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626자)

상생협약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19년 3월 9일 토요일 아침⁠, 명옥 여사가 계약서를 들고 내려왔다⁠. 월세 칸의 숫자는 5퍼센트를 올린 금액이었다⁠. 나는 도장을 찍었고⁠, 명옥 여사는 계약서 맨 위의 날짜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2019년 3월 9일⁠. 10월 16일 뒤에 처음 갱신한 계약이었다⁠. 이 도장으로 내 갱신요구권은 2026년 3월 8일까지가 되었다⁠.

“⁠십 년짜리 도장이다⁠.⁠” 명옥 여사가 말했다⁠.

“⁠일곱 해 남은 도장이에요⁠.⁠”

“⁠계산 빠르구나⁠.⁠”

“⁠떡볶이도 빨라요⁠. 한 그릇 드릴까요⁠?⁠”

“⁠애들이나 먹는 거다⁠.⁠”

명옥 여사가 올라간 뒤 나는 유리문 밖을 보았다⁠. 골목 오십 미터 아래⁠, 옛 철물점 자리에 홍떡 망원골목점의 빨간 간판이 있었다⁠. 작년 11월에 문을 연 홍떡은 메뉴판 맨 위에 「⁠철판 떡볶이⁠」를 올렸다⁠. 멸치 육수에 고춧가루를 기름에 먼저 볶고⁠, 쌀떡을 하루 냉장했다⁠. 마정철이 내 철판 앞에서 수첩에 적은 순서 그대로였다⁠. 값은 우리보다 오백 원 쌌다⁠.

“⁠사장님⁠, 베낀 거 신고 못 해요⁠?⁠” 규성이 물었다⁠.

“⁠떡볶이 만드는 순서엔 주인이 없어⁠.⁠”

“⁠그럼 어떡해요⁠?⁠”

“⁠다른 걸 만들어⁠.⁠”

4월⁠, 나는 메뉴판에 「⁠마라 떡볶이⁠」를 올렸다⁠. 첫 생에서 마라가 골목마다 퍼진 것은 이 무렵이었다⁠. 산초와 화자오를 기름에 볶는 첫날⁠, 규성은 냄새만 맡고 재채기를 열한 번 했다⁠. 시장 안 반 평 철물점에서 영복 사장이 시식하러 왔다가 혀를 내밀고 물 세 컵을 마셨다⁠.

“⁠문 사장⁠, 이거 입이 마비되는디⁠.⁠”

“⁠그게 맛이에요⁠.⁠”

“⁠마비가 맛이여⁠?⁠”

“⁠요즘 애들은 그래요⁠.⁠”

“⁠요즘 애들 큰일 났네⁠.⁠”

마라 떡볶이는 대학생 손님들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가 사흘 만에 골목 밖으로 퍼졌다⁠. 홍떡은 다섯 주 뒤에 「⁠얼얼 떡볶이⁠」를 냈다⁠. 이번엔 우리가 오백 원 쌌다⁠.

5월에 나는 규성에게 명함을 만들어 주었다⁠. 「⁠문가네 떡볶이 실장 안규성⁠」⁠. 규성은 명함 한 통을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냈다⁠. 저녁에 규성의 어머니가 가게로 전화를 했다⁠.

“⁠사장님⁠, 우리 애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해요⁠? 애가 집에 와서 자꾸 사장님이 미래를 안다고 그래요⁠. 혹시 그런 모임은 아니죠⁠?⁠”

“⁠떡볶이 모임이에요⁠, 어머님⁠.⁠”

“⁠애가 사장님 무섭다고 하면서 실장은 왜 했대요⁠?⁠”

“⁠시급이 세서요⁠.⁠”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이 길게 났다⁠. 규성은 튀김기 앞에서 명함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냈다가 했다⁠. 다음 날 아침 규성은 명함 뒷면에 볼펜으로 한 줄을 적어서 계산대 옆에 붙였다⁠. 「⁠사장님 예언 문의는 받지 않습니다 — 실장⁠」⁠.

*

8월⁠, 망원동 골목마다 「⁠임대⁠」 종이가 붙기 시작했다⁠. 망리단길이라는 말이 신문에 나온 지 세 해⁠, 손님은 늘었고 가게 주인은 바뀌었다⁠. 골목 중간 커피 가게 사장은 건물이 팔리고 새 주인이 월세를 두 배로 부르자 열흘 고민하다 가게를 접었다⁠. 새 주인은 홍떡이었다⁠. 마정철 팀장은 이 동네에서만 건물 일곱 채를 샀다⁠.

“⁠망원동 다 사려나 봐요⁠.⁠” 커피 가게 사장이 마지막 날 남은 원두를 상인회에 나눠 주며 말했다⁠. “⁠사장님⁠, 저 다섯 해도 못 채웠어요⁠.⁠”

나는 상인회 사람들과 망원동을 돌았다⁠. 시장 앞 큰길⁠, 한강 쪽 주택가 골목⁠, 망원역 뒤⁠. 철물점 회의실에 앉던 일곱이 서른넷이 되었다⁠. 이름은 「⁠망원동 상인 연합⁠」으로 바꾸었다⁠. 영복 사장은 반 평 철물점에서 회장을 계속했다⁠.

“⁠문 사장⁠, 이제 뭐 혀⁠?⁠”

“⁠건물주님들이랑 같이 앉아요⁠. 구청에서요⁠.⁠”

“⁠건물주들이 앉어⁠?⁠”

“⁠앉게 해야죠⁠.⁠”

나는 구청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를 열네 번 했다⁠. 열다섯 번째에 주무관이 졌다⁠. 10월 11일 저녁 일곱 시⁠, 망원동 주민센터 회의실⁠. 서울시 장기안심상가 사업을 안내하고⁠, 건물주와 세입자의 상생협약 설명회를 연다고 했다⁠.

*

9월 마지막 주⁠, 저녁 장사를 하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명옥 여사의 이름이 떴다⁠. 메시지였다⁠.

「⁠떡볶이집 애가 다음 달에 주민센터에서 또 설명회 한다네⁠. 다들 가서 한마디씩 해⁠. 우리가 봉이냐⁠」

나는 철판 불을 줄이고 메시지를 두 번 읽었다⁠. 단체방에 보낼 것을 나에게 보낸 것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여사님⁠, 저 떡볶이집 애예요⁠」

삼 분 뒤 답이 왔다⁠.

「⁠알고 보냈다⁠」

삼 분 뒤 한 통이 더 왔다⁠.

「⁠모르고 보냈다⁠. 잊어라⁠」

규성이 내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고 튀김 집게를 떨어뜨렸다⁠. “⁠사장님⁠, 여사님이 건물주 단톡방 하세요⁠?⁠”

“⁠계모임이래⁠.⁠”

“⁠계모임 이름이 뭔데요⁠?⁠”

나는 모른다고 했다⁠. 다음 날 봉희 사장이 알아 왔다⁠. 시장 앞 미용실 원장이 회원이었다⁠. 「⁠망원 건물주 친목회⁠」⁠, 회원 열하나⁠, 회장 탁명옥⁠. 미용실 원장 말로는 5퍼센트 인상 계약을 하는 날마다 단톡방에 박수 이모티콘이 열한 개씩 올라온다고 했다⁠.

“⁠잘들 한다⁠.⁠” 봉희 사장이 꽃가위를 내려놓았다⁠. “⁠우리는 철물점에 모이고⁠, 저쪽은 단톡방에서 박수 치고⁠.⁠”

*

10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나는 떡볶이 한 그릇을 비닐로 덮어 들고 3층 계단을 올라갔다⁠. 현관 앞에 요양병원 종이 가방이 세 개 쌓여 있었다⁠. 명옥 여사는 식탁에서 돋보기를 쓰고 휴대전화 화면을 보다가 나를 보자 화면을 엎어 놓았다⁠.

“⁠월세는 다음 주다⁠.⁠”

“⁠설명회 오시라고요⁠. 여사님이 오셔야 다른 건물주님들도 오세요⁠.⁠”

“⁠너 회장 노릇 하니⁠?⁠”

“⁠총무는 봉희 사장님이고 회장은 영복 사장님이에요⁠. 저는 그냥 떡볶이집 애예요⁠.⁠”

명옥 여사가 돋보기를 벗었다⁠. 웃음을 참는 입이었다⁠. 식탁 위에 서류 봉투 몇 개와 빨간 인주⁠, 그리고 뚜껑이 열린 인감도장이 있었다⁠. 봉투 하나에 창훈 씨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명옥 여사가 내 눈을 따라 봉투를 보더니 손바닥으로 덮었다⁠.

“⁠떡볶이는 왜 들고 왔니⁠?⁠”

“⁠드시라고요⁠.⁠”

“⁠애들이나 먹는 걸⁠.⁠”

“⁠할아버지 갖다 드리세요⁠. 요즘은 죽만 드신다면서요⁠. 떡은 빼고 국물만 데우시면 돼요⁠.⁠”

명옥 여사가 비닐 덮은 그릇을 한참 보다가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 문에 요양병원 면회 시간표가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설명회엔 간다⁠. 가서 너희 편 안 든다⁠.⁠”

“⁠오시기만 하세요⁠.⁠”

“⁠창훈이가 전화를 안 받는다⁠.⁠” 명옥 여사가 엎어 놓은 휴대전화를 다시 뒤집었다⁠. 화면에 「⁠창훈이⁠」가 떠 있었고⁠, 통화 연결음이 끝까지 울리다 끊겼다⁠. “⁠사업하는 애들은 바쁘면 전화를 안 받는다더라⁠.⁠”

*

10월 11일 금요일 저녁 일곱 시⁠, 망원동 주민센터 회의실의 의자는 둘로 나뉘어 있었다⁠. 창 아래쪽 줄에 상인 연합 스물두 명이 앉았다⁠. 문 쪽 줄에 망원 건물주 친목회 열한 명이 앉았다⁠. 맨 앞 탁자에 구청 주무관과 서울시 직원이 앉았고⁠, 탁자 끝에는 마정철이 앉아 있었다⁠. 홍떡도 망원동 건물주였다⁠.

명옥 여사는 문 쪽 줄 맨 앞에 앉았다⁠. 꽃무늬 누빔 조끼 대신 회색 정장을 입었다⁠. 지팡이는 없었지만 무릎에 손을 얹고 일어날 때마다 숨을 한 번 골랐다⁠.

서울시 직원이 장기안심상가 사업을 읽었다⁠. 건물주가 세입자와 상생협약을 맺고 다섯 해 이상 월세 인상을 자제하면⁠, 건물 보수비를 최대 삼천만 원까지 서울시가 대 준다⁠. 협약을 어기면 지원금과 이자와 위약금을 돌려받는다⁠. 설명이 끝나자 문 쪽 줄에서 미용실 원장이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오 년 동안 월세를 못 올리고 삼천을 받는 거네요⁠. 손해 아니에요⁠?⁠”

“⁠손해 보는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습니다⁠.⁠” 서울시 직원이 말했다⁠.

내가 일어났다⁠. 창 아래쪽 줄이 조용해졌다⁠.

“⁠망원동 상인 연합 문가윤입니다⁠. 문가네 떡볶이 하고요⁠.⁠” 나는 손에 든 종이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망원동에 올해만 「⁠임대⁠」 종이가 마흔두 장 붙었어요⁠. 저희가 세 주 동안 직접 세었어요⁠. 가게가 비면 다음 세입자는 더 비싼 월세를 내고 들어오지만⁠, 그 가게도 다섯 해를 못 채우면 또 비어요⁠. 빈 가게가 많은 골목은 손님이 안 와요⁠. 손님이 안 오면 건물 시세도 내려가요⁠. 상생협약은 세입자 좋으라고만 하는 게 아니에요⁠.⁠”

명옥 여사가 일어났다⁠. 무릎에서 손을 떼는 데 숨이 한 번 들었다⁠.

“⁠말 잘한다⁠. 건물주는 다 부자니⁠?⁠”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영감 요양병원비를 낸다⁠. 한 달에 이백이 넘는다⁠. 아들 사업은 망했다 살았다 한다⁠. 나한테 있는 건 건물 하나고⁠, 내 노후는 거기서 나온다⁠. 법이 5퍼센트까지 올리라고 정해 놨는데⁠, 그것도 덜 올리라고⁠? 너희는 장사 안되면 가게 접고 딴 데 가면 되지만⁠, 나는 건물 들고 어디로 가니⁠?⁠”

문 쪽 줄에서 박수가 터졌다⁠. 열한 명이 박수를 쳤다⁠. 단톡방의 박수 이모티콘과 같은 숫자였다⁠.

“⁠여사님 건물⁠, 작년에 구조진단에서 C등급 나왔죠⁠.⁠” 내가 말했다⁠.

명옥 여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C등급은 보수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붕 방수랑 외벽 금 간 데⁠, 계단 난간이요⁠. 보수비가 삼천 가까이 나와요⁠. 여사님이 지금 그 돈 낼 데가 없는 거 저 알아요⁠. 서울시가 그 돈을 대 준대요⁠. 대신 다섯 해 동안 월세를 덜 올리시는 거고요⁠. 여사님한테 손해예요⁠?⁠”

“⁠…⁠…얼마나 덜 올리는데⁠.⁠”

“⁠한 해에 2퍼센트⁠. 저희가 그렇게 정했어요⁠. 대신 저희가 월세 날을 하루도 안 넘길게요⁠. 상인 연합 서른넷이 다 같이 약속해요⁠.⁠”

명옥 여사가 앉았다⁠. 문 쪽 줄의 건물주들이 명옥 여사를 보았다⁠. 명옥 여사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영수증을 정리하던 손가락이었다⁠. 한참 있다가 명옥 여사가 서울시 직원을 보았다⁠.

“⁠그 종이⁠, 이리 줘 봐라⁠.⁠”

회의실이 술렁였다⁠. 미용실 원장이 회장님⁠, 하고 불렀다⁠. 명옥 여사는 대꾸하지 않고 일어나 맨 앞 탁자로 걸어갔다⁠. 서울시 직원이 협약서를 펼치고 펜을 내밀었다⁠. 첫 생의 열 해 동안 나는 명옥 여사가 나를 위해 펜을 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명옥 여사가 펜 뚜껑을 열었다⁠.

“⁠잠깐만요⁠, 여사님⁠.⁠”

탁자 끝에서 마정철이 손을 들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공손했다⁠.

“⁠협약하시기 전에 한 가지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여사님 건물에는 저희 회사 근저당이 잡혀 있습니다⁠. 채권최고액 삼억 구천만 원입니다⁠. 2017년에 소창훈 사장님께 공사 운영자금을 빌려 드리면서 여사님께서 담보를 서 주셨죠⁠.⁠”

명옥 여사의 펜이 종이 위 한 뼘에서 멈췄다⁠.

“⁠그건 나도 안다⁠.⁠”

“⁠예⁠, 아십니다⁠. 그런데 소창훈 사장님 이자가 넉 달째 밀려 있다는 것은 아마 모르셨을 겁니다⁠.⁠” 마정철이 서류 한 장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다음 달까지 안 들어오면 대출 약정에 따라 남은 돈을 한꺼번에 갚으셔야 합니다⁠. 못 갚으시면 저희는 담보를 처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월세를 다섯 해 동안 묶으시면 이자를 무엇으로 갚으실지⁠, 채권자로서 걱정이 돼서요⁠.⁠”

회의실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창 아래쪽 줄에서 봉희 사장이 숨을 들이켰고⁠, 규성이 노트를 떨어뜨렸다⁠. 문 쪽 줄의 건물주 열 명이 명옥 여사의 등을 보았다⁠.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탁자 앞에 있었다⁠. 머릿속에서 첫 생의 열 해가 한 장씩 넘어갔다⁠. 해마다 꼬박꼬박 상한까지 올라가던 월세⁠. 갱신요구권이 끝난 다음 날 세 배로 뛴 월세⁠. 내가 나간 지 반나절 만에 올라간 홍떡 현수막⁠. 명옥 여사의 노후라던 돈은 노후로 간 적이 없었다⁠. 홍떡으로 갔다⁠.

“⁠여사님⁠.⁠”

명옥 여사가 펜을 쥔 채 나를 돌아보았다⁠. 회색 정장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열 해 하고도 세 해 동안 나는 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월세 올린 거⁠, 할아버지 병원비만이 아니었죠⁠.⁠”

명옥 여사가 대답 대신 펜 뚜껑을 닫았다⁠. 딸깍⁠, 소리가 회의실 끝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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