리문의 종이 딸랑 울리자 점주 이정호가 계산대 뒤에서 일어나지 않고 손짓만 했다⁠. 이리 와 봐⁠. 정호의 얼굴이 출근 첫날보다 굳어 있었다⁠.

“⁠오늘 낮에 보호관찰소에서 사람이 왔다⁠. 카메라 저장된 거 다 가져갔어⁠. 3월 19일 거⁠, 21일 거⁠, 22일 거⁠. 알바 민수도 불려 가서 얘기했고⁠. 너 그날 엄마 병원에 있다고 가게 빠졌잖아⁠.⁠”

“⁠엄마가 가게 걱정하라고 해서요⁠. 잠깐 들렀어요⁠.⁠”

“⁠들렀으면 들어와서 인사라도 하지⁠. 민수 말이 너 수거함 앞에만 서 있다가 갔다던데⁠.⁠”

성진은 조끼 단추를 채웠다⁠. 단추가 두 번 구멍에서 빠졌다⁠. 정호가 턱으로 유리문 밖을 가리켰다⁠.

“⁠그리고 구청에서 원상복구 하라고 또 전화 왔다⁠. 귀찮아서 저 수거함을 옆으로 한 걸음 옮길까 해⁠. 선 밖으로⁠. 그럼 너도 선 넘을 일 없잖아⁠.⁠”

“⁠그대로 두세요⁠.⁠”

성진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정호가 고개를 들었다⁠.

“⁠옆으로 옮기면 비 올 때 물 고여요⁠. 거기가 낮아요⁠. 박스 젖어요⁠.⁠”

정호는 성진을 한참 보다가 담배 진열대로 돌아앉았다⁠. 다음에 또 이러면 끝이라고 했다⁠. 이러면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성진은 포스기 옆 자리로 가서 골목 위를 올려다보았다⁠. 수거함은 한 걸음 안에 있어야 했다⁠. 한 걸음 밖으로 나가면 한 시 십일 분이 없어졌다⁠.

4월 12일 새벽 한 시 십일 분에도 성진은 상자 세 장을 들고 문턱을 넘었다⁠. 흐려진 노란 선이 운동화 밑으로 지나갔다⁠. 고개를 들었을 때 성진은 숨을 멈췄다⁠. 2층 왼쪽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블라인드가 끝까지 올라가 있었고⁠, 창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잠옷 차림의 약사님이 똑바로 성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하나⁠, 둘⁠. 성진은 셌다⁠. 다섯에서 숫자가 엉켰다⁠. 약사님이 성진을 보고 있었다⁠. 두 해 반 동안 처음이었다⁠. 가림막 너머의 목소리도⁠, 블라인드 틈의 눈도 아닌⁠, 불 켜진 창 안의 얼굴 전체였다⁠. 성진은 일곱에서 상자를 수거함에 밀어 넣었고⁠, 여덟에서 몸을 돌렸다⁠. 계산대 뒤로 돌아갔을 때 무릎이 떨렸다⁠. 화가 난 것도 무서운 것도 아니라고 성진은 자기에게 말했다⁠. 약사님이 창을 연 것이었다⁠. 기다린 사람에게 문이 열린 것이었다⁠.

*

4월 12일 수요일 오후 두 시⁠, 안양 보호관찰소 2층 조사실에는 창이 없었다⁠. 탁자 하나와 의자 셋⁠, 천장 모서리의 녹화 카메라가 전부였다⁠. 카메라 아래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신속수사팀 정태호 주무관은 마흔 중반쯤 되었고⁠, 넥타이 없이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웠다⁠.

“⁠보호관찰소 신속수사팀 정태호입니다⁠. 특별사법경찰관으로 조사합니다⁠. 진술은 녹화되고⁠, 원하지 않으면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괜찮아요⁠. 저 숨길 거 없어요⁠.⁠”

성진은 목소리를 낮추고 끝을 조금 떨었다⁠. 미숙 앞에서 통하던 목소리였다⁠. 태호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사탕 봉지도⁠, 볼펜도⁠. 서류철에서 종이를 한 장씩 꺼내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첫 장은 표였다⁠. 날짜 서른 줄⁠, 줄마다 같은 숫자⁠. 「⁠01⁠:11 · 진입 9초⁠」⁠. 팔 초가 두 줄이었다⁠.

“⁠3월 14일부터 오늘 새벽까지 서른 번이에요⁠. 하루도 안 빠졌어요⁠. 왜 한 시 십일 분이에요⁠?⁠”

“⁠점주님이 한 시 넘으면 박스 비우라고 하셔서요⁠.⁠”

“⁠점주님은 한 시 넘으면이라고 했고⁠, 십일 분은 배성진 씨가 정했다고 했어요⁠. 박스 없는 날은 새 박스를 뜯어서 접었다고요⁠.⁠”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호가 둘째 장을 밀었다⁠. 지도였다⁠. 병원과 편의점 사이에 가는 선이 세 번 오가고 있었다⁠.

“⁠3월 19일⁠, 20일⁠, 21일⁠. 어머님이 중환자실에 계셨던 사흘이에요⁠. 가게도 쉬었고요⁠. 밤 열두 시 삼십팔 분에 병원을 나와서 뛰어서 편의점까지 갔어요⁠. 한 시 십일 분에 구 초 들어갔다 나오고⁠, 다시 뛰어서 병원으로 돌아갔어요⁠. 그날 밤 근무한 아르바이트생이 배성진 씨가 가게엔 들어오지도 않고 수거함 앞에만 있다가 갔다고 진술했어요⁠. 왜 갔어요⁠?⁠”

성진의 머릿속으로 3월 19일 새벽이 돌아왔다⁠. 중환자실 대기실 의자의 차가운 등받이⁠, 자판기 불빛⁠, 잠든 어머니의 모니터에서 일정하게 울리던 소리⁠. 열두 시 삼십팔 분⁠, 성진은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병원 정문을 빠져나왔다⁠. 신호등이 빨간불이어도 차가 없으면 건넜다⁠. 폐가 찢어질 것 같았는데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한 시 칠 분에 골목 입구에 닿았을 때 2층 왼쪽 창의 두 번째 칸이 벌어져 있었다⁠. 약사님은 3월 19일 새벽에도 깨어 있었다⁠.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둘 다 지켰다고 성진은 생각했다⁠. 성진은 3월 19일 새벽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가게가 걱정돼서요⁠.⁠”

태호는 셋째 장을 뒤집지 않은 채 손을 얹고 읽었다⁠.

“⁠피해자 진술이에요⁠. 피해자는 이번 출소 소식을 들은 뒤로 도어락 번호를 네 번 바꿨어요⁠. 퇴근할 때 집 앞 골목을 피해 계단길 백여덟 칸을 돌아서 와요⁠. 칠 분 걸리던 길이 이십오 분이 됐어요⁠. 택배는 어머니 이름으로 직장에서 받아요⁠. 현관에 배낭 하나를 늘 싸 둔다고 했어요⁠. 언제든 나갈 수 있게요⁠.⁠”

성진은 백여덟 칸이라는 말을 들었다⁠. 계단길이었다⁠. 열 시 사십 분에 켜지던 불이 열한 시 이 분에 켜지던 까닭이었다⁠. 약사님은 이십오 분 동안 성진을 생각하며 계단을 올랐다⁠. 성진은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읽는 자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현관의 배낭이라는 말은 성진의 귀를 그대로 지나갔다⁠.

태호가 넷째 장을 밀었다⁠. 휴대전화 영상에서 뽑은 사진이었다⁠. 하얀 불빛 아래 노란 선⁠, 노란 선 위의 운동화⁠, 2층을 향해 들린 오른손⁠.

“⁠4월 9일 새벽이에요⁠. 한 시 십일 분부터 이십이 분까지 십일 분 동안 선 위에 서 있었어요⁠. 손은 왜 흔들었어요⁠?⁠”

“⁠인사했어요⁠. 약사님이 창을 열어서요⁠.⁠”

“⁠피해자가 창을 연 건 찍으려고 연 거예요⁠. 증거로 내려고요⁠. 이 사진도 피해자가 직접 냈어요⁠.⁠”

성진은 사진 속 자기 손을 보았다⁠. 약사님은 십 초 넘게 찍었다⁠. 성진이 보기에 십 초는 오래였다⁠. 약사님은 오래 보았다⁠. 증거라는 말은 사진 위에 얹히지 않고 미끄러졌다⁠.

“⁠알아 두셔야 할 게 있어요⁠. 특정인 접근금지 준수사항 위반은 삼 년 이하 징역이에요⁠. 경찰도 피해자 고소로 따로 스토킹 수사를 하고 있고⁠, 잠정조치 신청도 들어갔어요⁠.⁠”

발목의 장치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성진은 왼발을 의자 다리 뒤로 감추었다⁠. 등에 땀이 배어 셔츠가 붙었다⁠.

“⁠배성진 씨⁠, 구 초는요⁠. 서른 번 다 구 초 안에 나갔어요⁠. 십 초에서 딱 일 초 모자라게요⁠.⁠”

“⁠박스 넣는 데 그만큼 걸려요⁠.⁠”

“⁠관제센터는 접근금지 구역에 십 초 안 되게 들어온 건 오차로 보고 경보를 안 울려요⁠. 그건 관제센터 안에만 있는 기준이에요⁠. 판결문에도 공문에도 없어요⁠. 대상자한테 알려 주지도 않아요⁠. 판결엔 초가 없어요⁠. 백 미터만 있어요⁠. 그런데 배성진 씨는 서른 번 다 십 초 전에 나갔어요⁠. 십 초를 어떻게 알았어요⁠?⁠”

조사실이 조용해졌다⁠. 녹화 카메라의 빨간 불만 깜박이지 않고 켜져 있었다⁠. 성진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단톡방에서요⁠. 부착자들끼리 하는 데가 있어요⁠. 점 튀는 거⁠, 경보 울리는 거 다 거기서 얘기해요⁠.⁠”

“⁠휴대전화 보여 주세요⁠. 단톡방⁠.⁠”

“⁠나왔어요⁠. 오래전에요⁠.⁠”

“⁠누가 있던 방인지⁠, 방 이름이 뭔지 말해 주세요⁠. 확인할게요⁠.⁠”

성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태호는 재촉하지 않았다⁠. 볼펜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을 성진은 처음으로 마주 보았다⁠. 기다리는 것은 성진이 잘하는 일이었다⁠. 남이 기다릴 때 기다림이 이렇게 무거운 줄은 몰랐다⁠.

성진은 계산했다⁠. 스스로 알아냈다고 하면 서른 번의 구 초는 전부 성진이 계산해서 맞춘 숫자가 되었다⁠. 고의였다⁠. 감옥이었다⁠. 다른 길이 하나 있었다⁠. 넉 달 동안 이력서 마흔한 장마다 사탕을 하나씩 건넨 사람⁠. 출소하던 날 이 건물 3층에서 발목의 장치가 무서우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한 사람⁠. 선생님은 성진을 지켜 줄 것이었다⁠. 선생님은 늘 그랬다⁠. 성진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불렀다⁠.

성진은 고개를 들고 녹화 카메라를 한 번 보았다⁠.

“⁠윤미숙 계장님이 십 초 안 되면 경보 안 울린다고 했어요⁠. 출소하던 날⁠, 이 건물 3층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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