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07자)

둑길

마지막 동원훈련날 포탄이 떨어졌다 · 마효곤

인준묵의 뺨이 구덩이 흙벽에 닿아 있었다⁠. 흙이 차갑고 축축했다⁠.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생각했던 소리와 달랐다⁠. 휙 하는 소리가 아니라 천을 찢는 소리였다⁠. 찢는 소리 끝에 버스 옆구리에서 땅⁠, 땅 하는 쇳소리가 났다⁠. 버스 안에서 누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산소통 바늘이 떨리는 노인들이 있는 버스였다⁠.

준묵은 구덩이 가장자리 위로 눈만 내밀었다⁠. 둑길 위의 회색 차량이 천천히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바퀴 여덟 개가 둑길 아스팔트를 물고 돌았다⁠. 지붕 위의 총구가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불을 뿜었다⁠. 총구가 겨눈 것은 논두렁이었다⁠. 철수하던 현역 열몇이 논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들것이 논두렁에 걸쳐져 있었고⁠, 들것 위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가 옆 사람의 손에 눌려 다시 누웠다⁠.

“⁠사백 미터⁠.⁠”

하사가 옆 구덩이에서 말했다⁠. 하사는 어깨 화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둥글고 긴 녹색 통이었다⁠. 손바닥이 통의 표면을 한 번 쓸었다⁠.

“⁠이거 이백 미터 안쪽이어야 해요⁠.⁠”

“⁠더 가까이 가야 합니까⁠?⁠”

“⁠저 논두렁 끝까지요⁠. 저기 배수로⁠.⁠”

하사가 가리킨 곳은 삼거리에서 둑길을 따라 백 미터쯤 올라간 자리였다⁠. 논두렁과 둑 사이에 시멘트 배수로가 패어 있었다⁠. 배수로까지 가는 길에는 몸을 가릴 것이 없었다⁠.

“⁠저 차 총구가 이쪽으로 돌면요⁠?⁠”

“⁠돌리게 하지 마세요⁠.⁠”

하사는 더 말하지 않고 화기를 어깨에 멨다⁠. 준묵은 하사의 말을 알아들었다⁠. 원배도 알아들었다⁠. 원배가 구덩이에서 고개를 들었다⁠.

“⁠전원⁠, 둑길 차량에 사격⁠! 맞히려고 하지 마시고 쏘십시오⁠! 저 총구가 이쪽을 보게⁠!⁠”

삼거리가 조용했다⁠. 구덩이 서른몇 개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예비군들은 서로를 보았다⁠. 다들 사격장에서 종이 표적을 쏴 본 것이 전부였다⁠. 나흘 동안 사격장에서 쏜 것은 여섯 발이었다⁠.

준묵이 소총을 들어 구덩이 가장자리에 걸쳤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였다⁠. 칠 벗겨진 「⁠94⁠」가 뺨 옆에 닿았다⁠. 가늠쇠 너머로 회색 차량이 손톱만 했다⁠. 준묵은 숨을 반쯤 내쉬고 멈췄다⁠. 방아쇠를 당겼다⁠.

딸깍⁠.

아무것도 나가지 않았다⁠. 옆 구덩이에서 시훈이 비명처럼 외쳤다⁠.

“⁠형님⁠! 거봐요⁠! 결정적인 순간에 딸깍이라고 했잖아요⁠!⁠”

“⁠시끄러워⁠!⁠”

준묵은 이를 악물고 소총을 흙벽에 한 번 내리쳤다⁠. 현역 때 고참이 하던 대로였다⁠. 어디를 쳐야 하는지는 손이 기억했다⁠. 다시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개머리판이 어깨를 걷어찼다⁠. 귀가 멍해졌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탄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회색 차량 근처 어딘가였다⁠.

준묵이 쏘자 옆 구덩이가 쏘았다⁠. 다음 구덩이도 쏘았다⁠. 서른몇 개의 낡은 소총이 한꺼번에 불을 뿜었다⁠. 소리가 제각각이었다⁠. 어떤 총은 탕⁠, 어떤 총은 퍽⁠, 어떤 총은 딸깍 하고 다시 탕⁠. 홍구가 버스 엔진 덮개 밑에서 소리쳤다⁠.

“⁠고객님들⁠, 박자 좀 맞춰요⁠!⁠”

회색 차량의 총구가 돌았다⁠. 논두렁의 현역들에게서 떨어져 삼거리를 보았다⁠. 준묵은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로 천 찢는 소리가 연달아 지나갔다⁠. 흙벽이 툭툭 튀었다⁠. 구덩이 바닥의 물이 군화 속으로 차올랐다⁠.

하사가 구덩이를 빠져나가 논두렁을 따라 기었다⁠. 준묵은 고개를 숙인 채 소리로 하사를 따라갔다⁠. 논두렁 마른 풀이 쓸리는 소리⁠, 진흙이 군화를 붙잡았다 놓는 소리⁠. 일병이 열일곱을 데리고 건너간 지금⁠, 하사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준묵은 다시 고개를 내밀어 쏘았다⁠. 맞히려는 것이 아니었다⁠. 총구가 이쪽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탄알집 하나를 다 비웠다⁠. 손가락이 떨려 두 번째 탄알집을 끼우는 데 세 번이 들었다⁠.

쾅⁠.

소리가 먼저 오고 불빛이 나중에 보였다⁠. 둑길 위의 회색 차량 앞부분에서 검은 연기가 솟았다⁠. 차량이 크게 한 번 기울더니 둑길 가장자리로 미끄러졌다⁠. 바퀴 둘이 둑 비탈에 빠졌다⁠. 차량이 비스듬히 누운 채 멈췄다⁠. 둑길 폭이 차량 하나만 했다⁠. 누운 차량이 둑길을 통째로 막았다⁠.

삼거리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예비군 하나가 구덩이에서 일어나 만세를 부르다가 원배에게 철모를 눌려 도로 주저앉았다⁠.

*

하사는 배수로에서 기어 돌아왔다⁠. 빈 녹색 통을 끌고 왔다⁠. 얼굴이 흙투성이였고⁠, 왼쪽 귀에서 피가 한 줄 흘러내렸다⁠. 하사는 구덩이에 굴러 들어와 빈 통을 끌어안고 숨을 몰아쉬었다⁠.

“⁠한 발 다 썼어요⁠.⁠”

“⁠하사님⁠, 귀에서 피 흘러요⁠.⁠”

“⁠알아요⁠. 안 들려요⁠.⁠”

하사가 웃었다⁠. 이를 다 드러낸 웃음이었다⁠.

현역들이 논두렁에서 일어나 삼거리로 뛰어 들어왔다⁠. 들것을 든 둘이 맨 뒤였다⁠. 들것 위의 상병은 허벅지에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다⁠. 의식이 있었다⁠. 들것이 삼거리에 닿자 상병이 고개를 들어 예비군들을 보았다⁠.

“⁠예비군이에요⁠?⁠”

“⁠예비군입니다⁠.⁠”

“⁠…예비군이 쐈어요⁠?⁠”

“⁠다 빗나갔어요⁠. 하사님이 맞혔어요⁠.⁠”

상병이 웃다가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홍구의 어머니가 버스 문을 열고 내려와 들통의 보리차를 종이컵에 따랐다⁠. 총소리가 잦아든 틈이었다⁠. 상병이 컵을 받아 들고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어머니⁠, 여기 왜 계세요⁠?⁠”

“⁠밥하러 왔지⁠.⁠”

“⁠…예⁠?⁠”

“⁠농담이야⁠. 마셔⁠.⁠”

상병은 보리차를 마시다가 울었다⁠. 소리 없이⁠, 컵을 입에 댄 채 어깨만 들썩였다⁠. 어머니는 상병의 철모를 손바닥으로 한 번 두드리고 버스로 돌아갔다⁠. 현역들의 중사가 원배에게 경례했다⁠. 현역 열하나⁠, 들것 하나⁠. 원배가 출석부를 펴서 여백에 줄을 그었다⁠. 볼펜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원배가 볼펜 끝을 혀에 대고 다시 그었다⁠.

준묵은 둑길 끝을 보았다⁠. 누운 차량 너머⁠, 모퉁이에서 회색 차량 두 대가 멈춰 있었다⁠. 둑길이 막혀 더 내려오지 못했다⁠. 차량 뒷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군복 색이 달랐다⁠. 사람들이 둑 비탈을 내려가 논으로 흩어졌다⁠. 3월의 논은 겉만 말랐고 밑은 녹은 진흙이었다⁠. 사람들이 논에서 허우적거렸다⁠. 뒤에 있던 차량 하나가 논으로 내려가려다 바퀴가 진흙에 빠졌다⁠. 엔진 소리가 높아졌다가 헛돌았다⁠.

“⁠시간 벌었네요⁠.⁠”

원배가 말했다⁠.

“⁠얼마나요⁠?⁠”

“⁠모르겠습니다⁠. 작전참모님은 아시겠죠⁠.⁠”

말이 끝나자마자 원배의 무전기가 울렸다⁠. 작전참모였다⁠.

“⁠북단⁠. 선두 차량 정지 확인했다⁠. 누가 쐈나⁠?⁠”

“⁠감시초소 철수 하사입니다⁠. 한 발 남은 거 썼습니다⁠.⁠”

“⁠예비군은⁠?⁠”

원배가 준묵을 보았다⁠. 준묵이 고개를 저었다⁠. 원배는 송신 단추를 눌렀다⁠.

“⁠예비군도 쐈습니다⁠. 다 빗나갔습니다⁠.⁠”

무전기 너머가 잠깐 비었다⁠. 지직거리는 소리 사이로 작전참모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준묵은 알 수 없었다⁠.

“⁠북단⁠, 지금 건너와⁠.⁠”

“⁠버스 수리 중입니다⁠. 십 분⁠.⁠”

무전이 끊겼다⁠. 대답이 없는 것이 대답이었다⁠.

남단으로 건너간 열일곱이 단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남단 둑 위에 쪼그려 앉은 일병과 예비군들이 컵라면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형님들 저희 남단 도착⁠. 참모님 운전병이 컵라면 줌⁠. 물은 없음⁠. 씹어 먹는 중⁠」 사진 밑으로 북단에서 홍구가 답을 달았다⁠. 「⁠고객님 리뷰 감사합니다⁠. 북단 맛집은 보리차 무한 리필⁠」 구덩이 몇 군데에서 휴대전화를 보던 예비군들이 킥킥거렸다⁠. 총알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데도 킥킥거렸다⁠.

*

총소리가 잦아들었다⁠. 논 건너에서 이따금 탕 소리가 날 뿐이었다⁠. 준묵과 원배는 같은 구덩이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원배의 무전기 배터리 상자가 둘 사이에 놓여 있었다⁠. 청테이프가 한 바퀴 모자라 상자 뚜껑이 들썩였다⁠.

“⁠분대장님⁠.⁠”

“⁠네⁠.⁠”

“⁠현역 때 분대장 하셨다면서요⁠. 군기교육대도 다녀오셨다고⁠, 아침에 누가 그러던데요⁠.⁠”

“⁠누가요⁠?⁠”

“⁠홍구 사장님이요⁠. 단톡방에⁠.⁠”

준묵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흔들렸다⁠.

“⁠혹한기 훈련이었어요⁠. 철원 산속⁠. 영하 이십 도⁠. 밤에 소대장님이 진지 지키라고 하셨는데⁠, 분대원 하나가 발가락이 하얘졌어요⁠. 동상 초기요⁠. 무전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냥 내려왔어요⁠. 분대 데리고⁠.⁠”

“⁠명령 어기고요⁠?⁠”

“⁠네⁠.⁠”

“⁠그래서 군기교육대⁠.⁠”

“⁠네⁠. 근데 그날 밤에 남은 분대에서 동상 환자가 셋 나왔어요⁠. 하나는 발가락을 잃었고요⁠. 제가 내려오면서 다른 분대한테는 말 안 했어요⁠. 우리 분대만 데리고 내려왔어요⁠.⁠”

원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묵은 무릎 사이의 소총을 내려다보았다⁠. 「⁠94⁠」의 볼펜 글씨가 화약 그을음에 반쯤 지워져 있었다⁠.

“⁠지금도 몰라요⁠. 내가 맞았는지⁠. 우리 분대는 멀쩡했고⁠, 다른 분대는 다쳤고⁠. 그래서 오늘은 고르게 한 거예요⁠. 내가 혼자 정하면⁠, 또 몰라서⁠.⁠”

원배가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송수화기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원배의 목소리가 또박또박해졌다⁠.

“⁠분대장님⁠. 들것하고 현역 다친 분들 데리고 지금 건너가십시오⁠. 버스는 제가 남아서 보겠습니다⁠. 이건 명령입니다⁠.⁠”

준묵이 원배를 보았다⁠.

“⁠안 갑니다⁠.⁠”

“⁠명령입니다⁠.⁠”

“⁠압니다⁠. 안 갑니다⁠.⁠”

“⁠분대장님⁠, 이번에도 명령 어기시면⁠…⁠”

“⁠소대장님 혼자 두고 건너가면⁠, 저 또 내 분대만 데리고 내려오는 겁니다⁠.⁠”

원배의 입이 다물렸다⁠. 준묵은 원배의 무전기 배터리 상자를 집어 들었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까 할머니에게 받은 사탕 껍질을 감싸고 있던 고무줄이었다⁠. 준묵은 고무줄로 상자 뚜껑을 한 바퀴 묶었다⁠. 뚜껑이 더는 들썩이지 않았다⁠.

“⁠들것은 현역 분들이 메고 가시면 됩니다⁠. 저보다 잘 뛰어요⁠.⁠”

원배는 오래 준묵을 보았다⁠. 그러고는 송수화기를 들어 중사를 불렀다⁠. 현역 열하나가 들것을 메고 정지선을 넘었다⁠. 중사가 다리에 오르기 전에 돌아서서 원배에게 경례했다⁠. 원배도 경례했다⁠. 다섯 시 사십육 분이었다⁠.

*

“⁠형님⁠!⁠”

홍구가 버스 엔진 덮개 밑에서 소리쳤다⁠. 얼굴이 경유와 그을음으로 새까맸다⁠. 홍구가 경유 묻은 엄지를 들어 보였다⁠.

“⁠공기 다 뺐어요⁠. 이번엔 시동 붙어요⁠.⁠”

홍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논 건너에서 총소리가 다시 커졌다⁠. 진흙을 건너온 사람들이 논두렁 끝에 엎드려 삼거리를 겨누고 있었다⁠. 버스 옆구리를 때리는 쇳소리가 촘촘해졌다⁠. 버스 창문 하나가 하얗게 금이 갔다⁠. 안에서 원장이 노인들 위로 담요를 덮는 것이 보였다⁠.

준묵은 버스를 보았다⁠. 비탈에 머리를 쳐든 초록색 버스⁠, 「⁠63 느릅골⁠—전곡⁠」 비탈 위가 다리였다⁠. 버스가 비탈을 올라가 다리에 올라서면⁠, 논두렁에서 쏘는 총은 둑에 가려 닿지 않았다⁠. 비탈을 올라가는 동안에는 버스 옆구리가 논두렁을 통째로 마주 보았다⁠.

홍구가 엔진 덮개를 닫았다⁠. 손바닥으로 덮개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는 운전석 문을 열었다⁠.

“⁠사장님⁠, 제가 몰게요⁠.⁠”

준묵이 말했다⁠. 홍구가 웃었다⁠.

“⁠형님⁠, 군내버스 몰아 봤어요⁠?⁠”

“⁠…아니요⁠.⁠”

“⁠이 차 클러치 반 박자 늦어요⁠. 모르면 비탈에서 서요⁠. 비탈에서 서면 끝이에요⁠.⁠”

홍구가 운전석에 올랐다⁠. 핸들을 두 손으로 쥐었다⁠. 고개를 돌려 버스 안을 보았다⁠. 맨 앞자리에서 어머니가 들통을 끌어안고 아들을 보고 있었다⁠.

“⁠고객님들⁠, 63번 다리행 출발합니다⁠. 꽉 잡으세요⁠.⁠”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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