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69자)

마흔하나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반원배는 무릎 밑에서 아스팔트 부스러기가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삼거리 한가운데가 움푹 패어 있었고⁠, 패인 자리 가장자리에 함석겸 대위가 누워 있었다⁠. 대위는 팔 하나를 다리 입구로 뻗고 있었다⁠. 손목시계 유리가 깨져 있었다⁠. 원배는 대위의 이름을 두 번 불렀다⁠. 세 번째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등에 붙어 있던 커피믹스 봉지가 바람에 날려 원배의 무릎에 와 닿았다⁠. 원배는 봉지를 집어 들었다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주머니에 넣었다⁠.

무전기가 등 뒤에서 지직거렸다⁠.

“⁠북단⁠, 북단⁠. 상황 보고⁠.⁠”

작전참모의 목소리였다⁠. 원배는 송수화기를 쥐었다⁠. 손가락이 송신 단추 위에서 미끄러졌다⁠. 입을 열었는데 숨만 나갔다⁠. 귓속에서 쇠 우는 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임관하고 두 달째⁠, 처음 실사격 훈련을 통제하던 날도 이랬다⁠. 사로에서 병사 하나가 탄피 걸림으로 총구를 옆으로 돌렸고⁠, 원배는 「⁠사격 중지⁠」를 외쳐야 하는 자리에서 입만 벌리고 서 있었다⁠. 옆에서 대신 외친 사람이 함석겸이었다⁠. 훈련이 끝난 저녁⁠, 함석겸은 커피믹스를 타 주며 말했다⁠. 소대장⁠, 처음엔 다 그래⁠. 보고서에는 통제 장비 고장이라고 썼어⁠. 다음엔 네가 외쳐⁠.

“⁠소대장님⁠.⁠”

누가 원배의 어깨를 잡았다⁠. 인준묵이었다⁠. 준묵의 모자가 어디론가 날아가 덥수룩한 머리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숨 한 번 쉬고 말하세요⁠. 들이쉬고⁠, 내쉬고⁠. 네⁠, 지금⁠.⁠”

원배는 숨을 들이쉬었다⁠. 흙먼지와 화약 냄새가 목구멍을 긁었다⁠. 송신 단추를 눌렀다⁠.

“⁠북단입니다⁠. 중대장님⁠… 전사하셨습니다⁠. 부상 둘입니다⁠.⁠”

무전기 너머가 잠깐 비었다⁠. 강바람 소리만 지직거렸다⁠.

“⁠반 소위가 중대를 지휘해⁠. 부상자는 경운기로 남단에 보내⁠.⁠”

“⁠예⁠, 알겠습니다⁠.⁠”

원배는 대답하고 나서야 무엇을 알았다고 했는지 깨달았다⁠. 중대를 지휘하라는 말이었다⁠. 백열일곱 명이었다⁠.

*

부상자 둘은 파편에 허벅지와 어깨를 다쳤다⁠. 둘 다 정신이 또렷했고⁠, 한 사람은 실려 가면서도 휴대전화를 놓지 않았다⁠. 경운기 주인 노인이 다리 위에서 경운기를 돌려 다시 건너왔다⁠. 노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짐칸의 이불 보따리를 내리고 부상자를 실었다⁠.

“⁠할아버지⁠, 이불은요⁠?⁠”

탁홍구가 물었다⁠.

“⁠이불은 또 사면 돼⁠. 저 사람들은 또 못 사⁠.⁠”

경운기가 탈탈거리며 다리를 건너갔다⁠. 홍구는 길가에 버려진 이불 보따리를 보다가 제 휴대전화를 꺼냈다⁠. 배달 앱 리뷰 알림이 하나 더 와 있었다⁠. 「⁠사장님 오늘 문 여시나요⁠?⁠」 홍구는 답글을 쓰려다가 엄지를 멈췄다⁠.

삼거리의 예비군들은 논두렁에 엎드려 있지 않았다⁠. 다들 일어나 있었다⁠. 몇은 다리 입구 쪽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몇은 휴대전화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내가 아침에 휴가 쓰라고 했잖아⁠!⁠」 하는 여자 목소리가 누구의 스피커에서 크게 새어 나왔다⁠. 곽시훈은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회사 메신저 근태 화면을 붙들고 있었다⁠. 결근 사유를 고르는 칸에 「⁠병가⁠」「⁠경조사⁠」「⁠예비군⁠」「⁠기타⁠」가 있었다⁠.

“⁠형님⁠, 전쟁은 기타예요⁠?⁠”

“⁠예비군 눌러⁠.⁠”

“⁠예비군은 오늘까지만 되는데요⁠. 내일은요⁠?⁠”

준묵은 대답하지 않았다⁠. 원배는 예비군들 사이를 걸으며 입속으로 숫자를 셌다⁠. 셀 때마다 숫자가 달랐다⁠. 사람들이 움직였고⁠, 원배의 입이 자꾸 엉켰다⁠.

준묵이 원배 옆으로 왔다⁠.

“⁠소대장님⁠. 고르게 하겠습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남을 사람하고 갈 사람⁠.⁠”

“⁠그건 명령 위반입니다⁠.⁠”

원배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말이 빨라지는 것은 원배도 알았다⁠.

“⁠명령은 다리를 지키는 것이고⁠, 지휘는 제가 하고⁠, 지금 여기서 이탈하면 무단 이탈이고⁠, 무단 이탈은⁠…⁠”

“⁠소대장님⁠.⁠”

준묵이 원배의 말을 끊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명령은 중대장님이 받으셨습니다⁠. 중대장님은 저기 계십니다⁠.⁠”

준묵은 삼거리 한가운데를 턱으로 가리키지 않았다⁠. 대신 눈만 그리로 옮겼다⁠. 함석겸 위에 누군가의 야전상의가 덮여 있었다⁠.

“⁠지금 저 사람들 다 다리로 갈 겁니다⁠. 소대장님이 막아도 갑니다⁠. 막으면 등 뒤에서 가고⁠, 고르게 하면 얼굴 보고 갑니다⁠. 남는 사람도 그래야 남아서 버팁니다⁠.⁠”

원배는 송수화기를 들었다⁠. 손이 떨렸지만 이번에는 단추가 눌렸다⁠.

“⁠남단⁠, 북단입니다⁠. 예비군 일부가 철수를 희망합니다⁠. 희망자를 받아도 되겠습니까⁠?⁠”

“⁠안 돼⁠.⁠”

치영의 대답은 바로 왔다⁠.

“⁠막아⁠. 다리 건너오는 예비군은 무단 이탈로 처리한다⁠.⁠”

원배는 송수화기를 귀에 댄 채 준묵을 보았다⁠. 준묵은 원배를 보지 않았다⁠. 다리 입구 아스팔트에 그어진 흰 정지선을 보고 있었다⁠. 차가 다리에 오르기 전에 멈추라고 그어 둔 선이었다⁠. 페인트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

준묵은 정지선 앞에 가서 다리를 등지고 멈췄다⁠. 원배는 준묵을 말리지 않았다⁠. 말리지 못한 것인지 말리지 않은 것인지 원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반 소위⁠, 막고 있나⁠?⁠”

원배는 정지선 앞의 준묵을 보았다⁠. 준묵의 등에 소총이 비스듬히 매달려 있었고⁠, 개머리판의 칠 벗겨진 자리가 햇빛을 받았다⁠. 원배는 송신 단추를 눌렀다⁠.

“⁠…막고 있습니다⁠.⁠”

임관하고 처음 한 거짓말이었다⁠. 말하고 나니 귀가 뜨거워졌다⁠. 송수화기를 내리는데 손이 아까보다 덜 떨렸다⁠. 원배는 그것이 더 무서웠다⁠.

“⁠다들 이리 와 보세요⁠. 한 번만 말하겠습니다⁠.⁠”

준묵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정지선 앞으로 모였다⁠. 백열일곱 명이 반원을 그리며 준묵을 둘러쌌다⁠.

“⁠걸어서 집에 갈 사람은 이 선을 넘어서 다리로 가세요⁠. 남을 사람은 선 이쪽에 있으세요⁠. 아무도 뭐라 안 합니다⁠. 걸어가는 길도 위험합니다⁠. 여기 있는 것도 위험합니다⁠. 여섯 시간입니다⁠. 고르세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바람이 갈대를 쓸었다⁠. 맨 앞줄의 예비군 하나가 손을 들었다⁠. 원배가 아는 얼굴이었다⁠. 첫날 “⁠월드컵 다음 해⁠”라고 놀린 사람이었다⁠.

“⁠저 애 엄마 혼자 있어요⁠. 애가 백일 안 됐어요⁠.⁠”

“⁠가세요⁠.⁠”

예비군은 고개를 숙이고 선을 넘었다⁠. 넘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탓하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선 너머에서 한 사람이 뒤를 돌아 소리쳤다⁠.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큰 예비군이었다⁠. 양주에서 부동산 중개소를 한다고 했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고르라고 해 놓고 넘어간 사람 겁쟁이 만드는 거잖아요⁠!⁠”

준묵이 중개소 예비군을 보았다⁠.

“⁠겁쟁이 아닙니다⁠.⁠”

“⁠그럼 남는 사람은 뭔데요⁠? 영웅이에요⁠?⁠”

“⁠남는 사람도 영웅 아닙니다⁠. 다들 무섭습니다⁠.⁠”

“⁠형님은 왜 남는데요⁠? 형님은 애 없어요⁠?⁠”

삼거리가 조용해졌다⁠. 원배는 준묵의 손이 가슴 주머니로 가는 것을 보았다⁠. 손은 주머니 덮개 위에서 멈췄다가 내려왔다⁠.

“⁠둘 있습니다⁠. 여섯 살⁠, 세 살⁠.⁠”

“⁠그런데 왜요⁠?⁠”

“⁠고르라고 한 사람이 먼저 가면 안 되니까요⁠.⁠”

중개소 예비군은 입을 다물었다⁠. 한참 준묵을 노려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며 다리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다음 사람이 넘었다⁠. 회사에 오늘 감사가 있다는 사람⁠, 다음 주에 결혼한다는 사람⁠, 어머니가 투석하러 가야 하는데 태워 줄 사람이 없다는 사람이 넘었다⁠. 넘으면서 다들 무언가 한마디씩 했다⁠. 준묵은 매번 똑같이 대답했다⁠. 가세요⁠.

곽시훈이 정지선 앞에서 멈칫거렸다⁠.

“⁠형님⁠, 죄송해요⁠. 저 드라마는 다 봤는데 이건 못 하겠어요⁠.⁠”

“⁠드라마 다 봤으면 알잖아⁠.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오래 살아⁠.⁠”

“⁠그런 드라마는 없는데요⁠.⁠”

“⁠그럼 네가 처음 해⁠.⁠”

시훈은 웃다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선을 넘었다⁠. 넘고 나서 준묵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홍구는 넘지 않았다⁠. 선 이쪽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사장님은 안 가세요⁠?⁠”

원배가 물었다⁠. 홍구가 마을길을 턱으로 가리켰다⁠.

“⁠우리 엄마 느릅골 살아요⁠. 저 길로 이 킬로⁠. 내가 가게를 지키겠어요⁠, 엄마를 지키겠어요⁠?⁠”

“⁠가게는요⁠?⁠”

“⁠가스 밸브가 누워 있기를 빌어야죠⁠. 고객님들도 이해하실 거예요⁠.⁠”

원배에게는 고를 선이 없었다⁠. 소대장은 처음부터 선 이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고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상하게 원배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다시 떨렸다⁠. 어머니의 문자였다⁠. 「⁠원배야 밥은 먹었니⁠? 뉴스에 연천 나온다⁠. 전화 좀 해⁠」 원배는 「⁠밥 먹었어요⁠」라고 쳤다⁠. 아침 아홉 시에 먹은 건빵 반 봉지도 밥이라면 밥이었다⁠. 보내고 나서 한 줄을 더 쳤다가 지웠다⁠. 「⁠엄마⁠, 나 오늘 처음으로 사람을 셌어요⁠」는 보낼 말이 아니었다⁠.

원배는 출석부를 꺼냈다⁠. 아무 생각 없이 꺼낸 것이었다⁠. 펜을 쥐고 선 이쪽에 남은 얼굴들을 하나씩 짚었다⁠. 아침마다 부르던 이름들이었다⁠. 번호를 붙여 나가자 손가락 끝이 차분해졌다⁠. 숫자가 엉키지 않았다⁠.

마흔하나였다⁠.

선 너머에 일흔여섯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가지 않았다⁠. 선을 넘은 예비군 몇이 삼거리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야전상의에 덮인 함석겸을 문짝 하나에 옮겨 실었다⁠. 근처 빈 창고에서 뜯어 온 문짝이었다⁠. 여섯이 문짝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들어 올렸다⁠.

“⁠중대장님은 저희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애가 백일 안 됐다는 예비군이 말했다⁠. 준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흔여섯 명이 문짝을 앞세우고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덩어리로 흘러가지 않았다⁠. 문짝을 든 여섯을 가운데 두고 두 줄로 걸었다⁠. 다리 이음새를 밟을 때마다 철판이 덜컹 울렸다⁠. 원배는 철판 소리를 발바닥으로 들었다⁠. 일흔여섯 명의 발소리가 다리를 떨게 했다⁠.

*

무전기가 울렸다⁠.

“⁠반 소위⁠. 몇 명이야⁠?⁠”

원배는 다리 위를 보았다⁠. 문짝이 다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남단 둑 위에 작전참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작전참모도 원배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원배는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백열일곱이라고 하면 작전참모는 다리 위의 일흔여섯을 보고도 숫자를 받아 적을지 몰랐다⁠. 원배는 송신 단추를 눌렀다⁠.

“⁠북단 잔류 마흔하나입니다⁠. 일흔여섯 명이 다리를 건너갑니다⁠. 중대장님을 모시고 갑니다⁠. 제가 막지 않았습니다⁠.⁠”

송수화기 너머가 길게 비었다⁠. 원배는 마른침을 삼켰다⁠. 휴대전화가 바지 주머니에서 떨렸다⁠. 어머니였을 것이다⁠. 서울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아들의 부대 이름을 검색하고 있을 사람이었다⁠. 화면에 해외 항공사들이 인천 운항을 멈췄다는 속보가 떠 있었다⁠.

“⁠건너오는 일흔여섯은 내가 받는다⁠.⁠”

치영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인준묵 바꿔⁠.⁠”

원배는 송수화기를 준묵에게 내밀었다⁠. 준묵이 받았다⁠. 원배는 송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옆에서 들었다⁠.

“⁠인준묵 씨⁠.⁠”

“⁠네⁠.⁠”

“⁠고르게 했으니⁠, 고른 사람들은 당신이 데리고 있으십시오⁠. 남은 마흔하나는 이제 당신 책임입니다⁠.⁠”

준묵은 대답하지 않고 송수화기를 원배에게 돌려주었다⁠. 원배는 출석부를 덮었다⁠. 마흔한 명이 정지선 이쪽에서 다리를 건너가는 문짝을 보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돌아서지 않았다⁠. 원배의 주머니 속에서 커피믹스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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