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756자)
오 퍼센트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저녁 아홉 시, 철물점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왔다. 오늘부터 상가 월세 인상 상한이 9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내려간다고 했다. 서울은 보증금과 월세를 합쳐 따진 금액이 6억 1천만 원 이하인 가게까지 보호를 받는다고 했다. 상인회 일곱 명이 못 상자 사이에서 아무 말 없이 화면을 보다가, 일곱 명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문 사장.” 영복 사장이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작년 12월 회의 때 뭐라 그랬어.”
“1월 26일부터 5퍼센트라고요.”
“날짜까지 말했지.”
“신문에 났었어요.”
“신문엔 1월 언제쯤이라고만 났어.” 봉희 사장이 팔짱을 꼈다. “잘들 한다. 너 국회에 아는 사람 있지?”
“없어요.”
“그럼 법무부.”
“없어요.”
규성이 노트를 덮고 진지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사장님, 혹시 국정원이세요?”
“국정원이 떡볶이를 왜 볶아.”
“위장이요. 떡볶이가 위장이고, 사장님이 진짜 하시는 일은…….”
“규성 씨, 이번 달부터 시급 칠천오백삼십 원이야.”
규성이 입을 다물었다. 올해 최저임금이었다. 나는 작년 내내 칠천 원을 주었는데 법이 하룻밤 사이에 나를 앞질렀다.
“법이 사장님보다 세네요.”
“법이 원래 세.”
커피 가게 사장이 사다리에 걸터앉은 채 손을 들었다. “그럼 사장님, 다음엔 뭐가 바뀌어요?”
나는 망설였다. 일곱 명이 볼펜을 들고 기다렸다. 말한다고 바뀔 일이 아니었다. 국회는 내 철판 소리를 듣지 못한다.
“10월 16일에 갱신요구권이 5년에서 십 년으로 늘어요. 그날부터 새로 맺거나 갱신하는 계약은 십 년까지 보호돼요.”
일곱 명이 받아 적었다. 콩자반 할머니는 볼펜이 없어서 철물점 달력에 손톱으로 금을 그었다.
“문 사장 말이 맞으면, 나는 이번 봄에 끝이여.” 영복 사장이 말했다. “십 년이고 오십 년이고, 나는 마흔 해째라 아무것도 아니여.”
*
3월, 영복 사장의 철물점 건물이 팔렸다. 산 사람은 홍떡에프앤비였다. 첫 생에서 철물점 건물은 2018년에 개인 투자자에게 팔렸다. 이번 생에는 같은 해에 홍떡이 샀다. 해는 같고 산 사람이 달랐다. 홍떡이 두 해 일찍 컸으니 돈도 두 해 일찍 생겼다.
4월 셋째 주 화요일 오후, 상인회 다섯 명이 홍떡 망원역점 2층 사무실로 갔다. 영복 사장, 봉희 사장, 나, 규성, 그리고 커피 가게 사장. 회의실 탁자에 생수 다섯 병과 홍떡 쿠폰 다섯 장이 놓여 있었다. 마정철 팀장이 일어나서 한 사람씩 악수를 했다.
“오영복 사장님, 6월 말로 계약을 마치는 것으로 통지드렸습니다. 사장님께서 마흔 해 계셨으니 이전 비용을 드리겠습니다.” 마정철이 서류를 내밀었다. “법으로 드려야 하는 돈은 아닙니다. 저희가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겁니다.”
“이 돈으로 어디 가?” 영복 사장이 서류를 보지도 않았다. “망원동에 철물점 낼 데가 어딨어. 다 커피고 떡볶이고 술집인데.”
“시장 안에 작은 자리를 알아봐 드릴 수도 있습니다.”
“시장 안은 반 평이여.”
“사장님, 반 평 가게 대부분이 골목 가게보다 오래갑니다.” 마정철이 공손하게 말했다. “월세가 무섭지 않으니까요.”
나는 탁자 밑에서 주먹을 쥐었다. 마정철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틀린 데가 없어서 반박할 데도 없었다.
“팀장님, 철물점 자리에 뭐 하실 거예요?”
“홍떡 망원골목점입니다.” 마정철이 나를 보았다. “문 사장님 가게와 오십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경쟁하시게 되겠네요. 저는 기대가 됩니다.”
“저도요.”
“문 사장님은 저희 철판 조리법 제안을 아직 안 받으셨으니까요.”
*
6월 30일 토요일, 영복 사장이 철물점을 닫았다. 첫 생에서 나는 떡을 뒤집으며 리어카가 골목을 내려가는 것을 보기만 했다. 이번 생에는 가게 문을 두 시간 닫았다.
상인회 사람들이 경첩 상자, 못 상자, 연탄집게 다발을 날랐다. 규성은 무거운 상자만 골라 들었다. 봉희 사장은 리어카에 꽃 한 다발을 꽂았다. 콩자반 할머니는 반찬통 세 개를 리어카 맨 위에 얹었다. 영복 사장은 리어카 손잡이를 잡고 서서 철물점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영복철물」. 페인트가 벗겨져 「영복철」만 남은 간판이었다.
“내가 이 골목 사십 년이야.”
“알아요.”
“문 사장은 몇 년이여?”
“두 해요.” 나는 대답하고 나서 속으로 하나를 더했다. 그리고 열 해.
영복 사장이 리어카를 끌고 망원시장 쪽으로 내려갔다. 시장 안 반 평 자리였다. 리어카 바퀴가 골목 보도블록 턱을 넘을 때마다 경첩 상자가 짤랑거렸다. 골목 끝에서 영복 사장이 돌아보지 않고 손만 들었다.
*
7월 20일 금요일 아침, 가게 유리문에 하얀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우체국 내용증명이었다. 「임대차 계약 갱신 거절 통지」. 2019년 3월 8일로 계약을 마치고 갱신하지 않겠다고 적혀 있었다. 사유는 「건물 노후에 따른 안전사고 우려로 재건축 예정」. 봉투 안에 종이가 한 장 더 있었다. 「구조 안전 점검 결과 — D등급」. 맨 아래에 점검한 업체 이름이 찍혀 있었는데, 창훈 씨 인테리어 회사와 주소가 같았다.
나는 봉투를 들고 골목으로 나갔다. 명옥 여사와 창훈 씨가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봉희 사장도 같은 봉투를 들고 꽃집 앞에 나와 있었다.
“여사님, 이 건물 무너져요?”
“낡았다.” 명옥 여사가 건물 벽을 올려다보았다. “서른세 해 됐다.”
“첫 생에서…….” 나는 말을 고쳤다. “제가 알기로는 이 건물, 앞으로 여덟 해는 끄떡없어요.”
“네가 건축가니?”
창훈 씨가 끼어들었다. 오늘은 금목걸이 대신 안전모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사장님, 이거 정식 점검이에요. 기둥에 금 간 거 보셨어요? 우리가 내년에 헐고 5층으로 올릴 거야. 1층은 통으로…….”
“홍떡이요?”
창훈 씨의 입이 닫혔다. 명옥 여사가 아들을 쳐다보았다.
“창훈 씨, 법에 재건축으로 갱신을 거절하려면 처음 계약할 때 공사 계획을 알려 줬거나, 건물이 진짜로 위험하거나, 다른 법에 따라 헐어야 하거나 셋 중 하나예요. 처음 계약할 때 여사님은 재건축 얘기 안 하셨어요. 그럼 남은 건 진짜로 위험한지예요.”
“그러니까 D등급이라잖아요!”
“그 점검, 창훈 씨 회사가 했잖아요.”
“내 친구 회사야!”
“주소가 같은데요.”
봉희 사장이 봉투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잘들 한다. 엄마 건물 점검을 아들 친구가 하고, 친구 회사 주소가 아들 회사네.”
명옥 여사가 창훈 씨 손에서 안전모를 빼앗았다. 그러고는 나를 보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상인회에서 따로 점검 맡길게요. 구조기술사로요. 결과가 D면 저 3월에 나갈게요.”
“C면?”
“여사님이 이 종이를 거둬 주세요.”
명옥 여사가 대답 대신 안전모를 창훈 씨 가슴에 밀어 넣고 계단을 올라갔다. 창훈 씨가 안전모를 안은 채 나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사장님, 이 건물 엄마가 혼자 버티는 거 아니에요. 사장님 하나 때문에 일이 다 꼬여요.”
“무슨 일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
7월 24일 화요일 오후, 나는 봉희 사장과 함께 서울시청 근처 상가임대차 상담센터에 갔다. 상담 창구에 앉은 변호사는 내 내용증명과 창훈 씨의 점검 결과를 나란히 놓고 읽었다. 읽는 동안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재건축 사유는 세 가지죠. 계약할 때 계획을 알렸거나, 진짜로 위험하거나, 다른 법에 따라 헐어야 하거나요. 첫 번째는 아니고, 세 번째도 아니고요.”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다 아시는데 왜 오셨어요?”
“확인하려고요.”
“얘 국정원이에요.” 봉희 사장이 말했다.
변호사가 웃지도 않고 점검 결과의 맨 아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업체가 구조기술사 사무소가 아니네요. 인테리어 회사도 점검을 할 수는 있는데, 다툼이 나면 법원은 이걸 잘 안 믿습니다. 상인회에서 따로 정식 진단을 받으세요. 그리고 서울시에 장기안심상가라는 게 있어요. 건물주가 세입자와 상생협약을 맺고 다섯 해 넘게 월세를 덜 올리기로 약속하면 서울시가 건물 보수비를 대 주는 제도예요. 보수비가 아쉬운 건물주한테는 솔깃한 얘기죠.”
나는 장기안심상가를 몰랐다. 첫 생에서 나는 월세를 내는 것만 알았고, 건물주가 무엇을 아쉬워하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 상담센터를 나오며 봉희 사장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너도 모르는 게 있네.”
“많아요.”
“다행이다. 다 알면 무섭잖아.”
*
7월 27일 금요일 밤 열 시, 창훈 씨가 혼자 가게에 왔다. 안전모도 금목걸이도 없었다. 떡볶이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소주를 반쯤 비운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사장님, 나 사장님한테 나쁜 감정 없어요.”
“알아요.”
“홍떡 일감이 지금 우리 회사 일의 절반이에요. 홍떡이 끊으면 나 끝이에요. 직원 넷이 다 끝이고요.” 창훈 씨가 떡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본사에서 그래요. 골목 어귀 건물이 비면 일감을 더 준다고. 사장님이 조용히 나가 주시면 이전비는 본사가 넉넉히 낸대요. 권리금 대신이요.”
“얼마요?”
“오천.”
“제가 안 나가면요?”
창훈 씨가 소주잔을 돌렸다. 돌리기만 하고 마시지 않았다.
“엄마가 힘들어져요.”
“여사님이 왜요?”
“그건…… 엄마한테 물어보세요. 엄마가 말 안 하겠지만.” 창훈 씨가 이천오백 원과 소주 값을 계산대에 놓았다. 오늘은 엄마 앞으로 달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장님 떡볶이는 맛있어요. 그게 문제예요.”
창훈 씨가 나간 뒤 규성이 튀김기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사장님, 저 다 들었어요.”
“응.”
“사장님은 이번에도 아시죠? 여사님이 왜 힘들어지는지.”
“이번엔 몰라.”
규성이 튀김 집게를 내려놓았다. “사장님이 모른다고 하시니까 처음으로 덜 무서운데, 대신 다른 게 무서워요.”
*
8월 셋째 주, 상인회가 돈을 모았다. 영복 사장이 시장 안 반 평 철물점에서 이십만 원을 보냈다. 「골목 일은 골목에서 한다」는 문자가 같이 왔다. 구조기술사는 이틀 동안 기둥과 벽을 두드리고 금 간 자리에 자를 댔다.
9월 7일, 결과가 나왔다. 「C등급 — 보수 필요, 안전사고 우려 없음」. 나는 결과지를 들고 3층 계단을 올라갔다. 현관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명옥 여사는 식탁에서 요양병원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수증이 식탁 한 귀퉁이를 다 덮었다.
“C래요.”
명옥 여사가 결과지를 받아서 한 번 보고 영수증 더미 위에 얹었다.
“창훈이가 일을 저질러 놓고 나한테 도장을 받아 간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명옥 여사가 영수증을 한 장 집어 들었다. “내용증명은 거둔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 하지 마라. 네가 이긴 거지 내가 준 게 아니다.”
*
10월 16일 화요일 밤 열한 시, 나는 셔터를 내리고 건물 계단에 앉았다. 오늘부터 개정된 법이 시행된다는 뉴스가 낮에 나왔다. 갱신요구권 십 년. 다음 3월에 계약을 갱신하면 나는 2026년 3월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첫 생과 같은 날짜였다. 열 해가 법으로 같아졌다.
계단 위에서 슬리퍼 소리가 내려왔다. 명옥 여사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 옆을 지나가다가 멈췄다.
“뉴스 봤다. 너 말대로 십 년 됐더라.”
“네.”
“5년 뒤에 내보내려 했는데 십 년이네.” 명옥 여사가 쓰레기봉투를 계단에 내려놓았다. “너는 십 년 동안 월세를 5퍼센트씩만 올려 내겠구나.”
“법대로요.”
“그래, 법대로.” 명옥 여사가 숨을 길게 뱉었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십 년 뒤에 보자.”
명옥 여사가 쓰레기봉투를 다시 들고 골목으로 내려갔다. 골목 오십 미터 아래, 철물점 자리에서 공사 가림막에 「홍떡 망원골목점 · 11월 오픈」 글씨가 조명을 받고 있었다. 나는 계단에 앉은 채 손바닥을 펴 보았다. 엄지 아래 굳은살이 첫 생의 두께를 거의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