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91자)

버스를 미는 사람들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인준묵의 군화 밑창이 철판 이음새 위에서 미끄러졌다⁠. 준묵은 발끝을 콘크리트 틈에 박고 다시 어깨를 버스 범퍼에 댔다⁠. 범퍼의 쇠가 쇄골을 눌렀다⁠. 아침부터 소총 멜빵이 쓸던 자리였다⁠. 옆에서 셔츠 깃을 땀으로 적신 예비군이 숨을 몰아쉬었고⁠, 한 칸 건너 하사가 피 묻은 귀를 버스에 대고 있었다⁠. 범퍼 하나에 어깨가 여섯 개 붙어 있었다⁠. 옆구리와 뒤 모서리에 손바닥이 서른 개쯤 붙어 있었다⁠.

“⁠하나⁠, 둘⁠, 셋⁠, 밀어⁠!⁠”

원배의 구령에 맞춰 서른몇 명이 한꺼번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버스가 한 뼘⁠, 두 뼘 굴렀다⁠. 타이어가 콘크리트를 무겁게 눌러 뭉개는 소리가 났다⁠. 구르던 바퀴가 다음 이음새 앞에서 멈췄다⁠. 이음새마다 철판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솟아 있었다⁠. 바퀴가 철판에 걸려 버스가 뒤로 밀리려 했다⁠. 준묵은 어깨로 버티며 외쳤다⁠.

“⁠이음새⁠! 한 번 더⁠!⁠”

“⁠하나⁠, 둘⁠, 셋⁠!⁠”

바퀴가 철판을 넘었다⁠. 덜컹⁠. 버스 안에서 산소통이 달그락거렸다⁠. 앞으로 굴렀다⁠. 다음 이음새까지 십 미터였다⁠. 다리 위의 이음새를 준묵은 아침부터 세 번 건넜다⁠. 그때는 발밑에서 덜컹 소리가 나는 줄만 알았다⁠. 이음새가 몇 개인지는 세어 본 적이 없었다⁠.

여섯 시 일 분이었다⁠. 준묵은 남단 둑을 보았다⁠. 둑 아래 참호에 작전참모가 있을 것이었다⁠. 손잡이 달린 상자 앞에⁠.

원배가 버스 옆구리를 따라 뒤로 왔다⁠. 구령을 붙이느라 목이 쉬어 있었다⁠.

“⁠분대장님⁠. 참모님이 여섯 시 십이 분에 저더러 다리 위 인원을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영이면 영이라고⁠.⁠”

“⁠들었습니다⁠.⁠”

“⁠영이 아니면요⁠?⁠”

준묵은 범퍼에 어깨를 댄 채 원배를 올려다보았다⁠. 원배의 얼굴이 아침보다 열 살쯤 들어 보였다⁠. 그을음이 앳된 뺨을 다 덮고 있었다⁠.

“⁠그럼 영으로 만들어야죠⁠. 십일 분 남았습니다⁠.⁠”

원배가 고개를 끄덕이고 버스 옆구리로 돌아갔다⁠. 다시 구령이 붙었다⁠.

*

“⁠걸으실 수 있는 분은 내려서 걸으십시오⁠!⁠”

원배가 버스 문에 대고 외쳤다⁠. 원장이 먼저 내렸다⁠. 이어서 보행기를 쓰던 할머니 둘과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 둘이 내렸다⁠. 원배가 한 사람씩 팔을 잡아 내려 주었다⁠. 내린 노인들은 버스 오른편⁠, 강 하류 난간 쪽으로 붙어 걸었다⁠. 원장이 두 할머니의 손을 하나씩 잡았다⁠. 할아버지 둘은 서로 팔짱을 꼈다⁠. 걸음이 버스보다 느리지 않았다⁠.

다리 한가운데를 조금 앞두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하나가 주저앉았다⁠. 숨이 차서 더는 못 걷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시훈이 버스 옆구리에서 떨어져 할아버지 앞에 등을 내밀었다⁠.

“⁠업히세요⁠, 할아버지⁠.⁠”

“⁠무거워⁠.⁠”

“⁠저 회사에서 매일 노트북 메고 다녀요⁠. 할아버지가 더 가벼워요⁠.⁠”

할아버지가 시훈의 등에 업혔다⁠. 시훈이 비틀거리다 자세를 바로잡았다⁠. 원장이 버스 문에서 내리며 들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놓고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플라스틱 컵들이 바구니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원배가 요양원에서 챙기겠다고 약속한 틀니 컵들이었다⁠. 원장은 지팡이와 할머니들의 손을 한꺼번에 쥐느라 바구니를 다리 위에 두고 걸었다⁠. 시훈이 할아버지를 업은 채 고개를 돌려 바구니를 보았다⁠.

“⁠원장님⁠, 바구니⁠!⁠”

“⁠나중에⁠!⁠”

시훈은 할아버지를 업고 앞으로 걸었다⁠. 두 번 더 바구니를 돌아보았다⁠.

버스가 조금 가벼워졌다⁠. 바퀴가 다음 이음새를 한 번에 넘었다⁠. 버스 안에는 누운 노인 넷과 홍구의 어머니⁠, 운전석의 홍구가 남았다⁠. 어머니는 산소통 둘을 무릎과 발치에 끼고⁠, 한 손으로 아들의 손등을 덮고 있었다⁠.

준묵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가슴 주머니 안에서⁠, 도화지와 함께 떨렸다⁠. 회사 메신저였다⁠. 준묵은 밀면서 엄지로 화면을 열었다⁠.

「⁠인 대리⁠, 견적서는⁠? 내일 아침 아홉 시⁠」

준묵은 웃음이 터졌다⁠. 어깨가 범퍼에서 미끄러질 만큼 웃었다⁠. 옆의 예비군이 왜 웃냐고 물었다⁠. 준묵은 화면을 보여 주었다⁠. 예비군이 화면을 보고 같이 웃었다⁠. 웃음이 범퍼를 따라 옆으로 번졌다⁠. 이유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웃으면서 밀었다⁠.

“⁠팀장님 진짜 대단하시다⁠.⁠”

“⁠답장해요⁠, 형님⁠. 지금 다리 미는 중이라고⁠.⁠”

“⁠견적서보다 버스가 무거워요⁠.⁠”

준묵은 답장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도로 넣으려는데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전화였다⁠. 화면에 「⁠여보⁠」가 떠 있었다⁠. 새란은 아이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가는 차 안에 있을 것이었다⁠.

준묵은 어깨를 범퍼에 댄 채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를 켰다⁠.

“⁠아빠⁠!⁠”

솔빈이었다⁠. 목소리가 높고 맑았다⁠. 범퍼에 붙은 어깨 여섯 개가 동시에 움찔했다⁠.

“⁠아빠⁠, 여섯 시 지났어⁠.⁠”

“⁠알아⁠.⁠”

“⁠아빠 여섯 시에 온다고 했잖아⁠.⁠”

“⁠아빠 지금 다리 건너는 중이야⁠.⁠”

“⁠무슨 다리⁠?⁠”

“⁠엄청 긴 다리⁠. 강 위에 있는 다리⁠.⁠”

“⁠거기서 뭐 해⁠?⁠”

“⁠버스 밀어⁠.⁠”

“⁠버스를 왜 밀어⁠?⁠”

“⁠고장 나서⁠.⁠”

“⁠아빠 혼자⁠?⁠”

준묵은 범퍼를 따라 늘어선 어깨들을 보았다⁠. 옆구리에 붙은 손바닥들을 보았다⁠. 피 묻은 하사의 귀⁠, 땀에 젖은 셔츠 깃⁠, 고무줄로 묶은 철모 끈⁠.

“⁠아니⁠. 아저씨들이랑 같이⁠.⁠”

“⁠아저씨 몇 명⁠?⁠”

준묵이 대답하기 전에 범퍼 옆의 예비군이 휴대전화에 대고 외쳤다⁠.

“⁠솔빈아⁠, 아저씨 서른 명⁠!⁠”

그러자 옆구리에서⁠, 뒤 모서리에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솔빈아 안녕⁠!⁠”

“⁠아빠 힘 하나도 안 써⁠! 아저씨들이 다 밀어⁠!⁠”

“⁠솔빈아⁠, 아빠 단추 삐뚤어졌다고 엄마한테 일러⁠!⁠”

수화기 너머에서 솔빈이 까르르 웃었다⁠. 웃음소리가 다리 위로 퍼졌다⁠. 바람이 웃음을 실어 강 위로 가져갔다⁠. 원배가 구령을 잊고 웃었다⁠. 웃으면서 다시 구령을 붙였다⁠. 하나⁠, 둘⁠, 셋⁠. 버스가 이음새를 넘었다⁠.

전화기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당신⁠.⁠”

새란이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 위에 웃음이 얇게 덮여 있었다⁠.

“⁠지금 무슨 버스를 밀어⁠?⁠”

“⁠설명하면 길어⁠.⁠”

“⁠짧게 해⁠.⁠”

“⁠노인분들 타신 버스⁠. 다리 건너면 끝나⁠.⁠”

새란은 한참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차 안의 라디오 소리가 났다⁠. 근우가 칭얼거렸다⁠.

“⁠단추는⁠?⁠”

준묵은 웃었다⁠.

“⁠아직⁠.⁠”

“⁠다리 건너면 고쳐⁠.⁠”

“⁠응⁠.⁠”

“⁠꼭⁠.⁠”

전화가 끊겼다⁠. 준묵은 휴대전화를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도화지가 손끝에 닿았다⁠. 젖어서 눅눅했다⁠. 준묵은 어깨를 범퍼에 다시 댔다⁠.

*

여섯 시 오 분⁠. 버스가 다리 한가운데를 지나는데 북단에서 총소리가 났다⁠.

준묵은 고개를 돌렸다⁠. 다리 북단 삼거리에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논에서 진흙을 건너온 북쪽 보병들이었다⁠. 비어 있는 구덩이 몇 개에 엎드려 다리를 따라 총을 겨누고 있었다⁠. 탕⁠, 탕⁠. 다리 바닥의 콘크리트가 튀었다⁠. 버스 뒤를 미는 사람들의 등이 북쪽을 향해 있었다⁠. 북쪽 보병들은 삼백 미터 끝에서 손가락만 했다⁠. 손가락만 한 사람들이 쏘는 총알이 발밑 콘크리트를 쪼았다⁠. 준묵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등이 이렇게 넓은 줄 처음 알았다⁠.

“⁠엎드려⁠!⁠”

하사가 외쳤다⁠. 범퍼에서 몇이 떨어져 바닥에 엎드렸다⁠. 버스가 멈췄다⁠. 하사가 버스 뒤 모서리에 몸을 붙이고 북단으로 소총을 쏘았다⁠. 예비군 몇이 따라 쏘았다⁠. 녹슨 소총들이 다시 제각각 소리를 냈다⁠. 탕⁠, 퍽⁠, 딸깍⁠, 탕⁠.

“⁠밀어⁠! 엎드려 있으면 더 오래 맞아⁠!⁠”

준묵이 외쳤다⁠. 바닥에 엎드렸던 예비군들이 일어나 다시 범퍼에 어깨를 댔다⁠. 버스 차체가 등 뒤의 총알을 반쯤 가렸다⁠. 나머지 반은 사람들이 몸을 낮춰 가렸다⁠. 버스가 다시 굴렀다⁠.

남단 둑에서 함성이 났다⁠. 준묵은 앞을 보았다⁠. 다리 남단 입구에서 사람들이 다리 위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일병이 맨 앞이었다⁠. 다섯 시 반에 건너간 열일곱이 뒤를 따랐다⁠. 동원령으로 돌아와 남단 둑을 파던 예비군들이 뒤를 이었다⁠. 체육대회 모자를 쓴 예비군이 어깨에 밧줄 뭉치를 메고 있었다⁠. 장갑차에서 빌려 온 견인 밧줄이었다⁠.

“⁠참모님이 오지 말라고 하셨잖아⁠!⁠”

원배가 외쳤다⁠. 일병이 뛰면서 외쳐 대답했다⁠.

“⁠그래서 뛰어왔습니다⁠! 걸어오면 명령 위반이 길어지니까요⁠!⁠”

남단 사람들이 버스 앞에 닿았다⁠. 밧줄을 버스 앞 견인 고리에 걸었다⁠. 스무 명 남짓이 밧줄을 어깨에 메고 앞에서 끌었다⁠. 체육대회 모자를 쓴 예비군이 맨 앞에서 줄을 감아쥐고 외쳤다⁠.

“⁠줄다리기는 체육대회에서 이 년 연속 우승이에요⁠! 영차⁠!⁠”

“⁠영차는 줄다리기 구호 아니잖아⁠!⁠”

뒤에서 누가 받아쳤다⁠. 다 같이 영차를 외쳤다⁠. 뒤에서 서른몇 명이 밀었다⁠. 버스가 처음으로 걷는 사람만큼 빨리 굴렀다⁠. 이음새를 넘을 때 멈추지 않았다⁠. 덜컹⁠, 덜컹⁠, 덜컹⁠. 다리가 발밑에서 박자를 맞췄다⁠.

여섯 시 팔 분⁠. 버스 앞바퀴가 남단 끝 이음새를 넘었다⁠. 다리 남단에서 둑 아래 도로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버스가 내리막에 머리를 내밀었다⁠. 밧줄을 끌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켰다⁠. 버스가 스스로 굴렀다⁠. 운전석의 홍구가 핸들을 쥔 채 버스를 몰고 내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리막 끝에서 버스가 둑 아래 풀밭에 앞바퀴를 묻고 멈췄다⁠.

둑 위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장갑차 위의 현역들이 손을 흔들었다⁠. 걸어서 건너온 노인들이 둑 위에서 박수를 쳤다⁠. 원장이 버스로 뛰어 내려갔다⁠. 깨진 창문 너머로 홍구의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버스가 멈춘 뒤에도 아들의 손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둑 위를 한 번 보고⁠, 다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둑 위에서는 아침에 준묵에게 사탕을 쥐여 준 보따리 할머니가 박수 치는 사람들 틈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장독 덮어 달라던 할머니였다⁠.

준묵은 남단 끝 이음새 위에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무릎이 떨렸다⁠. 다리를 건넜다⁠. 준묵은 고개를 돌려 원배를 찾았다⁠. 원배가 무전기를 쥔 채 남단 끝에 서 있었다⁠. 원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묵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둑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사가 북단을 향해 마지막으로 한 발을 쏘고 뒷걸음질로 내려왔다⁠.

준묵은 둑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셌다⁠. 아침 연병장에서는 백이십이 한 덩어리였다⁠. 덩어리는 셀 수 없었다⁠. 지금은 얼굴 하나하나가 따로 보였다⁠. 셀 줄 몰라도 세어졌다⁠. 철모 하나⁠, 철모 하나⁠, 고무줄 철모⁠, 체육대회 모자⁠. 셔츠 깃을 적신 예비군⁠, 피 묻은 귀⁠. 하나가 모자랐다⁠.

준묵은 다리를 돌아보았다⁠.

다리 한가운데보다 조금 남쪽⁠, 남단에서 백 미터쯤 되는 자리에 사람 하나가 누워 있었다⁠. 철모 끈을 턱 밑에 단단히 묶은 철모가 콘크리트 위에서 햇빛을 받았다⁠. 곽시훈이었다⁠. 시훈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허벅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시훈 옆에 플라스틱 바구니가 엎어져 있었다⁠. 원장이 다리 위에 두고 온 틀니 컵 바구니였다⁠. 컵들이 다리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시훈은 업고 가던 할아버지를 남단에서 뛰어온 사람들에게 넘기고⁠, 혼자 바구니를 가지러 돌아갔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다들 버스를 보고 있었다⁠.

준묵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구 분이었다⁠.

북단 삼거리에서 총소리가 다시 났다⁠. 시훈 옆 콘크리트가 튀었다⁠.

준묵은 남단 끝 이음새에서 발을 뗐다⁠. 다리 위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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