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84자)

북단 잔류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인준묵의 등에 할머니 한 분이 업혀 있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근우를 업고 동네 놀이터를 한 바퀴 돌 때와 무게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양원 계단은 열두 칸이었다⁠. 준묵은 칸마다 발끝으로 모서리를 더듬은 뒤 체중을 실었다⁠. 계단 끝에 미끄럼 방지 고무가 붙어 있었는데 반쯤 떨어져 있었다⁠. 고무가 들린 칸에서는 발을 한 번 더 디뎠다⁠. 할머니의 숨이 준묵의 목덜미에 닿았다⁠. 따뜻하고 가늘었다⁠.

“⁠군인 양반⁠, 나 무겁지⁠?⁠”

“⁠아니요⁠. 저희 아들보다 조금 무거우세요⁠.⁠”

“⁠아들이 몇 살인데⁠?⁠”

“⁠세 살요⁠.⁠”

할머니가 준묵의 등에서 웃었다⁠. 웃음이 등뼈를 타고 내려왔다⁠.

마당의 트럭 짐칸에 휠체어 넷이 먼저 올라갔다⁠. 예비군 넷이 휠체어 하나에 붙어 바퀴와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 하는 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시훈이 휠체어 바퀴에 손가락을 찧고 소리를 질렀다가⁠, 휠체어에 앉은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이 엄살은⁠」 하고 혀를 차자 입을 다물었다⁠. 보행기를 쓰는 노인들은 예비군 둘씩 양옆에서 부축했다⁠. 원배는 틀니 컵 바구니를 품에 안고 트럭과 현관 사이를 오갔다⁠. 바구니 안에서 플라스틱 컵들이 달그락거렸다⁠.

“⁠열아홉입니다⁠. 원장님까지 스물⁠. 홍구 사장님 어머님까지 스물하나⁠.⁠”

원배가 출석부에 이름을 받아 적으며 말했다⁠. 출석부의 빈 줄이 거의 남지 않았다⁠. 남은 칸은 볼펜으로 여백에 그어 이어 붙였다⁠.

문제는 자리였다⁠. 트럭 짐칸은 휠체어 넷과 노인 일곱으로 꽉 찼다⁠. 남은 노인이 여덟⁠, 원장과 홍구의 어머니⁠, 예비군 아홉이 남았다⁠. 두 번 오가자면 사십 분이 더 들었다⁠. 원배가 능선을 보았다⁠. 먼지 기둥은 아까보다 굵어져 있었다⁠.

“⁠버스⁠.⁠”

홍구가 말했다⁠. 홍구는 요양원 앞 비탈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을 끝 공터에 초록색 군내버스 한 대가 머리를 북쪽으로 둔 채 서 있었다⁠. 앞 유리 위쪽에 「⁠63 느릅골⁠—전곡⁠」이라는 행선지 판이 붙어 있었다⁠. 종점이었다⁠.

“⁠아침 첫차 몰던 형님이 버스 두고 걸어 나갔대요⁠. 아까 엄마가 그랬어요⁠.⁠”

“⁠열쇠는요⁠?⁠”

“⁠매표소 화분 밑⁠.⁠”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다섯 해 넣어 뒀으니까요⁠. 아직도 거기 넣는다는 데 순댓국 한 그릇 겁니다⁠.⁠”

홍구는 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매표소라고 해 봐야 버스 정류장 옆 컨테이너 하나였다⁠. 홍구가 문 앞 시든 제라늄 화분을 들어 올렸다⁠. 화분 밑에서 열쇠 꾸러미가 나왔다⁠. 홍구가 열쇠를 높이 들고 흔들었다⁠. 비탈 위에서 예비군들이 박수를 쳤다⁠.

“⁠순댓국 누가 사요⁠?⁠”

시훈이 소리쳤다⁠.

“⁠안 건 나니까 내가 사⁠!⁠”

버스는 세 번 만에 시동이 붙었다⁠. 디젤 엔진이 쿨럭거리며 몸을 떨었고⁠, 배기관에서 검은 연기가 한 덩어리 터져 나왔다⁠. 홍구가 운전석에서 핸들을 두 손으로 쥐고 앞 유리를 한참 내다보았다⁠. 손바닥으로 핸들 가죽을 한 번 쓸었다⁠. 오래된 친구 어깨를 쓰는 손 같았다⁠.

*

홍구의 어머니는 버스에 오르기 전에 주방에 다시 들어갔다⁠. 원배가 따라 들어가려는 것을 준묵이 말렸다⁠. 어머니는 오 분 뒤에 커다란 들통을 안고 나왔다⁠. 뚜껑 틈으로 김이 새어 나왔다⁠.

“⁠어머님⁠, 그게 뭡니까⁠?⁠”

“⁠보리차⁠. 할머니들 차에서 목마르면 어떡해⁠. 군인들도 먹고⁠.⁠”

“⁠그걸 지금 끓이셨어요⁠?⁠”

“⁠아까 점심때 끓여 놓은 거야⁠. 아직 따뜻해⁠.⁠”

홍구가 운전석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 들통 놓고 타⁠!⁠”

“⁠너 육수 불 껐냐고 물었는데 대답 안 했지⁠.⁠”

“⁠지금 그게⁠…⁠”

“⁠대답해⁠.⁠”

“⁠…몰라⁠.⁠”

“⁠그럼 들통은 들고 간다⁠.⁠”

어머니는 들통을 안고 버스에 올라 맨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 안의 노인들이 박수를 쳤다⁠. 원배가 들통 뚜껑을 잡아 주며 웃었다⁠. 준묵도 웃었다⁠. 웃으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네 시 삼십이 분이었다⁠.

트럭이 앞서고 버스가 뒤를 따랐다⁠. 홍구는 커브 열하나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돌았다⁠. 일곱 번째 커브의 버려진 승용차 앞에서는 군내버스의 큰 몸을 논두렁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돌아 나갔다⁠. 버스 안에서 노인들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돌아왔다⁠. 어머니가 들통을 끌어안았다⁠. 보리차 냄새가 버스 안에 퍼졌다⁠. 준묵은 버스 맨 뒷자리 창문을 열고 능선을 보았다⁠. 먼지 기둥이 능선 꼭대기를 넘어오고 있었다⁠.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준묵의 가슴께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아까 원배에게 몇 살이냐고 묻던 할아버지였다⁠. 주머니 덮개가 들린 틈으로 도화지 끝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게 뭐요⁠? 연애편지요⁠?⁠”

“⁠딸이 그려 준 겁니다⁠.⁠”

“⁠보여 줘 봐⁠.⁠”

준묵은 망설이다가 도화지를 꺼내 폈다⁠. 네 번 접힌 자리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초록 옷을 입은 아빠⁠, 집⁠, 지붕 위의 빨간 해⁠. 할아버지가 안경을 이마에 올리고 들여다보더니 글씨를 소리 내어 읽었다⁠.

“⁠아빠⁠, 여섯 시에⁠, 와⁠.⁠”

앞자리의 할머니들이 고개를 돌렸다⁠. 들통을 안은 홍구의 어머니도 돌아보았다⁠.

“⁠여섯 시면 저녁밥 때네⁠.⁠”

“⁠예⁠.⁠”

“⁠그럼 가야지⁠. 밥은 식으면 맛없어⁠.⁠”

할아버지는 도화지를 준묵에게 돌려주며 아빠 그림의 다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빠는 두 다리가 유난히 길었다⁠. 솔빈은 아빠가 키가 크다고 믿었다⁠.

“⁠아빠 다리가 기네⁠. 빨리 가겠어⁠.⁠”

버스 안에 웃음이 퍼졌다⁠. 준묵도 웃었다⁠. 도화지를 다시 네 번 접어 주머니에 넣는데 휴대전화가 떨렸다⁠. 새란이었다⁠. 「⁠엄마 차로 남쪽 가는 중⁠. 근우는 자⁠. 솔빈이가 아빠한테 여섯 시 지키라고 전하래⁠」 준묵은 답장을 쓰지 못하고 화면을 껐다⁠.

*

네 시 사십오 분⁠, 트럭과 버스가 북단 삼거리로 들어왔다⁠. 진지에서 하사가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구덩이 속의 예비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누가 단톡방에 버스 사진을 올렸다⁠. 「⁠느릅골행 63번 귀환⁠. 승객 스물한 명⁠. 보리차 서비스⁠」

준묵은 버스에서 내려 다리를 보았다⁠. 다리 북단 진입로 밑⁠, 둑 비탈에 사람 둘이 엎드려 있었다⁠. 공병이었다⁠. 도진곤 상사가 북단 교각에 달린 폭약을 살피고 있었다⁠. 진곤이 고개를 들어 준묵과 눈이 마주쳤다⁠. 진곤은 같이 온 공병 병사에게 무어라 이르고⁠, 비탈을 기어 올라왔다⁠.

“⁠북단 책임자가 분대장님이쥬⁠? 소위님 말고⁠.⁠”

“⁠소위님이 지휘관입니다⁠.⁠”

“⁠글쎄유⁠, 지휘관하고 책임자는 다르쥬⁠.⁠”

진곤은 준묵을 둑 비탈 아래로 데려갔다⁠. 다리 밑 그늘이었다⁠. 머리 위 콘크리트 바닥으로 트럭이 지나가며 쿵쿵 울렸다⁠. 강물이 교각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졌다⁠. 교각에 회색 상자 몇 개가 쇠띠로 묶여 있었고⁠, 전선이 남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진곤은 가슴 주머니 단추를 풀었다⁠. 테이프가 뜯긴 봉투가 나왔다⁠.

“⁠다섯 시 오십 분에 열라고 하셨는디⁠. 봉투가 혼자 열렸어유⁠.⁠”

“⁠혼자요⁠?⁠”

“⁠지 손이 혼자 열었어유⁠. 늙으면 손이 말을 안 들어유⁠.⁠”

진곤은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준묵에게 내밀었다⁠. 준묵은 받지 않았다⁠. 진곤이 종이를 펴서 준묵의 눈높이로 들어 주었다⁠. 사단 명령서 양식이었다⁠. 맨 아래 칸에 손글씨가 있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18⁠:00 가래여울교 폭파⁠. 북단 잔류 인원 확인 불요⁠.⁠」

준묵은 두 번 읽었다⁠. 세 번째는 글자가 아니라 연필 자국을 보았다⁠. 「⁠불요⁠」 두 글자 위로 연필이 두 번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한 번 쓰고⁠, 다시 덧쓴 자국이었다⁠.

“⁠확인 불요가 무슨 말입니까⁠?⁠”

“⁠확인 안 해도 된다는 말이쥬⁠.⁠”

“⁠북단에 사람이 있어도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안 본다는 거쥬⁠. 여섯 시 되면 지가 손잡이 돌리는 거고⁠.⁠”

진곤은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하나 더 있어유⁠. 기계화 대대는 남단 둑에서 멈춰유⁠. 다리 안 건너유⁠. 처음부터 계획이 그래유⁠. 다리 끊고 남단 둑에서 받는 거⁠.⁠”

준묵은 머리 위 콘크리트를 올려다보았다⁠. 철판 이음새 사이로 햇빛이 한 줄 새어 들어왔다⁠. 트럭이 또 지나갔다⁠. 다리가 떨렸다⁠. 발밑의 자갈이 같이 떨렸다⁠.

“⁠여섯 시간 버티면 현역 온다고 했습니다⁠. 현역 오면 집에 간다고⁠.⁠”

“⁠현역은 오쥬⁠. 남단에⁠.⁠”

“⁠우리는요⁠?⁠”

진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손가락으로 담배 끝을 한참 굴리다가⁠, 불은 붙이지 않고 도로 넣었다⁠. 폭약 밑에서 피울 담배는 아니었다⁠.

“⁠분대장님⁠. 지가 이거 왜 보여 드리는지 아세유⁠?⁠”

“⁠모르겠습니다⁠.⁠”

“⁠지가 스무 해 다리를 끊었어유⁠. 훈련으로유⁠. 끊을 때마다 저쪽 끝에서 누가 손 흔들었어유⁠. 다 건넜다고⁠. 오늘 그 손이 없으면⁠, 지는 손잡이를 못 돌려유⁠. 근데 명령이면 돌려야 해유⁠. 그러니께 분대장님이 손 흔들 수 있게 해 줘유⁠. 다섯 시 오십구 분에⁠.⁠”

진곤은 비탈을 내려가 공병 병사에게로 돌아갔다⁠. 준묵은 다리 밑 그늘에 혼자 남았다⁠. 가슴 주머니를 눌렀다⁠. 도화지가 땀에 젖어 손바닥에 들러붙었다⁠.

둑 위로 올라가자 삼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구덩이마다 철모가 하나씩⁠, 둘씩 있었다⁠. 버스 창문마다 흰머리가 하나씩 보였다⁠. 트럭 짐칸에서는 휠체어 바퀴가 햇빛에 번쩍였다⁠. 원배가 출석부를 들고 버스 앞에서 노인들의 이름을 다시 맞춰 보고 있었다⁠. 하사는 어깨 화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둑길 끝을 노려보았다⁠. 시훈은 보리차를 종이컵에 따라 구덩이마다 돌리고 있었다⁠.

정오에는 마흔하나였다⁠. 이제는 원배의 출석부 여백까지 넘친 이름이 일흔일곱이었다⁠. 준묵이 고르게 한 사람들이었고⁠, 고르지 않았는데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다리 끝에서 손을 흔들어야 할 사람이 준묵 하나라면⁠, 손을 흔들기 전에 다리를 건너야 할 사람은 일흔일곱이었다⁠.

*

준묵은 둑을 올라가 정지선을 넘었다⁠. 원배가 뒤에서 불렀다⁠. 준묵은 돌아보지 않고 다리 위로 올라갔다⁠. 이음새 철판을 밟을 때마다 덜컹 소리가 군화 밑창을 타고 무릎까지 올라왔다⁠. 다리 위는 바람이 셌다⁠. 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전투복 깃을 세웠다⁠. 난간 너머로 내려다본 강물은 아침보다 누렇고 빨랐다⁠. 상류 어딘가에서 눈이 녹고 있었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준묵은 걸음을 멈췄다⁠. 남단 둑 위 컨테이너 앞에서 작전참모가 쌍안경을 내리는 것이 보였다⁠. 원배의 무전기가 등 뒤 멀리서 지직거렸다⁠. 원배가 무언가 보고하고 있었다⁠.

작전참모가 둑을 내려와 다리 위로 걸어왔다⁠. 서두르지 않았다⁠. 남단에서 한가운데까지 백오십 미터를 같은 걸음으로 걸었다⁠. 정오에 둘이 마주 섰던 자리였다⁠. 이번에는 둘 사이로 트럭이 지나가지 않았다⁠. 다리는 조용했다⁠. 강물 소리만 교각 밑에서 올라왔다⁠.

치영이 준묵 앞에 멈췄다⁠. 철모 끈이 아침과 똑같이 턱에 바짝 매여 있었다⁠.

“⁠인준묵 씨⁠.⁠”

“⁠작전참모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북단 잔류 인원 확인 불요⁠.⁠」 작전참모님이 쓰신 겁니까⁠?⁠”

치영의 눈이 준묵의 얼굴에서 북단 진지로⁠, 진지 옆 초록색 버스로⁠, 다시 준묵의 얼굴로 돌아왔다⁠. 버스 맨 앞자리 창문에 들통을 안은 홍구의 어머니가 보였다⁠.

“⁠제가 썼습니다⁠.⁠”

“⁠여섯 시에 끊습니까⁠? 우리가 저기 있어도⁠?⁠”

치영은 대답하기 전에 숨을 한 번 쉬었다⁠. 준묵은 작전참모의 가슴이 한 번 크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침부터 처음 보는 숨이었다⁠.

“⁠예⁠.⁠”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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