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6,490자)
노란 선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4월 5일 수요일 오전 아홉 시 사십 분, 최소영은 안양 보호관찰소 3층 상담실 벽 앞 의자에 앉았다. 의자 셋 가운데 문을 등지지 않는 자리는 벽 앞 하나뿐이었다. 소영은 들어오자마자 문과 창과 벽을 차례로 보고 벽 앞 의자로 갔다. 가방은 무릎에 올려 두 팔로 안았다. 두 해 전부터 몸에 붙은 순서였다. 새벽에 관제요원에게 문자를 보내 놓고 소영은 아침까지 자지 못했다.
윤미숙이 서류철 하나와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연두색 카디건 주머니가 사탕 봉지로 불룩했다.
“최소영 씨죠? 배성진 씨 담당 보호관찰관 윤미숙입니다. 커피 드세요. 믹스밖에 없어요.”
소영은 종이컵을 받지 않았다. 미숙은 컵을 소영 앞 탁자에 내려놓고 자기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근무지를 옮겨 주세요. 밝은마트 계산대에서 우리 집 창이 보여요. 밤마다 한 시 십일 분에 문 밖으로 나와서 위를 봐요.”
“분리수거하러 나오는 거 알아요. 근무지는 내가 승인했어요. 계산대가 백일 미터, 선 밖이에요.”
“선 밖이면 우리 집을 봐도 돼요?”
“보는 걸 막는 준수사항은 판결에 없어요. 소영 씨, 성진 씨는 출소하고 넉 달 동안 마흔한 군데서 떨어졌어요. 일을 뺏으면 하루 스물네 시간이 비어요. 빈 시간을 어디서 보낼지는 소영 씨가 나보다 잘 알 거예요.”
소영은 가방끈을 검지에 감았다. 감을수록 손끝이 하얘졌다. 미숙의 말은 소영을 걱정하는 말로 들렸고, 걱정하는 말이라서 반박할 자리가 없었다.
“그 사람 일하는 게 제 퇴근길보다 중요해요?”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둘 다 지키자는 거예요.”
“둘 다 지키면 저는 하나도 안 지켜져요.”
미숙이 카디건 주머니에서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소영 앞으로 밀었다. 소영은 사탕을 보지 않고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다. 블라인드 틈으로 찍은 사진이 날짜별로 줄지어 있었다. 사진마다 하얀 불빛 아래 조끼 입은 남자의 고개가 같은 각도로 들려 있었다.
“날마다 구 초예요. 팔 초인 밤이 두 번 있었고, 나머지는 다 구 초예요. 선생님은 사람이 스무 밤 넘게 똑같은 초 안에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탕 봉지를 만지던 미숙의 손이 멈췄다. 미숙은 손을 주머니에서 빼 서류철 위에 얹었다.
“행위가 있으면 수사는 경찰 일이에요. 경찰에 말씀하세요. 나는 준수사항을 봐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소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상담실에 있는 동안 숨을 반만 쉬고 있었다는 것을 내쉬고서야 알았다. 사탕 하나 받지 않은 자기가 너무 날카로웠나,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얼굴은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 보였다.
*
오후 한 시 반, 안양동안경찰서 1층 민원실 번호표 기계에서 「대기 7」이 나왔다. 대기 의자에는 운전면허 서류를 든 노인과, 잃어버린 지갑을 찾으러 온 대학생 둘이 앉아 있었다. 소영의 번호가 불리자 창구 직원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고소장 내러 왔어요.”
“무슨 사건이요?”
소영은 목소리를 낮췄다.
“스토킹이요.”
“스토킹이요? 그럼 2층 여성청소년수사팀으로 가세요. 계단 올라가서 오른쪽이요.”
직원의 목소리는 대기 의자 끝까지 들렸다. 대학생 둘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가 동시에 내렸다. 소영은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목덜미에 남은 눈길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는데도 계단참에서 한 번 뒤를 보았다.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칸막이 책상 여덟 개가 붙어 있는 방이었다. 경사 오수경은 마흔 중반쯤 되었고 머리를 집게핀으로 틀어 올렸다. 책상 위에 서류 더미와 식은 김밥 한 줄이 같이 놓여 있었다. 수경은 소영이 가져온 판결문 사본을 넘기며 끝까지 들었다. 다 듣고 나서 볼펜을 내려놓았다.
“출소한 사람이 같은 동네에서 일하는 건 막을 방법이 없어요. 대신 이건 아셔야 해요.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것도 스토킹 행위예요. 법에 그렇게 써 있어요. 범죄가 되려면 반복성이 있어야 하고요. 한두 번이면 다툼이 돼요. 일하다 쓰레기 버리면서 본 거라고 하면요.”
소영은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을 꺼냈다. 약국에서 복약 안내 메모를 하던 수첩이었다. 뒷장마다 날짜가 한 줄씩 적혀 있었다. 「3/14 01:11 9초 위를 봄」. 「3/15 01:11 9초 위를 봄」. 스물세 줄이 같은 모양이었고, 팔 초가 두 줄이었다. 수경은 볼펜 끝으로 날짜를 한 줄씩 짚으며 수첩을 넘겼다.
“이걸 혼자 다 적으셨어요?”
“한 시 십일 분에는 어차피 깨 있어요.”
수경은 무엇을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첫마디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혹시 직접적인 위협—. 아니에요. 그 질문 많이 받으셨죠?”
“세 번이요.”
“네 번째는 안 할게요.”
수경은 고소장 양식에 사건 경위를 받아 적고, 잠정조치 신청서를 따로 꺼냈다. 잠정조치는 경찰이 검사에게 신청하고,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고, 판사가 결정한다고 했다. 접근금지 거리를 늘려 달라는 요청도 같이 쓸 수 있고, 결정까지는 보통 이삼 일이며, 결과는 소영에게도 연락이 간다고 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붙여 줄 수 있다는 안내도 했다. 소영은 서명란마다 이름을 쓰다가 마지막 장에서 볼펜을 멈췄다.
“이거 내면 그 사람도 알아요?”
“조사하면 알게 돼요. 누가 냈는지도요.”
소영의 눈앞에 두 해 전 현관 손잡이가 떠올랐다. 손잡이에 매달린 새봄약국 봉투, 봉투 안의 쪽지. 「신고했네요. 괜찮아요.」 볼펜을 쥔 손가락이 굳었다. 수경이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소영은 마지막 서명란에 이름을 썼다. 글씨가 앞장보다 컸다.
*
오후 다섯 시, 평촌 학원가 새봄약국은 하교한 학생들로 붐볐다. 소영은 반차를 쓰고 늦게 나온 사정을 약국장 김혜숙에게 말해야 했다. 경찰이 약국으로 전화할 수도 있었고, 퇴근 시각도 바꿔야 했다. 소영은 조제실 문을 닫고 말하려 했지만, 혜숙은 계산대 앞에서 카드 단말기를 두드리며 들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왔다고? 박카스 그 사람?”
“네. 우리 집 앞 편의점에서 일해요.”
“약국으로는? 약국 앞에는 안 오지?”
“집 앞이요. 약국은 아니에요.”
혜숙의 어깨가 내려갔다. 안도하는 어깨였다. 어깨가 내려가는 모습이 경찰서 민원실의 눈길보다 오래 남았다.
“다행이다. 아니, 다행이라는 게 아니고. 소영 약사, 퇴근은 아홉 시 반으로 당기자. 지은 약사가 마감 볼 거야. 그리고 경찰이 전화하면 나한테 돌려. 손님들 앞에서 스토커 어쩌고 하는 소리 나면 곤란하니까.”
혜숙은 스토커라는 말을 손님들 앞에서 했다. 처방전을 내밀던 학부모가 고개를 들었다. 소영은 처방전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였다. 하루 세 번, 식후 삼십 분. 처방전 위에 볼펜으로 복약 표시를 하는 동안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두 해 전에도 같았다. 당한 사람이 사과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동네에 소문이 나서 죄송하다고, 약국에 경찰이 와서 죄송하다고, 신고를 해서 죄송하다고. 소영은 사과를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는데 몸은 사과하는 자세를 기억했다. 어깨를 앞으로 말고 목을 숙이는 자세였다.
지은이 소영 옆으로 와서 처방전을 대신 받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홉 시 반, 소영이 패딩을 입을 때 지은이 주머니에 핫팩 하나를 넣어 주었다.
*
4월 8일 토요일 오후 세 시, 소영은 비산동 큰길가 대성철물에서 노란 락카 두 캔과 오십 미터 줄자, 흰 분필 한 통을 샀다. 사장이 물었다.
“어디 칠하시게? 벽이면 수성이 나은데.”
“바닥에 선 하나 그을 거예요.”
“주차선? 주차선이면 이거 금방 벗겨져요.”
“금방 벗겨져도 돼요.”
청우빌라 정문 앞에서 소영은 줄자 끝 고리를 벽돌 한 장으로 눌러 두었다. 판결문에는 피해자의 주거로부터 백 미터라고 적혀 있었다. 소영은 정문 문턱을 집으로 쳤다. 줄자를 풀며 골목을 아래로 걸었다. 경차 두 대, 전봇대 하나. 줄자에서 탁탁 소리가 났다. 오십 미터 눈금이 둘째 전봇대 아래에서 끝났다. 소영은 분필로 아스팔트에 가위표를 긋고, 벽돌을 가위표 위로 옮겼다.
다시 오십 미터를 풀었다. 셋째 전봇대 옆 벚나무 아래를 지날 때 꽃잎이 줄자 위로 떨어졌고, 어깨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 해 동안 소영은 이 골목을 아래로 걸은 적이 거의 없었다. 다리는 길을 몰랐고, 어깨는 알았다. 셋째 전봇대부터 편의점 유리문까지 이십 미터 남짓, 밤마다 블라인드 틈으로 내려다본 거리가 몸 안에 눈금처럼 새겨져 있었다. 소영의 몸은 구십구 미터가 어디인지 알았다. 분리수거함 앞이었다. 성진의 운동화가 밤마다 멈추는 자리였다.
줄자의 백 미터 눈금은 밝은마트 유리문 문턱에서 끝났다. 관제요원 하동욱이 말한 자리와 같았다. 분리수거함은 문턱에서 골목 위로 한 걸음, 선 안에 놓여 있었다. 소영은 쪼그려 앉아 락카를 흔들었다. 쇠구슬이 캔 안에서 딸깍거렸다. 문턱 앞에서 골목 맞은편 담벼락까지, 사 미터가 안 되는 아스팔트를 가로질러 노란 선을 그었다. 칙 소리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손이 떨려 선이 한 번 휘었고, 소영은 휜 자리를 덧칠해 곧게 폈다. 선에서 골목 위로 한 걸음 올라간 자리에 큰 글씨를 썼다. 「접근금지 100m」. 덜 마른 노란 칠 위에 벚꽃 잎 두 장이 내려앉아 붙었다.
유리문이 열리고 점주 이정호가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아가씨, 지금 남의 가게 앞에서 뭐 하는 거예요?”
“백 미터 쟀어요. 여기서부터 위로는 우리 집이에요.”
“집은 저 위고 여긴 길이에요. 장사하는 집 문 앞에 접근금지 써 놓으면 손님이 들어오겠어요? 이거 누가 지워요?”
“판결문에 백 미터라고 돼 있어요. 사장님 가게 직원이 밤마다 이 선을 넘어요.”
“쓰레기 버리라고 내가 시켰어요. 그게 죄예요?”
“그럼 수거함을 선 밖으로 옮겨 주세요. 한 걸음이면 돼요.”
정호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수거함을 내려다보고, 노란 선을 내려다보고, 소영을 보았다.
“구청에 전화할 거예요. 도로에 낙서하면 벌금이에요.”
“하세요.”
소영은 일어나 휴대전화로 노란 선을 찍었다. 정호는 끝내 수거함을 옮기지 않고 가게로 들어갔다. 골목을 올라가던 초등학생 둘이 노란 글씨를 소리 내어 읽었다. “접근금지 백 미터.” 한 아이가 선을 폴짝 뛰어넘었다. 선은 두 아이의 운동화 밑에서 아무것도 막지 않았다. 소영은 골목을 위로 걸어 올라갔다. 처음으로 계단길을 돌지 않은 귀갓길이었다.
*
4월 9일 일요일 새벽 한 시 십 분, 소영은 블라인드 두 번째 칸에 눈을 댔다. 밝은마트의 하얀 불빛이 노란 선을 비추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선은 골목 입구를 가로지르는 가는 금이었고, 글씨는 읽히지 않았다.
한 시 십일 분, 유리문이 열렸다. 성진은 상자 세 장을 들고 나와 노란 선을 넘었다. 소영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하나, 둘. 성진이 고개를 들었다. 일곱, 여덟, 아홉. 상자를 수거함에 넣고 선 너머로 돌아갔다. 여기까지는 지난 밤들과 같았다.
성진은 유리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문턱 앞에서 몸을 돌려 골목 위를 향했다. 운동화 앞코를 노란 선에 맞췄다. 앞코 끝이 노란 칠 위에 얹혔다. 발목의 검은 장치는 선 밖에 있었다.
소영은 휴대전화 앱을 열었다. 「가해자 위치 · 밝은마트 비산점 · 피해자와의 거리 약 100m」. 화면은 어젯밤과 똑같았다. 관제실 화면에는 노란 창도 뜨지 않을 것이었다. 동욱이 말한 십 초는 선 안에서만 흘렀다. 선 위에서 버티는 사람의 시간은 아무도 세지 않았다.
한 시 십오 분. 성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끼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고개를 들고 있었다. 소영은 스마트워치 버튼에 엄지를 얹었다. 누르면 112로 간다. 경찰이 오면 성진은 선 밖에 서 있을 것이고, 경위는 캔커피를 살 것이다. 엄지에 힘이 들어갔다가 빠졌다. 무릎이 바닥에서 시렸다. 입안이 말랐다. 소영은 자기가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숨을 쉬었다.
한 시 십구 분. 두 해 동안 블라인드 두 번째 칸을 벌려 둔 사람은 소영이었다. 성진은 두 번째 칸이 벌어진 것을 알았다. 두 번째 칸이 성진을 불러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가자 소영은 블라인드 날개에서 손을 뗐다. 아니었다. 창을 지켜본 사람이 성진을 부른 게 아니었다. 밤마다 문턱을 넘기로 한 사람도, 오늘 밤 선 위에서 버티기로 한 사람도 성진이었다.
한 시 이십일 분, 소영은 일어났다. 침대 옆 스탠드 대신 천장 등을 켰다. 블라인드 끈을 잡고 끝까지 당겼다. 날개들이 한꺼번에 접혀 올라가며 창틀에 부딪쳤다. 소영은 창 앞에 발을 모으고 몸을 세웠다. 불 켜진 창 안의 사람은 백 미터 밖에서도 보였다.
성진이 고개를 조금 더 들었다. 노란 선 위의 운동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성진의 오른손이 조끼 주머니에서 나와 천천히 올라갔다. 손바닥이 2층 창을 향해 좌우로 흔들렸다. 두 해 전 정류장에서 버스 창 안의 소영에게 흔들던 손과 같은 속도였다.
소영은 손을 흔들지 않았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녹화 단추를 눌렀다. 화면 안에서 노란 선과 운동화와 흔드는 손이 하얀 불빛 아래 함께 찍혔다. 화면 위 숫자가 「00:01」, 「00:02」로 넘어갔다. 한 시 이십이 분이었다. 성진은 십일 분째 노란 선 위에 있었다. 소영은 숫자가 열을 넘을 때까지 창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