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44자)

파란 줄

접근금지 백 미터 · 하윤슬

2028년 4월 17일 월요일 오전 아홉 시 사십 분⁠, 하동욱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대신 과천 관제센터 4층 센터장실 문을 두드렸다⁠. 손에 든 종이는 두 장이었다⁠. 세 해 전 동대문 탕비실에서 쓴 건의서도 두 장이었다⁠. 문태식은 넥타이를 반쯤 풀고 있다가 동욱을 보고 다시 맸다⁠.

「⁠위치 오차에 따른 단시간 진입 처리 기준 보완 건의 · 같은 대상자가 같은 피해자 구역에 비슷한 시각 반복하여 십 초 미만 진입하는 경우⁠, 오차 의심에서 제외하고 「⁠반복 단시간 진입⁠」으로 분류하여 관제요원 확인 및 보호관찰소 통보 대상으로 함⁠」

태식은 첫 장을 다 읽고 둘째 장을 넘기지 않았다⁠.

“⁠하 주임⁠. 자기가 만든 기준을 자기가 뒤집겠다는 거야⁠?⁠”

“⁠뒤집는 게 아닙니다⁠. 한 줄 더하는 겁니다⁠.⁠”

“⁠한 줄이 아니지⁠. 이거 결재하면 지난 세 해 동안 십 초 밑으로 들어왔다 나간 진입을 전부 다시 봐야 돼⁠. 전국에서 몇 건인지 알아⁠? 그중에 같은 시각 반복이 하나라도 있었고⁠, 그 하나가 나중에 사건이 됐으면⁠? 그때 관제센터는 뭐 했냐는 말이 나와⁠.⁠”

“⁠다시 봐야 합니다⁠. 다시 보고⁠, 있으면 있다고 해야 합니다⁠.⁠”

태식은 볼펜을 내려놓았다⁠. 창밖 정부청사 주차장에 출근 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본부에 올려 볼게⁠. 본부가 정할 일이야⁠. 그리고 하 주임⁠, 피해자가 정문까지 찾아왔다는 얘기 들었어⁠. 한 번만 더 피해자랑 따로 연락하면 그땐 보직 조정으로 안 끝나⁠.⁠”

태식은 건의서를 서류함 맨 위 칸에 넣었다⁠. 맨 위 칸에는 이미 서류가 한 뼘쯤 쌓여 있었다⁠.

*

4월 20일 목요일 오후 두 시⁠, 동욱은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7층 복도 끝 의원실 앞에 서 있었다⁠. 쉬는 날이었다⁠. 문 옆에 「⁠스토킹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 · 접근금지 거리 확대⁠」라고 적힌 토론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국선변호사 장서희가 소영의 사건을 들고 이 의원실에 의견서를 냈고⁠, 보좌관이 관제센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소영은 동욱에게 문자 한 줄을 보냈다⁠. 「⁠제가 연락한 거예요⁠. 가기 싫으면 안 가셔도 돼요⁠.⁠」 동욱은 답장 대신 이곳에 왔다⁠.

보좌관 유진호는 서른 중반이었고⁠, 넥타이 대신 사원증 줄을 목에 걸고 있었다⁠. 동욱의 파란 줄과 같은 자리였다⁠. 진호는 회의 탁자에 노트 한 권과 녹음기를 놓았다가⁠, 동욱이 녹음기를 보자 녹음기를 서랍에 넣었다⁠.

“⁠개인 기록은 하나도 안 여쭙겠습니다⁠. 대상자 이름도⁠, 피해자 이름도요⁠. 관제 기준이 어떻게 생겼는지만요⁠.⁠”

동욱은 말했다⁠. 관제요원 한 사람이 점 삼백 개를 본다는 것⁠. 전국 관제실에 하루 만 삼천 건 넘는 알림이 울린다는 것⁠. 아파트 숲과 고가도로 밑에서 점이 튄다는 것⁠. 경보마다 삼 분 안에 전화를 건다는 것⁠. 경보에 묻혀 진짜를 늦게 연 밤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십 초 미만 진입은 오차로 보는 기준이 생겼다는 것⁠. 기준은 관제센터 안에만 있고⁠, 문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숫자라는 것⁠. 십 초를 아는 대상자는 구 초에 나갈 수 있다는 것⁠.

진호는 노트에 받아 적다가 볼펜을 멈췄다⁠.

“⁠주임님⁠, 이거 기사로 나가면 기준을 누가 말했는지 법무부가 찾을 겁니다⁠. 의원실은 출처를 안 밝혀요⁠. 그래도 찾습니다⁠.⁠”

“⁠찾으면 접니다⁠. 기준을 쓴 사람도 접니다⁠.⁠”

진호는 노트를 덮었다⁠. 회의 탁자 위 창으로 국회 잔디밭이 보였다⁠. 잔디밭 가장자리 벚나무는 꽃이 다 지고 잎만 남아 있었다⁠.

“⁠토론회가 5월 10일입니다⁠. 피해자분은 발언하겠다고 하셨어요⁠. 가림막 없이요⁠.⁠”

동욱은 소영의 문자를 다시 열어 보지 않았다⁠. 열어 보지 않아도 소영이 어떤 얼굴로 가림막 없이 말하겠다고 했을지 알았다⁠. 정문 차단기 앞에서 본 얼굴이었다⁠.

*

4월 24일 월요일 아침 일곱 시⁠, 관제실 탕비실 텔레비전에 아침 뉴스 자막이 떴다⁠. 야간조가 인수인계를 준비하던 시각이었다⁠.

「⁠[단독] 전자발찌 관제 ‘⁠10초 미만 진입은 오차⁠’ 내부 기준 … 스토킹 가해자⁠, 30일간 매일 9초씩 피해자 집 앞 진입⁠」

강민지가 리모컨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홈쇼핑으로 돌리지 않았다⁠. 화면에 비산동 골목이 흐리게 지워진 채 나왔다⁠. 편의점 유리문⁠, 노란 선이 흐려진 자리⁠, 큰길 건너편 정류장⁠. 기자가 십 초 기준이 관제센터 안에서만 쓰이는 숫자라고 말했고⁠, 법무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우가 헤드셋을 목에 건 채 화면을 보았다⁠.

“⁠현재 전국 뉴스⁠, 우리 골목 나왔습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박영수가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꺼진 화면에 야간조 네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영수가 동욱을 보았다⁠. 동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홉 시 십 분⁠, 관제센터 대표 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행정실 직원이 기자 전화라고 했다⁠. 열 시⁠, 법무부 감찰 담당관이 과천에 왔다⁠. 4층 회의실에서 동욱은 묻기 전에 말했다⁠. 4월 1일에 피해자에게 개인 번호를 주었고⁠, 4월 5일 새벽에 피해자에게 십 초를 알렸고⁠, 4월 20일에 국회 의원실 보좌관에게 기준의 얼개를 설명했다고⁠. 개인 기록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았다고⁠. 3월 19일 기록은 조장이 뽑아 주었고 자기가 보호관찰관에게 가져갔다고⁠. 감찰 담당관은 받아 적으며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 적고 나서 한 번 들었다⁠.

“⁠하 주임님은 왜 먼저 말하십니까⁠? 보통은 찾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관제실에서 열두 해 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기다리는 쪽이 이깁니다⁠. 저는 이기고 싶지 않습니다⁠.⁠”

담당관은 볼펜 끝으로 노트를 두 번 두드렸다⁠. 태식이 하던 버릇과 같았다⁠.

4월 24일 오후 한 시⁠, 별양동 원룸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 누워 있던 동욱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대구 어머니였다⁠.

“⁠동욱아⁠, 니 일하는 데 뉴스 나오더라⁠. 발찌 찬 놈이 구 초씩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거⁠. 니가 보는 거 맞제⁠?⁠”

“⁠맞아요⁠.⁠”

“⁠그라면 니가 잡았나⁠?⁠”

“⁠아니요⁠. 제가 놓쳤어요⁠.⁠”

어머니는 잠깐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대구 집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놓친 거 아는 사람이 잡는 기라⁠. 밥은⁠?⁠”

“⁠김밥⁠.⁠”

“⁠또 김밥⁠.⁠”

어머니가 끊고 나서 소영의 문자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봤어요⁠.⁠」 두 글자였다⁠. 동욱은 답을 쓰지 않았다⁠. 답을 쓰지 않은 두 글자가 오후 내내 휴대전화 맨 위에 떠 있었다⁠.

4월 26일 수요일 오후⁠, 문자 한 통이 왔다⁠. 「⁠4월 28일 09시부로 관제 업무 배제 및 대기 발령⁠. 징계 절차는 별도 통보⁠.⁠」 동욱은 문자를 읽고 휴대전화를 엎어 두었다⁠. 다시 뒤집었다⁠. 소영에게 보낼 말을 찾다가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태식의 말이 남아 있었다⁠. 한 번만 더 연락하면⁠.

*

4월 27일 목요일 밤 아홉 시⁠, 동욱은 마지막으로 출입증을 찍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열두 해 동안 들은 소리와 같았다⁠. 주간조 요원이 헤드셋을 벗으며 인수인계를 했다⁠. 강원 정선 북평 한 명⁠, 오후 세 시 우사 다녀옴⁠. 특이 사항 없음⁠.

“⁠특이 사항 없음 좋다⁠. 그게 제일 맛있어⁠.⁠”

영수가 받았다⁠. 민지가 동욱 모니터 테두리에 포스트잇을 한 장 붙였다⁠. 「⁠선배 · 21⁠:00⁠~09⁠:00 · 마지막 · 경보 아님⁠」⁠. 끝에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는 덧칠하지 않았다⁠. 영수가 포스트잇을 보았다⁠.

“⁠그거 보안 문서다⁠.⁠”

“⁠알아요⁠, 조장님⁠. 그러니까 선배가 가져가야죠⁠.⁠”

밤 열한 시 사 분⁠, 동욱 자리에 경보 한 건이 울렸다⁠. 원주 단계동⁠, 피해자 주거지 구역 진입 이십이 초⁠. 동욱은 경보음이 끝나기 전에 수화기를 들었다⁠. 대상자는 술에 취해 집을 잘못 찾았다고 했다⁠. 동욱은 구역 밖으로 나가라고 하고 피해자에게 전화하고 원주 신속수사팀에 출동을 넣었다⁠. 이 분 오십 초⁠. 이관 창의 「⁠보호관찰소 전송 완료⁠」를 보며 동욱은 열두 해 동안 이 단추를 몇 번 눌렀는지 세어 보려다 그만두었다⁠.

한 시 십일 분⁠, 동욱은 강원 지도에서 눈을 들어 민지의 모니터를 보았다⁠. 비산동 계산대 자리는 비어 있었다⁠. 배성진의 초록 점은 박달동 반지하 방에 붙어 있었다⁠. 「⁠2⁠.6km⁠」⁠. 뉴스가 나간 다음 날 밝은마트에서 잘렸다고⁠, 민지가 보호관찰소 통보를 보고 알려 주었다⁠. 민지가 의자를 돌리지 않은 채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오늘도 집이라는 말이었다⁠. 정우가 작게 중계했다⁠. 현재 비산동⁠, 이상 없습니다⁠.

새벽 한 시 오십팔 분⁠, 영수가 탕비실로 갔다⁠. 동욱이 따라 들어갔을 때 영수는 컵라면 두 개의 뚜껑을 반쯤 뜯어 놓고 전기 포트 앞에 서 있었다⁠. 포트에 물이 차 있었다⁠. 시계 초침이 열두 시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영수는 두 시 정각에 단추를 누르지 않았다⁠. 이 분 전에 눌렀다⁠.

“⁠조장님⁠, 면 섭니다⁠.⁠”

“⁠설어도 돼⁠. 오늘은 네가 두 시에 앉아 있으면 안 되니까⁠.⁠”

물이 끓었다⁠. 영수는 컵라면 두 개에 물을 붓고 하나를 동욱 앞에 밀었다⁠. 두 사람은 탕비실 탁자에 마주 앉아 사 분을 기다렸다⁠.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민지와 정우가 탕비실 문간에서 기웃거리다가⁠, 영수가 손짓하자 들어와 탁자 끝에 붙어 앉았다⁠. 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중계했다⁠.

“⁠현재 과천 탕비실⁠, 컵라면 두 개 익는 중입니다⁠. 한 개는 덜 익었습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민지가 웃다가 울었다⁠. 영수는 젓가락으로 덜 풀린 면을 들어 올려 끝까지 먹었다⁠. 동욱도 먹었다⁠. 국물이 미지근했다⁠. 다 먹고 나서 영수가 말했다⁠.

“⁠점은 거짓말 안 해⁠. 사람이 하지⁠. 너는 거짓말 안 하는 쪽으로 가라⁠.⁠”

*

4월 28일 금요일 아침 아홉 시⁠, 동욱은 4층 센터장실 책상 앞으로 갔다⁠. 목에서 파란 줄을 벗겨 책상에 내려놓았다⁠. 줄이 먼저 미끄러지고 출입증이 뒤따랐다⁠. 사진 속 열두 해 전 얼굴은 안경테가 지금보다 얇았다⁠. 태식은 출입증을 집지 않았다⁠. 대신 서류함 맨 위 칸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동욱 앞에 놓았다⁠.

「⁠본부 지시 · 위치 오차에 따른 단시간 진입 처리 기준 보완 · 같은 대상자의 같은 구역 반복 단시간 진입은 오차 의심에서 제외⁠, 관제요원 확인 후 보호관찰소 통보 · 5월 1일부터 시범 적용⁠」

“⁠어제 저녁에 내려왔어⁠. 뉴스 나가고 사흘 만에⁠. 하 주임 건의서 그대로야⁠. 한 줄도 안 고쳤어⁠.⁠”

동욱은 종이를 오래 보았다⁠. 자기가 쓴 문장이 본부 결재 도장 아래 앉아 있었다⁠. 다섯 해 걸릴 줄 알았던 문장이 사흘 만에 내려왔다⁠. 문장을 내려보낸 것은 건의서가 아니었다⁠. 아침 뉴스의 흐린 골목이었다⁠.

“⁠5월 1일부터면⁠, 제가 없는 날부터입니다⁠.⁠”

“⁠그래⁠. 하 주임 없는 날부터⁠.⁠”

동욱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센터장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내려갔다⁠. 1층 출입문 앞에서 습관처럼 목에 손을 댔다⁠.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목이 낯설었다⁠. 문은 출입증 없이도 안에서는 열렸다⁠. 밖은 아침 햇빛이 눈부셨다⁠. 열두 해 동안 아홉 시에 나서던 문이었는데⁠, 아홉 시 햇빛이 이렇게 밝은 줄 동욱은 처음 알았다⁠. 동욱은 점퍼 주머니에서 인공눈물을 꺼내 한 방울씩 넣었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제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할 사람이 동욱에게는 없었다⁠. 동욱은 소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5월 1일부터 구 초도 경보가 됩니다⁠. 저는 오늘부터 관제실에 없습니다⁠. 토론회⁠, 저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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