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43자)

생업 동선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4월 3일 월요일 밤 여덟 시 사십 분⁠, 하동욱은 과천 관제센터 4층 센터장실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 센터장 문태식은 낮에만 있는 사람이었다⁠. 밤에 남아 있을 때는 넥타이를 끝까지 매고 있었고⁠, 그런 날은 누군가의 일이 바뀌었다⁠. 탁자 위에 종이가 석 장 놓여 있었다⁠.

「⁠안양보호관찰소 · 협조 요청 · 관제요원의 경보 외 반복 통화 및 대상자 생업 장소 방문⁠, 피해자 접촉에 대하여 · 담당 보호관찰관 윤미숙⁠」

「⁠민원 접수 · 4월 2일 07⁠:12 · 부착자 모친 · 관제센터 직원이 밤마다 아들에게 전화함⁠, 일하는 가게 앞까지 찾아옴⁠」

세 번째 종이는 방범 카메라 화면을 출력한 것이었다⁠. 밝은마트 유리문 앞에 키 큰 남자와 패딩 입은 여자가 마주 서 있었다⁠. 여자가 종이를 내밀고 있었다⁠.

“⁠하 주임⁠, 이거 본인 맞지⁠?⁠”

“⁠맞습니다⁠.⁠”

“⁠경보 아닌 진입에 전화한 거 사흘⁠. 쉬는 날 대상자 직장 앞에 간 거 한 번⁠. 피해자한테 개인 번호 준 거 한 번⁠. 절차에 있는 거 하나라도 있어⁠?⁠”

“⁠없습니다⁠. 센터장님⁠, 한 시 십일 분입니다⁠. 삼 주째⁠, 날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자리로 일 미터 들어왔다 구 초 만에 나갑니다⁠. 오차는 그렇게 안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건 점이고⁠, 위반은 판결이 정해⁠. 판결엔 백 미터라고 돼 있고⁠, 경보 기준은 십 초야⁠.⁠”

태식은 볼펜으로 종이 귀퉁이를 두 번 두드렸다⁠.

“⁠그 십 초 기준⁠, 하 주임이 건의해서 생긴 거 아닌가⁠. 2025년 5월⁠. 내가 결재했어⁠.⁠”

동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식은 오늘 밤부터 경기 남부를 강민지에게 넘기고 강원 구역에 앉으라고 했다⁠. 징계는 아니고 보직 조정이라고 했다⁠. 공문은 협조 요청이었지만 센터장실에서 협조는 명령이었다⁠.

관제실로 돌아오자 민지가 먼저 알았다⁠. 센터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의 얼굴은 다 같았다⁠.

“⁠선배⁠, 어디로 가요⁠? 귀양⁠?⁠”

“⁠강원⁠.⁠”

“⁠강원도 좋아요⁠. 공기 좋고⁠, 점 안 움직이고⁠.⁠”

정우가 위로라고 한 말이었다⁠. 동욱은 경기 남부 자리의 의자 높이를 민지 키에 맞게 내려 주고⁠, 모니터 왼쪽 위에 붙여 둔 인공눈물을 떼어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민지가 동욱의 의자에 앉아 화면을 비산동까지 당겼다가⁠, 동욱을 한 번 보고 다시 수원으로 밀어 놓았다⁠.

*

강원 구역의 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정선⁠, 평창⁠, 인제⁠. 산과 산 사이 골짜기마다 초록 점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밤 열한 시가 넘으면 점들은 집 안에서 아침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동욱 옆자리로 의자를 끌고 온 김정우가 헤드셋을 쓰며 목을 풀었다⁠.

“⁠현재 미시령⁠, 한 점도 없습니다⁠. 고요합니다⁠. 한계령도 고요합니다⁠. 진부령 고요합니다⁠.⁠”

“⁠선배⁠, 강원도는 중계할 게 없잖아요⁠.⁠”

경기 남부 자리에 앉은 강민지가 의자 너머로 말했다⁠. 민지 모니터에는 동욱이 사흘 전까지 보던 지도가 떠 있었다⁠.

“⁠중계할 게 없는 것도 중계야⁠. 고요도 소식이야⁠.⁠”

새벽 네 시 정각⁠, 정선 북평면의 점 하나가 집을 나와 이십 미터 떨어진 축사로 갔다⁠. 정우가 몸을 바로 세웠다⁠.

“⁠정선 북평⁠, 한 점 출발했습니다⁠! 목적지 우사⁠! 소 밥 주러 가십니다⁠!⁠”

조장 박영수가 컵라면 국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다⁠.

동욱은 웃지 않았다⁠. 한 시 십 분부터 경기 남부 모니터는 보지 않으려고 강원 지도만 보았다⁠. 한 시 십이 분⁠, 민지가 의자를 굴려 와 동욱 모니터 테두리에 노란 포스트잇을 붙이고 굴러갔다⁠. 「⁠편의점 아저씨 · 01⁠:11 · 9초 · 경보 아님⁠」⁠. 글씨 끝에 작은 하트가 그려져 있다가 볼펜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영수가 컵라면을 내려놓고 포스트잇을 보았다⁠.

“⁠그거 보안 문서다⁠.⁠”

“⁠포스트잇이에요⁠, 조장님⁠.⁠”

“⁠포스트잇도 보안 문서다⁠.⁠”

영수는 포스트잇을 떼지 않았다⁠.

*

세 해 전 겨울⁠, 2025년 1월 14일 새벽에 동욱은 서울 동대문 중앙관제센터 수원 구역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파가 왔고⁠, 고층 아파트 단지마다 점이 튀었다⁠. 오른쪽 모니터의 빨간 창이 접히기도 전에 다음 빨간 창이 떴다⁠. 밤 열두 시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동욱 자리에만 경보가 이백열네 번 울렸다⁠. 경보마다 삼 분 안에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 자고 있었다⁠. 자다 깬 남자들이 욕을 했다⁠.

새벽 세 시 사십 분⁠, 동욱은 영통 아파트 단지의 경보 하나를 처리하고 있었다⁠. 영통 점은 열한 번째로 같은 자리에서 튀는 중이었다⁠. 수화기 너머 남자가 잠긴 목소리로 집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남자가 욕을 끝내기 전에 권선동 빌라에서 다른 빨간 창이 떴다⁠. 동욱은 영수가 한 말을 따랐다⁠. 앞에 뜬 것부터 처리해⁠. 영통을 닫고 권선을 열었을 때 십이 분이 지나 있었다⁠. 권선동 점은 피해자 김선희의 빌라 현관 안에 있었다⁠.

동욱은 피해자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김선희의 휴대전화가 계단참 바닥에서 울리고 있었다고 했다⁠. 신속수사팀이 도착했을 때 김선희는 3층과 4층 사이 계단참에 앉아 있었다⁠. 전남편이 계단에서 밀었고⁠, 왼쪽 팔이 두 군데 부러졌다⁠. 동욱은 이후 석 달 동안 자기 자리의 경보 기록을 한 줄씩 다시 읽었다⁠. 같은 자리에서 몇 초 만에 들어왔다 나가는 진입이 대부분이었다⁠. 5월에 동욱은 건의서를 썼다⁠. 「⁠접근금지 구역에 십 초 미만 머문 진입은 오차 의심으로 분류하고⁠, 경보와 전화 대상에서 뺀다⁠. 남는 시간을 실제 경보에 쓴다⁠.⁠」 센터장이 결재했고⁠, 전국 관제실이 같은 기준을 쓰게 되었다⁠. 이후로 동욱 자리에서 경보는 하룻밤 서른 번 안팎으로 줄었다⁠. 진짜 경보를 늦게 받은 밤은 다시 없었다⁠.

*

4월 4일 화요일 오전 열 시⁠, 안양 보호관찰소 3층 사무실은 전화벨이 세 군데에서 동시에 울렸다⁠. 윤미숙은 수화기 하나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동욱에게 의자를 가리켰다⁠. 책상 위 서류철이 스물한 권이었다⁠. 통화를 끝낸 미숙이 돋보기를 머리 위로 올렸다⁠.

“⁠네⁠, 김형수 씨⁠. 배터리 삼십 퍼센트면 지금 꽂으세요⁠. 지금요⁠. 오후 두 시 면담 늦으시면 안 돼요⁠. 네⁠, 네⁠. 들어가세요⁠.⁠”

미숙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른 수화기를 들었다가⁠, 화면에 뜬 번호를 보고 도로 내려놓았다⁠.

“⁠하 주임님⁠, 공문 받으셨죠⁠. 그런데 여기 오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관제요원이 보호관찰관을 만나는 건 절차에 있습니다⁠.⁠”

“⁠보호관찰관을 만나는 건요⁠. 대상자 직장 앞에 서는 건 없고요⁠.⁠”

미숙은 박하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자⁠, 봅시다⁠. 배성진⁠. 출소하고 넉 달 동안 이력서 마흔한 장⁠. 전자발찌 찼다고 하면 다 떨어졌어요⁠. 밝은마트 사장님이 처음이에요⁠. 받아 준 사람이⁠. 근무지 신청 들어왔을 때 내가 지도에 자를 대고 쟀어요⁠. 계산대 백일 미터⁠. 선 밖이에요⁠.⁠”

“⁠문 앞 수거함은 구십구 미터입니다⁠. 밤마다 한 시 십일 분에 나와서 피해자 창을 봅니다⁠.⁠”

“⁠쓰레기 버리는 거 봤어요⁠. 그게 생업 동선이에요⁠. 작년에 오토바이로 배달하던 대상자 하나는 하루에 접근 경보가 육십 번 울렸어요⁠. 피해자 동네를 지나가야 일이 됐거든요⁠. 경찰도 생업 동선이라고 봤어요⁠.⁠”

“⁠그 피해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미숙의 입안에서 사탕이 이에 부딪쳐 딸깍 소리를 냈다⁠.

“⁠이사 갔어요⁠.⁠”

“⁠소영 씨는 이사 안 간다고 합니다⁠.⁠”

“⁠그럼 하 주임님은 뭘 원하세요⁠? 위반도 없는 사람 일을 뺏어요⁠? 뺏으면 그 사람 하루 스물네 시간이 통째로 비어요⁠. 나는 이 일 스무 해 했어요⁠. 일 잃은 대상자가 그 스물네 시간을 어디서 보내는지 알아요⁠. 피해자 집 앞에서 보내요⁠. 백 미터 밖 편의점 계산대가 피해자 집 앞 계단보다 나아요⁠.⁠”

미숙의 말은 빨랐고⁠, 맞았다⁠. 동욱은 맞는 말 사이로 끼어들 자리를 찾지 못했다⁠. 미숙이 덧붙였다⁠.

“⁠그리고 피해자한테 번호 준 거⁠, 그거 한 번 더 하시면 이번엔 주임님이 신고당해요⁠. 배성진이 벌써 그 얘기 했어요⁠.⁠”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 사람은 십 초를 압니다⁠. 밤마다 구 초에서 나갑니다⁠. 어떻게 압니까⁠?⁠”

미숙은 돋보기를 다시 코로 내렸다⁠. 서류철 맨 위 성진의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점 튀는 거야 부착자들끼리 다 알아요⁠. 출소자들 단톡방도 있고요⁠. 관제센터만 아는 줄 아세요⁠?⁠”

미숙의 손가락이 서류를 넘기다 같은 장을 두 번 넘겼다⁠.

*

같은 날 오후 한 시⁠, 과천 별양동 원룸에서 동욱은 암막 커튼을 치고 누웠다가 휴대전화 진동에 눈을 떴다⁠. 대구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침 아홉 시에 퇴근한다는 것을 열두 해째 잊지 않았고⁠, 열두 해째 오후 한 시에 전화했다⁠.

“⁠밥은⁠?⁠”

“⁠먹었어요⁠.⁠”

“⁠뭐 먹었는데⁠.⁠”

“⁠김밥⁠.⁠”

“⁠또 김밥⁠. 밤에 일하는 사람은 밥을 먹어야 돼⁠. 니 아부지도 밤에 택시 몰 때 김밥만 먹다가 위 버렸어⁠.⁠”

어머니는 동욱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나쁜 사람들 지키는 일이라고만 알았다⁠. 동욱은 지키는 것이 나쁜 사람인지 나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천장을 보았다⁠. 눈을 감으면 노란 창이 떴다가 접혔다⁠.

*

4월 5일 수요일 새벽 한 시 오 분⁠, 쉬는 날이었다⁠. 동욱은 비산동 큰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밝은마트에서 큰길을 건너 이십 미터⁠, 청우빌라에서 백이십 미터가 넘는 자리였다⁠. 누구의 선 안도 아니었다⁠. 정류장 광고판 불빛이 남색 점퍼 소매를 파랗게 물들였다⁠. 골목 안 벚나무는 꽃이 한창이었다⁠. 편의점 불빛을 받은 꽃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몇 장씩 큰길까지 날아왔다⁠. 막차가 끊긴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열두 시 오십 분에 순찰차 한 대가 골목 입구에서 속도를 줄였다가 그대로 지나갔다⁠. 밝은마트 유리문 안에서는 성진이 삼각김밥 진열대 앞줄을 손바닥으로 쓸어 맞추고 있었다⁠. 큰길 건너에서 보아도 손이 같은 박자로 움직였다⁠. 진열대를 다 맞춘 성진은 계산대 포스기 옆으로 돌아가 섰고⁠, 고개를 골목 위로 든 채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한 시 십일 분⁠, 유리문이 열렸다⁠. 마른 남자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상자 세 장을 옆구리에 낀 채 나왔다⁠. 화면에서 점으로만 보던 사람이 처음으로 사람 크기였다⁠. 동욱은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남자는 통화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입술이 일정한 박자로 움직였다⁠. 하나⁠, 둘⁠, 셋⁠. 동욱은 소리 없이 박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골목 위를 보았다⁠. 일곱⁠, 여덟⁠. 상자를 수거함에 밀어 넣었다⁠. 아홉⁠. 남자는 돌아서 문턱을 넘었다⁠. 관제실 화면이었다면 노란 창이 떴다가 접혔을 것이었다⁠.

골목 위 2층 왼쪽 창은 어두웠다⁠. 블라인드 아래에서 두 번째 칸만 가늘게 벌어져 있었다⁠.

휴대전화가 점퍼 주머니에서 짧게 떨렸다⁠. 영수증 뒷면에 적어 준 번호로 처음 온 문자였다⁠.

「⁠지금 큰길 건너편 정류장에 계시죠⁠. 보여요⁠.⁠」

동욱은 2층 창을 올려다보았다⁠. 블라인드 두 번째 칸이 조금 더 벌어졌다⁠. 미숙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한 번 더 하시면 이번엔 주임님이 신고당해요⁠. 동욱은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답을 쳤다⁠. 관제실 문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숫자였다⁠.

「⁠그 사람은 십 초를 압니다⁠. 경보는 십 초부터 울립니다⁠. 그래서 구 초에 나갑니다⁠.⁠」

답이 바로 왔다⁠.

「⁠알아요⁠. 저도 세요⁠. 아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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