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54자)

병곤이

주말마다 빌리는 몸 · 여오령

목요일 새벽 네 시⁠, 병곤은 목동에서 차를 몰아 신촌 고시원 앞에서 찬율을 태웠다⁠. 찬율은 긴소매 셔츠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왔다⁠. 조수석에 앉자마자 안전띠를 두 번 확인했다⁠.

“⁠경위서는 쓰셨어요⁠?⁠”

“⁠손님이 강제로 시켰다고 썼어요⁠. 손님이 그렇게 쓰라고 하셔서요⁠.⁠” 찬율은 창밖을 봤다⁠. “⁠이번만 봐준대요⁠. 이번만이라는 말이 계약서보다 무서워요⁠.⁠”

“⁠그런데 왜 따라오셨어요⁠? 쉬는 날인데⁠.⁠”

찬율은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바다를 한 번 깨어서 보고 싶어서요⁠. 제 몸은 쉰 번 넘게 갔는데 저는 한 번도 못 봤어요⁠.⁠”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하늘이 밝아졌다⁠. 라디오에서 아침 뉴스가 흘렀다⁠. 국회 신체대여법 공청회가 이 주 뒤로 잡혔고⁠, 싱가포르 투자사 실사단이 이번 주 서울에 들어온다고 했다⁠. 병곤은 라디오를 껐다⁠. 찬율이 다시 켰다⁠. 병곤이 다시 껐다⁠.

“⁠제 몸으로 뭐 드셨어요⁠?⁠” 찬율이 물었다⁠. “⁠월요일마다 속이 이상했거든요⁠. 입술 주변도 가렵고⁠.⁠”

“⁠라면⁠. 사장님이 아침마다 해장 라면을 끓여 줬어요⁠. 김치 넣고 계란 풀고⁠.⁠”

“⁠저 밀가루 먹으면 두드러기가 올라와요⁠.⁠”

병곤은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일요일 오후마다 목덜미가 가려웠던 것이 떠올랐다⁠. 햇볕 때문인 줄 알았다⁠. 몸이 겪은 일은 몸에 남는다⁠. 라면은 병곤의 혀를 지나 찬율의 살갗에 남았다⁠.

“⁠다음부턴⁠, 아니⁠, 다음은 없죠⁠.⁠”

“⁠없죠⁠.⁠” 찬율이 말했다⁠. “⁠손님 몸은 어땠어요⁠? 일요일 밤에 돌아가시면⁠.⁠”

“⁠무거워요⁠. 이불이 아니라 이불 속 솜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월요일마다 그 반대예요⁠. 깨면 몸이 너무 가벼워서 무서워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몸이 뭘 배워 온 것 같아서요⁠.⁠”

*

아침 여덟 시⁠, 양양 바닷가 서핑 숍⁠. 장발을 질끈 묶은 사장이 가게 앞에서 보드에 왁스를 먹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찬율이 차에서 내리자 사장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병곤아⁠! 평일에 웬일이냐⁠? 목요일에도 파도는 있다⁠!⁠”

찬율은 모자챙을 내렸다⁠. 사장은 찬율의 어깨를 두드리려다 손을 멈췄다⁠. 어깨가 안으로 말려 있었다⁠. 자세가 달랐다⁠. 사장의 눈이 운전석에서 내리는 반백의 남자로 옮겨 갔다⁠. 허리를 짚고⁠, 금테 안경을 고쳐 쓰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마흔여섯 살 남자⁠.

“⁠사장님⁠, 길병곤입니다⁠. 전화로 말씀드린⁠.⁠”

사장은 왁스 덩어리를 쥔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한참 만에 손가락으로 찬율을 가리켰다⁠.

“⁠그럼 이건 누구여⁠?⁠”

“⁠몸 주인이요⁠. 옥찬율 씨⁠.⁠”

“⁠그럼 너는⁠.⁠” 사장은 손가락을 병곤에게 옮겼다⁠. 다시 찬율에게 옮겼다⁠. 다시 병곤에게⁠. “⁠내가 일 년 동안 라면 끓여 먹인 놈이 너여⁠?⁠”

“⁠접니다⁠.⁠”

“⁠스물다섯 살인 줄 알고 형님 소리 듣던 내가 몇 살이냐면⁠, 쉰둘이여⁠.⁠” 사장은 왁스를 내려놓고 병곤의 배를 봤다⁠. “⁠나보다 형이네⁠.⁠”

*

가게 처마 밑에 낡은 방범 카메라가 바다를 향해 달려 있었다⁠. 사장은 카메라 녹화기를 컴퓨터에 연결해 7월 10일 새벽 영상을 띄웠다⁠. 병곤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사장은 병곤의 어깨너머로 몸을 숙였고⁠, 찬율은 조금 떨어져서 화면을 봤다⁠.

새벽 네 시 삼십오 분⁠,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검은 웻슈트를 입은 찬율의 몸이 걸어 들어왔다⁠. 보드를 모래에 눕히고 왁스를 문질렀다⁠. 네 시 사십 분⁠, 찬율의 몸은 모래밭에서 양팔을 휘두르며 몸을 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뚝섬로 횡단보도에서 병곤의 몸은 차를 멈추지 않았다⁠.

“⁠이게 저예요⁠.⁠” 병곤이 화면을 가리켰다⁠. “⁠이 몸 안에⁠.⁠”

“⁠저는 이 시간에 성수 센터 침대에서 자고 있었어요⁠.⁠” 찬율이 말했다⁠. “⁠빌려준 사람은 깨지 않아요⁠.⁠”

네 시 오십 분⁠, 찬율의 몸이 보드를 끌고 물에 들어갔다⁠. 다섯 시 삼 분⁠, 파도 하나가 화면 왼쪽에서 부풀었다⁠. 찬율의 몸이 보드 위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굽었고⁠, 허리가 버텼고⁠, 팔이 균형을 잡았다⁠. 화면 아래 모래밭에서 사장이 뛰어들어 오는 뒷모습이 찍혀 있었다⁠. 소리는 없었지만 사장이 무어라 외치는지는 누구나 알았다⁠.

“⁠병곤아⁠.⁠” 사장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낮은 목소리였다⁠.

“⁠시간 표시 맞습니까⁠?⁠”

“⁠맞지⁠. 작년에 도둑 들어서 경찰이 맞춰 놓고 갔어⁠.⁠”

병곤은 휴대전화로 화면을 찍으면서 머릿속으로 보고서를 썼다⁠. 사고 시각⁠, 찬율의 몸은 양양에 있었다⁠. 빌려준 사람은 깨지 않으니⁠, 찬율의 몸 안에는 손님이 있었다⁠. 회사 기록은 손님이 길병곤이라고 말한다⁠. 같은 회사 기록이 길병곤의 몸은 보관실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영상 속 운전자는 길병곤일 수 없다⁠. 길병곤이 아니라면 남는 것은⁠, 비어 있던 길병곤의 몸 안에 들어간 누군가다⁠.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병곤이 찬율을 봤다⁠. “⁠회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손님은 일찍 돌아갔고⁠, 새벽에 파도를 탄 건 깨어난 옥찬율 씨였다⁠.⁠”

찬율은 화면 속 제 몸을 봤다⁠. 파도 위에서 팔을 벌린 몸이었다⁠.

“⁠저 수영 못 한다니까요⁠.⁠”

“⁠말로는 안 됩니다⁠.⁠”

*

사장이 가장 넓고 두꺼운 연습용 보드를 꺼내 왔다⁠. 찬율은 병곤이 일 년 동안 주말마다 입던 검은 웻슈트를 입고 모래밭으로 나왔다⁠. 같은 몸이라 웻슈트가 꼭 맞았다⁠. 넓은 어깨⁠, 그을린 목⁠, 고무 위로도 드러나는 단단한 허벅지⁠. 서퍼의 몸이었다⁠. 찬율은 제 몸을 처음 입어 보는 옷처럼 어색하게 움직였다⁠.

“⁠모래 위에서 먼저 해 보자⁠.⁠” 사장이 보드를 모래에 눕혔다⁠. “⁠엎드려⁠. 팔 짚고⁠. 하나⁠, 둘⁠, 일어나⁠.⁠”

찬율은 엎드렸다가 팔을 짚고 무릎부터 올렸다⁠. 무릎을 세웠다가 엉덩이로 주저앉았다⁠. 모래 위에서였다⁠.

“⁠물에 들어가면 다를 거야⁠. 몸이 기억해⁠.⁠” 사장이 말했다⁠.

“⁠몸이 기억하는 거 아닙니다⁠.⁠” 병곤이 말했다⁠. “⁠일어나는 건 머리가 배운 거라⁠.⁠”

허리 깊이 물에 들어가자 찬율의 얼굴이 하얘졌다⁠. 파도가 무릎을 치자 보드를 껴안고 놓지 않았다⁠. 사장이 작은 파도에 보드를 밀어 주었다⁠. 찬율은 엎드린 채 해변까지 미끄러져 왔고⁠, 모래에 닿을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세 번을 더 했다⁠. 세 번 다 엎드린 채였다⁠. 네 번째에 찬율이 보드에서 굴러떨어졌다⁠. 물은 허리까지였는데 찬율은 허우적거렸다⁠. 병곤이 바지를 입은 채 뛰어들어 찬율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찬율은 바닷물을 뱉으며 기침했다⁠. 병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일 년 동안 같은 몸을 썼는데⁠,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됐어요⁠.⁠” 사장이 녹화기를 끄며 말했다⁠. 모래밭 위 휴대전화로 네 번을 다 찍어 두었다⁠. “⁠일요일 새벽에 탄 놈하고 지금 이놈은 다른 놈이여⁠. 내가 증언할게⁠. 서핑 가르친 지 스물두 해여⁠. 넘어지는 모양만 봐도 몇 번째 온 놈인지 알아⁠.⁠”

찬율은 모래에 주저앉아 바다를 봤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 찬율의 그을린 어깨 위에서 햇빛이 반짝였다⁠. 처음으로 몸 주인이 깨어서 받는 햇빛이었다⁠.

“⁠바다 되게 시끄럽네요⁠.⁠” 찬율이 말했다⁠.

*

열한 시⁠, 검은 차 한 대가 서핑 숍 앞에 멈췄다⁠. 금세창이 리넨 셔츠 차림으로 내렸다⁠.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병곤은 젖은 바지를 입은 채 가게 앞 모래밭에 있었다⁠. 세창이 병곤을 보고 활짝 웃었다⁠.

“⁠고객님⁠, 고객님 몸으로 바다에 오신 건 처음이시죠⁠? 바지 입고 들어가셨네요⁠.⁠”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사장님께 좋은 소식 드리러요⁠.⁠” 세창은 사장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여벌 양양 접속소 제휴 제안서⁠」 “⁠가게 뒤 창고에 접속 침대 두 대 놓겠습니다⁠. 서울 손님들이 금요일 밤에 센터에 누우면 몸은 미리 여기 내려와 있는 거죠⁠. 사장님은 자릿세하고 수수료 받으시고요⁠. 지난달 매출 보니까 제가 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장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세창은 봉투를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방범 장비를 저희 표준 장비로 바꿔 드려요⁠. 옛날 녹화기는 저희가 수거해 가고요⁠.⁠”

“⁠그 녹화기 안에 일요일 새벽이 있어서요⁠?⁠” 병곤이 물었다⁠.

세창은 병곤을 보지 않고 사장만 봤다⁠. “⁠사장님⁠, 요즘 젊은 사람들 서핑하러 몸 빌려서 옵니다⁠. 몸 빌려 오는 사람은 장비를 안 사요⁠. 다음 주면 돌려줄 몸에 왜 돈을 씁니까⁠. 이 가게가 살 길은 그 사람들을 받는 겁니다⁠. 그게 시장이에요⁠.⁠”

사장은 평상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녹화기를 한 번 보고⁠, 모래밭에 앉아 있는 찬율을 한 번 보고⁠, 병곤을 봤다⁠.

“⁠접속소 내 주면⁠.⁠” 사장이 말했다⁠. “⁠우리 바다에 오는 놈들 얼굴이 전부 남의 얼굴이 되는 거 아녀⁠. 나는 일 년 동안 라면 끓여 먹인 놈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그런 놈이 가게에 두 개 놓인 침대에서 매주 나오는 거고⁠.⁠”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다들 즐겁게 타고 가시는데요⁠.⁠”

“⁠문제지⁠. 내가 누굴 가르쳤는지를 모르잖어⁠.⁠” 사장은 가게로 들어가 녹화기에서 카드를 뽑아 나왔다⁠. 손톱만 한 카드였다⁠. 사장은 카드를 병곤의 젖은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병곤이는 내 손님이여⁠. 몸이 뭐든⁠.⁠”

세창의 웃음이 잠깐 멎었다⁠. 왼손 검지가 밴드를 톡톡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는 평상 위의 봉투를 다시 집었다⁠.

“⁠사장님 마음 바뀌시면 연락 주세요⁠.⁠” 세창은 차로 돌아가다가 모래밭의 찬율 앞에서 멈췄다⁠. “⁠옥찬율 씨⁠, 쉬는 날 바다에 오셨네요⁠. 좋으시겠어요⁠. 이번 주말 대여 잡힌 거 확인하셨죠⁠?⁠”

“⁠이번 주말은 손님이 정지되셨는데요⁠.⁠”

“⁠새 손님 넣어 드렸습니다⁠. 등록금 걱정하시는 거 아니까요⁠.⁠” 세창은 웃었다⁠. “⁠앱 한번 보세요⁠.⁠”

*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찬율은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었다⁠. 화면에 알림이 두 개 떠 있었다⁠.

「⁠이번 주말 대여 확정 · 7월 15일 22시 ~ 7월 17일 22시 · 손님 번호 비공개⁠」

「⁠계약 변경 안내 · 대여인은 회사 기록과 보관실 영상을 외부에 제공할 수 없습니다⁠. 위반 시 근무·대여 계약 즉시 해지⁠, 위약금 사백만 원⁠」

“⁠손님 번호가 비공개예요⁠.⁠” 찬율이 말했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어요⁠. 늘 손님 번호는 나왔어요⁠.⁠”

병곤은 운전대를 쥔 채 백미러를 봤다⁠. 백미러에 바닷물에 젖은 마흔여섯 살 남자와⁠, 모자를 눌러쓴 스물다섯 살이 함께 비쳤다⁠. 찬율의 몸은 이번 주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입고 나갈 것이었다⁠. 병곤의 몸이 그랬던 것처럼⁠.

“⁠안 누우면 됩니다⁠.⁠” 병곤이 말했다⁠.

“⁠안 누우면 위약금이에요⁠. 등록금이 사백십만 원이고요⁠.⁠” 찬율은 휴대전화를 무릎에 엎었다⁠. “⁠손님은 주말마다 저한테 이백만 원을 내셨는데⁠, 저는 손님 덕분에 한 번도 바다를 못 봤고⁠, 오늘 처음 보러 가서 물에 빠졌어요⁠. 그런데 이번 주말에는 누가 제 몸을 쓸지도 몰라요⁠.⁠”

조수석 창밖으로 인제양양터널 입구가 다가왔다⁠.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창에 두 사람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찬율이 유리창 속 제 얼굴에 대고 말했다⁠.

“⁠금요일 밤에 안 누울게요⁠. 위약금은 손님이 내 주세요⁠.⁠”

병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 마이너스 통장에 사백이 더해졌다⁠. 팔천사백⁠. 서휴가 들으면 숨부터 쉬라고 할 숫자였다⁠. 갚을 것이 하나 늘었는데⁠, 이상하게 허리는 아까보다 덜 아팠다⁠. 터널은 길었다⁠. 유리창 속 찬율이 모자를 벗었다⁠. 소금기에 뻣뻣해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일 년 동안 병곤이 주말마다 손으로 쓸어 넘기던 머리였고⁠, 오늘 처음 주인이 바닷물에 적신 머리였다⁠.

“⁠다음 주에 수영장 끊을 거예요⁠.⁠” 찬율이 말했다⁠. “⁠제 몸이 저보다 바다를 잘 아는 거⁠, 기분 나빠서요⁠.⁠”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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