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29자)

십이 분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구치영의 군화 밑에서 둑 가장자리의 자갈이 굴러 내려갔다⁠. 치영은 한 발을 뒤로 물리고 쌍안경을 고쳐 잡았다⁠. 렌즈 속에서 초록색 군내버스가 다리 북단에서 삼십 미터 들어온 자리에 멈춰 있었다⁠. 왼편 창문이 전부 깨져 있었다⁠. 버스 뒤에 철모들이 몰려 있었다⁠. 운전석에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쉰 명입니다⁠. 반원배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치영은 수첩 첫 장을 펴고 「⁠18⁠:00⁠」 밑에 「⁠50⁠」을 썼다⁠. 숫자 둘이 위아래로 붙었다⁠. 치영은 두 숫자를 오래 보지 않았다⁠.

쌍안경을 북쪽으로 돌렸다⁠. 둑길 위에 북쪽 선두 차량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검은 연기가 아직 피어올랐다⁠. 누운 차량 뒤로 회색 차량 둘이 둑길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하나는 논에 바퀴를 빠뜨린 채 엔진만 헛돌렸다⁠. 다른 하나가 천천히 후진하고 있었다⁠. 둑길을 거슬러 능선 모퉁이까지 물러나⁠, 느릅골에서 내려오는 마을길로 갈아타려는 것이었다⁠. 논에서는 걸어서 건너온 북쪽 보병들이 논두렁 끝에 엎드려 삼거리를 겨누고 있었다⁠. 삼거리는 비어 있었다⁠. 북단 사람들은 전부 다리 위에 있었다⁠.

치영은 수첩 옆 칸에 연필로 숫자를 적었다⁠. 후진해서 모퉁이까지⁠, 모퉁이에서 마을길로⁠, 마을길 커브를 지나 삼거리까지⁠. 아까 반원배가 느릅골로 들어가며 커브가 열하나라고 했다⁠. 탁홍구라는 예비군이 다섯 해 몰았다는 길이었다⁠. 치영은 열하나를 받아 적었다⁠. 북쪽 선두가 다리 북단에 닿는 시각이 원래 계산보다 십이 분 늦어졌다⁠.

십이 분⁠. 둑길 위의 누운 차량 한 대가 만든 시간이었다⁠. 감시초소에서 내려온 하사의 한 발과⁠, 예비군 서른몇 명이 녹슨 총으로 쏜 빗나간 탄들이 만든 시간이었다⁠. 치영은 숫자를 다시 더했다⁠. 틀린 데가 없었다⁠. 여섯 시는 처음부터 시각이 아니었다⁠. 저쪽 선두가 북단에 닿기 이십 분 전이라는 거리였다⁠. 거리가 늘었으면 시각도 늦어져야 했다⁠. 규칙을 굽히는 것이 아니라고⁠, 치영은 숫자에게 말하듯 속으로 되뇌었다⁠. 되뇌는 자신이 낯설었다⁠.

“⁠참모님⁠.⁠”

도진곤이 둑 아래 참호에서 올려다보았다⁠. 격발기 상자의 손잡이에 손을 얹고 있었다⁠.

“⁠다섯 시 오십오 분이에유⁠.⁠”

“⁠알아⁠.⁠”

“⁠버스가 아직⁠…⁠”

“⁠알아⁠.⁠”

치영은 쌍안경을 운전병에게 넘겼다⁠. 철모 끈을 다시 조였다⁠. 휴대전화가 떨렸다⁠. 아내였다⁠. 「⁠한강 건넜어⁠. 애가 아빠 다리 뉴스에 나온대⁠. 외신이 수도권 동원 시작했다고⁠」 치영은 「⁠잘했어⁠」라고 쳤다⁠. 아침부터 아내에게 보낸 말 가운데 가장 긴 말이었다⁠. 휴대전화를 가슴 주머니에 넣고 둑을 내려갔다⁠.

다리 남단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다섯 시 반에 건너온 열일곱과 일병⁠, 동원령으로 돌아와 남단 둑을 파던 예비군들이었다⁠. 일병이 맨 앞에서 치영의 앞을 막았다⁠. 얼굴이 하얬다⁠.

“⁠참모님⁠, 저희 가서 밀겠습니다⁠. 하사님이 저기 계십니다⁠.⁠”

“⁠남단에 있으십시오⁠.⁠”

“⁠버스가 무거워서⁠…⁠”

“⁠사람이 많아진다고 다리가 빨리 비지 않습니다⁠. 다리 위 사람만 늘어납니다⁠.⁠”

일병의 입술이 떨렸다⁠. 뒤에서 회사 체육대회 모자를 쓴 예비군이 일병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치영은 그들을 지나쳐 다리 위로 올라갔다⁠.

“⁠참모님⁠, 어디 가세유⁠?⁠”

“⁠손 흔들 사람 보러⁠.⁠”

*

다리 위는 바람이 셌다⁠. 강 위로 기울어진 해가 다리 난간 그림자를 바닥에 길게 눕혔다⁠. 치영은 그림자를 하나씩 밟으며 걸었다⁠. 이음새 철판을 밟을 때마다 덜컹 소리가 났다⁠. 아침에는 철판 소리가 트럭 바퀴 소리였다⁠. 지금은 치영의 군화 소리였다⁠. 다리 위에 차가 없었다⁠.

남단 둑에서 피란민 몇이 치영을 보고 있었다⁠. 아까 트럭으로 건너온 휠체어의 할아버지가 둑 위에서 손을 들어 무언가를 외쳤다⁠. 바람에 흩어져 들리지 않았다⁠. 치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버스까지 이백오십 미터였다⁠. 버스가 가까워지자 소리가 들렸다⁠. 구령이었다⁠.

“⁠하나⁠, 둘⁠, 셋⁠, 밀어⁠!⁠”

버스가 한 뼘 움직였다⁠. 버스 뒤에 철모들이 붙어 있었다⁠. 서른몇 명이 버스 뒤 범퍼와 옆구리에 어깨와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하사가 버스 뒤 모서리에서 북단을 보며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반원배가 버스 옆구리에서 구령을 붙이고 있었다⁠. 인준묵이 버스 맨 뒤 범퍼 한가운데에 어깨를 대고 있었다⁠.

치영이 버스 앞에 닿았다⁠. 버스 왼편 옆구리에 탄 자국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치영은 지나가며 손바닥으로 자국 하나를 쓸었다⁠. 쇠가 아직 따뜻했다⁠. 깨진 앞 유리 너머로 운전석이 보였다⁠. 탁홍구가 핸들을 쥔 채 앉아 있었다⁠. 눈이 감겨 있었다⁠. 운전석 옆에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아들의 손등을 덮고 있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 치영을 보았다⁠. 치영은 여자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여자도 피하지 않았다⁠.

“⁠군인 양반⁠.⁠”

“⁠예⁠.⁠”

“⁠우리 아들⁠, 운전 잘했지요⁠?⁠”

치영은 운전석을 보았다⁠. 핸들을 쥔 두 손이 버스를 다리 한가운데로 겨누고 있었다⁠. 버스는 비탈을 넘어 다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쇳소리가 훑고 간 왼편 창문들 아래에서⁠, 누운 노인들의 산소통 바늘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잘했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아들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준묵이 버스 뒤에서 걸어 나왔다⁠. 어깨에 버스 범퍼 자국이 검게 묻어 있었다⁠. 얼굴이 땀과 그을음으로 범벅이었다⁠. 사흘 수염 위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작전참모님⁠.⁠”

“⁠인준묵 씨⁠.⁠”

“⁠여섯 시입니다⁠. 끊으십시오⁠. 우리가 이 버스 밀고 있을 때⁠.⁠”

준묵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버스 뒤에서 미는 소리가 멈췄다⁠. 서른몇 명이 둘을 보았다⁠.

“⁠버스를 버리십시오⁠.⁠”

치영이 말했다⁠.

“⁠노인분들은 업으십시오⁠. 산소통은 다른 사람이 들고 나란히 뛰면 됩니다⁠. 이백오십 미터⁠, 뛰면 삼 분입니다⁠. 버스를 밀면 십 분이 넘습니다⁠.⁠”

“⁠누운 분 넷은 관이 코에 꽂혀 있습니다⁠. 업고 뛰면 관 빠집니다⁠.⁠”

“⁠관이 빠지는 것과 다리가 끊기는 것 중에 무엇이 빠릅니까⁠?⁠”

“⁠관 빠지면 그분들은 다리 끝에서 숨이 멎습니다⁠. 버스 밀면 같이 건넙니다⁠.⁠”

“⁠버스 밀다가 다리가 끊기면 다 같이 강에 떨어집니다⁠.⁠”

“⁠그럼 끊지 마세요⁠.⁠”

“⁠끊습니다⁠.⁠”

둘의 목소리가 바람 위에서 부딪쳤다⁠. 버스 안에서 산소통이 쉭쉭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운 노인 하나가 담요 밑에서 마른기침을 했다⁠. 원배가 버스 옆구리에서 둘을 보며 송수화기를 쥐고 있었다⁠. 시훈이 버스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하사에게 철모를 눌렸다⁠.

치영은 버스 운전석을 다시 보았다⁠. 핸들 위의 두 손⁠, 손등을 덮은 손⁠. 운전석 시트의 짙어진 초록 천⁠. 치영은 숨을 한 번 쉬었다⁠.

무전기가 울렸다⁠. 치영 허리의 무전기였다⁠. 군단 작전처였다⁠.

“⁠기계화 대대 선두⁠, 가래여울 남단 둑 도착⁠. 다섯 시 오십팔 분⁠.⁠”

치영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 오십팔 분이었다⁠. 아침 열두 시에 연병장에서 말한 여섯 시간이⁠, 이 분을 남기고 맞았다⁠. 남단 둑 위로 흙빛 장갑차들이 하나씩 머리를 내밀었다⁠. 둑을 따라 길게 줄을 지었다⁠. 남단에 남아 있던 예비군들이 둑 위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다리 위의 서른몇 명은 환호하지 않았다⁠.

치영은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준묵을 보았다⁠.

“⁠여섯 시간이 맞았습니다⁠.⁠”

“⁠압니다⁠.⁠”

“⁠여섯 시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치영은 북쪽을 돌아보았다⁠. 둑길 위에 누운 차량⁠, 능선 모퉁이로 후진하는 차량⁠. 연필로 적은 숫자가 수첩 안에 있었다⁠.

“⁠둑길이 막혔습니다⁠. 저쪽 선두가 마을길로 돌아오는 데 십이 분이 더 듭니다⁠. 원래 여섯 시는 저쪽 선두가 북단에 닿기 이십 분 전이었습니다⁠. 저쪽이 십이 분 늦어졌으니⁠, 이십 분은 그대로 두고 여섯 시를 십이 분 미룹니다⁠. 그 십이 분은 당신들이 벌었습니다⁠.⁠”

준묵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여섯 시 십이 분⁠. 그다음은 누가 있든 끊습니다⁠. 버스가 다리 위에 있어도⁠. 당신이 다리 위에 있어도⁠.⁠”

“⁠십이 분⁠.⁠”

“⁠이백오십 미터를 십이 분 안에 미십시오⁠. 못 밀면⁠, 버리고 뛰십시오⁠. 그건 당신이 고르십시오⁠.⁠”

준묵은 대답 대신 버스 뒤로 돌아갔다⁠. 범퍼에 다시 어깨를 댔다⁠. 서른몇 명이 따라 어깨를 댔다⁠. 원배가 구령을 붙였다⁠. 하나⁠, 둘⁠, 셋⁠.

치영은 원배를 불렀다⁠. 원배가 송수화기를 쥔 채 뛰어왔다⁠.

“⁠반 소위⁠. 여섯 시 십이 분에 다리 위 인원을 보고해⁠. 네 입으로⁠. 영이면 영이라고⁠.⁠”

“⁠예⁠.⁠”

원배는 「⁠알겠습니다⁠」를 붙이지 않았다⁠. 대답은 한 글자였다⁠. 치영은 원배를 한 번 보고 몸을 돌렸다⁠.

*

치영은 남단으로 걸었다⁠. 뛰지 않았다⁠. 다리 한가운데를 지날 때 상류 쪽 강물이 솟았다⁠. 포탄 하나가 다리를 찾다가 빗나간 것이었다⁠. 물보라가 난간을 넘어 치영의 어깨를 적셨다⁠. 다리가 발밑에서 한 번 크게 떨렸다⁠. 치영은 난간을 잡지 않았다⁠. 등 뒤에서 구령이 들렸다⁠. 하나⁠, 둘⁠, 셋⁠, 밀어⁠. 버스 바퀴가 이음새 철판을 넘는 덜컹 소리가 났다⁠. 한 번⁠. 한참 뒤에 또 한 번⁠. 치영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거리를 셀 것이었다⁠. 거리를 세면 시간을 다시 셀 것이었다⁠.

남단 둑에 닿았다⁠. 둑 위에 기계화 대대장이 장갑차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었다⁠. 대대장이 경례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논두렁 열네 개 무너뜨렸습니다⁠.⁠”

“⁠보상은 내가 받으러 다니지⁠. 둑 받치시오⁠.⁠”

대대장이 다리를 보았다⁠. 다리 위에 멈춘 버스와 버스 뒤에 붙은 철모들을 보았다⁠.

“⁠다리는 언제 끊습니까⁠?⁠”

“⁠여섯 시 십이 분⁠.⁠”

“⁠저 위에 사람이⁠…⁠”

“⁠압니다⁠.⁠”

대대장은 더 묻지 않고 장갑차로 돌아가 포탑의 방향을 북단으로 돌리라고 외쳤다⁠.

치영은 대대장을 지나쳐 둑 아래 참호로 내려갔다⁠. 진곤이 격발기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잡이에 두 손을 얹고 있었다⁠. 손등의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도 상사⁠. 줘⁠.⁠”

진곤이 고개를 들었다⁠.

“⁠글쎄유⁠. 손 흔드는 사람 아직이유⁠.⁠”

“⁠알아⁠. 줘⁠.⁠”

“⁠지가 돌릴 수 있어유⁠.⁠”

“⁠알아⁠. 줘⁠.⁠”

진곤은 오래 치영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격발기 상자를 두 손으로 들어 치영 앞에 내려놓았다⁠. 상자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상자에 연결된 전선이 참호 바닥을 따라 다리 밑으로 이어져 있었다⁠.

“⁠참모님이 돌리시면⁠, 참모님이 끊은 거유⁠.⁠”

“⁠그래서 달라는 거야⁠.⁠”

진곤이 상자 위에 놓인 깨진 시계를 보았다⁠.

“⁠그 시계는유⁠?⁠”

“⁠함 대위 거⁠.⁠”

진곤은 시계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 옆으로 물러나 둑 비탈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다리 전체가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손 흔들 사람을 볼 자리였다⁠.

치영은 상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손잡이의 쇠가 차가웠다⁠. 진곤이 아침에 사포로 문지른 자리가 손바닥에 까슬하게 닿았다⁠.

치영은 바지 주머니에서 함석겸의 시계를 꺼냈다⁠. 깨진 유리 아래 바늘이 열두 시 오십 분에 멈춰 있었다⁠. 치영은 시계를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제 손목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정각이었다⁠.

다리 위에서 버스가 한 뼘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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