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37자)

구십구 미터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3월 30일 밤 아홉 시⁠, 하동욱이 출입증을 찍고 들어선 과천 관제실의 벽 한 면은 경기도였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 붙인 화면에 시와 군의 경계가 가는 회색 선으로 그어져 있었고⁠, 선 사이마다 초록 점이 떠 있었다⁠. 점 하나가 발목에 전자장치를 찬 사람 하나였다⁠. 점이 노랗게 깜박이면 사람이 볼 일이고⁠, 빨갛게 깜박이며 경보음이 세 번 울리면 삼 분 안에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서울 동대문의 중앙관제센터가 경기 남부를 떼어 과천에 새 관제실을 연 지 한 해째였다⁠.

밤 아홉 시⁠, 주간조 요원이 헤드셋을 벗으며 일어났다⁠.

“⁠인수인계합니다⁠. 수원 권선 한 명⁠, 오후 네 시 십 분 접근 경보⁠, 통화 확인 결과 병원 진료라 보호관찰소 통보 끝났습니다⁠. 화성 봉담 한 명⁠, 배터리 이십 퍼센트라 충전 안내했고요⁠. 나머지 특이 사항 없습니다⁠.⁠”

“⁠특이 사항 없음 좋다⁠. 그게 제일 맛있어⁠.⁠”

야간조 조장 박영수가 볼펜을 귀에 꽂은 채 받았다⁠. 관제만 열여덟 해를 한 사람이라⁠, 교대 말을 받을 때는 군대에서 하던 말투가 돌아왔다⁠. 탕비실 전기 포트에는 「⁠조장 전용 · 새벽 2시⁠」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영수는 새벽 두 시 정각이 아니면 컵라면에 물을 붓지 않았다⁠. 조금만 일찍 부어도 면이 설고⁠, 조금만 늦어도 하루가 늦어진다는 것이 영수의 말이었다⁠.

맞은편 자리의 김정우는 앉자마자 경기 서부 구역을 훑었다⁠. 열한 해 택시를 몰다 들어온 사람이라 점이 움직이면 교통방송처럼 중계했다⁠.

“⁠현재 시흥 정왕⁠, 한 점 귀가 중입니다⁠. 신호 받고 좌회전⁠, 정체 없습니다⁠.⁠”

“⁠정우 선배⁠, 그 방송 청취자 누구예요⁠?⁠”

막내 강민지가 의자를 굴려 오며 물었다⁠. 휴대전화에는 야식 앱 장바구니가 떠 있었다⁠. 「⁠야밤배달 · 국물 떡볶이 1인분 · 맵기 2단계 · 주문하시겠어요⁠?⁠」

“⁠나 하나야⁠. 나 졸지 말라고 하는 방송이야⁠.⁠”

“⁠동욱 선배는 맵기 1단계죠⁠? 서른여섯인데 벌써 1단계⁠.⁠”

하동욱은 대답 대신 인공눈물 뚜껑을 비틀었다⁠. 아직 켜지지 않은 모니터의 검은 화면에 얼굴이 비쳤다⁠. 짧은 검은 머리 아래 쌍꺼풀 없는 눈은 피곤해서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었고⁠, 뿔테 안경이 콧등에서 조금 미끄러져 있었다⁠. 큰 키를 의자에 접어 넣느라 어깨가 앞으로 구부정하게 말렸다⁠. 남색 점퍼 안에 회색 후드티를 입었고⁠, 목에 건 파란 줄 끝에서 출입증이 흔들렸다⁠. 밤에 일한 지 열두 해째인 눈에 한 방울씩 넣고 눈을 감았다 뜨자 모니터 세 대가 차례로 켜졌다⁠.

“⁠1단계⁠.⁠”

“⁠역시⁠. 선배는 인생도 1단계⁠.⁠”

탕비실 텔레비전에서 밤 뉴스 자막이 흘렀다⁠. 「⁠스토킹 접근금지 백 미터로 충분한가 … 거리 늘리는 개정안 국회 발의⁠」⁠. 민지가 리모컨을 눌러 홈쇼핑으로 돌렸다⁠. 화면 속 쇼호스트가 프라이팬 세 개를 한꺼번에 들어 올렸다⁠.

*

동욱의 구역은 수원에서 과천까지⁠, 경기 남부 일곱 개 시였다⁠. 점은 삼백 개 남짓이었다⁠. 가운데 모니터에 지도가⁠, 왼쪽 모니터에 점마다 붙은 이름과 판결과 준수사항이⁠, 오른쪽 모니터에 알림 창이 떴다⁠. 전국 관제실이 하루에 받는 알림은 만 삼천 건이 넘었다⁠. 대부분은 사람 일이 아니라 점 일이었다⁠. 아파트 숲이나 고가도로 아래에서 점이 혼자 한 블록을 건너뛰어 남의 집 거실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열 시 사십 분⁠, 오른쪽 화면에 노란 창이 깜박였다⁠.

「⁠화성 동탄 · 접근금지 구역 진입 · 6초 · 오차 의심 · 경보 아님⁠」

노란 창은 삼 초쯤 떠 있다가 저절로 접혔다⁠. 관제센터 안에서만 쓰는 기준이 한 줄 있었다⁠. 접근금지 구역에 점이 들어와도 십 초가 안 되면 오차로 보고 경보로 치지 않는다⁠. 문서에는 「⁠위치 오차에 따른 단시간 진입 처리 기준⁠」이라고 적혀 있었고⁠, 관제실 사람들은 그냥 십 초라고 불렀다⁠.

밤 열한 시 사 분에는 빨간 창이 떴다⁠. 경보음이 짧게 세 번 울렸다⁠.

「⁠오산 원동 · 피해자 주거지 접근금지 구역 진입 · 14초 · 경보⁠」

동욱은 경보음이 끝나기 전에 수화기를 들었다⁠. 왼쪽 화면에 남자의 이름과 준수사항과 피해자 정보가 떴다⁠. 점을 누르자 남자의 휴대전화로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동욱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오른손으로 원동 사거리 방범 카메라를 띄웠다⁠. 편의점 앞 파라솔 아래에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손에 든 것은 초록 소주병 하나였다⁠. 흉기는 보이지 않았다⁠. 네 번째 신호에 남자가 받았다⁠.

“⁠위치추적 관제센터 하동욱 주임입니다⁠. 지금 피해자 주거지 접근금지 구역 안에 계십니다⁠. 계신 곳 말씀해 주십시오⁠.⁠”

“⁠아⁠, 예⁠, 예⁠. 편의점이요⁠. 사거리⁠.⁠”

“⁠바로 구역 밖으로 나가 주십시오⁠. 보호관찰소와 경찰이 출동합니다⁠.⁠”

“⁠아니 주임님⁠, 목이 말라서요⁠. 소주 하나만 사고⁠—⁠”

“⁠지금 나가 주십시오⁠. 전화 끊지 마시고요⁠.⁠”

화면 속 점이 뒷걸음질로 경계를 넘어 나갔다⁠. 동욱은 피해자 번호를 눌렀다⁠. 잠이 덜 깬 여자 목소리가 받았다⁠. 관제센터라고 밝히고⁠, 상대가 구역 밖으로 나갔으니 문을 잠그고 집 안에 있으라고⁠, 경찰이 집 앞으로 간다고 말했다⁠. 여자는 알았다는 말을 세 번 했다⁠. 세 번 모두 목소리가 떨렸다⁠. 동욱은 오산 지역 신속수사팀에 출동을 요청하고 112 상황실에 공조를 넣었다⁠. 경보음이 울리고 여기까지 사 분이었다⁠. 정우가 헤드셋을 한쪽 귀에서 빼며 중계했다⁠.

“⁠오산 원동⁠, 한 점 후진으로 구역 이탈⁠. 소주는 사셨습니다⁠.⁠”

“⁠저 아저씨 별명 오늘부터 ‘⁠목마름⁠’이에요⁠.⁠”

민지가 형광펜 뚜껑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영수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사람한테 별명 붙이지 마⁠.⁠”

“⁠점한테 붙이는 거예요⁠, 조장님⁠. 점은 사람 아니잖아요⁠.⁠”

“⁠점은 거짓말 안 해⁠. 사람이 하지⁠.⁠”

영수는 같은 말을 하루에 세 번쯤 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고⁠, 영수도 대꾸를 기다리지 않았다⁠.

밤 열한 시 삼십팔 분⁠, 오산 대상자를 맡은 보호관찰관의 당직 휴대전화가 동욱에게 되걸려 왔다⁠. 잠긴 목소리였다⁠.

“⁠관제센터 하동욱 주임님⁠, 오산 원동 건 받았습니다⁠. 신속수사팀 현장 도착해서 대상자 귀가시켰고요⁠, 소주는 압수 안 했습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소환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피해자분께는 경찰이 문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내일 출근길 동행 요청하셨고요⁠.⁠”

“⁠알겠습니다⁠. 근데 주임님⁠, 그 사람 올해만 세 번째예요⁠. 목은 왜 꼭 그 집 앞에서만 마를까요⁠?⁠”

동욱은 대답 대신 통화 내용을 이관 창에 옮겨 적었다⁠. 시각⁠, 장소⁠, 진입 십사 초⁠, 통화 연결 네 번째 신호⁠, 피해자 통보⁠, 출동 요청 시각⁠. 이관 단추를 누르자 화면 아래 「⁠보호관찰소 전송 완료⁠」가 떴다⁠.

자정 오 분 전에 경비실에서 내선이 울렸다⁠. 정문에 배달 오토바이가 왔는데 출입증 없는 사람은 들일 수 없다고 했다⁠. 민지가 지갑을 들고 일어나며 투덜거렸다⁠.

“⁠떡볶이도 신원 조회해요⁠? 국물 많이 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보안이에요⁠?⁠”

“⁠국물은 기밀이야⁠. 흘리지 마⁠.⁠”

정우가 중계 말투로 받았고⁠, 영수가 볼펜을 귀에서 빼 민지 등에 대고 흔들었다⁠. 민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번 돌아보고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2단계라는 말이었다⁠.

*

자정이 넘자 경기 남부의 점들은 거의 다 집으로 들어갔다⁠. 움직이는 점은 야간 근무자뿐이었다⁠. 동욱은 습관처럼 야간 근무 점을 하나씩 눌러 보았다⁠. 군포 물류센터⁠, 수원역 대리운전⁠, 의왕 찜질방 카운터⁠. 안양 비산동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배성진(⁠34⁠) · 스토킹범죄 · 징역 1년 6개월 · 2027⁠.10⁠. 만기 출소 · 전자장치 부착 3년 · 준수사항⁠: 피해자 주거지·직장 100m 이내 접근금지⁠, 피해자 연락 금지 · 근무지⁠: 밝은마트 비산점(⁠23⁠:00⁠~03⁠:00⁠) · 피해자 2km 이내 · 집중 관제⁠」

지도를 끝까지 당기자 골목 하나가 화면을 채웠다⁠. 폭이 사 미터가 안 되는 일차선 골목이었다⁠. 북쪽 끝에 3층짜리 청우빌라가 있었고⁠, 빌라 정문에 빨간 십자가 찍혀 있었다⁠. 십자를 중심으로 반지름 백 미터짜리 빨간 원이 그어져 있었다⁠. 골목을 곧게 백 미터 내려가 큰길과 만나는 모퉁이에 편의점이 있었다⁠. 빨간 원의 테두리가 편의점 유리문 위를 지나갔다⁠. 성진의 초록 점은 유리문 안쪽⁠, 계산대 자리에 붙어 있었다⁠. 점 옆의 작은 숫자가 피해자 주거지까지의 거리였다⁠. 「⁠101m⁠」⁠.

계산대에 선 사람과 접근금지 선 사이가 일 미터였다⁠.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위반은 아니었다⁠. 법은 선 안을 막았고⁠, 선 밖의 일 미터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벽 한 시 십일 분⁠, 점이 움직였다⁠.

초록 점은 유리문 밖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숫자가 바뀌었다⁠. 「⁠100m⁠」⁠. 한 번 더 바뀌었다⁠. 「⁠99m⁠」⁠. 점은 빨간 원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오른쪽 화면에 노란 창이 깜박였다⁠.

「⁠안양 비산 · 피해자 주거지 접근금지 구역 진입 · 9초 · 오차 의심 · 경보 아님⁠」

노란 창이 접히기 전에 점은 원 밖으로 빠져나가 계산대 자리로 돌아갔다⁠. 「⁠101m⁠」⁠. 동욱은 노란 창이 사라진 자리를 오래 보았다⁠. 오차라면 점이 튀어야 했다⁠. 아파트 숲에서처럼 엉뚱한 데로 건너뛰거나⁠, 몇 번 깜박이며 들쑥날쑥해야 했다⁠. 점은 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가 한 걸음 걷고⁠, 멈춰서 무엇을 올려다보고⁠, 돌아서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동욱은 위치 이력 창을 열고 날짜를 하루씩 뒤로 넘겼다⁠. 어젯밤 한 시 십일 분⁠, 구 초⁠. 그제 한 시 십일 분⁠, 구 초⁠. 사흘 전에는 팔 초였다⁠. 손가락이 화면을 넘길 때마다 같은 숫자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점이 밝은마트에 처음 나타난 3월 14일 밤까지 넘겼다⁠. 열이레 동안 한 시 십일 분이 빠진 밤은 없었다⁠. 십 초를 넘긴 밤도 없었다⁠.

동욱은 수화기를 들었다⁠. 경보가 아닌 진입에는 전화하지 않는 것이 절차였다⁠. 영수가 전기 포트를 흘끔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동욱아⁠, 노란 거다⁠.⁠”

“⁠압니다⁠.⁠”

신호가 한 번 가기도 전에 성진이 받았다⁠.

“⁠네⁠, 배성진입니다⁠.⁠”

목소리가 낮고 반듯했다⁠. 계산대 앞에서 손님을 맞는 목소리였다⁠. 뒤에서 음료 냉장고가 웅웅 돌았고⁠, 문에 달린 종이 한 번 딸랑거렸다⁠.

“⁠위치추적 관제센터 하동욱 주임입니다⁠. 방금 어디 계셨습니까⁠?⁠”

“⁠가게 앞이요⁠. 분리수거함에 박스 버리고 들어왔어요⁠. 점주님이 한 시 넘으면 꼭 비우라고 하셔서요⁠.⁠”

“⁠밤마다 한 시 십일 분에 비우십니까⁠?⁠”

“⁠한 시쯤이요⁠. 손님 없을 때요⁠.⁠”

“⁠열이레 밤 동안 한 시 십일 분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냉장고 소리만 났다⁠. 다시 말할 때 성진의 목소리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주임님⁠, 그게 위반이에요⁠?⁠”

“⁠구역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경보 울렸어요⁠?⁠”

동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쪽 화면에는 노란 창이 떴던 자리만 비어 있었다⁠.

“⁠안 울렸죠⁠. 구 초밖에 안 됐는데⁠.⁠”

성진은 수고하시라고 말하고 먼저 끊었다⁠. 손님이 왔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동욱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채 왼쪽 화면의 준수사항을 다시 읽었다⁠. 피해자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판결에는 초가 없었다⁠. 십 초는 관제실 안에만 있었다⁠. 관제실 문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숫자였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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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필깎이2026.11.02· 1화

    판결에는 초가 없었다. 십 초는 관제실 안에만 있었다. 이 두 줄에서 소름 돋았어요. 구 초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거예요?

    • 하윤슬작가2026.11.02

      관제실 화면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에요. 소영 씨 창문 밖에서는 밤마다 한 시 십일 분이고요. 동욱이 그 차이를 붙잡고 끝까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