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40자)

영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반원배의 군화 앞코가 다리 남단 마지막 이음새 철판에 닿아 있었다⁠. 철판 너머는 둑으로 내려가는 아스팔트였다⁠. 한 걸음이면 다리 밖이었다⁠. 원배는 한 걸음을 디디지 않았다⁠. 다리 위에 사람이 있었다⁠.

인준묵이 다리 위로 뛰어가고 있었다⁠. 뛰는 모습이 이상했다⁠. 아침부터 예비군은 안 뛴다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준묵의 군화가 이음새 철판을 밟을 때마다 덜컹 소리가 원배의 발밑까지 전해졌다⁠. 다리는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다리는 소리를 멀리 보냈다⁠.

원배는 따라 뛰려고 했다⁠. 무릎이 먼저 앞으로 나갔다⁠. 허리의 무전기가 울렸다⁠.

“⁠반 소위⁠. 다리 위 인원⁠.⁠”

작전참모였다⁠. 원배는 무릎을 멈췄다⁠. 따라 뛰면 다리 위 인원이 셋이 되었다⁠. 셋이 된 다리 위 인원을 부를 사람이 없었다⁠. 원배는 송수화기를 들었다⁠.

“⁠둘입니다⁠. 인준묵⁠, 곽시훈⁠. 곽시훈 부상⁠. 남단에서 백 미터⁠.⁠”

무전기 너머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배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십 분이었다⁠.

네가 고른 거다⁠. 다섯 시 반에 작전참모가 한 말이었다⁠. 원배는 제가 골랐다고 대답했다⁠. 대답하고 나서 처음으로 대답이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원배가 고를 것은 하나뿐이었다⁠. 다리 위의 숫자를 정확히 부르는 것⁠. 숫자를 부르는 입이 원배의 입이었다⁠.

바지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떨렸다⁠. 어머니일 것이었다⁠. 원배는 꺼내지 않았다⁠. 떨림이 허벅지에서 세 번 울리고 멎었다⁠.

*

준묵이 시훈 옆에 무릎을 꿇었다⁠. 원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백 미터였다⁠. 두 사람이 엄지손가락만 했다⁠. 준묵이 시훈의 팔을 잡아 제 어깨에 걸쳤다⁠. 시훈이 무언가를 외쳤다⁠. 바람을 타고 끊어진 말이 원배의 귀에 닿았다⁠.

“⁠…바구니⁠…⁠”

준묵이 엎어진 바구니를 집어 시훈의 가슴에 안겼다⁠. 흩어진 컵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바구니에 담았다⁠. 원배는 준묵의 손을 보며 숨을 멈췄다⁠. 컵 몇 개가 바구니에 안 들어가고 굴러갔다⁠. 준묵은 굴러간 컵을 줍지 않았다⁠. 시훈을 등에 업고 일어났다⁠. 시훈의 다리 하나가 힘없이 흔들렸다⁠. 시훈은 두 팔로 바구니를 끌어안고 있었다⁠.

틀니 컵⁠. 원배가 느릅골 식당에서 “⁠챙기겠습니다⁠”라고 대답한 컵이었다⁠. 대답부터 하고 나서⁠, 이번 대답은 지킬 수 있겠다고 생각한 컵이었다⁠.

북단에서 총소리가 났다⁠. 준묵의 발 옆 콘크리트가 튀었다⁠. 준묵이 몸을 낮추고 걸음을 빨리했다⁠. 업힌 사람이 있어서 빨라지지 않았다⁠.

원배 뒤에서 굉음이 터졌다⁠. 둑 위의 장갑차였다⁠. 포탑이 다리 북단을 향해 불을 뿜었다⁠. 원배의 귀가 먹먹해졌다⁠. 다리 북단 삼거리에서 흙먼지가 솟았다⁠. 둑 위의 하사와 예비군들도 북단으로 총을 쏘았다⁠. 녹슨 소총과 장갑차의 포가 한꺼번에 울렸다⁠. 소리의 크기가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원배는 우스웠다⁠. 우습다고 생각한 자신이 이상했다⁠.

북단의 총소리가 잠깐 멎었다⁠.

*

여섯 시 십일 분⁠. 준묵이 다리 위를 걷고 있었다⁠. 뛰지 못했다⁠. 시훈을 업은 채 한 걸음씩 걸었다⁠. 한 걸음마다 이음새 철판이 덜컹 울렸다⁠. 원배는 철판 소리를 셌다⁠. 아침에는 일흔여섯 명의 발소리가 다리를 떨게 했다⁠. 지금은 한 사람의 발소리가 다리를 떨게 했다⁠.

“⁠분대장님⁠!⁠”

원배가 외쳤다⁠. 준묵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 힘을 다리에 쓰고 있었다⁠.

둑 위에서 사람들이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병⁠, 체육대회 모자⁠, 셔츠 깃을 적신 예비군⁠. 장갑차 위의 현역들⁠. 버스 옆의 원장과 노인들⁠. 버스 깨진 창문 안의 어머니⁠.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몇이 다리로 내려오려는 것을 하사가 팔을 벌려 막았다⁠. 다리 위 인원이 늘면 안 되었다⁠.

북단 끝에 사람이 올라왔다⁠. 하나⁠, 둘⁠, 셋⁠. 군복 색이 달랐다⁠. 장갑차 포격이 멎은 틈에 삼거리 구덩이에서 일어난 북쪽 보병들이었다⁠. 다리 북단 진입로를 따라 다리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하나가 무릎을 꿇고 다리를 따라 총을 겨누었다⁠.

원배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열두 시를 지났다⁠. 여섯 시 십이 분이었다⁠.

무전기가 울렸다⁠.

“⁠반 소위⁠. 인원⁠.⁠”

원배는 송수화기를 입에 댔다⁠. 다리 위를 보았다⁠. 준묵과 시훈⁠. 거리를 눈으로 쟀다⁠.

“⁠둘⁠. 칠십 미터⁠.⁠”

무전기 너머가 비었다⁠. 원배는 기다리지 않았다⁠. 송신 단추를 누른 채 손을 떼지 않았다⁠.

“⁠육십 미터⁠.⁠”

원배의 입술이 말라붙었다⁠. 혀로 입술을 축이고 다음 숫자를 기다렸다⁠.

다리 북단에서 북쪽 보병들이 다리 위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섯⁠, 여섯⁠. 다리 한가운데를 향해 걸었다⁠. 맨 앞의 보병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남단을 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철모 밑의 그늘만 보였다⁠. 저쪽에서도 이쪽의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원배는 보병들의 수를 세지 않았다⁠. 원배가 셀 수는 둘이었다⁠.

“⁠오십 미터⁠.⁠”

다리가 발밑에서 떨렸다⁠. 북쪽 보병들의 발소리와 준묵의 발소리가 한 다리 위에서 섞였다⁠. 철판 이음새가 양쪽에서 덜컹거렸다⁠. 원배는 떨림을 발바닥으로 들었다⁠. 같은 다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을 건네준 다리였다⁠.

“⁠사십 미터⁠.⁠”

시훈이 준묵의 등에서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하얬다⁠. 바구니를 놓지 않았다⁠. 시훈이 원배를 보고 입을 벌렸다⁠. 원배는 시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입 모양만 보였다⁠. 소대장님⁠. 약속⁠.

“⁠삼십 미터⁠.⁠”

둑 아래 참호에서 도진곤이 둑 비탈에 등을 떼고 앉은 것이 원배의 눈 끝에 보였다⁠. 진곤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리 끝만 보고 있었다⁠. 버스 깨진 창문 안에서 홍구의 어머니가 고개를 들어 다리를 보고 있었다⁠. 한 손은 아직 아들의 손등 위에 있었다⁠. 원장이 버스 옆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무전기 너머에서 작전참모의 숨소리가 들렸다⁠. 원배는 작전참모의 숨소리를 알아들었다⁠. 작전참모도 송신 단추를 누르고 있었다⁠. 누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숨소리 밑으로 다른 소리가 섞였다⁠. 쇠붙이가 쇠붙이에 닿는 작은 소리였다⁠. 손잡이를 쥔 손이 떨리는 소리였다⁠. 원배는 작전참모의 손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손잡이 위의 손이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

“⁠이십 미터⁠.⁠”

북단에서 총소리가 났다⁠. 준묵의 어깨가 움찔했다⁠. 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시훈이 비명을 질렀다⁠. 바구니의 컵 하나가 깨졌다⁠. 둑 위의 장갑차가 다시 불을 뿜었다⁠. 다리 북단에서 북쪽 보병들이 엎드렸다⁠.

“⁠십 미터⁠.⁠”

준묵의 얼굴이 보였다⁠. 사흘 기른 수염이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덥수룩한 머리에 흙이 엉겨 있었다⁠. 어긋난 단추 탓에 들린 가슴 주머니에서 도화지 끝이 비죽 나와 있었다⁠. 빨간 크레파스의 해가 조금 보였다⁠. 준묵은 원배를 보지 않았다⁠. 발밑만 보고 있었다⁠. 이음새⁠, 이음새⁠, 이음새⁠.

“⁠오 미터⁠.⁠”

원배는 이음새 철판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다리 밖⁠, 아스팔트 위로 물러났다⁠. 원배가 서 있던 자리를 준묵이 밟았다⁠. 마지막 철판이 덜컹 울었다⁠. 준묵의 군화가 철판을 넘어 아스팔트를 디뎠다⁠. 다리 밖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준묵이 무릎을 꿇었다⁠. 시훈이 준묵의 등에서 미끄러져 아스팔트에 앉았다⁠. 바구니가 시훈의 품에서 달그락거렸다⁠.

원배는 오른팔을 높이 들었다⁠. 손바닥을 펴서 남단 둑 아래 참호를 향해 흔들었다⁠. 둑 비탈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던 도진곤이 원배의 손을 보았다⁠. 진곤이 벌떡 일어났다⁠. 원배는 송신 단추를 눌렀다⁠. 목소리가 끝까지 나왔다⁠. 갈라지지 않았다⁠. 떨리지도 않았다⁠.

“⁠영⁠.⁠”

*

소리는 없었다⁠. 처음 한 박자 동안은 아무 소리도 없었다⁠. 원배는 다리 밑에서 빛이 먼저 오는 것을 보았다⁠. 교각 두 개의 허리에서 하얀 빛이 번쩍였다⁠. 빛이 사라지기 전에 땅이 원배의 군화를 밑에서 걷어찼다⁠. 원배는 넘어졌다⁠. 그제야 소리가 왔다⁠. 소리라기보다 무게였다⁠. 공기가 통째로 원배의 가슴을 눌렀다⁠.

귓속에서 쇠 우는 소리가 났다⁠. 아침 훈련장 주차장에서 들은 소리였다⁠. 원배는 아스팔트에 엎드린 채 고개를 들었다⁠.

다리 한가운데가 내려앉고 있었다⁠. 콘크리트 상판 둘이 교각 위에서 미끄러지며 천천히 강 쪽으로 기울었다⁠. 쇠 난간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이음새 철판이 하나씩 튀어 올라 햇빛을 받으며 강으로 떨어졌다⁠. 상판이 강물에 닿았다⁠. 누런 물기둥이 다리 높이보다 높이 솟았다가 무너졌다⁠. 물보라가 남단 둑까지 날아와 원배의 얼굴을 적셨다⁠. 차갑고 흙냄새가 났다⁠.

다리 북단 끝에 북쪽 보병들이 서 있었다⁠. 무너진 상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북쪽 보병들과 원배 사이에 강이 있었다⁠. 다리가 없는 강이었다⁠. 누런 강물이 무너진 상판 사이로 소용돌이치며 흘러갔다⁠.

흙먼지와 물안개가 강 위로 피어올랐다⁠. 하얀 연기 기둥 하나가 끊어진 다리 자리에서 곧게 올라갔다⁠. 바람이 없어서 기둥은 흩어지지 않았다⁠.

원배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계 유리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엄지로 닦았다⁠. 여섯 시 십사 분 사십 초였다⁠.

준묵이 원배 옆 아스팔트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시훈이 바구니를 끌어안고 앉아 울고 있었다⁠. 깨진 컵 조각이 바구니 바닥에서 반짝였다⁠.

원배는 송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송신 단추를 눌렀다⁠. 무전기 너머에서 작전참모의 목소리가 먼저 왔다⁠.

“⁠…수고했다⁠, 반 소위⁠.⁠”

원배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예⁠, 알겠습니다⁠」가 목까지 올라왔다⁠. 원배는 말을 삼켰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다리 위 인원⁠, 영입니다⁠. 남단 집결 완료⁠.⁠”

원배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다 끝나고 나서야 떨렸다⁠.

참호에서 도진곤이 기어 올라왔다⁠. 진곤은 원배 앞에 와서 떨리는 원배의 어깨를 한 번 짚었다⁠. 흙투성이 손바닥이 묵직했다⁠.

“⁠손 봤어유⁠. 소위님 손⁠.⁠”

진곤은 한마디만 하고 다시 참호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등이 아침보다 굽어 있었다⁠.

시훈이 바구니를 원배에게 내밀었다⁠. 바구니 바닥에 컵 조각이 깔려 있었다⁠. 성한 컵이 열둘⁠, 깨진 컵이 셋이었다⁠.

“⁠소대장님⁠, 컵⁠… 세 개 깨졌어요⁠. 다섯 개는 다리에서 굴러갔고요⁠.⁠”

원배는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플라스틱 컵마다 네임펜으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할머니들의 이름이었다⁠.

“⁠괜찮습니다⁠. 컵은 또 사면 됩니다⁠.⁠”

원배는 말하고 나서⁠, 아침에 경운기 노인이 이불 보따리를 길가에 버리며 한 말을 떠올렸다⁠. 이불은 또 사면 된다고⁠, 사람은 또 못 산다고⁠. 원배는 시훈의 허벅지를 보았다⁠. 하사가 와서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다⁠. 시훈이 이를 악물었다가⁠, 붕대가 다 감기자 원배를 보고 웃었다⁠.

“⁠소대장님⁠, 저 이거 드라마에서 봤어요⁠. 마지막에 다리 끊기는 거⁠.⁠”

“⁠어떻게 끝났습니까⁠?⁠”

“⁠주인공이 다리 위에 남았어요⁠.⁠”

“⁠그럼 이건 다른 드라마입니다⁠.⁠”

준묵이 아스팔트에 누운 채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기침이 멎자 고개를 돌려 원배를 보았다⁠.

“⁠소대장님⁠. 영⁠, 잘 부르셨어요⁠.⁠”

원배는 대답하지 못했다⁠.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강 위의 하얀 연기 기둥이 저녁 해를 받아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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