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60자)

운전대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반원배는 버스 계단 맨 위 칸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울어진 바닥이 무릎뼈를 눌렀다⁠. 한 손으로 운전석 뒤 쇠기둥을 잡고⁠, 다른 손으로 송수화기를 쥐었다⁠. 버스 바닥에 떨어진 보리차가 원배의 무릎 밑으로 흘러내려 계단에 고였다⁠. 미지근했다⁠.

“⁠엎드리십시오⁠! 다들 고개 숙이십시오⁠!⁠”

원배가 외쳤다⁠. 노인들이 좌석 사이로 몸을 숙였다⁠. 누운 노인들 위로 원장이 담요를 한 장 더 덮었다⁠. 홍구의 어머니는 맨 앞자리에서 산소통을 품에 안고 등을 웅크렸다⁠. 들통이 발치에서 기울어 보리차가 흘렀다⁠. 어머니는 들통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 원배는 운전석 바로 뒤를 골랐다⁠. 지휘관이 탈 자리는 아니었다⁠. 버스 뒷자리가 안전하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운전석 뒤에서는 홍구의 손과 앞 유리와 다리가 한꺼번에 보였다⁠. 원배는 셋을 다 보고 싶었다⁠.

홍구가 시동 열쇠를 돌렸다⁠. 엔진이 쿨럭거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엔진이 몸을 떨며 깨어났다⁠. 버스 전체가 덜덜거렸다⁠. 홍구가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넣었다⁠. 원배는 홍구의 왼발을 보았다⁠. 클러치를 반쯤 떼다가 멈췄다⁠. 반 박자⁠. 그러고는 천천히 마저 뗐다⁠. 오른발이 가속 페달을 지그시 눌렀다⁠. 버스가 비탈에서 앞으로 한 뼘 기어올랐다⁠.

“⁠착하다⁠.⁠”

홍구가 핸들에 대고 말했다⁠.

“⁠착하다⁠, 착하다⁠.⁠”

버스가 비탈을 올랐다⁠. 느렸다⁠. 걷는 것보다 조금 빨랐다⁠. 엔진이 비탈을 이기려고 높은 소리로 울었다⁠. 좌석 사이에 엎드린 할머니 하나가 두 손을 모으고 입술을 달싹였다⁠. 원배는 무슨 기도인지 몰랐지만 “⁠다리⁠”라는 말을 두 번 들었다⁠. 산소통 바늘이 엔진 떨림에 맞춰 같이 떨렸다⁠. 버스 오른편⁠, 둑 비탈에 가려진 쪽으로 예비군들이 버스를 따라 뛰었다⁠. 준묵이 맨 앞에서 버스 옆구리에 손바닥을 대고 뛰었다⁠. 밀어 주는 것인지 따라가는 것인지 원배는 알 수 없었다⁠. 시훈이 뒤에서 철모를 손으로 누르고 뛰었다⁠. 하사가 피 흐르는 귀를 손등으로 훔치며 뛰었다⁠. 하사는 이따금 버스 뒤 모서리에서 몸을 반쯤 내밀어 논두렁으로 소총을 쏘았다⁠. 맞히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이게 하는 것이었다⁠. 준묵은 버스 옆구리에서 손바닥을 떼지 않았다⁠. 손바닥 밑에서 버스가 떨리는 것이 준묵의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가는 것이 원배의 눈에도 보였다⁠. 어긋난 단추 탓에 들린 가슴 주머니가 뛸 때마다 펄럭였다⁠.

*

버스 왼편은 논을 마주 보았다⁠. 버스가 비탈을 반쯤 올랐을 때 왼편 창문이 하나씩 터졌다⁠. 유리가 하얗게 금이 갔다가 안으로 쏟아졌다⁠. 쇳소리가 버스 옆구리를 따라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훑었다⁠. 땅⁠, 땅⁠, 땅⁠. 버스 안 공기가 유리 가루로 반짝였다⁠. 노인 하나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원장이 노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고개 들지 마십시오⁠!⁠”

원배는 외치면서 자기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 쇠기둥이 땅 하고 울렸다⁠. 손바닥으로 울림이 전해졌다⁠. 원배는 쇠기둥을 놓지 않았다⁠.

홍구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숙이면 앞이 안 보였다⁠. 앞 유리 너머로 비탈 끝⁠, 정지선⁠, 다리 난간이 천천히 다가왔다⁠. 홍구가 핸들을 조금 오른쪽으로 감았다⁠. 버스 머리가 다리 입구를 정면으로 겨눴다⁠. 비탈 막바지에서 엔진이 한 번 숨을 죽였다⁠. 버스가 멈칫하며 뒤로 밀리려 했다⁠. 홍구가 페달에서 발을 살짝 뗐다가 다시 밟았다⁠. 엔진이 콜록거리다 되살아났다⁠. 홍구는 “⁠착하다⁠” 대신 “⁠옳지⁠”라고 했다⁠. 버스 안 누군가가 따라서 “⁠옳지⁠” 하고 중얼거렸다⁠.

“⁠고객님들⁠, 정차 없습니다⁠.⁠”

홍구의 목소리가 평소와 같았다⁠. 원배는 홍구의 목소리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홍구의 몸이 운전석에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왼쪽 어깨 아래⁠, 옆구리였다⁠. 운전석 옆 창문이 터지면서 같이 왔다⁠. 홍구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핸들을 쥔 두 손이 하얘졌다⁠. 오른발이 가속 페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장님⁠!⁠”

“⁠괜찮아요⁠.⁠”

“⁠사장님⁠, 맞으셨⁠…⁠”

“⁠괜찮다고요⁠. 엄마 들어요⁠.⁠”

홍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원배는 맨 앞자리를 보았다⁠. 어머니가 산소통을 안은 채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들의 옆구리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소통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버스 앞바퀴가 정지선을 넘었다⁠. 덜컹⁠. 비탈이 끝났다⁠. 버스가 다리 위로 올라갔다⁠. 둑이 버스 왼편을 가렸다⁠. 쇳소리가 뚝 끊겼다⁠. 논두렁에서 쏘는 총은 이제 둑에 막혀 다리 위에 닿지 않았다⁠. 버스가 평평한 다리 위를 굴렀다⁠. 이음새 철판을 밟을 때마다 덜컹⁠, 덜컹 울렸다⁠. 십 미터⁠, 이십 미터⁠. 버스 바닥 전체가 철판 소리에 맞춰 들썩였고⁠, 원배의 무릎 밑에 고인 보리차가 잔물결을 일으켰다⁠.

삼십 미터쯤에서 엔진이 다시 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깨어나지 않았다⁠. 버스가 스르르 속도를 잃고 다리 한가운데보다 훨씬 앞에서 멈췄다⁠. 경유 냄새가 운전석 밑에서 올라왔다⁠. 청테이프가 터진 것이었다⁠.

홍구가 손을 뻗어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겼다⁠. 끼익 소리가 났다⁠. 손이 핸들로 돌아갔다⁠.

*

원배는 송수화기를 떨어뜨리고 운전석으로 기어갔다⁠. 홍구의 전투복 옆구리가 검게 젖어 있었다⁠. 젖은 자리가 천천히 넓어졌다⁠. 운전석 시트의 초록 천이 홍구의 허리 밑에서 색이 짙어졌다⁠. 원배는 압박붕대를 꺼냈다⁠. 아침에 받은 개인 붕대였다⁠. 포장을 이로 뜯었다⁠. 손이 떨려 두 번 놓쳤다⁠.

“⁠소위님⁠.⁠”

홍구가 핸들을 쥔 채 원배를 보았다⁠. 얼굴이 하얬다⁠. 그을음과 경유가 하얀 얼굴 위에 얼룩져 있었다⁠.

“⁠버스 멈췄어요⁠?⁠”

“⁠멈췄습니다⁠. 다리 위입니다⁠.⁠”

“⁠다리 위⁠.⁠”

홍구가 앞 유리를 보았다⁠. 다리가 남쪽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남단 둑까지 이백칠십 미터⁠. 둑 위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거기서부턴 평평하죠⁠?⁠”

“⁠평평합니다⁠.⁠”

“⁠그럼 밀면 돼요⁠. 이 차 생각보다 잘 굴러요⁠. 내가 알아요⁠.⁠”

원배는 붕대를 홍구의 옆구리에 대고 눌렀다⁠. 홍구가 숨을 삼켰다⁠. 버스 문이 열리고 준묵이 계단으로 뛰어 올라왔다⁠. 준묵은 홍구를 보고 멈췄다⁠. 홍구가 준묵을 보고 웃었다⁠.

“⁠형님⁠, 순댓국은 제가 산다고 했죠⁠.⁠”

“⁠사장님⁠.⁠”

“⁠열쇠 화분 밑에 있었잖아요⁠. 내기는 내가 이겼는데 내가 사기로 했잖아요⁠. 가게 와요⁠. 전곡 시장 입구⁠. 간판에 돼지 그려진 데⁠.⁠”

“⁠갈게요⁠. 사장님이 끓여 주세요⁠.⁠”

“⁠엄마가 끓여요⁠. 엄마가 더 잘 끓여요⁠.⁠”

어머니가 앞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소통을 원장에게 넘기고⁠, 유리 가루가 깔린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 운전석 옆에 앉았다⁠. 원배가 비켜 자리를 내주었다⁠. 어머니가 홍구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홍구의 손은 아직 핸들을 쥐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가락을 펴려 하지 않았다⁠. 손등 위에 손바닥을 덮기만 했다⁠.

“⁠엄마⁠.⁠”

“⁠응⁠.⁠”

“⁠육수⁠. 불 껐어⁠. 아침에⁠.⁠”

“⁠응⁠?⁠”

“⁠아까 모른다고 했잖아⁠. 기억났어⁠. 나오면서 껐어⁠. 밸브도 눕혀 놨어⁠.⁠”

어머니가 웃었다⁠. 소리 없이 웃었다⁠. 눈가가 젖은 채 웃었다⁠.

“⁠잘했네⁠.⁠”

“⁠잘했지⁠?⁠”

“⁠잘했어⁠.⁠”

홍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 유리를 보았다⁠. 남쪽 둑을 보았다⁠. 숨이 길어졌다⁠. 들이쉬는 숨이 길었고⁠, 내쉬는 숨은 더 길었다⁠. 원배는 붕대를 누른 손바닥 밑에서 홍구의 숨이 오르내리는 것을 느꼈다⁠. 오르내림이 점점 느려졌다⁠.

“⁠고객님들⁠…⁠”

홍구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숨이 홍구의 입에서 나와 앞 유리에 하얗게 서렸다⁠. 서린 자리가 천천히 사라졌다⁠.

홍구의 손은 핸들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이 아들의 손등을 덮고 있었다⁠.

운전석 옆 계기판 위에 홍구의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화면이 켜졌다⁠. 알림이 하나 떴다⁠.

「⁠사장님 오늘 문 여시나요⁠? 퇴근길에 들르려고요⁠. 국물 기다립니다⁠」

원배는 화면을 보았다⁠. 화면은 몇 초 동안 켜져 있다가 혼자 꺼졌다⁠. 아무도 답글을 쓰지 않았다⁠. 아침부터 리뷰마다 답글을 달던 엄지가 핸들 위에 얹혀 있었다⁠.

*

버스 안이 조용했다⁠. 산소통 바늘이 쉭쉭거리는 소리만 났다⁠. 누운 노인 하나가 담요 밑에서 손을 뻗어 어머니의 등을 쓸었다⁠. 원장이 고개를 숙였다⁠. 버스 밖에서 예비군들이 깨진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시훈이 철모를 벗어 가슴에 안았다⁠.

준묵이 운전석 옆에 무릎을 꿇었다⁠. 홍구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손을 뻗어 홍구의 눈꺼풀을 내려 주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 손이 원배에게는 더 무거워 보였다⁠.

시훈이 버스 계단을 올라왔다⁠. 눈가가 벌겠다⁠.

“⁠사장님 내려 드려야죠⁠. 이렇게 두면⁠…⁠”

“⁠두세요⁠.⁠”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운전하던 사람은 끝까지 운전석에 앉혀⁠. 버스 다 건널 때까지⁠.⁠”

시훈은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시훈은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철모를 다시 썼다⁠. 고무줄이 늘어진 철모 끈을 이번에는 턱 밑에 단단히 묶었다⁠.

원배는 아침의 함석겸을 떠올렸다⁠. 삼거리 한가운데에서 팔을 다리 입구로 뻗고 누워 있던 대위⁠. 대위의 등에서 날아온 커피믹스 봉지⁠. 오늘 원배는 두 사람의 마지막을 보았다⁠. 두 사람 다 다리를 향해 있었다⁠.

원배는 버스 바닥에 떨어진 송수화기를 주웠다⁠. 유리 가루가 송수화기 틈에 끼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털었다⁠. 송신 단추를 눌렀다⁠. 손가락이 떨렸다⁠. 떨리는 채로 눌렀다⁠.

“⁠남단⁠, 북단입니다⁠. 버스 다리 위 진입⁠, 북단에서 삼십 미터⁠. 엔진 정지⁠. 민간인 열 명 무사합니다⁠. 예비군 탁홍구⁠… 전사했습니다⁠.⁠”

무전기 너머가 비었다⁠. 바람 소리⁠, 강물 소리⁠, 지직거리는 소리⁠. 작전참모의 대답은 한참 뒤에 왔다⁠.

“⁠…알았다⁠.⁠”

한 마디 뒤에 한 마디가 더 붙었다⁠.

“⁠반 소위⁠. 지금 몇 시냐⁠.⁠”

원배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계 유리에 홍구의 피가 한 방울 묻어 있었다⁠. 원배는 엄지로 닦았다⁠. 바늘이 보였다⁠.

“⁠다섯 시 오십이 분입니다⁠.⁠”

“⁠다리 위에 몇 명이냐⁠.⁠”

원배는 출석부를 꺼내지 않았다⁠.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노인 여덟⁠, 원장⁠, 어머니⁠. 버스 밖을 보았다⁠. 깨진 창문 너머로 철모들이 보였다⁠. 원배는 하나씩 셌다⁠. 이번에는 입이 엉키지 않았다⁠.

“⁠민간인 열⁠, 예비군 서른일곱⁠, 현역 하사 하나⁠, 저⁠. 그리고 탁홍구 예비군⁠.⁠”

원배는 마지막 이름을 셀 것인지 잠깐 망설였다⁠. 그러고는 셌다⁠.

“⁠쉰 명입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작전참모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추는 소리가 났다⁠. 숨을 들이쉬는 소리⁠,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소리⁠. 원배는 작전참모가 쉰이라는 숫자를 수첩에 받아 적는 모습을 떠올렸다⁠. 수첩 첫 장의 숫자 밑에⁠. 원배는 기다리지 않았다⁠.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버스 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다리 남쪽 끝 둑 너머⁠, 강변 농로를 따라 흙먼지가 길게 다가오고 있었다⁠. 먼지 앞머리에 흙빛 장갑차의 등이 언뜻언뜻 보였다⁠. 기계화 대대였다⁠. 원배는 버스 계단을 내려가며 외쳤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버스 뒤로 모이십시오⁠. 밉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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