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725자)
상인회
회귀한 떡볶이집 사장 · 남이랑
2017년 3월 9일 목요일 아침 아홉 시, 명옥 여사가 새 계약서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개업한 지 꼭 한 해였다. 털신 대신 운동화를 신었고, 운동화 앞코에 요양병원 주차장의 흙이 묻어 있었다. 새벽에 병원에 다녀온 길이었다.
계약서의 월세 칸에 「163만 5천 원」이 적혀 있었다. 150만 원에서 9퍼센트를 올린 숫자였다. 나는 계산대 서랍에서 계산기를 꺼내 명옥 여사 앞에서 두드렸다. 150 곱하기 1.09. 화면에 163.5가 떴다.
“맞네요.”
나는 도장을 찍었다. 명옥 여사가 계약서를 받아 들고 내 얼굴을 한참 보았다.
“따지지도 않니?”
“9퍼센트까지는 법이에요. 법대로 올리시면 따질 게 없어요.”
“작년엔 특약 하나로 그렇게 대들더니.”
“작년 특약은 법 밖이었고요.”
명옥 여사가 계약서를 반으로 접다가 멈췄다. 계산기를 들고 있는 내 손을 보았다. 한 해 동안 국자를 쥔 손바닥에 굳은살이 다시 박이기 시작했다. 엄지 아래 노란 자리였다.
“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밥을 떠먹여 주면 반은 흘린다.” 명옥 여사가 계약서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내 이름은 안 흘리고 부르더라.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부르던 이름을.”
명옥 여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떡볶이 한 그릇을 담아 뒤를 따라가려다 그만두었다. 떡볶이는 애들이나 먹는 거라는 말을 아침부터 듣고 싶지 않았다.
*
같은 날 오후, 봉희 사장이 꽃집 계약서를 들고 와서 내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봉희꽃방도 9퍼센트였다. 봉희 사장은 꽃가위를 든 채 숫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잘들 한다. 너는 따지지도 않고 찍었다며?”
“법대로 하셨어요.”
“법대로 하면 다 괜찮니? 장미 한 단 값은 그대로인데.”
저녁에 오영복 사장이 철물점 셔터를 반만 내리고 가게로 왔다.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계약서가 아니었다. 「임대차 계약 만료 및 재계약 조건 통지」. 영복 사장 건물의 주인이 보낸 것이었다. 월세를 두 배로 올리겠다고 적혀 있었다.
“두 배요?”
“문 사장, 이거 법에 9프로라며. 9프로 넘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여?”
나는 종이를 다시 읽었다. 영복 사장은 이 골목에서 마흔 해 철물점을 했다. 계약은 마흔 번 넘게 갱신했다.
“사장님, 갱신요구권은 처음 계약한 날부터 5년까지예요. 5년이 지나면 건물주가 새로 계약하자고 할 수 있어요. 새 계약이면 9퍼센트 상한도 못 막아 줘요.”
“그럼 마흔 해 한 사람은?”
“법이 제일 못 지켜 줘요.”
영복 사장이 종이를 접었다. 접은 종이를 다시 펴고, 또 접었다. 철물점 셔터 밑으로 경첩 상자 모서리가 보였다.
“오래 버티면 버틸수록 법 밖으로 밀려난다 이거네.”
“네.”
“그런 법이 어딨어.”
“여기요.”
*
4월 둘째 주 화요일 밤 아홉 시 반, 철물점 안에 플라스틱 의자 일곱 개가 놓였다. 못 상자와 경첩 상자 사이에 사람이 앉았다. 영복 사장, 봉희 사장, 나, 규성, 골목 세탁소 부부, 망원시장 반찬가게 콩자반 할머니, 그리고 작년 겨울 골목 중간에 커피 가게를 낸 서른 살 사장. 커피 가게 사장은 의자가 모자라 사다리에 걸터앉았다.
“그러니까 상인회를 하자 이거지.” 영복 사장이 헛기침을 했다. “내가 이 골목 사십 년이야. 사십 년 동안 모임이라고는 계모임 하나 했는데, 곗돈 들고 도망간 놈이 있어서…….”
“사장님, 그 얘기는 다음에요.” 봉희 사장이 잘랐다. “이름부터 정해요.”
“시장뒷길 상인회.”
“망리단길 상인회요.” 커피 가게 사장이 손을 들었다. “검색이 돼야죠.”
“망 자 붙이지 말랬지!”
규성이 노트에 회의 내용을 적다가 연필을 놓았다. “사장님들, 이름 정하는 데만 이십 분 지났어요.”
결국 이름은 「망원 골목 상인회」로 했다. 회장은 영복 사장, 총무는 봉희 사장이 맡았다. 나는 맡은 것이 없었는데 다들 나를 보았다.
“문 사장이 말 좀 해 봐. 법 잘 알잖어.”
“상인회가 할 일은 세 가지예요.” 나는 손가락을 하나만 폈다. “먼저 우리 계약서를 다 모아요. 누가 몇 년째인지, 갱신요구권이 언제 끝나는지. 끝나는 사람부터 같이 건물주 만나러 가요.”
“나머지 두 개는?”
“나머지는 다음 회의 때요. 다음 회의는 줌으로 해요.”
“줌이 뭐여?”
철물점 안이 조용해졌다. 규성이 노트를 끌어안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2017년 4월에 줌을 아는 사람은 이 골목에 없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꺼내서 얼굴 보고 하는 거요.”
“그걸 왜 해, 철물점에서 하면 되지.”
“네, 철물점에서 해요.”
철물점 유리문이 드르륵 열렸다. 손전등 불빛이 못 상자 위를 한 바퀴 훑고 내 얼굴에서 멈췄다. 명옥 여사였다. 누빔 조끼에 털모자를 쓰고, 한 손에 손전등, 한 손에 요양병원 이름이 찍힌 종이 가방을 들었다.
“밤에 철물점에 불이 켜져 있길래 도둑인 줄 알았다.” 명옥 여사가 플라스틱 의자 일곱 개를 차례로 보았다. “세입자들이 모여서 뭘 하니?”
“상인회요.” 영복 사장이 헛기침을 했다. “여사님도 앉으실라우?”
“건물주 욕하는 모임에 건물주가 왜 앉아.”
“욕하는 모임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건물주님들이랑 같이 얘기하려고 모이는 거예요. 따로 한 분씩 만나면 저희가 다 져요.”
“같이 만나면 너희가 이기니?”
“덜 져요.”
명옥 여사가 손전등을 껐다. 철물점 형광등 아래에서 명옥 여사의 얼굴이 하얗게 떴다. 병원에서 바로 온 얼굴이었다.
“너희가 뭉치면 나도 뭉친다. 이 동네 건물 가진 사람들 다 나랑 같은 교회 다니고 같은 계 붓는다.” 명옥 여사가 영복 사장 손에 들린 통지서를 보았다. “영복이 건물 주인은 강남 사는 사람이다. 나한테 와서 울지 마라. 나는 남의 건물 일엔 손 못 쓴다.”
“누가 울었다고 그러셔.”
“영복이 철물점 없어지면 나는 못 하나 박을 데가 없다. 그게 다다.”
명옥 여사가 문을 닫고 나갔다. 손전등이 다시 켜졌고, 불빛이 골목을 따라 우리 건물 계단으로 올라갔다. 봉희 사장이 회의 노트를 규성에게서 빼앗아 맨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건물주도 뭉친다고 함」.
“잘들 한다.” 봉희 사장이 노트를 덮었다. “첫 회의에 적이 생겼네.”
“원래 있었어요.”
회의가 끝나고 골목으로 나오자 규성이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사장님, 아까 줌이요.”
“잊어.”
“사장님이 모르는 말을 하실 때마다 그 말이 몇 년 뒤에 생기는 거죠? 망리단길도 그랬고 릴스도 그랬고.”
“릴스는 아직 안 생겼어.”
“그러니까 무섭다고요.”
*
8월, 망원역 앞 큰길에 홍떡 망원역점이 문을 열었다. 개업 날 홍떡 앞에는 풍선 기둥이 올라갔고, 떡볶이 한 접시를 천 원에 팔았다. 우리 가게 줄이 개업 날 하루 반으로 줄었다. 다음 날 반이 돌아왔고, 일주일 뒤에 다 돌아왔다. 천 원 행사는 사흘이었다.
마정철 팀장은 개업 날 우리 골목에 들러 상인회 사람들에게 홍떡 할인 쿠폰을 돌렸다. 영복 사장은 쿠폰을 받아 철물점 못 상자에 넣었고, 봉희 사장은 쿠폰 뒷면에 꽃 주문을 받아 적었다.
*
12월 8일 금요일 밤 열한 시 사십 분, 셔터를 다 내린 가게에서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규성이 옆에서 숨을 참았다.
「비트코인 20,150,000원」
골목 세탁소 아저씨가 낮에 가게로 뛰어 들어와 이천만 원이 넘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학원 원장도, 커피 가게 사장도, 콩자반 할머니의 손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첫 생에서 들었던 저녁들이 이번 생에 그대로 왔다. 내가 손대지 않은 일이었다.
첫 생의 기억으로는 1월 초가 꼭대기였다. 한 달을 더 기다리면 조금 더 받는다. 다만 꼭대기 날짜를 하루라도 틀리게 기억하고 있다면, 1월 중순부터는 반 토막이었다.
“사장님, 파세요.” 규성이 속삭였다. “제발 파세요. 저 이거 볼 때마다 위장이 아파요.”
“규성 씨, 이거 다단계 아니었지?”
“네, 다단계 아니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파세요.”
나는 매도 단추를 눌렀다. 화면에 「체결 12.6 BTC」가 떴고, 수수료를 떼고 나니 통장에 들어올 돈이 이억 오천만 원 남짓이었다. 육백만 원을 넣고 스무 달이 지났다.
규성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장님, 이걸로 뭐 하실 거예요?”
“건물 사.”
“이억 오천으로요?”
“나머지는 대출.”
“사장님 무서워요.” 규성이 일어나 앞치마를 벗었다가 다시 입었다. “저 내일 몇 시에 와요?”
“내일 쉬어.”
“처음으로 쉬라고 하셔서 더 무서워요.”
*
12월 9일 토요일 오전 열 시, 나는 통장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3층 계단을 올라갔다. 3층 현관 앞에 배추 절인 고무 대야 두 개가 나와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명옥 여사가 고무장갑을 낀 채 문을 열었다. 부엌에서 젓갈 냄새와 고춧가루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월세는 다음 주다.”
“월세 얘기 아니에요.”
부엌 창으로 골목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철물점 지붕, 봉희꽃방 차양, 커피 가게 간판, 그리고 망원시장 뒷길 끝의 큰길. 첫 생의 열 해와 이번 생의 두 해를 이 건물 1층에서 보냈는데, 3층 부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명옥 여사는 식탁에 앉으라는 말도 없이 김칫소를 버무렸다. 고춧가루 묻은 고무장갑이 내 쪽으로 오지 않게 팔꿈치를 들고 있었다.
나는 통장을 식탁에 펼쳐 놓았다.
“이 건물 저한테 파세요.”
명옥 여사의 손이 김칫소 위에서 멈췄다. 통장 숫자를 보았다. 한 번 보고, 고무장갑을 벗고, 안경을 쓰고 다시 보았다.
“너 이 돈 어디서 났니?”
“다단계요.”
“뭐?”
“인터넷 돈이요. 작년 3월에 육백만 원 넣었어요.”
명옥 여사가 안경을 벗었다. “나머지는?”
“대출 받을게요. 여사님은 3층에 그대로 사시고요. 평생 사셔도 돼요. 월세는 제가 안 받을게요. 할아버지 병원비 걱정 안 하시게 매달 드릴 것도 정하고요.”
“세입자한테는 안 판다.”
명옥 여사가 통장을 손등으로 밀었다. 통장이 식탁 위를 미끄러져 내 앞에서 멈췄다.
“왜요? 홍떡이 더 쳐준다고 해서요?”
“세입자가 건물주 되면 나는 뭐가 되니?” 명옥 여사가 고무장갑을 다시 꼈다. “1층에서 떡볶이 볶던 애가 내 건물 사서 나한테 3층에 그대로 살라고 하면, 내가 고맙다고 하리? 내가 내 집에서 네 눈치를 보면서 살아?”
“눈치 보실 일 없게 할게요.”
“네가 안 하겠다고 내가 안 보니?” 명옥 여사가 배추 한 포기를 집어 들었다. 배춧잎 사이사이에 소를 채우는 손이 빨랐다. “그리고 이 건물은 팔고 싶어도 지금은 못 판다.”
“왜요?”
명옥 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배춧잎 사이에 소를 넣고, 넣고, 또 넣었다.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창훈 씨가 금목걸이를 흔들며 들어왔다. 손에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다.
“엄마! 나 홍떡 망원점 인테리어 따냈어! 다음 달엔 상암점도 준대!” 창훈 씨가 케이크 상자를 김치 대야 옆에 놓다가 나를 보았다. “어, 1층 사장님. 여기 웬일이세요?”
“건물 사러 왔어요.”
“이 건물?” 창훈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님, 이 건물 이제 우리 거 아니야. 반은 홍떡…….”
“창훈아.”
명옥 여사의 목소리가 낮았다. 창훈 씨의 입이 그대로 닫혔다. 창훈 씨가 케이크 상자를 내려다보며 말을 바꾸었다.
“아니, 그러니까 홍떡이 돈도 빌려줬다고. 공사 대금 미리. 엄마가 보증 서 줘서 이자도 싸게.”
부엌 창밖으로 골목 끝 큰길이 보였다. 큰길 건너 홍떡 망원역점의 빨간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명옥 여사가 배추를 대야에 내려놓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내 통장을 집었다. 고춧가루가 통장 표지에 빨갛게 묻었다. 명옥 여사는 통장을 내 앞치마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내려가라. 월세는 다음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