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39자)

배달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20년 3월 9일 월요일 점심⁠, 망원시장 뒷골목에 사람이 없었다⁠. 개업 네 해째 되는 날이었다⁠. 봉희꽃방 유리문에 「⁠졸업식 취소로 당분간 오후만 엽니다⁠」 종이가 붙었고⁠, 골목 중간 술집 셋이 한꺼번에 불을 껐다⁠. 홍떡 망원골목점 앞에도 줄이 없었다⁠. 시장 앞 약국에만 줄이 있었다⁠.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었다⁠.

우리 가게 창고에는 마스크 상자가 마흔 개 쌓여 있었다⁠. 작년 12월에 들여놓은 것이었다⁠. 상자를 처음 나르던 날 규성은 상자 하나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사장님⁠, 마스크 공장 하세요⁠?⁠”

“⁠겨울에 감기 조심하라고⁠.⁠”

“⁠마흔 상자로요⁠?⁠”

“⁠봄에 감기가 세게 와⁠.⁠”

규성은 상자를 나르던 날부터 마스크 상자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숨을 참았다⁠. 지금은 숨을 참지 않았다⁠. 규성이 마스크를 두 장씩 비닐에 담아 골목 가게마다 돌렸다⁠. 콩자반 할머니에게 열 장⁠, 시장 안 반 평 철물점의 영복 사장에게 열 장⁠, 봉희 사장에게 열 장⁠. 봉희 사장은 마스크를 받아 들고 처음으로 「⁠잘들 한다⁠」를 안 했다⁠.

“⁠문 사장⁠, 너 진짜 뭐니⁠?⁠”

“⁠떡볶이집 애요⁠.⁠”

“⁠떡볶이집 애가 마스크를 마흔 상자 사 놓니⁠?⁠”

점심이 지나자 계산대 옆 태블릿이 울기 시작했다⁠. 배달 앱 주문 알림이었다⁠. 첫 생에서 나는 2020년 봄에 배달을 시작했다⁠. 포장 용기가 없어 반찬통에 떡볶이를 담아 보냈고⁠, 국물이 새서 첫 주에 별점 하나를 열두 번 받았다⁠. 이번 생에는 작년 가을에 앱에 가게를 올리고⁠, 국물 안 새는 용기를 천 개 사 두었다⁠. 메뉴판 맨 위에는 새 메뉴를 올렸다⁠.

「⁠로제 떡볶이⁠」

크림과 고추장을 섞은 떡볶이였다⁠. 첫 생에서 로제가 동네마다 퍼진 것은 2020년 겨울부터였다⁠. 이번 생에서는 문가네가 몇 달 먼저였다⁠. 규성이 태블릿 화면을 읽었다⁠.

“⁠사장님⁠, 리뷰 왔어요⁠. 「⁠로제 미쳤어요⁠. 사장님 저랑 결혼해 주세요⁠」⁠. 별 다섯⁠.⁠”

“⁠답글 달아⁠. 결혼은 어렵고 쿠폰 드린다고⁠.⁠”

“⁠또 왔어요⁠. 「⁠사장님이 리뷰 답글에 내일 비 온다고 쓰셨는데 진짜 왔어요⁠. 무서워요⁠」⁠.⁠”

“⁠그건 일기예보 보고 쓴 거야⁠.⁠”

“⁠사장님이 쓰시면 일기예보도 무서워요⁠.⁠”

주문서의 요청 사항 칸도 날마다 이상해졌다⁠. 「⁠문 앞에 두고 벨 누르지 마세요⁠. 사장님 예언 쪽지 있으면 같이 넣어 주세요⁠」⁠. 「⁠저 이번에 이직해도 될까요⁠? 맵기는 보통⁠」⁠. 규성은 요청 사항을 소리 내어 읽다가 볼펜으로 포장 봉투에 한 줄씩 적어 넣었다⁠. 「⁠예언은 안 합니다⁠. 떡은 많이 넣었습니다 — 실장⁠」⁠. 다음 날 주문한 손님이 별 다섯과 함께 리뷰를 남겼다⁠. 「⁠실장님 글씨가 더 무서움⁠」⁠.

*

4월 둘째 주⁠, 3층 우편함에 법원 봉투가 왔다⁠. 나는 우편물을 올려 드리려다 봉투에 찍힌 글자를 보았다⁠. 「⁠임의경매 개시 결정⁠」⁠. 신청한 사람은 홍떡에프앤비였다⁠. 작년 11월⁠, 창훈 씨의 이자가 끝내 안 들어왔다⁠. 대출 약정대로 남은 돈을 한꺼번에 갚으라는 통지가 갔고⁠, 명옥 여사는 갚지 못했다⁠. 홍떡은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고 했다⁠. 기다리는 것만큼 서두르는 것도 잘했다⁠.

봉투를 3층에 올려 드렸을 때 명옥 여사는 현관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영상통화 화면에 요양병원 병실 창문이 떴다⁠. 창문 너머로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의 머리가 작게 보였다⁠. 요양병원은 2월부터 면회를 막았다⁠. 명옥 여사는 화면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영감⁠, 나야⁠. 들려⁠? 밥은 먹었어⁠?⁠”

화면 속 간호사가 할아버지 귀에 휴대전화를 대 주었다⁠. 할아버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소리가 늦게 왔다⁠.

“⁠…⁠…명옥아⁠.⁠”

명옥 여사가 화면을 가슴에 대고 현관 벽에 기댔다⁠. 나는 법원 봉투를 신발장 위에 놓고 계단을 내려왔다⁠. 봉투 얘기는 다음 날 했다⁠.

*

7월 첫째 주 수요일 오후 세 시⁠, 마정철이 마스크를 쓰고 가게에 들어왔다⁠. 홀에 손님은 없었고⁠, 태블릿만 쉬지 않고 울었다⁠. 규성이 배달 봉투에 로제 떡볶이를 담는 동안 마정철은 메뉴판을 한참 보았다⁠.

“⁠로제는 저희보다 넉 달 빠르셨습니다⁠. 마라는 다섯 주였고요⁠.⁠” 마정철이 의자에 앉았다⁠. “⁠사장님은 늘 저희보다 조금씩 빠르십니다⁠. 어떻게 하시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장사하는 사람 감이요⁠.⁠”

“⁠감이라면 저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정철이 휴대전화 화면을 내밀었다⁠. 표 하나가 떠 있었다⁠. 망원동 골목마다 올해 들어 문을 닫은 가게 수였다⁠. 숫자가 빽빽했다⁠. “⁠저는 날마다 폐업 신고 날짜를 모읍니다⁠. 이 동네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작년 한 해치 가게가 닫았습니다⁠. 사장님 가게는 버티십니다⁠. 배달 덕분에요⁠. 그런데 사장님이 버티실수록 3층 여사님은 잃으십니다⁠.⁠”

“⁠알아요⁠.⁠”

“⁠아신다니 다행입니다⁠.⁠” 마정철이 화면을 껐다⁠. “⁠사장님 계약은 저희 근저당보다 먼저입니다⁠. 경매로 가면 낙찰자는 사장님 보증금과 남은 기간을 떠안습니다⁠. 그래서 값이 내려갑니다⁠. 저희야 싸게 사면 좋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사님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경매 전에 건물이 비면 저희가 경매를 거두고 시세대로 사겠습니다⁠. 여사님은 빚을 털고도 돈이 남으십니다⁠. 사장님께는 이전비를 넉넉히 드리고요⁠.⁠”

“⁠팀장님 말은 늘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싫어요⁠.⁠”

마정철이 웃었다⁠. 마스크 위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사장님⁠,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골목 가게는 대부분 사라집니다⁠. 사장님 같은 분이 열 해를 볶고 빈손으로 나가는 걸 저는 많이 봤습니다⁠. 저희가 어귀 건물을 사면 적어도 골목에 불은 안 꺼집니다⁠.⁠”

“⁠빨간 불이요⁠.⁠”

“⁠빨간 불도 불입니다⁠.⁠”

마정철이 일어나며 계산대에 명함을 하나 더 놓았다⁠. 직함이 바뀌어 있었다⁠. 「⁠점포개발본부장⁠」⁠.

“⁠배달 잘되시니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배달 앱 수수료가 내년에 오릅니다⁠. 사장님도 아시겠지만요⁠.⁠”

마정철이 나가고 나서 규성이 배달 봉투를 든 채 말했다⁠. “⁠사장님⁠, 저분도 미래를 아세요⁠?⁠”

“⁠숫자를 아는 거야⁠.⁠”

“⁠숫자 아는 사람이 더 무서워요⁠.⁠”

*

9월 29일 화요일 저녁⁠, 철물점 대신 우리 가게에 상인 연합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마스크를 썼고 의자를 한 칸씩 띄웠다⁠. 텔레비전 뉴스가 오늘부터 바뀌는 법을 전했다⁠. 오늘부터 여섯 달 동안 밀린 월세는 건물주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는 사유가 되는 연체액에 넣지 않는다⁠. 감염병 때문에 장사가 안되면 세입자가 월세를 깎아 달라고 청구할 수도 있다⁠.

봉희 사장이 마스크 위로 눈을 꼭 감았다 떴다⁠. 꽃집 월세가 넉 달째 밀려 있었다⁠. 졸업식이 없고⁠, 결혼식이 미뤄지고⁠, 개업하는 가게가 없었다⁠. 석 달 치가 밀리면 건물주가 계약을 끝낼 수 있었다⁠. 오늘부터는 끝낼 수 없었다⁠.

“⁠살았다⁠.⁠” 봉희 사장이 말했다⁠. “⁠잘들 한다⁠, 국회가⁠.⁠”

“⁠밀린 월세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나중에 다 내셔야 해요⁠.⁠”

“⁠알아⁠. 나중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커피 가게를 접고 배달 기사를 하는 옛 커피 가게 사장이 헬멧을 무릎에 얹고 말했다⁠. “⁠그런데 건물주들은요⁠? 월세 못 받는 건물주도 대출 이자는 내잖아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들 한 건물주를 떠올렸다⁠. 우리 건물 2층의 피아노 학원은 5월에 문을 닫고 나갔다⁠. 아이들이 학원에 못 왔다⁠. 2층은 넉 달째 비어 있었고⁠, 1층 꽃집 월세는 넉 달째 밀렸다⁠. 3층 건물주가 받는 돈은 내 월세 하나였다⁠. 내 월세로 요양병원비를 냈고⁠, 이자는 이미 경매가 되었다⁠.

*

10월 16일 금요일 밤 열 시⁠, 나는 배달 용기를 정리하다가 골목으로 나갔다⁠. 명옥 여사가 골목 한복판에 서 있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올봄부터 짚기 시작한 지팡이였다⁠. 골목에 불 켜진 가게가 우리 가게 하나였다⁠.

“⁠가윤아⁠.⁠”

명옥 여사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네 해 하고 일곱 달 만이었다⁠. 첫 생까지 치면 열네 해 만이었다⁠.

“⁠네⁠.⁠”

“⁠매각기일이 3월 10일로 잡혔다⁠.⁠” 명옥 여사가 지팡이를 고쳐 짚었다⁠. “⁠경매로 넘어가면 나는 빚 갚고 손에 쥐는 게 없다⁠. 네 계약이 근저당보다 먼저라서 낙찰받는 사람은 네 보증금하고 네 십 년을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아무도 비싸게 안 산다⁠. 홍떡만 산다⁠. 싸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 맞는 말이었다⁠. 2016년 3월에 나는 가게를 넘겨받고 사업자등록을 했다⁠. 홍떡의 근저당은 2017년이었다⁠. 법은 먼저 들어온 세입자를 지켰다⁠. 법이 나를 지키는 만큼 명옥 여사의 건물은 싸졌다⁠.

“⁠마정철이가 그러더라⁠. 경매 전에 건물을 비워 주면 경매를 거두고 시세대로 사 주겠다고⁠. 시세대로 받으면 빚 갚고도 영감 병원비가 남는다⁠.⁠” 명옥 여사가 나를 보았다⁠. “⁠네가 나가 줘야 내가 산다⁠.⁠”

“⁠제가 나가면 홍떡이 1층에 들어와요⁠.⁠”

“⁠들어오라지⁠.⁠”

“⁠그러면 이 골목 어귀부터 홍떡이에요⁠. 시장 뒷길 들어오는 사람이 처음 보는 게 홍떡 간판이에요⁠. 봉희 사장님도⁠, 영복 사장님 반 평 철물점도⁠…⁠…⁠.⁠”

“⁠골목이 내 노후냐⁠!⁠”

명옥 여사의 목소리가 빈 골목 끝까지 갔다⁠. 꽃집 셔터가 드르르 떨렸다⁠.

“⁠너는 네 가게만 지키는구나⁠. 네 십 년⁠, 네 철판⁠, 네 골목⁠. 나는 마흔 해 산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데⁠.⁠” 명옥 여사가 지팡이로 우리 가게 유리문을 가리켰다⁠. “⁠이전비는 마정철이가 넉넉히 준다더라⁠. 권리금 대신이라고⁠. 그 돈 받고 딴 데 가서 해⁠. 너는 어디 가서 해도 된다⁠. 장사 잘하잖아⁠.⁠”

“⁠안 나가요⁠.⁠”

명옥 여사가 지팡이를 내렸다⁠.

“⁠다시 말해 봐라⁠.⁠”

“⁠안 나가요⁠, 여사님⁠.⁠”

명옥 여사가 한참 나를 보았다⁠. 마스크가 턱에서 흘러내렸다⁠. 명옥 여사는 마스크를 올리지 않고 돌아서 계단으로 걸어갔다⁠. 지팡이 소리가 계단 하나에 한 번씩 났다⁠. 3층 문이 닫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문을 열어 둔 채 들어간 것이었다⁠.

나는 유리문 앞에 서서 내가 한 말을 다시 들었다⁠. 첫 생에서 나는 나갔다⁠. 이번 생에서 나는 안 나간다고 했다⁠. 안 나가는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

밤 열두 시 반⁠, 셔터를 반쯤 내렸을 때 셔터 밑으로 누군가 굴러 들어왔다⁠. 창훈 씨였다⁠. 마스크 없이 소주 냄새를 뿜었고⁠, 금목걸이는 없었다⁠. 셔터에 머리를 찧고도 아픈 줄 몰랐다⁠.

규성이 배달 용기를 끌어안고 뒷걸음질을 쳤다⁠. “⁠사장님⁠, 무서워요⁠. 이번엔 진짜 무서워요⁠.⁠”

“⁠창훈 씨⁠, 물 드릴게요⁠.⁠”

“⁠사장님⁠.⁠” 창훈 씨가 바닥에 앉은 채 무릎을 꿇었다⁠. 빈 가게 타일 바닥에 무릎이 닿는 소리가 났다⁠. “⁠나 때문이에요⁠. 엄마는 아무 잘못 없어요⁠. 내가 홍떡 돈 빌리면서 엄마 도장 받았고⁠, 이자 밀린 거 넉 달 숨겼고⁠, 엄마한테 이번엔 진짜라고 했어요⁠. 열 번은 했어요⁠.⁠”

“⁠일어나세요⁠.⁠”

“⁠엄마 위해서 나가 주세요⁠. 사장님 나가면 홍떡이 경매 거두고 시세대로 산대요⁠. 엄마 집도 지키고 아버지 병원비도 남아요⁠. 나는⁠…⁠… 나는 홍떡이 내 연대보증도 없던 걸로 해 준대요⁠.⁠”

창훈 씨의 어깨가 떨렸다⁠. 쉰 살 남자가 떡볶이집 바닥에서 울었다⁠. 나는 철판 앞에 서서 국자를 쥐고 있었다⁠. 왜 쥐었는지 몰랐다⁠. 손이 먼저 국자를 찾았다⁠.

“⁠창훈 씨⁠, 연대보증 없던 걸로 해 준다는 말⁠, 종이로 받으셨어요⁠?⁠”

창훈 씨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벌갰다⁠.

“⁠…⁠…아직요⁠.⁠”

“⁠받으시면 저한테 보여 주세요⁠.⁠”

“⁠보여 주면 나가 줄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벽에 시계 두 개가 같이 열두 시 사십 분을 가리켰다⁠. 매각기일까지 다섯 달이 남아 있었다⁠.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