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54자)

지하 2층

주말마다 빌리는 몸 · 여오령

토요일 아침 아홉 시⁠, 찬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토요일 원래 이렇게 길어요⁠?⁠」

병곤은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서휴가 병곤의 무릎을 가슴 쪽으로 밀어 올리며 숫자를 셌다⁠. 서휴의 수업용 매트였다⁠. 일 년 만에 집에서 맞는 토요일이었고⁠, 서휴는 아침 일곱 시부터 남편 골반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며 매트를 깔았다⁠.

“⁠하나⁠, 둘⁠, 숨 내쉬고⁠. 당신 오른쪽 엉덩이가 왼쪽보다 이 센티 높아⁠. 일 년 동안 남의 엉덩이 쓰다 오니까 자기 엉덩이를 잊어버렸어⁠.⁠”

“⁠아파⁠.⁠”

“⁠팔천만 원짜리 엉덩이니까 아파야지⁠.⁠”

이솜이 방에서 나와 거실 바닥의 아빠를 내려다봤다⁠. 잠옷 차림에 머리가 새집이었다⁠.

“⁠아빠 토요일에 집에 있으니까 이상해⁠.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많지⁠.⁠”

“⁠아니 그런 거 말고⁠.⁠” 이솜은 냉장고 문을 열며 말했다⁠. “⁠산악회에서 잘린 거야⁠?⁠”

서휴가 웃음을 참느라 숫자를 두 번 건너뛰었다⁠. 병곤은 누운 채 찬율에게 답장을 썼다⁠. 「⁠원래 깁니다⁠. 아침 먹고⁠, 낮잠 자고⁠, 저녁 먹으면 끝나요⁠.⁠」 답이 바로 왔다⁠. 「⁠아침 먹었고 수영장 갔는데 토요일 자유 수영 마감이래요⁠. 다들 토요일에 수영하나 봐요⁠. 처음 알았어요⁠.⁠」 조금 뒤 한 줄이 더 왔다⁠. 「⁠밤 열한 시에 뒷문으로 오세요⁠. 청소 반장님한테 말해 놨어요⁠.⁠」

*

밤 열한 시⁠, 「⁠여벌⁠」 센터 뒷골목⁠. 직원용 쪽문 앞에서 찬율이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안에 청소 업체 조끼가 들어 있었다⁠. 형광 주황색이었다⁠.

“⁠반장님 거 빌렸어요⁠. 제일 큰 걸로요⁠.⁠”

병곤은 조끼를 입었다⁠. 단추가 배에서 멈췄다⁠. 찬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왼쪽부터 올라갔다⁠. 일 년 동안 병곤이 거울에서 보던 웃음이었다⁠. 처음으로 주인이 웃었다⁠.

“⁠웃는 거 처음 봅니다⁠.⁠”

“⁠저도 손님 그 조끼 입은 거 처음 봐요⁠.⁠”

쪽문 안 복도에서 청소 반장이 카트를 밀고 있었다⁠. 예순 남짓⁠, 팔에 토시를 끼고 허리에 걸레 주머니를 찼다⁠. 반장은 병곤을 위아래로 보더니 찬율에게 물었다⁠.

“⁠이 양반이 텔레비전 그 양반이야⁠?⁠”

“⁠네⁠.⁠”

“⁠얼굴 실물이 낫네⁠.⁠” 반장은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업무용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반장은 카트를 들이밀고 문 사이에 걸레 자루를 끼웠다⁠. “⁠나는 걸레질만 해⁠. 지하 2층은 바닥이 제일 더러워⁠. 발자국이 많아서⁠. 누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걸어 다니는지 몰라⁠.⁠”

엘리베이터 벽면에 B2 단추가 있었다⁠. 반장이 목에 건 카드를 대자 단추에 불이 들어왔다⁠. 반장의 카드였는지 대표 카드를 빌려 둔 것인지 병곤은 묻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

지하 2층은 지하 1층보다 어두웠고 더 길었다⁠. 천장 조명은 침대 위에만 켜져 있었다⁠. 침대들이 두 줄로 놓여 있었는데 한 줄은 꽉 차 있었고⁠, 다른 한 줄은 거의 비어 있었다⁠.

찬 줄의 침대에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양복⁠, 실크 블라우스⁠, 골프 셔츠⁠. 다들 손목에서 파란 불이 깜박였다⁠. 비어 있는 몸이었다⁠. 빈 줄의 침대 머리맡에는 이름표만 남아 있었다⁠. 「⁠B1-08 · 외출⁠」 「⁠B1-21 · 외출⁠」 「⁠B1-33 · 외출⁠」 지하 1층 손님의 몸들이 지금 이 침대를 비우고 밖에 나가 있었다⁠.

“⁠이 줄이 빈방 손님들이에요⁠.⁠” 찬율이 찬 줄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자기 몸은 여기 눕혀 두고 위층 손님 몸 빌려서 나간 거예요⁠. 그리고 이 줄은⁠.⁠” 빈 줄을 가리켰다⁠. “⁠빌려 나간 몸들 자리고요⁠.⁠”

병곤은 빈 줄 맨 끝까지 걸었다⁠. 스물 몇 번째 침대 머리맡에서 멈췄다⁠. 「⁠B1-14⁠」라는 이름표가 꽂혀 있었다⁠. 빈 침대였다⁠. 오늘은 병곤이 제 몸에 들어 있었으니까⁠. 매트리스 가운데가 사람 모양으로 꺼져 있었다⁠. 병곤은 꺼진 자리에 손바닥을 댔다⁠. 제 등 모양이었다⁠. 일 년 동안 병곤이 양양 파도 위에 있을 때 제 몸이 여기 눕혀졌다가 일어나 나갔다가 돌아와 다시 누운 자리였다⁠.

“⁠단말기요⁠.⁠” 찬율이 말했다⁠.

통로 끝 유리 칸막이 안에 책상과 모니터가 있었다⁠. 의자가 빈 채 돌아가 있었고⁠, 재떨이에 금색 줄 담배꽁초가 세 개 꽂혀 있었다⁠. 모니터는 잠겨 있지 않았다⁠. 빈방 담당 직원은 손님 하나를 주차장까지 모시러 간 참이었다⁠. 화면 맨 위에 글자가 떠 있었다⁠.

「⁠빈방 · 7월 16일 토요일 · 예약 23건 · 외출 중 19⁠」

화면 오른쪽 위에 오늘 손님 목록이 접혀 있었다⁠. 병곤은 목록을 펼쳤다⁠. 낯선 번호들 사이로 영어 이름 셋이 보였다⁠. 「⁠실사단 체험 · 3건 · 담당 직원 동행⁠」 다음 달 투자 설명회에 들어올 싱가포르 투자사 사람들이 오늘 밤 남의 얼굴로 성수의 술집을 돌고 있었다⁠. 세창은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숫자 대신 회사의 밤을 먼저 팔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안 나오는 상품이었고⁠, 계약서에 안 나와야 비싸게 팔리는 상품이었다⁠.

병곤은 의자에 앉지 않았다⁠. 선 채로 검색 칸에 B1-14를 쳤다⁠. 스무 해 동안 남의 기록을 넘겨 온 손가락이 처음으로 떨렸다⁠.

화면이 아래로 길게 내려갔다⁠. 줄마다 날짜와 시각과 손님 번호가 적혀 있었다⁠. 병곤은 맨 위에서부터 셌다⁠. 작년 8월 첫 주⁠. 병곤이 처음 양양에 간 주말이었다⁠. 첫 주말 토요일 밤에 벌써 줄이 하나 있었다⁠. 「⁠B1-14 · 23⁠:10⁠~04⁠:40 · 손님 C-112⁠」 다음 주말에도 있었고⁠, 그다음 주말에도 있었다⁠. 빠진 주말도 있었다⁠. 비가 와서 손님이 없던 주말⁠, 추석 주말⁠. 병곤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으며 끝까지 셌다⁠.

“⁠마흔 번 가운데 서른한 번입니다⁠.⁠”

찬율이 숨을 들이켰다⁠. 병곤은 화면을 보며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제 귀에 들려주려고 하는 말이었다⁠.

“⁠제가 양양에 간 주말이 마흔 번이에요⁠. 제 몸은 그중 서른한 번 밤에 남이랑 나갔어요⁠.⁠”

일 년 동안 월요일 아침마다 아팠던 허리가⁠, 입안의 텁텁함이⁠, 이유 모를 멍이⁠, 한 줄씩 화면에 떠 있었다⁠. 보관 침대 탓이라던 직원의 말과 허리 받침 매트 주 삼만 원이 떠올랐다⁠. 병곤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몸이 아픈 이유를 남에게 돈 내고 물어봤다⁠.

마지막 줄은 7월 10일이었다⁠.

「⁠B1-14 · 01⁠:50⁠~05⁠:58 · 손님 VIP-03 · 메모⁠: 본인 차량 원함 · 고객 차 키 사물함에서 · 담배 준비 · 귀환 시 블랙박스 카드 수거⁠」

병곤은 손님 번호를 눌렀다⁠. 손님 정보 창이 열렸다⁠. 사진 칸에는 지하 2층 침대에 누운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쉰 후반⁠, 두툼한 턱⁠, 뒤로 넘긴 은발⁠. 사진 밑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VIP-03 · 위도범 · 국회 · 대표 직접 응대 · 결제 법인 카드(⁠대외협력⁠)⁠」

“⁠이 사람⁠.⁠” 찬율이 말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잖아요⁠. 법 만든다는⁠.⁠”

병곤은 휴대전화로 화면을 찍었다⁠. 한 장⁠, 두 장⁠, 손이 떨려 흐려진 사진을 지우고 다시 한 장⁠. 위도범⁠. 몸이 한 일은 몸 주인이 책임져야 시장이 섭니다⁠. 일주일 내내 경찰서 모니터와 상무실 텔레비전에서 들은 말이 머릿속에서 다른 소리로 들렸다⁠.

“⁠손님⁠, 여기도 보세요⁠.⁠” 찬율이 화면 아래 칸을 가리켰다⁠. 「⁠VIP-03 · 이번 주말 예약 이력⁠」 첫 줄이 찬율의 대여인 번호였다⁠. 「⁠대여인 L-207 · 7월 15일 22⁠:00 예약 · 대여인 불참으로 취소⁠」 바로 밑에 줄이 하나 더 있었다⁠. 「⁠B1-05 · 7월 16일 22⁠:30⁠~ · 외출 중⁠」

“⁠L-207이 저예요⁠.⁠” 찬율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이번 주말 제 몸 비공개 손님이 이 사람이었어요⁠. 어제 제가 누웠으면⁠, 지금 제 몸으로⁠.⁠”

찬율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손님을 바꿔 준 대표의 웃음이⁠, 등록금 걱정하시는 거 아니까요⁠, 하던 목소리가 같이 떠올랐다⁠.

*

통로 맞은편에 커튼을 친 칸이 셋 있었다⁠. 칸마다 「⁠VIP⁠」라고 적힌 작은 판이 붙어 있었다⁠. 세 번째 칸의 커튼이 한 뼘쯤 열려 있었다⁠. 병곤은 걸어가 커튼을 걷었다⁠.

텔레비전에서 매일 보던 얼굴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은발을 뒤로 넘긴 쉰아홉 살 남자가 하늘색 환자복 차림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가슴이 느리게 오르내렸다⁠. 손목에서 파란 불이 깜박였다⁠. 비어 있는 몸이었다⁠. 위도범은 지금 B1-05라는 누군가의 얼굴을 쓰고 서울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병곤은 침대 곁에 서서 위도범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사람을 내려다보는 일이 이렇게 쉬웠다⁠. 누워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몰랐다⁠. 나양례가 말한 눈이 지금 병곤의 얼굴에 있었다⁠.

병곤은 휴대전화를 들어 위도범의 얼굴과 손목의 파란 불을 함께 찍었다⁠. 셔터 소리가 지하 2층에 크게 울렸다⁠.

침대 머리맡 탁자에 담뱃갑이 놓여 있었다⁠. 금색 줄 두 개가 그어진 가는 담배였다⁠. 담뱃갑 옆에 메모지가 있었다⁠. 「⁠의원님 귀환 06⁠:00 · 차량 대기⁠」 손글씨였다⁠.

“⁠손님⁠.⁠” 찬율이 병곤의 소매를 잡았다⁠. “⁠엘리베이터 소리요⁠.⁠”

통로 끝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종소리가 났다⁠. 병곤은 커튼을 닫지 않았다⁠. 닫으려다 손을 멈췄다⁠.

*

엘리베이터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하나는 「⁠여벌⁠」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었다⁠. 차 영상 속에서 의⁠…⁠… 고객님⁠, 하고 허리를 숙이던 직원이었다⁠. 직원은 병곤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얘졌다⁠. 다른 하나는 금세창이었다⁠. 운동복 차림이었다⁠. 집에서 자다가 뛰어온 사람이었다⁠. 머리 한쪽이 눌려 있었다⁠.

세창은 통로를 걸어오며 단말기 화면을 보고⁠, 열린 커튼을 보고⁠, 커튼 안의 위도범을 봤다⁠. 마지막으로 형광 주황 조끼의 단추가 배에서 멈춘 병곤을 봤다⁠. 세창은 웃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반장님이 오늘따라 늦게까지 계신다 했습니다⁠.⁠” 세창이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깍듯했다⁠. “⁠옥찬율 씨⁠, 쉬는 날인데 출근하셨네요⁠. 그것도 토요일에⁠.⁠”

찬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뒤에서 직원이 더듬거리며 끼어들었다⁠.

“⁠대표님⁠, 의원님 귀환이 여섯 시라서⁠, 차를 지금 빼 둬야⁠…⁠…⁠”

“⁠나중에⁠.⁠” 세창이 짧게 잘랐다⁠. 직원의 입이 닫혔다⁠. 의원님이라는 말은 이미 통로를 건너와 병곤의 귀에 닿은 뒤였다⁠. 세창도 그것을 알았다⁠. 세창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세창은 찬율을 지나쳐 병곤 앞에 와서 멈췄다⁠. 두 사람 사이에 위도범의 침대가 있었다⁠. 파란 불이 두 사람의 셔츠 자락을 번갈아 물들였다⁠.

“⁠보셨죠⁠.⁠” 세창이 말했다⁠.

“⁠서른한 번입니다⁠.⁠”

“⁠서른한 번 동안 고객님 몸은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습니다⁠. 지난주 한 번 빼고요⁠.⁠” 세창은 왼손 검지로 밴드를 톡톡 두 번 두드렸다⁠. “⁠고객님은 그동안 양양에서 행복하셨고요⁠. 저희 기록에 고객님 만족도가 다섯 점 만점에 다섯 점입니다⁠. 마흔 번 내리⁠.⁠”

병곤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세창의 눈이 주머니를 따라갔다⁠.

“⁠사진은 가지고 가셔도 됩니다⁠. 남의 회사 지하에 몰래 들어와서 찍은 사진이라 법원에서 쓸모가 별로 없을 겁니다⁠. 그건 부장님이 저보다 잘 아시죠⁠.⁠” 세창은 처음으로 병곤을 고객님 대신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하시죠⁠. 보셨으면⁠, 같이 일하시죠⁠, 부장님⁠.⁠”

위도범의 손목에서 파란 불이 한 번 깜박였다⁠. 지하 2층 어디선가 청소 카트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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