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33자)

같은 주소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5월의 휘담 리버파크 단톡방은 아침마다 폭죽으로 열렸다⁠. 「⁠105동 1101호 웃돈 1억 3천 실거래 떴습니다⁠」「⁠우리 단지 동탄 신축 대장 확정⁠」「⁠휘담디앤씨 오늘도 빨간불 🔥⁠」 이모티콘은 하루 세 개라는 공지는 3월에 슬그머니 내려갔다⁠. 형우는 출근 버스에서 단톡방을 내리다가 새 이름 하나를 보았다⁠. 「⁠1503호 봉치윤입니다⁠! 저희 3월에 들어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 서흔이 바로 답을 달았다⁠. 「⁠환영합니다 1503호님⁠~ 협의회 에코백 받아 가세요⁠」

형우의 시계 위 숫자는 두 달째 검은색이었다⁠. 플러스 삼천팔백만 원⁠. 아침에 눈을 뜨면 형우는 숫자부터 보았고⁠, 숫자가 검은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매번 치윤의 손바닥을 떠올렸다⁠. 택배 상자 삼백 개를 드는 손에서 뜬 사억 칠천만 원⁠.

버스 창밖 전광판에 뉴스가 흘렀다⁠. 「⁠미 연준 기준금리 0⁠.5%p 인상⁠… 22년 만의 최대 폭⁠」 아래로 다른 자막이 따라왔다⁠. 「⁠새 정부 출범 앞두고 대출 규제 완화 기대⁠」 버스 안의 누군가가 전화에 대고 말했다⁠. 이제 대출 풀린대⁠, 지금 사야 돼⁠.

*

지점 셔터가 내려가고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한 뒤⁠, 형우는 서류 보관실의 형광등을 켰다⁠. 휘담 리버파크 승계 서류는 작년 가을 열한 건에서 스물세 건으로 늘어 있었다⁠. 형우는 웃돈이 일억을 넘긴 거래만 골라 책상 위에 펼쳤다⁠. 열네 건이었다⁠.

처음에는 연락처를 보았다⁠. 지난 10월에 본 번호가 다섯 건에 다시 나왔다⁠. 다음에는 직장을 보았다⁠. 단비디자인⁠, 단비인테리어⁠, 단비모델하우스관리⁠. 이름이 다른 회사가 넷이었는데⁠, 사업자 주소가 모두 상담실 맞은편 상가 2층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소를 보았다⁠. 열네 건 가운데 열한 건이 병점역 뒤 원룸 건물 하나였다⁠. 호수만 달랐다⁠. 201호⁠, 202호⁠, 305호⁠. 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동탄 신축 분양권을 웃돈 일억씩 얹어 한 채씩 사 갔다⁠.

서류 맨 아래 승인 도장을 보았다⁠. 열네 건 모두 지점장 함덕규의 도장이었다⁠. 소득 증빙이 모자라는 서류에는 「⁠지점장 예외 승인⁠」 스탬프가 따로 찍혀 있었다⁠. 날짜를 맞춰 보니 대부분 형우가 휴가를 갔거나 본부 연수를 간 주였다⁠.

형우는 서류를 덮고 휴대전화로 실거래가 공개 앱을 열었다⁠. 나라에서 신고된 거래 가격을 모아 보여 주는 앱이었다⁠. 102동 1203호⁠, 웃돈 일억⁠. 105동 1101호⁠, 일억 삼천⁠. 형우는 손가락을 멈췄다⁠.

「⁠102동 1503호 · 2022⁠.03⁠.05 · 분양권 · 웃돈 1억 5천⁠」

일억 오천이었다⁠. 3월 5일 부동산 탁자에서 하솜이 보낸 돈은 일억 이천이었다⁠. 형우는 해린의 휴대전화에 뜬 입금 문자를 자기 눈으로 보았다⁠. 세 번 다시 읽었다⁠. 화면의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

이튿날 오후 여섯 시⁠, 지점장실 카펫 위 퍼팅 매트에서 공이 컵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덕규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퍼터를 들어 올리다가 문간의 형우를 보았다⁠. 형우가 들고 온 서류 묶음을 보고 덕규는 퍼터를 내려놓지 않았다⁠.

“⁠반 과장⁠. 퇴근 안 해⁠?⁠”

“⁠병점 원룸 건물 하나에서 열한 명이 우리 단지 분양권을 웃돈 일억씩 주고 샀습니다⁠. 전부 지점장님 예외 승인입니다⁠.⁠”

덕규는 공을 하나 더 매트 위에 놓았다⁠. 퍼터 머리로 공을 툭툭 굴려 자리를 잡았다⁠.

“⁠예외 승인은 지점장 권한이야⁠. 소득 증빙이 좀 모자라도 담보가 좋으면 내줄 수 있어⁠. 휘담 리버파크 분양권이 담보로 나쁘냐⁠? 동탄 대장 단지인데⁠.⁠”

“⁠그 담보 가격을 그 사람들이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비싸게 사서요⁠.⁠”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덕규가 공을 쳤다⁠. 공이 컵 가장자리를 돌다가 들어갔다⁠. 덕규는 공을 꺼내지 않고 형우를 보았다⁠. “⁠반 과장⁠, 지난 11월에 웨딩홀에서 떠든 거 본부에서 나한테 전화 왔었다⁠. 고객 서류를 공개 석상에서 말했다고⁠. 내가 막았어⁠. 우리 지점 통폐합 명단에서 빠진 거 알지⁠? 이 단지 대출 덕분이야⁠. 직원 여섯 명이 내년에도 이 건물로 출근해⁠. 상칠이도⁠, 너도⁠.⁠”

“⁠그 여섯 명 밥줄이 병점 원룸 열한 개에서 나옵니까⁠?⁠”

“⁠이천 가구에서 나와⁠.⁠” 덕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그리고 반 과장⁠, 너는 빼고 말해라⁠. 네 와이프 분양권⁠, 웃돈 받고 팔았지⁠? 그 승계 대출 누가 내줬어⁠? 내 지점이야⁠. 네 창구야⁠. 너도 이 판에서 먹었어⁠. 일억 이천인지 일억 오천인지⁠.⁠”

형우의 입이 닫혔다⁠. 덕규가 퍼터를 어깨에 걸쳤다⁠. 다시 너털웃음이 돌아왔다⁠.

“⁠다음 주 내내 비 온다더라⁠. 반 과장⁠, 너 서류 보관실 출입 기록 남는 거 알지⁠? 고객 서류를 업무 없이 열람하면 그게 정보 유출이야⁠. 네가 오늘 들고 온 거⁠, 도로 갖다 놔⁠. 나는 오늘 너 안 본 거다⁠.⁠”

형우는 서류 묶음을 쥔 채 지점장실을 나왔다⁠. 복도 끝 자리에서 상칠이 아직 퇴근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엑셀 옷을 입힌 주식 창이 파랗게 떠 있었다⁠. 벼리셀이 한 주 사이 이십 퍼센트 빠져 있었다⁠. 상칠이 의자를 돌려 형우를 보았다⁠. 지점장실 문틈으로 다시 공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형⁠. 다 들렸어⁠.⁠” 상칠이 목소리를 낮췄다⁠. “⁠나 그냥 하나만 말할게⁠. 지점장님 수요일마다 일곱 시 티업이잖아⁠. 구 대표님이랑⁠. 그 골프장 그린피가 한 사람 앞에 이십만 원이 넘어⁠. 지점장님 법인카드 내역에 그거 한 번도 안 찍혀⁠. 내가 경비 정산 하잖아⁠.⁠”

“⁠그럼 누가 내⁠.⁠”

“⁠몰라⁠. 근데 지난 설에 지점장님 책상 서랍에 백화점 상품권 봉투가 두꺼운 게 있었어⁠. 단비하우징 스티커 붙은 거⁠.⁠” 상칠이 모니터의 파란 숫자를 보았다⁠. “⁠형⁠, 나 이런 거 말하는 사람 아니야⁠. 나 겁 많아⁠. 벼리셀도 십 퍼센트 먹고 판 사람이야⁠. 근데 형이 무대에서 연락처 얘기할 때⁠, 나 객석에 있었어⁠. 다들 웃는데 나는 못 웃었어⁠.⁠”

“⁠상칠아⁠, 이거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지금처럼 말해 줄 수 있어⁠?⁠”

상칠이 대답 대신 엑셀 옷 입힌 주식 창을 닫았다⁠. 바탕 화면에 고양이 사진이 떠 있었다⁠. “⁠형⁠, 그건 그때 가서⁠. 오늘은 나 집에 갈래⁠.⁠” 상칠이 가방을 메고 나가다가 돌아보았다⁠. “⁠형⁠, 우산 챙겨⁠. 지점장님이 비 온다면 진짜 와⁠.⁠”

형우는 서류 보관실로 가서 묶음을 원래 자리에 꽂았다⁠. 꽂기 전에⁠, 휴대전화로 열네 장의 승인 도장을 한 장씩 사진 찍었다⁠.

*

상담실 입구의 현수막이 바뀌어 있었다⁠. 「⁠휘담 리버파크 2차 사업 확정 — 1차 계약자 우선 상담⁠」 2027년에 형우가 쓰러질 견본주택이 들어설 자리였다⁠. 지금은 잡풀 위에 측량 말뚝만 박혀 있었다⁠.

경렬은 흰 탁자에 혼자 앉아 2차 조감도를 넘기고 있었다⁠. 형우가 맞은편에 앉자 경렬이 조감도를 덮고 사탕 그릇을 밀었다⁠. 큰 유리창 너머로 1차 공사장의 크레인이 보였다⁠. 102동은 지붕까지 올라가 있었다⁠.

상담실 안은 평일 오후인데도 붐볐다⁠. 흰 탁자마다 젊은 부부가 한 쌍씩 앉아 2차 조감도를 넘기고 있었다⁠. 형우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서흔이었다⁠. 「⁠형부 휘담디앤씨 오늘 2차 확정 뉴스로 상한가 근처예요 ㅎㅎ⁠」「⁠형부 말 안 듣고 안 판 거 잘했다⁠」「⁠에코백 백 개 잊지 마요⁠」 형우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처음 살았던 2023년 여름⁠, 서흔은 같은 단톡방에 「⁠협의회장 사임합니다⁠」라는 짧은 글을 올리고 방을 나갔다⁠. 사임 글에는 아무도 이모티콘을 달지 않았다⁠.

“⁠반 과장님⁠. 2차 상담 오셨어요⁠? 1차 계약자 우선인데⁠, 사모님이 파셔서 이제 우선은 아니시고⁠.⁠”

형우는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놓고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병점 원룸 건물의 주소가 적힌 승계 서류였다⁠. 이름과 번호는 손가락으로 가렸다⁠.

“⁠병점에 이 건물 하나에서 열한 명이 1차 분양권을 웃돈 일억씩 주고 샀습니다⁠. 직장은 단비디자인⁠, 단비인테리어⁠. 대표님 회사 이름 붙은 데들이고요⁠.⁠”

경렬은 사진을 오래 보지 않았다⁠. 사탕 껍질을 까는 손이 느려지지도 않았다⁠.

“⁠직원들 복지예요⁠. 우리 직원들도 집 사야죠⁠. 자기가 판 단지가 좋으면 자기도 사고 싶은 거고⁠. 원룸은 회사 숙소고요⁠.⁠” 경렬이 사탕을 입에 넣었다⁠. “⁠과장님⁠, 그거 갖고 어디 가시려고요⁠? 직원이 자기 회사 단지 사는 게 죄예요⁠?⁠”

“⁠직원들끼리 웃돈을 올려 가며 사고팔고⁠, 그 가격이 다음 사람의 바닥이 됩니다⁠. 1203호 일억⁠. 그다음 1503호⁠.⁠”

“⁠1503호⁠.⁠” 경렬이 호수를 입안에서 굴렸다⁠. “⁠사모님 거요⁠.⁠”

경렬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부동산 거래 신고서의 사본이었다⁠. 매도인 칸에 맹해린의 이름과 서명이 있었다⁠. 거래 금액 칸의 숫자가 형우 눈에 먼저 들어왔다⁠. 웃돈 일억 오천⁠.

“⁠사모님 거래도 우리가 만든 웃돈 중 하나예요⁠.⁠” 경렬이 말했다⁠. 목소리가 상담할 때처럼 부드러웠다⁠. “⁠실제로는 일억 이천 받으셨죠⁠. 신고는 일억 오천으로 하셨고⁠. 그래야 다음 분이 일억 오천 위에서 시작하거든요⁠. 사모님이 그 자리에서 이해하셨어요⁠. 수고비 오백도 받으셨고요⁠. 계약 끝나고 실장이 따로 서명 받은 서류⁠, 기억나세요⁠? 과장님은 사탕 드시고 계셨고⁠.⁠”

형우는 신고서 위 해린의 서명을 보았다⁠. 해린이 학교 돌봄교실 출석부에 매일 쓰는 서명이었다⁠. 끝을 위로 짧게 튕기는 버릇까지 같았다⁠.

“⁠과장님네 일억 이천⁠, 누가 만들어 드렸는지 아세요⁠?⁠” 경렬이 신고서를 다시 접었다⁠. “⁠1203호 일억이 없었으면⁠, 1503호에 일억 이천은 안 붙었어요⁠. 과장님은 과장님이 미워하는 숫자 덕분에 이억 빚을 면하신 거예요⁠. 시계 자주 보시던데⁠, 요즘은 표정이 좋으시더라⁠.⁠”

형우는 왼손목을 탁자 밑으로 내렸다⁠. 숫자가 보일 리 없었다⁠. 경렬은 형우의 손목을 보지 않고 형우의 얼굴만 보았다⁠.

“⁠제가 이 일 이십 년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어요⁠. 사람들은 집을 사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람을 사요⁠. 자기 뒤에 더 비싸게 사 줄 사람이 있다고 믿으면 사요⁠. 저는 그 다음 사람을 보여 드리는 거고⁠.⁠” 경렬이 신고서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과장님도 다음 사람한테 파셨잖아요⁠. 택배 하시는 신혼부부⁠. 그분들도 언젠가 다음 사람한테 파실 거고⁠. 제가 없으면 그 줄이 끊겨요⁠. 줄이 끊기면 다 같이 떨어져요⁠. 과장님이 처음 살았던 그 시절처럼⁠.⁠”

형우가 고개를 들었다⁠. 경렬은 웃고 있었다⁠. 처음 살았던 시절이라는 말을 경렬이 어떤 뜻으로 했는지 형우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신고서는 사모님 거라 사모님께 드려야 하는데⁠.⁠” 경렬이 일어났다⁠. “⁠제가 직접 드리기는 좀 그렇고⁠. 과장님이 집에 가서 여쭤보세요⁠. 오백 어디 쓰셨는지⁠.⁠”

*

빌라 계단을 올라가며 형우는 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린은 3층 현관 안에서 받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휴대전화로 목소리가 왔다⁠.

“⁠어디야⁠? 문 앞이야⁠? 발소리 나는데⁠.⁠”

“⁠단비부동산에서 오백 받았어⁠?⁠”

문 너머가 조용해졌다⁠. 새결의 방에서 동요가 작게 흘러나오다가 멈췄다⁠. 해린이 새결의 스피커를 끈 것이었다⁠. 한참 뒤에 해린의 목소리가 휴대전화와 문틈으로 동시에 들렸다⁠.

“⁠응⁠. 받았어⁠.⁠” 해린이 숨을 한 번 골랐다⁠. “⁠다들 그렇게 한대⁠. 실장님이 그러더라⁠. 신고 가격 높게 해 주는 게 다음 사람한테도 좋은 거라고⁠. 대출 감정가가 올라가니까⁠. 오백이면 새결이 영어 학원 일 년이야⁠. 당신 벼리셀 이십 퍼센트 빠진 거⁠, 그거 메우고도 남아⁠.⁠”

형우는 현관문에 이마를 댔다⁠. 철문이 서늘했다⁠. 문 안쪽에서 해린이 같은 자리에 손을 대는 소리가 났다⁠. 문은 둘 다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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