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75자)

오 분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5월 10일 수요일 오후 한 시 오십 분⁠, 하동욱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층 소회의실 셋째 줄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의자 마흔 개 가운데 서른 개쯤이 찼다⁠. 앞쪽 벽 화면에 「⁠스토킹 접근금지⁠, 백 미터로 충분한가⁠」라는 제목이 떠 있었고⁠, 제목 아래 모서리에 발언 시계가 「⁠05⁠:00⁠」으로 멈춰 있었다⁠.

동욱의 왼쪽 자리 셋은 관제실 야간조였다⁠. 쉬는 날이었다⁠. 박영수는 양복을 입고 왔는데 넥타이 매듭이 군대식으로 작고 단단했다⁠. 영수는 무릎 위 검은 비닐봉지에서 귤을 꺼내 한 사람에 하나씩 쥐여 주었다⁠.

“⁠토론회장에서 귤 먹으면 안 될걸요⁠, 조장님⁠.⁠”

“⁠먹으라는 게 아니다⁠. 쥐고 있으라는 거다⁠. 손이 심심하면 사람이 실수해⁠.⁠”

강민지는 귤을 무릎에 놓고 휴대전화로 회의실 천장을 찍었다⁠. 김정우가 몸을 숙여 낮게 중계했다⁠.

“⁠현재 국회 2층⁠, 관제실 야간조 네 명 착석 완료했습니다⁠. 정체 없습니다⁠.⁠”

“⁠정우 선배⁠, 여기서는 진짜 하지 마요⁠.⁠”

동욱은 맨 뒷줄을 돌아보았다⁠. 문 옆 끝자리에 회색 털모자를 쓴 작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손가방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한경자였다⁠. 경자는 동욱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였다⁠. 동욱은 경자가 어떻게 알고 왔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토론회 안내문은 의원실 누리집에 걸려 있었고⁠, 피해자 발언자 이름이 최소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

첫 발언자는 법학 교수였다⁠. 접근금지 거리를 사건마다 법원이 정하게 하자고 했다⁠. 두 번째는 법무부 과장이었다⁠. 과장은 화면에 표를 띄우고 전국 관제실의 하루 알림 건수와 신속 출동 시간을 읽었다⁠. 오차 진입을 걸러 내는 기준이 없으면 관제가 멈춘다고 했다⁠. 이달부터 같은 구역에 반복해 짧게 들어오는 진입은 따로 분류해 확인한다고⁠, 제도는 이미 고쳐지고 있다고 했다⁠. 과장의 오 분은 사 분 오십 초에 끝났다⁠. 말과 말 사이에 숨이 없었다⁠.

“⁠세 번째 발언⁠, 피해자 최소영 님입니다⁠.⁠”

소영이 발언대로 걸어갔다⁠. 흰 셔츠에 남색 재킷을 입었고⁠,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등에 배낭은 없었다⁠. 발언대 앞에 가림막은 없었다⁠. 사진 기자 둘이 카메라를 들었다가⁠, 진호가 손짓하자 내렸다⁠. 소영은 종이를 펴고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한 번 눌러 높이를 맞췄다⁠. 시계가 「⁠05⁠:00⁠」에서 「⁠04⁠:59⁠」로 바뀌었다⁠.

“⁠최소영입니다⁠. 서른세 살이고⁠, 약사입니다⁠. 안양 비산동에 삽니다⁠.⁠”

동네 이름이 나오자 앞줄의 누가 고개를 들었다⁠. 소영은 종이를 보지 않고 말했다⁠. 2025년 8월 아홉 시 오십 분의 박카스⁠, 마흔하루째의 쪽지⁠, 한 시 십일 분의 문자⁠, 일 원 송금 메모 칸의 「⁠잘자요⁠」⁠, 범퍼 안쪽의 상자⁠. 판결 뒤의 일 년 반⁠, 출소 소식⁠, 집 앞 편의점⁠, 백일 미터의 계산대와 구십구 미터의 분리수거함⁠. 서른 밤의 구 초⁠.

“⁠경찰은 저에게 세 번 물었습니다⁠.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죠⁠? 저는 세 번 다 대답을 못 했습니다⁠. 위협은 직접 오지 않았습니다⁠. 구 초씩 왔습니다⁠.⁠”

시계가 「⁠02⁠:10⁠」을 지났다⁠. 소영은 종이를 한 장 넘겼다⁠.

“⁠그 사람은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시던 밤에도 병원에서 우리 집 앞까지 뛰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사흘 밤이었습니다⁠. 왕복 한 시간 가까이 뛰어서 구 초를 채우고 돌아갔습니다⁠.⁠”

맨 뒷줄에서 손가방 쇠고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욱은 돌아보지 않았다⁠. 소리만으로 알았다⁠.

“⁠저는 밤 한 시 십일 분에 깹니다⁠.⁠”

소영의 목소리가 거기서 한 번 멈췄다⁠. 시계가 「⁠01⁠:12⁠」에서 「⁠01⁠:11⁠」로 넘어갔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시계가 「⁠01⁠:05⁠」가 될 때까지 소영은 말하지 않았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처음보다 낮았다⁠.

“⁠백 미터는 그 사람을 막지 않았습니다⁠. 백 미터는 그 사람이 서는 자리를 정해 주었습니다⁠. 저는 거리를 늘려 달라고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피해자에게 묻는 말을 바꿔 달라고 왔습니다⁠. 직접적인 위협이 있었냐고 묻지 말고⁠, 몇 번째냐고 물어 주십시오⁠.⁠”

시계가 「⁠00⁠:04⁠」에서 멈췄다⁠. 소영은 고개를 숙이고 발언대를 내려왔다⁠. 박수가 조금 늦게 나왔다⁠. 민지는 귤을 두 손으로 쥐고 울었다⁠.

*

“⁠네 번째 발언⁠, 전 위치추적 관제요원 하동욱 님입니다⁠.⁠”

진호가 순서표의 직함을 어떻게 적을지 물었을 때 동욱은 「⁠전⁠」을 붙여 달라고 했다⁠. 대기 발령 중인 사람이 발언대에 서는 것이 무엇을 부를지 알았다⁠. 감찰 담당관의 볼펜 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동욱은 발언대에 종이를 놓지 않았다⁠. 뿔테 안경을 한 번 밀어 올렸다⁠. 시계가 「⁠04⁠:59⁠」로 바뀌었다⁠.

“⁠관제실에서 열두 해 일했습니다⁠. 관제요원 한 사람이 점 삼백 개를 봅니다⁠. 접근금지 구역에 점이 들어와도 십 초가 안 되면 오차로 보고 경보를 울리지 않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 기준을 2025년 5월에 제가 썼습니다⁠.⁠”

앞줄의 법무부 과장이 고개를 들었다⁠. 동욱은 과장을 보지 않았다⁠.

“⁠지금부터 십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동욱은 입을 다물었다⁠. 시계가 「⁠04⁠:38⁠」⁠, 「⁠04⁠:37⁠」로 흘렀다⁠. 회의실 에어컨이 웅웅 돌았다⁠. 누가 의자를 끌었다가 멈췄다⁠. 기자 한 사람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04⁠:32⁠」⁠. 정우가 중계하지 않았다⁠. 영수가 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04⁠:29⁠」⁠. 맨 뒷줄에서 경자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04⁠:28⁠」⁠. 십 초였다⁠.

“⁠방금 십 초가 지났습니다⁠. 관제실 화면에서 이 십 초는 노란 창 하나가 떴다가 접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준으로 진짜 경보를 늦게 받지 않게 됐습니다⁠. 그 기준이 지킨 밤이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같은 기준이 한 사람에게 서른 밤 동안 구 초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거짓말이 아닙니다⁠. 두 가지가 같은 문장에서 나왔습니다⁠.⁠”

동욱은 발언대 모서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기준은 이달부터 고쳐졌습니다⁠. 고쳐진 기준도 선 안만 셉니다⁠. 선 밖에서 서 있는 사람은 여전히 셀 줄 모릅니다⁠. 지난주 피해자 직장 건너편 백오 미터에서 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관제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습니다⁠. 숫자로 사람을 막으면⁠, 숫자를 아는 사람은 숫자 바깥으로 갑니다⁠. 거리를 늘리는 것과 함께⁠, 선 밖에서 같은 사람을 반복해 지켜보는 일을 관제실과 경찰이 같이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쓴 문장은 제가 고치겠다고 했는데⁠, 저는 이제 관제실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드립니다⁠.⁠”

시계가 「⁠01⁠:20⁠」을 지났다⁠. 동욱은 고개를 숙이고 내려왔다⁠. 셋째 줄로 돌아오자 영수가 말없이 귤 하나를 더 쥐여 주었다⁠.

질의 시간에 법무부 과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과장은 동욱을 보지 않고 사회자를 보며 말했다⁠.

“⁠제도 개선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다만 관제요원 개인이 내부 기준을 피해자와 외부에 알린 일은 별개로 다뤄져야 합니다⁠. 기준이 밖으로 나가면 대상자들이 압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십 초라는 숫자가 다시 공개됐습니다⁠.⁠”

“⁠이미 압니다⁠.⁠”

소영이 앞줄에서 마이크 없이 말했다⁠. 목소리가 회의실 끝까지 갔다⁠.

“⁠그 사람은 출소하던 날부터 알았어요⁠. 모르는 사람은 피해자뿐이었어요⁠.⁠”

과장은 다음 말을 찾다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사회자가 시계를 보고 토론회를 마쳤다⁠.

*

토론회가 끝난 오후 네 시 십 분⁠, 의원회관 2층 복도 끝 창가에서 경자가 동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털모자 아래 얼굴이 하얬다⁠. 손가방 쇠고리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사흘 밤 동안 뛰어갔다는 거⁠, 정말이에요⁠?⁠”

“⁠기록이 그렇습니다⁠.⁠”

“⁠나는 그 시간에 우리 애가 대기실 의자에서 잔 줄 알았어요⁠. 간호사가 그랬으니까⁠.⁠”

경자는 창밖 국회 잔디밭을 보았다⁠. 잔디밭 가장자리 벚나무가 진한 초록이었다⁠.

“⁠우리 애가 요즘 밤에 안 자요⁠. 일 잘리고부터⁠. 이불 위에 앉아서 휴대전화로 지도만 봐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요⁠. 몇 번이고⁠. 내가 뭐 보냐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래요⁠. 어제는 발찌 충전하면서 나한테 물었어요⁠. 엄마⁠, 오백 미터는 몇 걸음이야⁠?⁠”

동욱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미숙의 목소리가 겹쳤다⁠. 십 초면 몇 걸음이냐고⁠.

“⁠어머님⁠, 오늘 법원 결정이 나오면 그 동그라미가 오백 미터가 됩니다⁠. 성진 씨한테도 통지가 갑니다⁠.⁠”

“⁠그럼 우리 애는 이제 그 창을 못 보네요⁠.⁠”

“⁠네⁠.⁠”

경자는 오래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손가방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동욱에게 내밀었다⁠. 휴대전화 번호 하나와 박달동 주소가 연필로 적혀 있었다⁠.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먼저 연락 줘요⁠. 나도 무슨 일 있으면 주임님한테 할게요⁠. 나는 우리 애 엄마예요⁠. 엄마라서 이번엔 우리 애 편을 안 들려고요⁠.⁠”

오후 다섯 시 이십 분⁠, 동욱의 휴대전화에 소영의 문자가 왔다⁠. 서희가 전한 법원 결정이었다⁠. 「⁠준수사항 변경 결정⁠. 피해자 주거지·직장 500m 이내 접근금지⁠. 준수기간 부착기간 종료일까지⁠. 오늘부터 효력⁠.⁠」 동욱은 휴대전화 지도를 열어 청우빌라 정문에 손가락을 대었다⁠. 오백 미터 원이 비산동 큰길과 정류장과 계단길과 언덕 너머 버스 정류장을 다 삼켰다⁠. 원 바깥 어디에서도 2층 왼쪽 창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에 나온 잠정조치 결정은 서면 경고와 전기통신 금지만 받아들이고 유치는 기각했었다⁠. 오백 미터가 기각된 자리를 메웠다⁠. 동욱은 소영에게 답을 보냈다⁠. 「⁠봤습니다⁠.⁠」 두 글자였다⁠. 소영의 답이 곧 왔다⁠. 「⁠오늘은 자 볼게요⁠. 한 시 십일 분 전에⁠.⁠」 동욱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국회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영수와 민지와 정우가 귤 껍질을 하나씩 손에 쥔 채 동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

5월 12일 금요일 새벽 열두 시 사십 분⁠, 과천 별양동 원룸에서 동욱은 잠들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열두 해 동안 밤에 일한 몸은 대기 발령 두 주 만에 낮에 자는 법을 잊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저장해 둔 이름이 떴다⁠. 「⁠한경자 · 박달동⁠」⁠.

“⁠주임님⁠, 우리 애가 나갔어요⁠.⁠”

경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숨이 가빴다⁠. 투석 다음 날의 숨이었다⁠.

“⁠열두 시 반에 나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엄마 미안해⁠, 약 잘 먹어⁠. 그러고 나갔어요⁠. 휴대전화로 지도를 켜 놓고 나갔어요⁠. 이불 위에 종이가 있어요⁠. 우리 애 글씨로 숫자가 써 있어요⁠. 오백 미터⁠, 육백칠십 걸음⁠. 그 밑에 한 시 십일 분⁠.⁠”

동욱은 일어나 앉았다⁠. 벽시계가 열두 시 사십이 분이었다⁠. 이십구 분이 남아 있었다⁠. 과천에서 비산동까지는 택시로 이십 분이었다⁠. 박달동에서 청우빌라까지 걸어서 삼십 분이었다⁠. 성진은 열두 시 반에 나갔다⁠. 동욱은 머릿속으로 두 숫자를 겹쳐 보았다⁠. 겹친 자리가 한 시 언저리였다⁠. 손가락이 안경을 찾느라 머리맡을 두 번 더듬었다⁠.

“⁠어머님⁠, 성진 씨한테 전화하세요⁠. 계속 하세요⁠. 받을 때까지요⁠. 저는 지금 갑니다⁠.⁠”

동욱은 경자의 전화를 끊고 영수의 번호를 눌렀다⁠. 관제실 야간 조장의 휴대전화는 두 번 울리고 받혔다⁠. 동욱은 남색 점퍼를 집어 들며 말했다⁠.

“⁠조장님⁠, 배성진 점 지금 보십시오⁠. 오백 미터 선으로 갑니다⁠. 저는 택시 타고 비산동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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