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696자)
직접적인 위협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3월 31일 새벽 한 시 십 분, 최소영은 안양 비산동 청우빌라 201호 침대에서 알람 없이 눈을 떴다. 몸이 먼저 깼다. 귀 뒤에서 맥이 뛰었고, 목덜미가 베개에서 떨어지는 순간 서늘했다. 소영은 불을 켜지 않고 머리맡의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밝기를 가장 낮춘 화면에 「스토킹 가해자 위치 알림」 앱이 떠 있었다. 지도 한가운데 소영의 집이 파란 점이었고, 골목 아래 끝에 빨간 점이 붙어 있었다. 「가해자 위치 · 밝은마트 비산점 · 피해자와의 거리 약 100m」.
여덟 달 동안 문자는 한 시 십일 분에 왔다. 번호를 차단하면 다음 날 다른 번호로 왔고, 새 번호를 차단하면 은행 앱에 일 원이 들어왔다. 받는 사람 메모 칸에 「잘자요」가 찍혀 있었다. 감옥에 간 뒤로 문자는 끊겼는데, 몸은 시각을 잊지 않았다. 소영은 이불을 밀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으로 창가까지 갔다. 창유리 바로 안에 흰 블라인드가, 블라인드 안에 흰 레이스 커튼이 겹쳐 내려와 있었다. 소영은 레이스 자락을 옆으로 밀었다. 블라인드 날개는 아래에서 두 번째 칸만 손가락 하나만큼 벌려 두었다. 두 번째 칸에 눈을 대면 골목이 끝까지 보였다.
골목은 폭이 사 미터가 안 됐다. 주차된 경차 두 대와 전봇대 세 개, 다세대 대문 여섯 개를 지나 골목이 큰길과 만나는 모퉁이에 밝은마트의 하얀 불빛이 고여 있었다. 셋째 전봇대 옆 담장 너머로 벚나무 한 그루가 골목 위까지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사흘 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편의점 불빛이 닿는 가지 끝마다 흰 꽃송이가 떠 있었다. 불빛은 유리문에서 흘러나와 아스팔트를 덮고, 반사된 빛 한 겹이 블라인드 날개에 얇게 얹혀 있었다. 소영은 이 불빛을 석 주째 밤마다 보았다. 불을 다 끈 방에서도 블라인드 날개 끝이 하얗게 빛났다.
한 시 십일 분, 유리문이 열렸다.
보랏빛 도는 남색 편의점 조끼를 입은 마른 남자가 납작하게 접은 상자 세 장을 들고 나왔다. 문 앞 분리수거함까지 한 걸음이었다. 남자는 상자를 수거함에 넣지 않았다. 상자를 옆구리에 낀 채 고개를 들었다. 거리는 구십구 미터였고,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의 각도만 보였다. 고개는 2층 왼쪽 창, 블라인드 두 번째 칸에 맞춰져 있었다. 소영은 숨을 쉬지 않고 손목시계 초침을 보았다. 하나, 둘, 셋. 손목이 떨려서 초침이 흔들렸다. 일곱, 여덟, 아홉. 남자는 상자를 수거함에 넣고 몸을 돌렸다. 유리문이 닫혔다. 구 초였다. 어제도 구 초였고, 그제도 구 초였다.
*
소영은 손가락이 미끄러져 112를 두 번 잘못 눌렀다. 세 번째에 신호가 갔다.
“스토킹 피해자예요. 출소한 가해자가 우리 집 앞 편의점에서 일하는데, 지금 나와서 우리 집을 봤어요. 접근금지 백 미터예요. 전자발찌 차고 있어요.”
상황실 요원은 주소를 받고, 지금 집 안에 있는지, 문은 잠겼는지 물었다. 소영은 현관 도어락의 빨간 불을 보며 잠겼다고 대답했다. 십구 분 뒤 초인종이 울렸다. 소영은 인터폰 화면으로 경찰 제복 두 벌을 확인하고도 현관문 걸쇠를 건 채 문을 반만 열었다. 나이 든 경위와 젊은 순경이었다. 경위가 수첩을 펴고 볼펜 끝으로 머리를 긁었다.
“관제센터에 확인해 봤는데요, 위반 경보는 없었다고 하네요. 그 직원분이 분리수거하러 잠깐 나온 거고요. 혹시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죠? 말을 걸었다거나, 이쪽으로 다가왔다거나.”
“우리 집을 봤어요. 한 시 십일 분에요. 그 사람이 여덟 달 동안 문자 보내던 시각이에요.”
“네, 그 사건은 기록 보면 나오고요. 다만 지금은 선 밖에서 일하는 거라서, 보는 것만으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마땅치가 않아요. 무서우시면 신변보호 다시 신청하세요. 스마트워치 나오고, 저희가 순찰 돌게요.”
소영은 스마트워치를 이미 차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왼 손목의 검은 시계는 출소 소식을 들은 작년 10월에 다시 받은 것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112로 바로 신고가 간다고 했다. 버튼을 누를 일이 생기기 전까지 시계는 아무것도 막지 않았다. 경위는 수고하시라고, 문 잘 잠그시라고 했다. 젊은 순경은 내내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검은 배낭을 보고 있었다.
경찰이 내려간 뒤 소영은 다시 무릎으로 창가에 갔다. 순찰차는 골목을 내려가 밝은마트 앞에 멈췄다. 경위가 내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계산대 너머에서 마른 남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경위가 냉장고에서 캔커피 두 개를 꺼내 계산대에 놓았다. 남자가 바코드를 찍고 무슨 말을 했고, 경위가 웃었다. 소영은 경위의 웃음을 소리 없이 보았다. 남자는 이제 알았다. 십구 분 전에 누가 신고했는지, 신고해도 무엇이 달라지는지. 블라인드 날개를 잡은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소영은 앱을 보며 새벽 세 시 오 분까지 깨어 있었다. 빨간 점이 골목 반대편 큰길로 멀어지고 「피해자와의 거리 약 1.2km」가 뜨자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으면 고개의 각도가 떠올랐다. 내가 과민한 걸까.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사람이 고개를 든 것뿐인데. 생각이 거기까지 가면 몸이 먼저 아니라고 했다. 심장이 귀 안쪽에서 쿵쿵 울렸다.
새벽 두 시 사십 분에는 신고한 것을 후회했다. 경위가 캔커피를 사며 무슨 말을 했을지 생각했다.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을까. 위층 여자가 또 전화했다고 했을까. 두 해 전 겨울, 처음 신고한 다음 날 아침 현관 손잡이에 새봄약국 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봉투 안에는 박카스 한 병과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신고했네요. 괜찮아요.」 신고하면 무엇이 돌아오는지 소영의 몸은 봉투를 뗀 아침에 배웠다. 무엇이 돌아오지 않는지는 이후 여덟 달 동안 배웠다.
*
3월 31일 오후 열두 시 이십 분, 소영은 현관 신발장 앞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꿨다. 출소 소식을 들은 뒤로 네 번째였다. 왼손바닥으로 번호판을 가리고 오른손 검지로 여섯 자리를 눌렀다. 새 번호는 날짜도 생일도 아닌 숫자로 골랐다. 문을 닫기 전에 신발장 위 검은 배낭의 지퍼를 한 번 열어 보았다. 여권, 통장, 속옷 세 벌, 휴대전화 충전기, 대전 엄마 집 열쇠. 지퍼를 다시 닫았다. 이사는 안 간다고 경찰에게도, 엄마에게도, 판사에게도 말했다. 배낭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빌라 계단을 내려갈 때는 열쇠 꾸러미를 주먹에 쥐고 열쇠 하나를 손가락 사이로 내밀었다. 정문을 나서 골목 아래로 가지 않고 위로 꺾었다. 골목 위 끝에서 계단길 백여덟 칸을 올라가면 언덕 너머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아래로 내려가 큰길에서 타면 칠 분 걸리는 길이 위로 돌면 이십오 분이었다. 아래로 가면 밝은마트 유리문 앞을 지나야 했다. 낮에는 성진이 없었다. 그래도 유리문 앞을 지나면 문 앞 분리수거함과, 수거함 옆에 서는 발 크기가 보였다.
평촌 학원가 새봄약국에 도착하면 먼저 택배부터 찾았다. 집으로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상자는 약국 주소로, 받는 사람은 엄마 이름 박정란으로 왔다. 상자를 열기 전에 커터 칼로 송장을 긁어 이름과 주소를 지웠고, 긁은 송장은 잘게 찢어 약국 폐기함에 넣었다. 같이 일하는 약사 지은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았다가, 이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얼굴이 묻는 얼굴보다 오래 남았다.
오후 내내 소영은 처방전을 받고, 약을 세고, 복약 안내를 했다. 하루 세 번, 식후 삼십 분, 졸릴 수 있으니 운전은 피하세요.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홉 시 오십 분에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어깨가 먼저 움츠러들었다. 이 년 반 전 마흔하루 동안, 같은 남자가 아홉 시 오십 분에 들어와 박카스 한 병을 계산대에 올렸다. 마흔하루째 되는 날 남자는 박카스 대신 쪽지를 내밀었다. 「퇴근 열 시 오 분.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릴게요.」 소영은 쪽지를 받은 날 처음으로 퇴근길을 바꿨다. 바꾼 길에서도 남자는 기다렸다.
2025년 11월에는 단골 정비소 사장이 소영의 경차 뒤 범퍼 안쪽에서 성냥갑만 한 위치추적기를 떼어 냈다. 떼어 낸 지 두 주 만에 같은 자리에 또 붙어 있었다. 경찰은 그때도 물었다.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죠? 소영은 차를 팔았다.
밤 열 시 이십 분, 소영은 계단길 백여덟 칸을 휴대전화 손전등으로 비추며 내려갔다. 언덕 위 가로등은 세 개 가운데 하나가 나가 있었다. 계단 중간쯤에서 엄마 전화가 왔다. 대전 집 텔레비전 소리가 같이 들렸다.
“소영아, 그냥 내려와. 엄마 방 비워 놨어. 약국이야 대전에도 많잖아.”
“내가 왜 가. 잘못한 사람이 가야지.”
“잘못한 사람은 안 가니까 하는 말이지.”
소영은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셌다. 예순하나, 예순둘. 엄마는 밥은 먹었는지, 성진이 아직 거기 있는지, 경찰은 뭐라는지 차례로 물었다. 밥은 바나나 반 개를 먹었다. 성진은 열 시 오십 분에 출근한다. 경찰은 선 밖이라고 했다. 소영은 셋 가운데 첫 번째만 말했다. 계단 아래에 닿자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골목 아래 끝 밝은마트 간판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직 열 시 오십 분이 아니었다. 소영은 엄마에게 집에 다 왔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빌라 정문 앞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길 위에는 꺼진 가로등과 켜진 가로등뿐이었다. 정문 번호판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비밀번호를 누르고, 2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계단참에서 두 번 멈춰 아래층 발소리를 들었다. 201호 문을 닫고 걸쇠를 건 다음에야 패딩 주머니 속 열쇠를 놓았다. 손바닥에 열쇠 톱니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
4월 1일 토요일 오전 열 시 이십 분, 소영은 새벽 세 시 넘어 든 잠에서 깨어 습관처럼 블라인드 두 번째 칸에 눈을 댔다. 햇빛이 골목 아스팔트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셋째 전봇대 옆 벚나무는 밤사이 꽃을 더 열어, 가지가 담장 위로 하얗게 부풀어 있었다. 밝은마트 유리문 앞, 분리수거함 옆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키가 컸고 어깨가 구부정했다. 남색 점퍼에 회색 후드티를 입었고, 목에 파란 줄을 늘어뜨렸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2층 창을 보고 있었다. 성진이 서는 자리였다. 고개의 각도도 같았다.
소영은 휴대전화를 집어 앱을 열었다. 빨간 점은 안양 박달동에 있었다. 「피해자와의 거리 약 2.6km」. 성진이 아니었다. 그러면 누구인가. 성진이 보낸 사람인가. 성진이 감옥에서 사귄 사람인가. 손가락 끝이 다시 차가워지다가, 이번에는 차가운 채로 멈추지 않고 뜨거워졌다. 석 주 동안 밤마다 같은 자리를 올려다보는 남자를 보았다. 이제는 낮에도 누군가 같은 자리에 서서 자기 창을 보고 있었다.
소영은 잠옷 위에 패딩을 걸치고, 왼 손목의 스마트워치 버튼에 엄지를 얹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정문을 나서 처음으로 골목을 아래로 걸었다. 경차 두 대, 전봇대 세 개, 대문 여섯 개. 걸음마다 남자가 커졌다. 남자의 목에 걸린 파란 줄 끝에 출입증이 달려 있었다. 「법무부 위치추적관제센터 · 하동욱」. 소영은 분리수거함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멈췄다.
“누구세요. 왜 거기 서서 우리 집을 봐요?”
남자가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쌍꺼풀 없는 눈이 밤샘으로 벌겠다.
“관제센터에서 일합니다. 배성진 씨 점을 보는 사람입니다.”
“점을 보는 사람이 왜 여기 와 있어요?”
“밤마다 한 시 십일 분에 여기까지 나옵니다. 화면으로는 구 초밖에 안 돼서, 직접 보려고 왔습니다.”
소영은 남자의 발을 보았다. 남자의 운동화 앞코가 수거함 옆, 성진이 밤마다 서는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관제센터에서 사람이 와서 여기 서 있을 정도면요. 그 사람은 왜 안 잡아가요?”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소영은 패딩 주머니에서 약국 영수증 한 장과 볼펜을 꺼내 남자 앞에 내밀었다.
“번호 적어요. 이름도. 다음에 또 여기 서 있으면, 그땐 당신을 신고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