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75자)

수세미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4월 9일 일요일 새벽 한 시 십육 분⁠, 과천 관제실 강원 구역 자리에서 하동욱은 정선 지도를 보는 척하고 있었다⁠. 왼쪽 눈 끝으로는 경기 남부 자리의 강민지 모니터가 보였다⁠. 민지가 의자를 반 바퀴 돌렸다⁠.

“⁠조장님⁠, 이거 뭐로 분류해요⁠? 편의점 아저씨가 문턱에서 안 움직여요⁠. 100m에서 오 분째예요⁠.⁠”

조장 박영수가 민지 화면 앞으로 의자를 굴려 갔다⁠. 초록 점은 빨간 원의 테두리 위에 정확히 얹혀 있었다⁠. 안으로도 밖으로도 한 칸을 넘지 않았다⁠. 노란 창은 뜨지 않았다⁠.

“⁠진입은 아니고⁠.⁠”

“⁠이탈도 아니에요⁠.⁠”

“⁠체류⁠.⁠”

“⁠선 위 체류는 분류 항목에 없어요⁠, 조장님⁠.⁠”

“⁠없으면 없는 거다⁠.⁠”

맞은편에서 김정우가 헤드셋 한쪽을 귀에서 뺐다⁠.

“⁠현재 비산동⁠, 한 점 정차 중입니다⁠. 정체 구간은 문턱입니다⁠. 우회로 없습니다⁠.⁠”

“⁠정우 선배⁠, 그거 하나도 안 웃겨요⁠.⁠”

민지가 말했고⁠, 정우는 헤드셋을 다시 쓰며 강원으로 돌아왔다⁠.

“⁠정선 북평⁠, 오늘 우사 출발은 네 시 예정입니다⁠. 소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욱은 강원 지도를 보았다⁠. 인제 원통의 점 하나가 집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동욱의 손가락은 마우스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세 해 전 동욱이 쓴 건의서에는 진입과 이탈만 있었다⁠. 동대문 관제센터 탕비실 탁자에서⁠, 김선희의 팔이 부러진 밤의 기록을 옆에 펴 놓고 쓴 두 장짜리 문서였다⁠. 동욱은 문장 하나를 쓸 때마다 경보가 몇 건 줄어드는지 세었다⁠. 선 위에 사람이 서 있는 밤은 두 장 어디에도 없었다⁠. 오차는 서 있지 않았다⁠. 튀었다⁠.

한 시 이십이 분⁠, 초록 점이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101m⁠」⁠. 민지가 포스트잇에 새로 썼다⁠. 「⁠문턱 아저씨 · 01⁠:11⁠~01⁠:22 · 11분 · 분류 없음⁠」⁠. 하트는 그리지 않았다⁠. 포스트잇은 동욱 모니터가 아니라 민지 자기 모니터 테두리에 붙었다⁠.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렸다⁠. 관제실 안에서는 개인 전화를 꺼내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 동욱은 탕비실로 갔다⁠. 소영이 보낸 영상이었다⁠. 노란 선과 운동화와 흔드는 손이 하얀 불빛 아래 함께 찍혀 있었다⁠. 영상 아래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열 넘을 때까지 찍었어요⁠.⁠」 동욱은 영상을 두 번 보았다⁠. 손은 구 초 넘게 흔들렸다⁠.

새벽 두 시 정각⁠, 영수가 탕비실에 들어와 전기 포트 단추를 눌렀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영수는 단추를 세 번 더 눌렀다⁠. 콘센트를 뽑았다 꽂았다⁠.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누가 포트 만졌어⁠.⁠”

“⁠아무도 안 만졌습니다⁠.⁠”

“⁠두 시야⁠. 두 시에 물이 안 끓으면 오늘 밤은 끝난 거다⁠.⁠”

영수는 정수기 온수로 컵라면을 채웠다⁠. 사 분을 기다려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면을 한 번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면이 덜 풀려 있었다⁠. 영수는 덜 풀린 면을 끝까지 먹었다⁠.

*

4월 10일 월요일 오후 세 시 사십 분⁠, 동욱은 아침 아홉 시에 퇴근해 네 시간을 자다가 문자에 깼다⁠. 「⁠누가 선을 지우고 있어요⁠. 지금이요⁠.⁠」 사십 분 뒤 동욱은 비산동 큰길 건너편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센터장실에서 받은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대상자 직장 앞에 서는 건 절차에 없다⁠. 정류장은 대상자 직장 앞이 아니었다⁠. 왕복 사 차선 건너편이었다⁠.

밝은마트 유리문 앞에 작은 여자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회색 털모자를 쓰고⁠, 고무장갑을 끼고⁠, 빨간 플라스틱 대야를 옆에 두었다⁠. 대야에서 거품이 넘쳤고⁠, 거품 위에 벚꽃 잎이 떠 있었다⁠. 여자는 초록 수세미로 노란 선을 문질렀다⁠. 문지를 때마다 어깨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락카는 수세미에 지워지지 않았다⁠. 노란 칠이 번지며 「⁠접근금지⁠」의 받침들이 흐려지기만 했다⁠. 여자의 왼쪽 소매가 걷혀 있었고⁠, 팔뚝에 반창고 두 장이 붙어 있었다⁠. 투석하는 팔이었다⁠.

골목 위에서 소영이 내려왔다⁠. 패딩 지퍼를 턱까지 올리고⁠, 왼 손목의 검은 시계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노란 선 한 걸음 앞에서 소영이 멈췄다⁠. 동욱은 신호가 바뀌자 큰길을 건넜다⁠. 분리수거함에서 세 걸음 떨어진 골목 담벼락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거 제가 그은 거예요⁠.⁠”

여자가 수세미를 든 채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아가씨가⁠… 약사님이에요⁠? 우리 성진이가 말하던⁠?⁠”

소영의 어깨가 움찔했다⁠. 동욱은 소영의 손이 시계를 더 세게 쥐는 것을 보았다⁠. 성진은 집에서도 소영을 약사님이라고 불렀다⁠.

“⁠사장님이 이거 보고 우리 애 자른대요⁠. 손님들이 접근금지가 뭐냐고 물어본대요⁠. 이거 좀 지워 줘요⁠. 우리 애 겨우 일 구했어요⁠. 마흔한 번 떨어지고⁠.⁠”

“⁠아드님이 밤마다 이 선을 넘어요⁠. 어제는 이 선 위에 십일 분 서 있었어요⁠. 우리 집 창을 보면서요⁠.⁠”

“⁠쓰레기 버리는 거예요⁠. 나한테 전화하면서⁠. 한 시 십일 분마다 엄마 약 먹었냐고 전화하는 애예요⁠. 그런 애가 무슨⁠.⁠”

“⁠저한테도 한 시 십일 분마다 문자 보냈어요⁠. 여덟 달 동안이요⁠.⁠”

한경자의 수세미가 노란 선 위에서 멈췄다⁠. 경자는 소영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더 세게 문질렀다⁠. 거품이 노랗게 물들었다⁠.

“⁠다 지난 일이잖아요⁠. 벌 다 받았어요⁠. 일 년 반 살았어요⁠. 걔가 얼마나 착한데⁠. 지난달 내가 중환자실 들어갔을 때⁠, 3월 18일⁠, 사흘 밤을 병원 대기실 의자에서 잤어요⁠. 가게도 빠지고⁠. 그런 애예요⁠.⁠”

“⁠어머니⁠, 저도 엄마 있어요⁠. 대전에서 밤마다 전화해요⁠. 우리 엄마는 딸한테 이사 가래요⁠. 어머니 아들 때문에요⁠.⁠”

경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세미 소리만 났다⁠. 소영은 노란 선을 넘지 않고 선 앞에서 말했다⁠.

“⁠지우셔도 돼요⁠. 또 그을 거예요⁠.⁠”

소영은 몸을 돌려 골목을 올라갔다⁠. 계단길로 꺾지 않고 곧장 빌라 정문으로 갔다⁠. 동욱은 2층 왼쪽 창을 올려다보았다⁠. 블라인드가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일요일 새벽까지 아래에서 두 번째 칸만 벌어져 있던 창이었다⁠. 동욱은 경자 옆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대야에 퐁퐁 냄새가 진했다⁠.

“⁠어머님⁠, 3월 18일 밤에 성진 씨가 병원에 계속 있었습니까⁠?⁠”

경자가 동욱의 얼굴을 보았다⁠. 점퍼 주머니 밖으로 파란 줄 한 끝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경자의 눈이 파란 줄에서 멈췄다⁠.

“⁠당신이구나⁠. 밤마다 우리 애한테 전화한다는 사람⁠.⁠”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성진 씨가 3월 18일부터 사흘 밤 동안 병원 밖으로 나간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새벽에 내가 눈 떴을 때도 대기실에 있었다고 간호사가 그랬어요⁠. 그런 애한테 왜들 이래요⁠?⁠”

경자는 수세미를 대야에 던졌다⁠. 거품이 튀어 동욱의 운동화 앞코에 묻었다⁠. 경자는 대야를 들고 일어나 반창고 붙은 팔로 대야를 안고 큰길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노란 선은 흐려진 채 남아 있었다⁠. 「⁠접근금지⁠」의 받침이 다 번져⁠, 멀리서 보면 「⁠저그그지⁠」로 읽혔다⁠.

유리문이 열리고 점주 이정호가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정호는 흐려진 선을 내려다보고⁠, 동욱의 파란 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또 오셨네⁠. 구청에서 전화 왔어요⁠. 도로에 칠한 거 원상복구하라고⁠. 그 아가씨한테 전해 줘요⁠. 칠한 사람이 지우라고⁠.⁠”

“⁠사장님⁠, 성진 씨한테 한 시 십일 분에 박스 버리라고 하셨습니까⁠?⁠”

“⁠한 시 넘으면 버리라고 했지⁠. 십일 분은 걔가 정한 거고⁠.⁠”

정호는 수거함 뚜껑을 열어 보였다⁠. 납작하게 접힌 상자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맨 위 상자에는 아직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옆면에 「⁠삼각김밥 · 입고 4/9⁠」가 찍혀 있었다⁠.

“⁠걔 일은 잘해요⁠. 근데 박스 없는 날은 멀쩡한 새 박스를 뜯어서 접어요⁠. 내가 아깝다고 해도 접어요⁠. 버릇이래요⁠.⁠”

*

4월 10일 밤 열한 시⁠, 관제실에서 동욱은 영수 자리 옆으로 갔다⁠. 영수는 탕비실 새 전기 포트의 상자를 뜯고 있었다⁠. 낮에 센터 행정실이 사다 놓은 것이었다⁠.

“⁠조장님⁠, 경기 남부 이력 하나만 봐 주십시오⁠. 배성진⁠. 3월 19일⁠.⁠”

“⁠너 지금 강원이다⁠.⁠”

“⁠압니다⁠.⁠”

“⁠강원 사람이 경기 남부 이력 보면 그거 기록 남는다⁠.⁠”

“⁠그래서 조장님께 부탁드립니다⁠.⁠”

영수는 포트 상자를 내려놓고 동욱을 오래 보았다⁠. 볼펜을 귀에서 빼 책상에 놓았다⁠. 영수의 손이 경기 남부 이력 창을 열었다⁠. 날짜를 3월 19일로 맞추고 재생 단추를 눌렀다⁠. 지도 위에 초록 점의 지나간 길이 가는 선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3/19 00⁠:38 · 평촌 소재 병원 · 출발⁠」

점은 병원 정문을 나와 큰길을 따라 북쪽으로 움직였다⁠. 선이 곧았다⁠. 신호등 앞에서도 거의 쉬지 않았다⁠. 김정우가 헤드셋을 벗고 영수 화면 앞으로 왔다⁠. 열한 해 택시를 몬 사람의 눈이 선의 기울기를 읽었다⁠.

“⁠이거 뛴 겁니다⁠. 시속 팔 킬로 넘어요⁠. 택시였으면 이렇게 신호마다 안 서고 못 가요⁠.⁠”

「⁠01⁠:07 · 밝은마트 비산점 앞 도착⁠」

「⁠01⁠:11 · 피해자 주거지 접근금지 구역 진입 · 9초 · 오차 의심 · 경보 아님⁠」

「⁠01⁠:14 · 밝은마트 비산점 앞 출발⁠」

「⁠01⁠:43 · 평촌 소재 병원 도착⁠」

선은 왔던 길을 되짚어 병원 정문으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편의점까지 이십구 분⁠, 편의점에서 병원까지 이십구 분⁠. 편의점 앞에 머문 시간은 칠 분이었고⁠, 선 안에 머문 시간은 구 초였다⁠. 영수는 3월 20일과 21일을 차례로 띄웠다⁠. 같은 선이 같은 시각에 같은 길로 그려졌다⁠. 셋째 밤에는 돌아가는 길이 조금 느렸다⁠.

동욱은 열두 해 동안 점이 뛰는 밤을 수없이 보았다⁠. 대부분은 도망치는 점이었고⁠, 드물게 쫓는 점이 있었다⁠. 화면 속 점은 아무도 쫓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약속 시각에 늦지 않으려고 뛰는 점이었다⁠. 약속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강민지가 의자를 굴려 와 화면을 보다가 입을 막았다⁠.

“⁠가게 쉬는 날이었다면서요⁠. 그럼 이건 쓰레기 버리러 간 게 아니잖아요⁠.⁠”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있었던 밤이다⁠.⁠”

동욱이 말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동욱은 낮에 쪼그려 앉아 보았던 반창고 두 장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대기실에 있었다는 아들은⁠, 어머니가 눈을 감고 있던 한 시간 남짓 동안 왕복 오십팔 분을 뛰어 편의점 앞에서 구 초를 채우고 돌아왔다⁠. 동욱은 화면에서 점의 지나간 선을 손가락으로 따라가 보았다⁠. 선은 한 번도 골목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구십구 미터에서 멈추고⁠, 몸을 돌렸다가⁠, 이튿날 밤 다시 같은 자리로 왔다⁠.

영수가 인쇄 단추를 눌렀다⁠. 복도 끝 프린터가 종이 석 장을 뱉었다⁠. 영수는 종이를 가져와 동욱 손에 쥐여 주었다⁠. 종이 위에서 점의 선은 병원과 편의점 사이를 세 번 오갔다⁠. 민지가 종이를 넘겨다보며 말했다⁠.

“⁠선배⁠, 이거 들고 가면 선배 또 센터장실 가요⁠.⁠”

“⁠알아⁠.⁠”

“⁠조장님⁠, 이거 보안 문서 아닙니까⁠?⁠”

“⁠포스트잇이 보안 문서다⁠. 이건 증거다⁠.⁠”

영수는 새 포트에 물을 받았다⁠. 시계는 밤 열한 시 이십 분이었다⁠. 영수는 처음으로 두 시가 아닌 시각에 단추를 눌렀다⁠. 물 끓는 소리가 탕비실을 채웠다⁠.

“⁠점은 거짓말 안 해⁠, 동욱아⁠. 사람이 하지⁠. 가서 보여 줘⁠. 그 보호관찰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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