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11자)

지키는 사람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4월 1일 토요일 밤 열 시 삼십 분⁠, 배성진은 안양 박달동 반지하 방에서 왼쪽 발목의 충전 케이블을 뽑았다⁠. 검은 장치가 복숭아뼈 위에 손바닥 반만 한 크기로 붙어 있었다⁠. 하루 두 시간씩 벽 콘센트에 발목을 대고 앉아 있어야 했다⁠. 충전하는 동안 성진은 휴대전화로 청우빌라 앞 골목 거리뷰를 열어 놓고 보았다⁠. 사진은 작년 여름에 찍힌 것이라 골목 전봇대에 매미 우는 철의 그늘이 짙었다⁠.

“⁠성진아⁠, 반찬 싸 놨다⁠. 멸치볶음⁠.⁠”

어머니 한경자가 부엌 쪽문에 기대 서서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금요일에 투석을 받고 온 팔뚝에 반창고가 두 장 붙어 있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전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평촌 병원에 갔다⁠. 성진의 월급 백십만 원 가운데 사십만 원이 반지하 월세였고⁠, 나머지 대부분은 투석 날 택시비와 약값이었다⁠.

“⁠엄마⁠, 나 이번엔 진짜 달라졌어⁠. 선 안 넘어⁠. 백 미터 딱 지켜⁠.⁠”

“⁠약사님한테는 다시는 가지 마라⁠. 엄마 소원이다⁠.⁠”

“⁠안 가⁠. 나는 그냥 일만 해⁠.⁠”

경자는 아들의 얼굴을 한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은 운동화 끈을 묶으며 생각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성진은 가지 않았다⁠.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판결문은 2025년 8월부터 2026년 3월까지 여덟 달을 스토킹이라고 불렀다⁠. 성진은 같은 여덟 달을 기다림이라고 불렀다⁠. 약국 유리문 밖에서 퇴근을 기다렸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고⁠, 201호 앞 계단참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람을 벌하는 법이 있다는 것을 성진은 감옥에서 일 년 반 동안 배웠다⁠. 배운 것과 믿는 것은 달랐다⁠.

*

밤 열 시 오십 분⁠, 밝은마트 비산점 유리문의 종이 딸랑 울렸다⁠. 점주 이정호가 계산대 뒤에서 일어나며 하품을 했다⁠.

“⁠왔냐⁠. 오늘 담배 들어왔어⁠. 에쎄 체인지 정리하고⁠, 삼각김밥 유통기한 열두 시 거 빼고⁠. 아 그리고⁠, 이거 좀 봐 봐⁠.⁠”

정호가 계산대 아래 방범 카메라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낮 화면이 거꾸로 감겼다⁠. 오전 열 시 이십육 분⁠, 유리문 밖 분리수거함 옆에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남색 점퍼에 목에 파란 줄⁠. 남자는 한참 동안 골목 위를 올려다보았다⁠. 화면 위쪽에서 패딩을 걸친 여자가 골목을 걸어 내려왔다⁠.

성진은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소영이었다⁠. 잠옷 바지 위에 패딩을 입었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었다⁠. 소영이 골목을 아래로 걸어 내려오는 것을 성진은 두 해 반 만에 처음 보았다⁠. 계단길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알았다⁠.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밤에 알았다⁠. 열 시 사십 분이면 켜지던 201호 불이 열한 시 이 분에야 켜졌다⁠. 이십 분 넘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약사님은 이십 분 동안 성진을 생각하며 걷는다⁠. 성진은 그렇게 읽었다⁠.

화면 속 소영은 키 큰 남자 앞에 멈춰 섰고⁠,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남자가 종이에 무엇을 적어 돌려주었다⁠.

“⁠저 위 빌라 여자 맞지⁠? 네 사건 그 여자⁠.⁠”

“⁠약사님이요⁠.⁠”

“⁠약사님이든 뭐든⁠. 웬 남자가 아침부터 우리 가게 앞에 버티고 서서 위를 쳐다보는데 기분이 좋겠냐⁠. 너 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없어요⁠. 저 선 밖에 있어요⁠, 사장님⁠.⁠”

성진은 모니터를 처음 장면으로 되감아 남자의 목을 확대했다⁠. 파란 줄 끝에 흰 카드가 흔들렸다⁠. 글씨는 뭉개져 있었지만 모양은 알았다⁠. 출소하던 날 보호관찰소에서 위치추적관제센터 안내문을 받을 때 같은 카드를 목에 건 사람을 보았다⁠. 성진은 모니터를 끄고 삼각김밥 진열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이 빨라졌다⁠. 유통기한 열두 시짜리를 빼서 바구니에 던질 때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약사님이 남자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이 년 반 동안 성진에게는 한 번도 내밀지 않은 손이었다⁠.

*

밤 열한 시 사십칠 분⁠, 201호 불이 꺼졌다⁠. 계산대에 서면 유리문 너머로 골목이 곧게 올라가 청우빌라 2층 왼쪽 창에서 끝났다⁠. 중간쯤 벚나무 가지가 골목 위로 내려와 있었지만 창을 가리지는 않았다⁠. 성진은 출근 첫날 밤 계산대 자리를 고를 때 그것부터 확인했다⁠. 포스기 옆에 서면 창이 보였고⁠, 담배 진열대 앞에 서면 안 보였다⁠. 성진은 손님이 담배를 달라고 할 때만 진열대 앞으로 갔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성진은 머릿속으로 약사님을 정리했다⁠. 퇴근은 열 시 오 분이었다⁠. 버스는 9번이었다가 6번 마을버스로 바뀌었다⁠. 편의점에서는 바나나우유와 2리터 생수 묶음을 샀다⁠. 일요일 밤 열한 시에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었다⁠. 경차는 회색이었다⁠. 차를 팔기 전 마지막으로 세운 자리는 평촌 공영주차장 지하 2층 기둥 옆이었다⁠. 성진은 범퍼 안쪽에 붙인 작은 상자로 기둥 옆 자리를 알았다⁠. 떼어 냈을 때는 화가 났고⁠, 같은 자리에 다시 붙일 때는 마음이 놓였다⁠. 법정에서 검사는 상자를 위치추적기라고 불렀고⁠, 위치정보법 위반이라는 말을 붙였다⁠. 성진에게 상자는 약사님이 무사히 집에 들어갔다는 표시였다⁠.

성진은 언젠가 약사님에게 할 말도 정리해 두었다⁠. 저는 무서우시라고 한 게 아니에요⁠. 지켜 드리려고 한 거예요⁠. 혼자 사시잖아요⁠. 골목도 어둡고요⁠. 말은 여러 번 고쳤다⁠. 고칠 때마다 약사님의 얼굴은 화난 얼굴에서 놀란 얼굴로⁠, 놀란 얼굴에서 알아들은 얼굴로 바뀌었다⁠. 법정에서 약사님은 가림막 뒤에 앉아 있었고⁠, 성진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가림막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는 판사에게 말했다⁠. 퇴근길을 열네 번 바꿨고⁠, 도어락 번호를 일곱 번 바꿨고⁠, 차를 팔았다고⁠. 성진은 가림막 너머의 목소리를 아직 오해가 덜 풀린 목소리로 기억했다⁠.

*

새벽 한 시 십 분⁠, 성진은 보랏빛 남색 조끼의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접은 상자 세 장을 옆구리에 끼고 유리문 앞에서 멈췄다⁠. 유리문 바깥 문턱에서 분리수거함까지 한 걸음이었다⁠. 출근 첫날 밤 성진은 골목을 줄자 대신 걸음으로 쟀다⁠. 청우빌라 정문까지 큰 걸음으로 백삼십일 걸음⁠. 문턱이 백 미터였고⁠, 수거함 앞이 구십구 미터였다⁠. 관제센터 화면에서 문턱 너머 한 걸음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성진은 알았다⁠.

한 시 십일 분⁠, 성진은 휴대전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유리문을 밀었다⁠. 한 걸음⁠. 발바닥이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무엇이 발바닥에서 무릎까지 올라왔다⁠. 감옥 운동장에서 벽에 이마를 댈 때와 같은 서늘함이었고⁠, 그보다 따뜻했다⁠. 선 안이었다⁠. 약사님의 백 미터 안⁠. 성진은 입술만 움직여 셌다⁠. 하나⁠, 둘⁠. 고개를 들었다⁠. 2층 왼쪽 창⁠, 블라인드 아래에서 두 번째 칸이 손가락 하나만큼 벌어져 있었다⁠. 깨어 있다⁠. 성진은 알았다⁠. 이 년 반 전에도 한 시 십일 분에 문자를 보내면 201호 불이 켜졌다⁠. 문자가 끊긴 뒤에도 약사님은 같은 시각에 깨어 있었다⁠. 약속이었다⁠. 말로 한 적은 없지만 둘 다 지키는 약속⁠.

“⁠여보세요⁠… 성진이냐⁠?⁠”

“⁠엄마⁠, 약 먹었어⁠? 나 쓰레기 버리러 나왔어⁠.⁠”

일곱⁠, 여덟⁠. 성진은 상자를 수거함에 밀어 넣었다⁠. 아홉⁠. 몸을 돌려 문턱을 넘었다⁠. 어머니는 먹었다고⁠, 너도 밥 챙겨 먹으라고 했다⁠. 성진은 계산대 뒤로 돌아가 서서 숨을 골랐다⁠. 귀가 뜨거웠다⁠.

한 시 십삼 분에 다른 번호가 떴다⁠. 성진은 두 번 울리기를 기다렸다가 받았다⁠.

“⁠위치추적 관제센터 하동욱 주임입니다⁠. 방금 구역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사흘째 듣는 목소리였다⁠. 낮고⁠, 끝이 조금 갈라졌다⁠. 성진은 꺼 둔 모니터의 검은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오전 열 시 이십육 분의 키 큰 남자도 같은 목소리일 것이었다⁠.

“⁠주임님⁠, 어제 아침에 우리 가게 오셨죠⁠?⁠”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분리수거함 옆에 서서 위를 한참 보시던데요⁠. 약사님이랑 얘기도 하시고⁠. 약사님이 종이도 드리고⁠.⁠”

“⁠배성진 씨⁠, 지금은 진입 건으로⁠—⁠”

“⁠주임님⁠, 그거 괜찮은 거예요⁠? 관제센터 직원이 제 직장 앞에 와서⁠, 피해자를 만나서⁠, 번호 주고받고⁠. 저는 백 미터 밖에서 일만 하는데요⁠.⁠”

성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수고하시라고 말했다⁠. 끊고 나서도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 성진은 자기에게 말했다⁠. 화는 약사님이 오해할 때 나는 것이었다⁠. 오해는 풀면 되었다⁠. 남자는 오해의 일부였다⁠.

*

4월 3일 월요일 오전 열 시⁠, 안양 보호관찰소 3층 면담실에서 성진은 윤미숙 앞에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점주에게 받은 방범 카메라 사진 두 장이 떠 있었다⁠. 미숙이 돋보기를 코에 걸고 사진을 넓혔다⁠. 책상에는 전자감독 대상자 서류철이 스물한 권 쌓여 있었고⁠, 맨 위가 성진의 것이었다⁠.

“⁠토요일 아침이에요⁠. 이 사람이 관제센터 직원이에요⁠. 밤마다 한 시쯤 저한테 전화해요⁠. 경보도 안 울렸는데요⁠. 어제는 엄마가 관제센터에 전화했어요⁠. 아들 괴롭히지 말라고⁠.⁠”

“⁠어머님이 저한테도 전화하셨어요⁠. 일곱 시 반에⁠.⁠”

미숙이 사진을 내려놓고 성진을 보았다⁠. 쉰한 살의 보호관찰관은 짧은 파마머리에 연두색 카디건을 입었고⁠, 카디건 주머니에서 박하사탕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출소한 날 성진에게 이력서 쓰는 법을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성진이 넉 달 동안 마흔한 군데에 이력서를 냈다가 떨어질 때마다 같은 사탕을 하나씩 건넸다⁠.

“⁠성진 씨⁠, 밤에 문 앞에 나가는 건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죠⁠?⁠”

“⁠점주님이 한 시에 꼭 비우라고 하세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알아요⁠.⁠”

“⁠저 이번엔 달라졌어요⁠, 선생님⁠. 선 안 넘어요⁠. 일 년 반 살고 나와서 처음 붙은 일이에요⁠. 근데 관제센터 사람이 가게 앞에 서 있으면 사장님이 저를 어떻게 봐요⁠? 이러다 잘려요⁠.⁠”

성진은 목소리를 떨었다⁠. 떨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떨면 미숙이 사탕 봉지를 만진다는 것을 알았고⁠, 미숙은 정말로 사탕 봉지를 만졌다⁠. 미숙은 한숨을 쉬고 볼펜을 집었다⁠.

“⁠관제센터에 공문 보낼게요⁠. 대상자 생업 동선에 관제요원이 나오는 건 절차에 없어요⁠. 성진 씨 같은 사람이 일을 잃으면 하루 스물네 시간이 통째로 비어요⁠. 나는 그 스물네 시간이 제일 무서워요⁠. 대신 성진 씨도 약속해요⁠. 문 앞 한 걸음⁠, 그 이상은 안 돼요⁠.⁠”

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스물네 시간이 비면 자기가 어디로 갈지⁠, 성진은 미숙보다 잘 알았다⁠.

“⁠약속해요⁠.⁠”

성진은 약속이라는 말을 입에 굴려 보았다⁠. 약사님과의 약속은 한 시 십일 분이었다⁠. 미숙과의 약속은 한 걸음이었다⁠. 둘은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

4월 4일 화요일 새벽 한 시 십일 분⁠, 성진은 상자 세 장을 들고 문턱을 넘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고⁠, 성진은 아홉까지 셌다⁠. 2층 블라인드 두 번째 칸이 벌어져 있었다⁠. 성진은 수거함에 상자를 넣고 계산대로 돌아가 휴대전화를 계산대 위에 엎어 놓았다⁠.

한 시 십이 분⁠. 한 시 십삼 분⁠. 한 시 이십 분⁠.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성진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화면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없었다⁠. 관제센터 번호는 어제도⁠, 오늘도 뜨지 않았다⁠. 성진은 유리문 너머 골목 위를 올려다보았다⁠. 201호 창은 어두웠고⁠, 블라인드 두 번째 칸은 아직 벌어져 있었다⁠. 이제 둘만 남았다고 성진은 생각했다⁠. 냉장고가 웅웅 돌았고⁠, 성진은 삼각김밥 진열대의 앞줄을 손바닥으로 반듯하게 쓸어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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