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29자)

어허

주말마다 빌리는 몸 · 여오령

화요일 아침 일곱 시⁠, 목동 상가 2층 필라테스 학원⁠. 첫 타임 회원 여덟 명이 매트 위에서 몸을 풀다가 일제히 문을 봤다⁠. 서휴가 반백의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남자는 운동복이 아니라 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이었고⁠, 손목에 흰 밴드를 찼다⁠.

“⁠오늘은 시범 회원 한 분 모셨습니다⁠. 골반이 많이 틀어지신 분이에요⁠.⁠”

회원들이 수군거렸다⁠. 맨 앞줄의 회원이 휴대전화를 꺼내려다 서휴와 눈이 마주치고 도로 넣었다⁠.

“⁠편의점 아저씨다⁠.⁠” 뒷줄에서 누가 속삭였다⁠.

“⁠네⁠, 편의점 아저씨입니다⁠.⁠” 서휴가 말했다⁠. “⁠제 남편이고요⁠. 일 년 동안 주말마다 스물다섯 살 몸 빌려서 놀다 온 분이에요⁠. 그래서 골반이 두 개예요⁠. 하나는 자기 거⁠, 하나는 남의 거⁠. 오늘은 자기 것만 남기고 남의 건 떼어 낼 겁니다⁠.⁠”

회원들이 웃었다⁠. 병곤은 기구에 누웠다⁠. 서휴가 병곤의 발을 발판에 올리고 무릎을 밀었다⁠.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회원들이 박수를 쳤다⁠.

“⁠저희 남편도 주말에 몸 빌려서 골프 쳐요⁠.⁠” 두 번째 줄의 회원이 말했다⁠. “⁠일흔 타 쳤대요⁠. 자기 몸으로는 백 타 넘게 치는 사람이⁠.⁠”

“⁠우리 남편은 몸 빌려서 회사 체육대회 나갔어요⁠. 달리기 일 등 했대요⁠.⁠” 옆 회원이 받았다⁠. “⁠상품으로 받은 상품권은 몸 주인한테 줬대요⁠. 일 등은 그 몸이 했다고⁠.⁠”

“⁠그 남편분이 양심 있으시네요⁠.⁠” 서휴가 병곤의 무릎을 한 번 더 밀며 말했다⁠. 병곤은 기구 위에서 신음했다⁠. 회원들이 또 웃었다⁠. 마흔 넘은 사람들이 자기 몸 대신 남의 몸으로 주말을 사는 이야기를⁠, 다들 남편 흉 보듯 했다⁠.

수업이 끝나고 탈의실 앞에서 서휴가 병곤의 넥타이를 반듯하게 매 주었다⁠.

“⁠오후에 거기 가서 화내지 마⁠. 화내는 얼굴이 제일 잘 찍혀⁠.⁠”

*

오후 한 시 반⁠, 국회 본관 화장실⁠. 병곤은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거울을 봤다⁠. 서휴가 매 준 넥타이가 반듯했다⁠. 편의점 화면 속 남자와 다른 차림이었다⁠. 차이를 알아볼 사람은 서휴 하나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남색 재킷 차림의 청년이 들어왔다⁠. 재킷 가슴에 「⁠여벌⁠」 로고가 박혀 있었다⁠. 찬율이었다⁠. 찬율은 병곤을 보고 멈칫했다가 옆 세면대로 왔다⁠. 두 사람이 거울 앞에 나란히 서자⁠, 스물다섯 살 얼굴과 마흔여섯 살 얼굴이 거울 하나에 함께 들어왔다⁠. 양양에서 돌아오는 터널 속 유리창 이후 처음이었다⁠.

“⁠오늘 진술하세요⁠?⁠” 병곤이 물었다⁠.

“⁠대여인 대표래요⁠. 대표님이 써 준 종이 읽어요⁠.⁠” 찬율은 물을 틀고 손을 씻었다⁠. 오래 씻었다⁠. “⁠읽어야 장학금이 나와요⁠.⁠”

“⁠읽으세요⁠.⁠”

찬율이 거울 속 병곤을 봤다⁠. “⁠아저씨⁠, 오늘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의원님이 아저씨 부르려고 자리 만든 거예요⁠. 아저씨 얼굴 옆에 의원님 얼굴 나란히 찍히게⁠. 대표님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웃는 얼굴 편을 든대요⁠.⁠”

“⁠알아요⁠.⁠”

“⁠알면서 왜 와요⁠?⁠”

병곤은 손을 털었다⁠. 거울 속 제 얼굴을 봤다⁠. 둥근 얼굴⁠, 넓은 이마⁠, 금테 안경⁠. 일 년 동안 싫어서 머리만 만지던 얼굴이었다⁠.

“⁠제 얼굴이 거기 있었으니까요⁠. 제 얼굴이 사람을 치고 갔으니까⁠, 제 얼굴이 거기 가서 물어봐야죠⁠.⁠”

찬율은 물을 잠그고 종이 타월을 두 장 뽑았다⁠. 한 장을 병곤에게 내밀었다⁠. 병곤은 받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손을 닦았다⁠. 찬율이 먼저 나갔다⁠. 나가다 문간에서 멈추고⁠, 거울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종이는 읽을게요⁠. 근데 아저씨 쳐다보면서 읽을 거예요⁠.⁠”

*

오후 두 시⁠, 국회 소회의실⁠. 방청석은 기자들로 반쯤 차 있었다⁠. 병곤의 자리는 맨 앞줄 가운데였다⁠. 의원실에서 이름표까지 붙여 두었다⁠. 「⁠방청 · 길병곤⁠」 자리에 앉자마자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등 뒤에서 쏟아졌다⁠.

진술인석에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업계 · 금세창(⁠여벌 대표⁠)⁠」 「⁠보험업계 · 온새손해보험 상무⁠」 「⁠학계 · 법학 교수⁠」 마지막 자리에 앉은 사람을 보고 병곤은 숨을 멈췄다⁠. 「⁠대여인 대표 · 옥찬율⁠」 찬율은 반소매 대신 「⁠여벌⁠」 로고가 박힌 남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병곤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위원장석에 위도범이 앉았다⁠. 은발을 뒤로 넘기고⁠, 두툼한 턱에 손을 괴고 있었다⁠. 지하 2층 침대에서 파란 불을 켜고 누워 있던 얼굴이 이제 눈을 뜨고 회의실을 내려다봤다⁠. 사람을 내려다보는 데 익숙한 눈이었다⁠.

진술은 순서대로 이어졌다⁠. 세창은 이천 명의 대여인과 그들의 월세를 이야기했다⁠. 상무는 그래프를 띄웠다⁠. 막대가 계단처럼 올라갔다⁠. 교수는 몸과 정신을 법이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이십 분 동안 말했고⁠, 아무도 듣지 않았다⁠. 교수가 말하는 동안 상무는 책상 밑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넘겼다⁠. 병곤의 자리에서 화면이 보였다⁠. 「⁠서른 살 몸 대여 · 토요일 오전 일곱 시 · 골프장 직행⁠」 상무는 예약 단추를 누르고 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래프로 눈을 돌렸다⁠.

찬율의 차례가 왔다⁠. 찬율은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손이 떨려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저는 일 년 동안 주말마다 몸을 빌려줬습니다⁠. 그 돈으로 등록금을 냈습니다⁠. 신체 귀속 원칙이 생기면 저 같은 대여인이 책임보험에 들 수 있고⁠, 사고가 나도 보험금으로⁠…⁠…⁠” 찬율은 종이에서 눈을 들어 병곤을 봤다⁠. 문장이 끊겼다⁠. 다시 종이로 눈을 내렸다⁠. “⁠보험금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법을 찬성합니다⁠.⁠”

찬율의 목소리는 끝까지 공손했다⁠. 공손해서 아무도 찬율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병곤만 알았다⁠.

*

진술이 끝나자 위도범이 마이크를 당겼다⁠.

“⁠오늘 방청석에 화제의 인물이 와 계시죠⁠. 길병곤 씨⁠. 우리 법이 왜 필요한지 몸으로 보여 주신 분입니다⁠.⁠” 위도범이 웃었다⁠. 기자석에서 웃음이 따라 나왔다⁠. “⁠길병곤 씨⁠, 일어나서 한 말씀 하시죠⁠. 방청인 발언은 원래 안 되는데⁠, 오늘은 내가 특별히 허락합니다⁠.⁠”

병곤은 일어났다⁠. 카메라들이 일제히 병곤을 향했다⁠. 서휴가 말한 화내는 얼굴이 떠올랐다⁠. 병곤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보험금 청구인에게 묻던 목소리로 물었다⁠.

“⁠의원님⁠, 7월 10일 일요일 새벽 네 시 사십 분에 어디 계셨습니까⁠?⁠”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다음에 웃음이 터졌다⁠. 기자석과 보좌관석에서⁠, 진술인석 뒤에서⁠. 위도범이 손을 들어 웃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혀를 찼다⁠.

“⁠어허⁠, 이거 큰일이네⁠.⁠”

병곤의 등줄기가 굳었다⁠. 나양례가 병상에서 또박또박 따라 하던 소리였다⁠. 어허⁠, 하고 혀를 차고⁠. 이거 큰일이네⁠. 박자까지 같았다⁠.

“⁠그 시간에 나는 집에서 자고 있었지요⁠. 내 몸도 집에 있었고⁠.⁠” 위도범이 웃었다⁠. “⁠길병곤 씨 몸은 어디 있었습니까⁠? 편의점에 있었지요⁠. 온 국민이 봤어요⁠. 본인 몸이 한 일을 남 탓하는 첫 사례가 오늘 여기 서 계십니다⁠. 그래서 신체 귀속 원칙이 필요한 겁니다⁠. 몸 주인이 책임을 져야 남 탓을 못 해요⁠. 안 그러면 사고 낸 사람마다 내 몸 안에 딴 놈이 있었다고 할 겁니다⁠.⁠”

박수가 나왔다⁠. 보좌관석이었다⁠.

“⁠제 밴드가 초록이었습니다⁠.⁠” 병곤이 말했다⁠. “⁠주인 아닌 사람이 들어 있을 때만 켜지는 불입니다⁠.⁠”

위도범이 턱을 괸 손을 풀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자네⁠, 색맹 아닌가⁠?⁠”

자네⁠. 차 실내 영상에서 병곤의 입으로 나온 말이었다⁠. 어허⁠, 하고 혀를 찬 입에서 자네가 이어서 나왔다⁠. 일주일 동안 병곤이 차 영상과 병실에서 따로따로 들은 두 소리가 한 사람의 입에서 나란히 나왔다⁠. 병곤은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국회 방호원 두 사람이 양옆에서 팔을 잡았다⁠.

“⁠방청인 발언 시간은 끝났습니다⁠.⁠” 위도범이 말했다⁠. “⁠모셔다드려⁠.⁠”

끌려 나가는 동안 병곤은 진술인석을 봤다⁠. 세창은 병곤을 보지 않고 위도범을 보고 있었다⁠. 왼손 검지가 밴드 위에서 멈춰 있었다⁠. 두드리지 않았다⁠. 찬율은 종이를 접고 있었다⁠. 접은 종이를 다시 접고⁠, 또 접었다⁠.

*

오후 다섯 시⁠, 국회 앞 계단에서 병곤은 휴대전화 알림을 봤다⁠. 「⁠신체대여법⁠, 소위원회 통과 · 신체 귀속 원칙 포함⁠」 알림 밑으로 숏폼 알림이 줄줄이 붙었다⁠. 「⁠남의 몸 탓 아재 국회 진출⁠」 「⁠자네 색맹 아닌가 레전드⁠」 「⁠편의점 아재 vs 의원님⁠」 위도범이 혀를 차는 장면에 효과음이 붙어 있었다⁠. 조회수는 보는 사이에 올라갔다⁠.

이솜의 메시지가 왔다⁠. 「⁠아빠 2탄 나옴⁠. 이번엔 국회⁠. 신고 사유 없음⁠. 근데 아빠 질문은 멋있었음⁠. 반 애들도 그건 인정함⁠.⁠」

이어서 서휴⁠. 「⁠화냈어⁠?⁠」 병곤은 답했다⁠. 「⁠안 냈어⁠.⁠」 서휴의 답⁠. 「⁠알아⁠. 화면 봤어⁠. 골반 바르게 서 있더라⁠.⁠」

찬율에게서는 아무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병곤은 찬율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토요일 수영장 사진이었다⁠. 물안경 자국이 남은 웃는 얼굴⁠. 병곤은 대화창을 닫았다⁠.

계단 아래에 금세창이 서 있었다⁠. 혼자였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병곤이 내려가자 세창이 먼저 말했다⁠.

“⁠의원님한테 그 질문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답은 예상하셨겠죠⁠.⁠”

“⁠의원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세창은 국회 건물을 올려다봤다⁠. 위도범의 사무실이 있는 층이었다⁠. “⁠부장님⁠, 하나만 알려 드리죠⁠. 오늘 일로 투자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싱가포르요⁠. 법이 통과될 것 같으니 투자 설명회를 다음 주 목요일로 당기자고요⁠. 오늘 부장님 덕분에 법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네라는 말 들으셨죠⁠.⁠”

세창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잠깐이었다⁠. 세창은 대답 대신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올라가다 한 번 멈췄는데⁠, 끝내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

국회 앞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반필구의 전화가 왔다⁠.

“⁠텔레비전으로 봤어요⁠. 경찰서 휴게실에서 다들 봤어요⁠.⁠” 필구는 김밥 대신 무언가 바삭한 것을 씹고 있었다⁠. “⁠어허⁠, 들었어요⁠. 피해자분 진술서 세 번째 줄에 있는 그 소리요⁠.⁠”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말투인 거죠⁠. 판사한테는 말투일 뿐이에요⁠. 어허는 우리 장인어른도 해요⁠.⁠” 필구는 한 박자 쉬었다⁠. “⁠근데 우리 장인어른은 피해자분 앞에서 안 해요⁠. 그 새벽에 뚝섬로에 안 계셨으니까⁠.⁠”

필구가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선생님⁠, 아까 질문은 제가 조서에 쓰려다 못 쓴 질문이었어요⁠. 오늘 저녁엔 김밥 말고 밥 먹으려고요⁠.⁠”

*

밤 아홉 시⁠, 병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탁주란이었다⁠. 처음 걸려 온 전화였다⁠.

“⁠지금 뉴스에 당신 나와⁠.⁠” 주란의 목소리 뒤에서 병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국회⁠. 그 의원이 당신한테 뭐라고 하는 거⁠.⁠”

“⁠알고 있습니다⁠. 거기 있었어요⁠.⁠”

“⁠엄마가 보고 있었어⁠.⁠” 주란이 잠깐 말을 멈췄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금속이 타일에 튕기는 소리⁠, 숟가락이었다⁠. 주란이 엄마⁠, 하고 불렀다⁠. 텔레비전 속에서 위도범이 혀를 차고 있었다⁠. 어허⁠, 이거 큰일이네⁠.

그리고 병곤은 수화기 너머에서 나양례의 목소리를 들었다⁠. 쉬고 가는⁠, 반찬 간을 볼 때처럼 또박또박한 목소리였다⁠.

“⁠저 말투야⁠. 주란아⁠, 저 사람이야⁠. 얼굴은 아닌데⁠, 저 입이야⁠.⁠”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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