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82자)

동원령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구치영의 군화 밑에서 컨테이너 바닥이 낮게 떨었다⁠. 둑 아래 도로로 피란 차량이 줄지어 지나갈 때마다 철판 바닥이 웅웅거렸고⁠, 고장 난 커피 기계도 덩달아 웅웅거렸다⁠. 치영은 커피 기계 전원 코드를 뽑았다⁠. 웅웅거림이 하나 줄었다⁠.

오후 두 시 정각⁠, 텔레비전 화면이 바뀌었다⁠. 태극기 앞의 연단⁠, 마이크 두 개⁠, 남색 정장⁠. 대통령이 원고를 내려다보며 읽었다⁠. 치영은 소리를 켰다⁠.

“⁠…정부는 오늘 오후 두 시를 기해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 동원령을 선포합니다⁠. 해당 지역의 예비군은 가까운 부대로 즉시 복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국가 동원령 선포 — 예비군 가까운 부대 즉시 복귀⁠」 이어서 다른 자막이 붙었다⁠. 「⁠주요국 정상 잇따라 성명⁠… 해외 교민 철수 검토⁠」 치영은 담화를 끝까지 보지 않았다⁠. 동원령이 무엇을 바꾸는지는 담화보다 치영이 더 잘 알았다⁠. 이제 길 위의 모든 예비군은 군인이었다⁠. 아침에 하루짜리 훈련을 온 사람도⁠, 정오에 다리를 건너 걸어서 돌아간 사람도⁠.

무전기가 울렸다⁠. 군단 작전처의 쉰 목소리였다⁠.

“⁠동원령 떨어졌습니다⁠. 3번 국도에 동원 차량까지 붙어서 더 막힙니다⁠. 기계화 대대 선두 지금 동두천 남쪽입니다⁠. 도착 예상 여섯 시 반⁠.⁠”

“⁠여섯 시입니다⁠.⁠”

“⁠참모님⁠, 이건 숫자가 아니라 길이⁠…⁠”

“⁠동두천에서 국도 말고 강변 농로로 빼십시오⁠. 장갑차는 논두렁 무너뜨려도 됩니다⁠. 보상은 나중에 내가 받으러 다니겠습니다⁠.⁠”

무전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가 대답이 왔다⁠.

“⁠…전하겠습니다⁠.⁠”

치영은 수첩을 펴 「⁠동두천 남쪽⁠, 농로⁠」라고 썼다⁠. 첫 장의 「⁠18⁠:00⁠」을 다시 보았다⁠. 숫자 밑의 줄 두 개가 연필 자국으로 번들거렸다⁠.

곧이어 사단장이 무전에 들어왔다⁠. 사단장의 목소리는 아침보다 한 톤 낮았다⁠.

“⁠작전참모⁠. 북단 예비군 일흔여섯이 다리 건너 이탈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던데⁠.⁠”

“⁠이탈한 것이 아니라 제가 보냈습니다⁠.⁠”

“⁠자네가⁠?⁠”

“⁠북단에 남은 마흔하나로 진입로를 열 수 있습니다⁠. 숫자가 많다고 진입로가 더 열리지 않습니다⁠. 보낸 일흔여섯은 동원령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사단장은 한참 말이 없다가 한숨처럼 웃었다⁠.

“⁠자네는 거짓말을 할 때도 숫자를 붙이는군⁠.⁠”

“⁠거짓말 아닙니다⁠. 지금부터 맞추겠습니다⁠.⁠”

“⁠맞춰⁠. 그리고 여섯 시는⁠?⁠”

“⁠여섯 시는 그대로입니다⁠.⁠”

무전이 끊겼다⁠. 치영은 무전기를 걸어 놓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반원배가 막지 않은 일을 치영이 보낸 일로 바꾸는 데 든 말은 넉 줄이었다⁠. 넉 줄이 소위 하나의 군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치영은 알았다⁠.

*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내였다⁠. 이번에는 전화였다⁠. 치영은 컨테이너 문을 열고 둑으로 나가 받았다⁠.

“⁠여보⁠. 한 시간째 차가 그대로야⁠. 앞에 버스가 서 있고⁠, 버스 앞에 트럭이 서 있고⁠, 트럭 앞은 안 보여⁠.⁠”

“⁠차에서 내리지 마⁠.⁠”

“⁠화장실은⁠?⁠”

“⁠…내리지 마⁠.⁠”

“⁠당신은 꼭 대답 못 할 거만 그렇게 짧게 하더라⁠.⁠”

아내 목소리 뒤에서 딸이 무슨 말을 했다⁠. 전화기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아빠⁠.⁠”

“⁠응⁠.⁠”

“⁠아빠 부대 뉴스에 나왔어⁠?⁠”

“⁠아빠는 뉴스 안 나와⁠.⁠”

“⁠친구들이 연천 다리 영상 올렸는데⁠, 군인들이 막 뛰어다녀⁠. 거기 아빠 있어⁠?⁠”

치영은 강 건너 북단을 보았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군인보다 예비군에 가까웠고⁠, 뛰어다니는 대신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예비군은 안 뛴다고 했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아빠 있는 데는 아무도 안 뛰어⁠.⁠”

“⁠그게 뭐야⁠.⁠”

딸이 웃었다⁠. 열여섯 살이 웃는 소리였다⁠. 치영은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엄마 바꿔⁠. 그리고 이어폰 빼고 있어⁠. 무슨 소리 나면 들리게⁠.⁠”

“⁠아빠 지금 어디야⁠?⁠”

치영은 대답하지 않고 아내를 바꾸라고 한 번 더 말했다⁠. 아내가 받았을 때 치영은 남쪽으로 계속 가라고만 하고 끊었다⁠.

*

둑 아래 참호에서 도진곤이 전선 끝을 손톱으로 벗기고 있었다⁠. 치영이 내려가자 진곤은 손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들었다⁠.

“⁠글쎄유⁠, 참모님⁠. 이제 시각을 알려 주셔야 쓰겄는데유⁠. 폭약은 기다려도 지는 기다릴 줄 몰라유⁠.⁠”

“⁠여섯 시 정각⁠.⁠”

진곤의 손이 멈췄다⁠.

“⁠여섯 시유⁠. 북단 철수 보고는 언제 받고유⁠?⁠”

치영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접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사단 명령서 사본이었다⁠. 봉투 입구를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

“⁠명령서야⁠. 다섯 시 오십 분에 열어⁠.⁠”

“⁠지금 열면 안 되고유⁠?⁠”

“⁠다섯 시 오십 분⁠.⁠”

진곤은 봉투를 받아 들고 앞뒤를 뒤집어 보았다⁠. 봉투가 가벼웠다⁠. 종이 한 장의 무게였다⁠. 진곤은 봉투를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참모님⁠. 지가 다리 끊는 훈련을 스무 해 했어유⁠. 끊을 때는 언제나 저쪽 끝에서 손 흔드는 사람이 있었어유⁠. 다 건넜다고⁠. 그거 보고 돌렸어유⁠.⁠”

“⁠알아⁠.⁠”

“⁠오늘도 손 흔드는 사람 있는 거쥬⁠?⁠”

치영은 대답 대신 격발기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진곤은 더 묻지 않았다⁠. 전선 끝을 마저 벗겼다⁠. 손톱 밑이 까맸다⁠. 다 벗기고 나서 진곤은 봉투를 넣은 가슴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단추가 채워졌는지 보는 손이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다리 북단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삼백 미터 건너⁠, 손 흔들 사람이 있을 자리였다⁠.

*

지휘소 뒤편 그늘에 함석겸이 누워 있었다⁠. 문짝 위에 그대로였다⁠. 야전상의 밑으로 군화 두 짝이 나와 있었다⁠. 한 짝의 끈이 풀려 있었다⁠. 치영은 쪼그려 앉아 끈을 묶었다⁠. 매듭을 두 번 지었다⁠. 대위의 손목에서 유리 깨진 시계를 풀어 제 주머니에 넣었다⁠. 시계는 열두 시 오십 분에 멈춰 있었다⁠.

“⁠커피는 함 대위가 탔지⁠.⁠”

치영은 혼잣말을 하고 일어났다⁠.

컨테이너로 돌아오니 운전병이 문 앞 계단에 앉아 물 없는 컵라면을 과자처럼 씹고 있었다⁠. 면이 이빨 사이에서 와작와작 부서졌다⁠. 운전병이 컵을 내밀었다⁠.

“⁠참모님⁠, 진짜 괜찮아요⁠. 스프 조금 뿌리면 과자예요⁠.⁠”

치영은 컵에 손을 넣어 면 한 조각을 집었다⁠. 씹었다⁠. 짰다⁠. 아침부터 먹은 첫 끼였다⁠.

“⁠맛없다⁠.⁠”

“⁠그쵸⁠. 근데 또 손이 가요⁠.⁠”

치영은 한 조각을 더 집었다⁠. 운전병이 처음으로 작전참모가 웃는 것을 본 얼굴을 했다⁠. 치영은 웃지 않았다⁠. 입꼬리가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

세 시 십 분⁠, 둑 아래 도로로 헌병 트럭 두 대가 들어왔다⁠. 짐칸에서 예비군들이 내렸다⁠. 얼룩무늬 전투복이 땀과 흙으로 범벅이었다⁠. 다리를 절며 내리는 사람⁠, 운동화 한 짝을 손에 든 사람이 있었다⁠. 헌병 하사가 치영에게 경례하고 보고했다⁠.

“⁠전곡 검문소에서 동원령 대상자로 확인된 백로동원사단 예비군 쉰두 명⁠, 원소속 부대로 복귀시켰습니다⁠.⁠”

일흔여섯 명 가운데 쉰둘이었다⁠. 나머지는 다른 길로 갔거나⁠, 다른 검문소에 잡혔거나⁠, 집에 닿았을 것이다⁠. 치영은 쉰둘을 둑 위에 세웠다⁠. 한 시간 반 전에 이 다리를 문짝을 들고 건너간 얼굴들이었다⁠. 얼굴들이 치영을 피했다⁠.

맨 앞줄에서 곽시훈이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 물집이 터져 있었다⁠.

“⁠작전참모님⁠.⁠”

“⁠말씀하십시오⁠.⁠”

“⁠저희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아무 잘못 안 했어요⁠. 고르라고 해서 골랐어요⁠. 근데 법이 데려왔어요⁠.⁠”

“⁠압니다⁠.⁠”

시훈 뒤에서 덩치 큰 예비군이 끼어들었다⁠. 양주에서 부동산 중개소를 한다는⁠, 정오에 정지선 앞에서 준묵에게 소리친 사람이었다⁠. 운동화 한 짝을 손에 든 사람이 중개소 예비군이었다⁠. 군화 끈이 끊어져 걷다가 버리고⁠, 가방에 넣어 온 운동화로 갈아 신었는데 한 짝이 또 터졌다고 했다⁠.

“⁠작전참모님⁠, 저 검문소에서 뭐라고 들은 줄 아세요⁠? 동원령 위반하면 징역이래요⁠. 아침에는 훈련 오면 교통비 준다더니⁠, 오후에는 징역이래요⁠.⁠”

“⁠교통비는 그대로 나갑니다⁠.⁠”

“⁠…지금 교통비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둑 위의 예비군 몇이 터지는 웃음을 참았다⁠. 중개소 예비군이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돌렸다⁠. 시훈이 휴대전화 화면을 치영 앞에 내밀었다⁠. 「⁠다리 지킴이 41⁠」 단톡방이었다⁠. 북단에서 홍구가 올린 사진이 맨 위에 있었다⁠. 논두렁 구덩이에 철모를 쓰고 쪼그려 앉은 준묵이 카메라를 향해 사탕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사진 밑에 홍구의 글이 붙어 있었다⁠. 「⁠북단 맛집 오픈⁠. 메뉴 사탕 두 알⁠. 남단 고객님들 리뷰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들 아직 저기 있어요⁠. 저희가 걸어가는 동안 저 사람들은 여기 있었어요⁠.⁠”

“⁠이제 저희 뭐 해요⁠? 다시 강 건너요⁠?⁠”

“⁠남단 둑에 진지를 팝니다⁠. 여섯 시에 기계화 대대가 오면 둑을 같이 받칩니다⁠.⁠”

둑 위의 예비군들이 웅성거렸다⁠. 강을 다시 건너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몇이 숨을 내쉬었다⁠. 시훈은 숨을 내쉬지 않았다⁠. 다리 건너 북단을 보았다⁠. 논두렁에 납작하게 엎드린 마흔몇 개의 철모가 햇빛에 반짝였다⁠.

“⁠북단 형님들은요⁠? 언제 건너와요⁠?⁠”

“⁠여섯 시에⁠.⁠”

“⁠여섯 시에 현역 오면 같이 건너오는 거죠⁠?⁠”

치영은 시훈을 보았다⁠. 스물일곱 살이었다⁠. 운동화 한 짝을 손에 든 사람이 시훈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치영은 대답을 고르는 대신 숫자를 떠올렸다⁠. 여섯 시⁠. 수첩의 줄 두 개⁠.

“⁠남단에 있으십시오⁠. 명령입니다⁠.⁠”

“⁠아까도 명령이었잖아요⁠. 그래서 형님이 고르라고 한 거잖아요⁠.⁠”

시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둑 위의 예비군들이 시훈과 치영을 번갈아 보았다⁠. 헌병 하사가 한 걸음 다가왔다⁠. 치영이 손을 들어 헌병을 멈추게 했다⁠.

“⁠곽시훈 씨⁠.⁠”

시훈이 움찔했다⁠. 이름을 불릴 줄 몰랐던 얼굴이었다⁠. 치영은 시훈의 명찰을 보지 않았다⁠. 정오에 다리 한가운데에서 인준묵 옆에 서 있던 얼굴이었고⁠, 셀카를 찍던 손이었다⁠.

“⁠북단에 가면 북단 사람이 하나 늘어납니다⁠. 남단에 있으면 여섯 시에 건너올 사람이 하나 줄어듭니다⁠. 어느 것이 형님들한테 좋겠습니까⁠?⁠”

시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을 깨물다가⁠, 물집 터진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치영은 돌아서서 컨테이너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시훈이 다른 예비군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작게⁠, 그러나 들리게⁠.

“⁠드라마에서는 저렇게 대답 안 하는 사람이 꼭 뭘 숨겨요⁠.⁠”

치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세 시 반⁠, 치영은 컨테이너 앞에서 쌍안경을 들었다⁠. 북단 삼거리에서 인준묵이 탁홍구라는 예비군과 함께 마을길 끝을 보고 있었다⁠. 마을길은 능선 밑으로 굽어 들어가 느릅골로 이어졌다⁠. 둘이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을 주고받았다⁠. 반원배가 둘 사이에 끼어 고개를 젓고 있었다⁠. 치영은 무슨 이야기인지 들을 필요가 없었다⁠. 느릅골에 요양원이 하나 있었다⁠. 사단 피란 계획서 맨 아래 줄에 있는 이름이었다⁠.

휴대전화가 떨렸다⁠. 아내의 문자였다⁠.

「⁠여보 차가 한 시간 반째 그대로야⁠. 애가 화장실 간대⁠. 당신 어디야⁠. 대답 좀 해⁠」

치영은 엄지를 화면 위에 올려놓은 채 한참 있었다⁠. 강바람이 컨테이너 모서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다리 위로 마지막 경운기 한 대가 탈탈거리며 건너오고 있었다⁠. 이음새 철판이 덜컹 울렸다⁠.

치영은 두 글자를 쳐서 보냈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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