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55자)

철수 명령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인준묵의 군화가 논바닥에 발목까지 빠졌다⁠. 3월의 논흙은 겉만 말라 있고 한 뼘 밑은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발을 뺄 때마다 흙이 쩍 소리를 내며 군화를 붙잡았다⁠. 준묵은 철모를 벗어 흙을 퍼냈다⁠. 삽은 열 자루뿐이었고 사람은 마흔하나였다⁠. 나머지는 철모와 손바닥으로 팠다⁠.

삼거리 북쪽 논두렁을 따라 얕은 구덩이가 한 줄로 늘어났다⁠. 마을길과 둑길을 둘 다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진지를 어디에 파야 하는지 원배가 무전으로 작전참모에게 물었고⁠, 작전참모는 길 두 개가 다 보이는 데라고 했다⁠. 준묵은 현역 때 분대장으로 진지를 파 본 사람이었다⁠. 몸이 먼저 기억했다⁠. 흙은 앞으로 쌓고⁠, 구덩이 바닥은 뒤로 기울이고⁠, 물이 고이면 한쪽을 깊게 판다⁠.

“⁠형님⁠, 흙을 왜 앞으로 쌓아요⁠?⁠”

옆 구덩이의 예비군이 물었다⁠. 스물여덟⁠, 동두천에서 학원 셔틀버스를 몬다고 했다⁠.

“⁠총알 막으라고⁠.⁠”

“⁠흙이 총알을 막아요⁠?⁠”

“⁠네 철모보다는 잘 막아⁠.⁠”

셔틀버스 기사는 철모를 내려다보았다⁠. 철모 끈 대신 묶은 고무줄이 늘어져 있었다⁠. 기사는 말없이 흙을 앞으로 쌓기 시작했다⁠.

누가 단톡방을 새로 만들었다⁠. 「⁠다리 지킴이 41⁠」 방 이름이 뜨자마자 홍구가 「⁠41 말고 40+1로 해⁠. 소대장님은 따로⁠」라고 쳤고⁠, 원배가 초대되자 「⁠소대장님 입장하셨습니다⁠」 알림 밑으로 이모티콘이 스무 개쯤 달렸다⁠. 경례하는 곰⁠, 우는 고양이⁠, 순댓국 사진⁠. 원배는 단톡방에 「⁠무전 우선입니다⁠」라고 한 줄 쓰고 나갔다가⁠, 홍구가 다시 초대했다⁠.

*

오후 한 시 사십 분부터 마을길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나둘이었다⁠. 자전거 짐받이에 보따리를 묶은 노인⁠, 강아지를 안고 걷는 젊은 여자⁠, 등에 아이를 업고 손에 아이를 잡은 남자⁠. 다음엔 경운기와 소형 트럭이 왔다⁠. 한우 두 마리를 실은 트럭이 삼거리에서 멈추더니⁠, 운전석의 농부가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다리 건너면 소 받아 줄 데 있소⁠?⁠”

“⁠저희도 모릅니다⁠, 어르신⁠.⁠”

“⁠모르면서 왜 여기 있소⁠?⁠”

“⁠그러게 말입니다⁠.⁠”

농부는 혀를 차고 다리로 올라갔다⁠. 짐칸의 소가 고개를 돌려 준묵을 보았다⁠. 소의 눈이 축축하게 빛났다⁠. 홍구가 구덩이 안에서 중얼거렸다⁠.

“⁠저 소들 내일이면 다 순댓국⁠… 아니다⁠, 소는 곰탕이지⁠.⁠”

“⁠사장님⁠.⁠”

“⁠농담이야⁠. 무서우면 입이 떠들어⁠.⁠”

보따리를 인 할머니 하나가 다리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준묵의 소매를 잡았다⁠. 손이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다⁠. 할머니는 준묵의 얼굴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주머니에서 사탕 두 알을 꺼내 쥐여 주었다⁠.

“⁠군인 양반⁠, 우리 집 장독 뚜껑 열어 놓고 왔는데⁠.⁠”

“⁠네⁠?⁠”

“⁠비 오면 덮어 줘⁠.⁠”

할머니는 대답을 듣지 않고 다리로 올라갔다⁠. 준묵은 손바닥의 사탕을 보다가⁠, 하나를 홍구에게 던져 주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원배는 삼거리 한가운데에 서서 피란 차량을 다리로 보냈다⁠. 팔을 휘두르는 모양이 처음보다 덜 어색했다⁠. 작전참모가 무전으로 건너간 차량 수를 물을 때마다 원배는 손가락을 꼽아 대답했다⁠. 준묵은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다들 한 번씩 돌아보았다⁠. 강 건너⁠, 제 마을 지붕을⁠.

새란에게서 문자가 왔다⁠. 「⁠의정부 마트 라면 다 털렸어⁠. 생수도 없어⁠. 근우 기저귀 한 팩 겨우 샀어⁠」 다음 문자가 바로 붙었다⁠. 「⁠당신 지금 어디야⁠. 다리라는데 무슨 다리야⁠」 준묵은 시훈이 올린 단톡방 사진이 아내에게까지 건너갔다는 것을 알았다⁠. 예비군들의 아내들이 서로 연락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준묵은 「⁠강 이쪽 다리⁠」라고 쳤다가⁠, 「⁠강 근처⁠」로 고쳐 보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휴대전화 위로 속보가 하나 더 떴다⁠. 「⁠해외 거래소⁠, 한국 관련 상품 거래 일시 정지⁠」 준묵은 속보를 두 번 읽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

두 시가 조금 못 되어 둑길 위쪽에서 사륜 군용 트럭 한 대가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앞 유리에 금이 가 있었고 타이어 하나가 바람이 빠져 휘청거렸다⁠. 트럭은 삼거리 앞에서 멈췄다⁠. 짐칸에서 병사 셋이 뛰어내렸다⁠. 하사 하나⁠, 상병 하나⁠, 일병 하나였다⁠. 상병은 손에 붕대를 감았고 붕대 끝이 붉게 젖어 있었다⁠. 셋 다 얼굴이 흙과 그을음으로 새까맸다⁠.

“⁠어디서 오셨어요⁠?⁠”

원배가 물었다⁠. 하사가 원배의 소위 계급장을 보고 경례를 붙였다⁠. 손끝이 떨렸다⁠.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철수 중입니다⁠. 대대 집결지가 다리 건너 남쪽으로 십오 킬로입니다⁠.⁠”

하사는 스물넷쯤 되어 보였다⁠. 눈이 벌갰다⁠. 어깨에 둥글고 긴 녹색 통 하나를 메고 있었다⁠. 장갑차를 멈추는 어깨 화기였다⁠. 하사는 삼거리의 예비군들을 훑어보았다⁠. 철모 대신 흙투성이 모자를 쓴 사람⁠, 고무줄로 철모 끈을 묶은 사람⁠, 구덩이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사람⁠.

“⁠예비군이에요⁠?⁠”

“⁠예비군입니다⁠.⁠”

준묵이 구덩이에서 올라오며 대답했다⁠. 하사는 준묵의 소총을 보았다⁠. 「⁠94⁠」라는 볼펜 글씨에서 하사의 눈이 멈췄다⁠.

“⁠그 총으로 여기서 뭐 하시는데요⁠?⁠”

“⁠다리 입구 열어 둡니다⁠.⁠”

하사는 웃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삼거리 가장자리에 세워 둔 두 돈 반 트럭으로 걸어갔다⁠. 아까 남단에서 삽과 탄약 상자를 싣고 건너온 트럭이었다⁠. 북단에 남은 차는 이것 하나였다⁠. 하사가 운전석 문을 잡았다⁠.

“⁠이 차⁠, 우리가 씁니다⁠. 우리 차는 타이어가 나갔어요⁠. 상병 하나 다쳤고⁠, 집결지까지 걸어갈 수 없습니다⁠.⁠”

준묵이 하사와 운전석 문 사이로 몸을 넣었다⁠. 둘의 거리가 한 뼘이었다⁠. 하사의 숨에서 쇠 냄새가 났다⁠.

“⁠하사님⁠. 다리 건너는 데는 트럭 필요 없습니다⁠. 삼백 미터입니다⁠.⁠”

“⁠다리 건너서 십오 킬로입니다⁠.⁠”

“⁠다친 분은 경운기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저쪽에 노인 태우고 오는 경운기가 또 있습니다⁠. 남단에 사단 지휘소가 있으니 거기서 앰뷸런스 탑니다⁠.⁠”

“⁠우리 대대 명령은 차량 확보해서 집결지로 오라는 겁니다⁠.⁠”

“⁠이 트럭이 여기서 빠지면 걸을 수 없는 노인들은 뭐 타고 다리 건넙니까⁠?⁠”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일입니까⁠?⁠”

하사의 턱이 굳었다⁠. 하사가 준묵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었다⁠. 준묵은 한 걸음 밀렸다가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등 뒤에서 마흔한 명이 구덩이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원배가 무전기를 쥔 채 둘 사이로 다가왔다⁠.

“⁠하사⁠, 제가 이 북단 지휘관입니다⁠. 트럭은 북단에 둡니다⁠.⁠”

목소리가 또박또박했다⁠. 끝은 조금 떨렸지만 말은 끝까지 나왔다⁠. 하사가 원배를 보았다⁠. 계급장을 보고⁠, 앳된 얼굴을 보고⁠, 등에 멘 무전기의 청테이프를 보았다⁠.

“⁠소위님⁠, 임관 몇 년 차십니까⁠?⁠”

“⁠넉 달입니다⁠.⁠”

하사가 웃었다⁠.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이 금방 꺼졌다⁠.

“⁠우리 감시초소에 소위님 동기가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남았습니다⁠. 우리 보고 먼저 내려가라고 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강바람이 갈대를 쓸었다⁠. 손에 붕대를 감은 상병이 트럭 범퍼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였다⁠. 일병은 어깨 화기의 끈을 쥐고 하사의 등만 보았다⁠.

준묵이 말했다⁠.

“⁠하사님⁠. 그 동기분이 하사님을 먼저 내려보낸 건⁠, 하사님이 여기까지 오라고 그런 거잖아요⁠. 여기가 다리 입구입니다⁠. 저희는 이 총밖에 없습니다⁠. 하사님은 그거 있잖아요⁠.⁠”

준묵은 하사의 어깨에 멘 녹색 통을 보았다⁠. 하사도 제 어깨를 보았다⁠.

“⁠한 발 남았습니다⁠.⁠”

“⁠저희는 한 발도 없습니다⁠. 쏴 본 적도 없고요⁠. 저 아저씨는 순댓국집 하고⁠, 저 아저씨는 학원 셔틀버스 몰고⁠, 저는 에어컨 팝니다⁠.⁠”

하사는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운전석 문에서 손을 뗐다⁠. 붕대 감은 상병에게 가서 쪼그려 앉아 뭐라고 짧게 말했다⁠.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사가 일어나 일병을 불렀다⁠.

“⁠너는 나랑 남아⁠. 상병님은 경운기 태워 보내⁠.⁠”

일병의 얼굴이 하얘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배가 출석부를 펴서 맨 아래 칸에 두 줄을 더 그렸다⁠. 하사와 일병의 이름을 받아 적었다⁠. 마흔셋이었다⁠. 하사는 원배가 쓰는 것을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다⁠.

“⁠소위님⁠, 그건 출석부잖아요⁠.⁠”

“⁠예⁠. 아침에 받은 겁니다⁠. 다른 종이가 없습니다⁠.⁠”

“⁠예비군 출석부에 현역을 올리면 어떡합니까⁠?⁠”

“⁠오늘은 다 같이 출석입니다⁠.⁠”

예비군 몇이 웃었다⁠. 하사도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었다⁠.

하사는 진지를 따라 걸으며 구덩이를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흙을 앞으로 쌓은 구덩이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휴대전화 충전기를 꽂을 데를 찾는 예비군 앞에서는 한숨을 쉬었다⁠. 탄알집을 받은 대로 주머니에 넣어 둔 사람에게는 주머니 단추부터 채우라고 했다⁠. 떨어뜨리면 논바닥에서 못 찾는다고⁠. 준묵이 하사를 따라 걸었다⁠.

“⁠감시초소에서 몇 시에 나오셨어요⁠?⁠”

“⁠아홉 시 반이요⁠. 포가 먼저 떨어지고⁠, 철수 명령이 나중에 왔어요⁠.⁠”

하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 구덩이 하나를 지나고 나서야 덧붙였다⁠.

“⁠다섯 시간 걸었어요⁠. 산으로⁠.⁠”

원배가 하사에게 다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구겨진 커피믹스 봉지였다⁠. 함석겸의 등에서 날아온 봉지였다⁠.

“⁠드십시오⁠. 물은 없습니다⁠.⁠”

“⁠물 없는 커피믹스를 어떻게 먹어요⁠?⁠”

“⁠그냥 털어 넣으시면 됩니다⁠. 단 거 드시면 좀 낫습니다⁠.⁠”

하사는 봉지를 받아 들고 한참 보다가 끝을 뜯었다⁠. 고개를 젖히고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다⁠. 가루가 목에 걸려 콜록거렸다⁠. 콜록거리면서도 봉지를 끝까지 털었다⁠. 일병이 옆에서 침을 삼켰다⁠. 원배는 주머니를 뒤집어 보였다⁠. 하나뿐이었다⁠.

“⁠중대장님이 주신 겁니다⁠.⁠”

하사는 중대장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빈 봉지를 접어 제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

붕대 감은 상병은 피란민 경운기 짐칸에 실려 다리를 건너갔다⁠. 경운기를 몰던 노인이 상병의 어깨에 자기 목도리를 감아 주었다⁠. 원배가 무전으로 남단에 알렸다⁠. 작전참모의 대답은 짧았다⁠. “⁠받는다⁠. 현역 둘 북단 잔류 확인⁠.⁠”

두 시 이십 분⁠, 홍구가 준묵의 구덩이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휴대전화를 꽉 쥐고 있었다⁠. 홍구의 얼굴에서 아침부터 붙어 있던 넉살이 없었다⁠.

“⁠형님⁠.⁠”

“⁠왜⁠?⁠”

“⁠우리 엄마요⁠. 느릅골 요양원에서 밥해요⁠. 조리사예요⁠. 십오 년째⁠.⁠”

준묵은 홍구를 보았다⁠. 홍구는 마을길이 굽어 들어가는 능선 밑을 보고 있었다⁠.

“⁠요양원 원장님이 방금 전화했어요⁠. 승합차 하나 있던 거⁠, 직원들이 아침에 타고 나갔대요⁠. 남은 사람이 원장님하고 우리 엄마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열아홉이요⁠. 거동 못 하는 분이 여덟⁠.⁠”

“⁠어머니는⁠…⁠”

“⁠우리 엄마는 안 나온대요⁠. 할머니들 두고는 못 나온대요⁠. 내가 전화했더니⁠, 점심 해 놨으니까 다 먹이고 생각해 본대요⁠. 점심을⁠, 형님⁠. 지금 포탄 떨어지는데 점심을⁠.⁠”

홍구가 웃었다⁠. 웃음이 목에 걸려 기침이 되었다⁠. 준묵은 홍구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가 떨렸다⁠.

“⁠사장님 엄마 고집⁠, 사장님 닮았네요⁠.⁠”

“⁠제가 엄마 닮은 거예요⁠. 순서가 그래요⁠.⁠”

준묵은 다리를 돌아보았다⁠. 남단 둑 위 컨테이너 앞에 작전참모가 서 있었다⁠. 북단에 남은 트럭 한 대⁠, 마흔셋⁠, 능선 너머 이 킬로미터⁠, 노인 열아홉⁠. 준묵은 가슴 주머니를 눌렀다⁠. 도화지가 땀에 눅눅해져 있었다⁠.

원배의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원배가 받았다가 준묵을 돌아보았다⁠.

“⁠두 시에 대통령 담화랍니다⁠. 동원령이 나올 거라고⁠.⁠”

준묵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두 시 이십육 분⁠. 담화는 벌써 시작했을 것이다⁠. 단톡방이 쉬지 않고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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