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619자)

매수인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3월 2일 아침 아홉 시⁠, 학교 운동장의 흙이 아직 얼어 있었다⁠. 신입생들은 반 팻말 앞에 한 줄로 서서 노란 이름표를 가슴에 달았다⁠. 새결은 1학년 3반 팻말 앞 다섯 번째였고⁠, 앞의 아이가 우는 바람에 따라 울까 말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형우는 학부모들 틈에서 휴대전화를 들어 새결의 뒷모습을 찍었다⁠. 처음 살았던 2022년 3월 2일⁠, 형우는 지점에서 집단대출 서류를 넘기다가 해린이 보낸 사진으로 이 아침을 보았다⁠. 오늘은 반차를 냈다⁠.

해린이 형우의 팔을 잡았다⁠. “⁠쟤 지금 울려고 해⁠. 손 흔들어 줘⁠.⁠”

형우가 손을 흔들자 새결이 이쪽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울지 않았다⁠. 대신 옆에 선 아이에게 무언가 말을 걸었다⁠. 둘이 같이 웃었다⁠.

네 번째 집은 학교 뒤 빌라 3층의 반전세였다⁠. 전세 보증금으로는 이 학구 안에 방 두 개짜리를 구할 수 없었다⁠. 해린은 지난 1월 한 달 동안 학교 반경 오백 미터 안의 매물을 다 돌았고⁠, 보증금을 줄이고 월세 육십을 얹는 집을 찾아냈다⁠. 이삿날 새결이 물었다⁠. 이번 집은 몇 밤 자⁠? 해린은 대답 대신 새결의 책상을 창가에 놓았다⁠.

운동장 스피커에서 교장의 인사말이 끝날 무렵 해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린은 화면을 보고 운동장 가장자리로 몇 걸음 나갔다⁠. 형우는 해린의 입 모양을 보았다⁠. 네⁠, 네⁠, 토요일이요⁠. 해린이 돌아왔을 때 얼굴이 밝았다⁠.

“⁠단비부동산⁠. 매수인 나왔어⁠. 신혼부부래⁠. 일억 이천 그대로⁠.⁠” 해린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토요일 오후 두 시 계약⁠. 중도금 대출 승계는 당신 지점에서 한대⁠. 당신이 원하던 대로 얼굴 보고 팔게 됐네⁠.⁠”

운동장 담장 밖 상가 건물에 대통령 선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선거가 일주일 남았다⁠. 현수막마다 집이라는 글자가 들어갔다⁠. 형우는 새결의 반 줄이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새결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

목요일 오후 세 시 반⁠, 지점 셔터가 반쯤 내려간 뒤에 예약 손님이 들어왔다⁠. 형우의 창구 앞 의자에 젊은 부부가 앉았다⁠. 남편은 택배 회사 조끼를 입고 있었고⁠, 조끼 가슴 주머니에 볼펜 세 자루와 송장 묶음이 꽂혀 있었다⁠. 아내는 병원 이름이 수놓인 남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밤 근무를 마치고 바로 온 얼굴이었다⁠.

“⁠봉치윤입니다⁠. 이쪽은 와이프 길하솜이고요⁠. 분양권 중도금 대출 승계 상담 예약했는데요⁠. 휘담 리버파크 102동 1503호⁠. 맞죠⁠?⁠”

형우는 서류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볕에 그을린 이마⁠, 짧게 깎은 머리⁠, 말끝마다 올라가는 꼬리⁠. 여섯 해 뒤 2차 상담실 흰 탁자 앞에서⁠, 남자는 같은 회사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내는 계약서 위에 도장을 쥐고 있었고⁠, 형우가 계약서를 덮자 남편이 반쯤 일어나며 아저씨 뭐 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형우가 바닥에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었다⁠.

“⁠고객님⁠.⁠” 형우의 목소리가 조금 쉬었다⁠. “⁠혹시 다른 단지도 보셨습니까⁠?⁠”

“⁠많이 봤죠⁠. 저희 작년에 전세 사기 당할 뻔했어요⁠. 계약하기 전날 등기부 떼 봤더니 집주인이 세금을 몇억 밀렸더라고요⁠. 그다음부터 와이프가 무조건 내 집이래요⁠.⁠” 치윤이 웃었다⁠. 웃을 때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장인어른이 퇴직금 보태 주셨어요⁠. 저희 둘이 모은 거랑 신용대출이랑 합쳐서요⁠. 일억 이천 웃돈이 좀 세긴 한데⁠, 1203호가 일억이니까 15층이면 그 정도 하는 거라고 부동산 실장님이⁠. 맞죠⁠?⁠”

“⁠1203호요⁠.⁠” 형우가 화면의 서류를 넘겼다⁠. 1203호 매수인의 승계 서류는 지난해 12월에 올라와 있었다⁠. 연락처 칸에 적힌 번호가 지난 10월의 두 서류와 같았다⁠. 형우는 화면을 껐다⁠.

하솜이 의자에 기대어 졸다가 남편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치윤이 목소리를 낮췄다⁠. “⁠밤 근무 끝나고 와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형우의 모니터 구석에서 회사 메신저가 깜박였다⁠. 옆 창구의 상칠이었다⁠. 「⁠형 저 부부 혹시 형네 1503 사는 거야⁠?⁠?⁠」「⁠형 이건 좀⁠… 드라마인데⁠」「⁠지점장님한테 말해⁠? 이해 상충 아니야⁠?⁠」 형우가 고개를 돌리자 상칠이 모니터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객님⁠, 저희 은행 직원으로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형우는 계산기를 꺼내 치윤 앞으로 돌려놓았다⁠. “⁠입주가 내년 봄입니다⁠. 그때 잔금 대출 금리는 지금의 두 배로 보셔야 합니다⁠. 두 배면 두 분 한 달 이자가 이 정도 나옵니다⁠.⁠”

치윤이 계산기 숫자를 들여다보았다⁠. 하솜이 눈을 떴다⁠. 두 사람이 숫자를 함께 보았다⁠.

“⁠이 정도면⁠.⁠” 하솜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나이트를 한 달에 여덟 번 하면 돼요⁠. 지금 여섯 번이니까 두 번만 더⁠.⁠”

“⁠그리고 시세가⁠.⁠” 형우가 말을 이었다⁠. “⁠입주하고 나서 분양가 밑으로 내려갈 수도⁠…⁠…⁠”

“⁠에이⁠, 과장님⁠.⁠” 치윤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건 집 파는 사람이 하는 걱정이죠⁠. 저희는 안 팔 거예요⁠. 애 낳고 그 집에서 학교 보내고⁠, 거기서 늙을 거예요⁠. 떨어지든 말든 우리 집이잖아요⁠. 맞죠⁠?⁠”

형우는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덕규가 지점장실 문을 열고 나와서 창구를 보았다⁠. 퍼터를 든 채였다⁠. 덕규가 형우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빨리 끝내라는 뜻이었다⁠.

*

금요일 밤⁠, 새결이 받아쓰기 숙제를 하다 잠든 뒤에 형우는 빌라 베란다에서 해린에게 말했다⁠. 베란다라고 해도 세탁기 하나와 사람 둘이 겨우 들어가는 자리였다⁠. 창밖으로 학교 운동장의 조명이 꺼지는 것이 보였다⁠.

“⁠그 부부⁠, 내가 2027년에 쓰러지면서 계약서 덮어 준 사람들이야⁠.⁠”

해린은 빨래를 걷던 손을 멈췄다⁠. 새결의 체육복이 해린의 손에서 반쯤 접힌 채 늘어졌다⁠.

“⁠확실해⁠?⁠”

“⁠남편 조끼⁠, 말투⁠. 맞죠⁠, 하고 끝을 올리는 거⁠. 2차 상담실에서 경렬이 그 사람들한테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고 했어⁠.⁠”

해린은 체육복을 다 접어서 세탁기 위에 올렸다⁠. 그리고 형우를 보았다⁠. “⁠그럼 잘됐네⁠.⁠”

“⁠뭐가⁠?⁠”

“⁠그 사람들 2027년에 2차를 꼭대기에서 사는 거잖아⁠. 우리 거 사면 2차는 안 사도 돼⁠.⁠” 해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우리가 안 팔면 그 사람들은 다른 집을 사⁠. 다른 사람의 꼭대기에서⁠. 어차피 누구한테든 사⁠. 그게 우리면 안 되는 이유가 뭐야⁠?⁠”

“⁠다른 사람한테 사는 거랑⁠, 나한테 사는 건 달라⁠.⁠”

“⁠뭐가 다른데⁠?⁠” 해린이 세탁기에 등을 기댔다⁠. “⁠당신 마음이 편하고 안 편하고⁠? 당신 마음 편하자고 새결이 다섯 번째 이사 가⁠?⁠” 해린이 창밖의 꺼진 운동장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학교 오늘 들어갔어⁠. 나는 쟤 졸업할 때까지 저 담장 안에 둘 거야⁠. 그러려면 우리가 이번에 이겨야 돼⁠. 한 번은 이겨야 돼⁠.⁠”

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린이 빨래 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탁기 위에 접힌 체육복의 이름표에 해린이 매직으로 쓴 글씨가 있었다⁠. 「⁠1-3 반새결⁠」 *

토요일 오후 두 시⁠, 단비부동산은 상담실 맞은편 상가 1층에 있었다⁠. 통유리 위에 「⁠휘담 리버파크 전문 · 분양권 · 입주권⁠」이라고 시트지가 붙어 있었고⁠, 문 앞 화분 옆에 홍삼 사탕 그릇이 있었다⁠. 안쪽 탁자에 부동산 실장이 계약서를 두 부씩 펼쳐 두었다⁠. 실장은 서른 후반의 남자였고⁠, 손목에 경렬과 같은 브랜드의 금색 시계를 차고 있었다⁠.

해린과 형우가 한쪽에⁠, 치윤과 하솜이 맞은편에 앉았다⁠. 하솜은 오늘은 잠을 잔 얼굴이었고⁠, 휴대전화 케이스에 초음파 사진처럼 보이는 작은 흑백 스티커를 붙여 두었다⁠. 형우는 스티커에서 눈을 뗐다⁠.

실장이 계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분양가⁠, 웃돈 일억 이천⁠, 계약금 이체 계좌⁠, 중도금 대출 승계⁠. 해린은 조항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실장이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말했다⁠.

“⁠신고는 저희가 알아서 해 드립니다⁠. 서류 하나만 사모님 따로 서명 부탁드릴게요⁠. 이따가⁠.⁠”

치윤이 볼펜을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형우를 보았다⁠.

“⁠과장님⁠.⁠” 치윤이 말했다⁠. “⁠과장님이 파시는 분이라는 거⁠, 그저께 알았어요⁠. 승계 서류에 매도인 이름 보고요⁠. 와이프랑 얘기했어요⁠. 은행원이 사는 집이면 괜찮은 집이라고⁠. 은행원이 꼼꼼하게 고른 집이니까⁠.⁠” 치윤이 볼펜을 다시 쥐었다⁠. “⁠은행원이시잖아요⁠. 이 집⁠, 괜찮은 거죠⁠? 맞죠⁠?⁠”

탁자 밑에서 해린의 구두 앞코가 형우의 정강이를 눌렀다⁠. 아프게 누르지는 않았다⁠. 계속 눌렀다⁠.

형우는 치윤의 얼굴을 보았다⁠. 2027년 상담실에서 반쯤 일어나던 얼굴이었다⁠. 2027년의 형우는 이 남자의 계약서를 덮다가 쓰러졌다⁠. 오늘은 덮을 계약서가 형우 자신의 것이었다⁠. 해린의 휴대전화 잠금 화면에 새결의 입학식 사진이 떠 있었다⁠. 노란 이름표⁠, 꾹 다문 입⁠.

“⁠괜찮습니다⁠.⁠”

말이 나가는 소리가 형우에게 들렸다⁠. 생각보다 또렷했다⁠. 은행 창구에서 열세 해 동안 쓴 목소리였다⁠.

치윤이 크게 숨을 내쉬고 웃었다⁠. 하솜이 남편의 팔을 두 번 두드렸다⁠. 해린의 구두 앞코가 정강이에서 떨어졌다⁠. 실장이 인주 뚜껑을 열었다⁠.

해린이 매도인 칸에 도장을 찍었다⁠. 치윤이 매수인 칸에 도장을 찍었다⁠. 하솜이 휴대전화로 은행 앱을 열어 계약금을 보냈다⁠. 해린의 휴대전화가 짧게 떨었다⁠. 「⁠입금 120⁠,000⁠,000원⁠」

형우의 왼손목이 뜨거워졌다⁠. 시계 위의 빨간 숫자가 깜박이다가 지워졌다⁠. 빈자리에 검은 숫자가 떠올랐다⁠.

「⁠+38⁠,000⁠,000⁠」

플러스 삼천팔백만 원⁠. 회귀한 뒤 처음 보는 검은색이었다⁠. 2027년 10월 16일의 반형우네 집은 빚을 다 갚고도 삼천팔백만 원이 남았다⁠. 넉 달째 안 팔리는 집도⁠, 이백십팔만 원짜리 이자 문자도 없었다⁠. 형우는 숫자를 오래 보았다⁠. 숨을 쉬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해린이 등을 툭 쳤을 때 알았다⁠.

치윤이 일어나 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른손이었다⁠.

“⁠고맙습니다⁠, 과장님⁠. 진짜로요⁠. 과장님 아니었으면 저희 이 집 못 샀을 거예요⁠.⁠”

형우는 오른손을 내밀려다가⁠, 왼손을 내밀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야 했다⁠. 치윤이 웃으며 왼손으로 바꿔 잡았다⁠. 택배 상자를 하루에 삼백 개씩 드는 손이라 손바닥이 단단하고 거칠었다⁠.

검은 숫자가 지워지고 빨간 숫자가 떠올랐다⁠.

「⁠−470⁠,000⁠,000⁠」

마이너스 사억 칠천만 원⁠. 2027년 10월 16일⁠, 봉치윤의 집이 가진 것에서 진 빚을 뺀 돈이었다⁠. 형우네가 처음 살았던 날의 숫자보다 두 배 넘게 깊었다⁠. 형우네가 넘긴 웃돈 일억 이천이 사억 칠천 안에 들어 있었다⁠. 2027년에 두 사람이 2차 상담실에 갈 일은 없을 것이었다⁠. 갈 돈이 없을 것이었다⁠.

“⁠과장님⁠, 손이 차시네요⁠.⁠” 치윤이 웃으며 손을 놓았다⁠. 숫자가 형우의 검은 삼천팔백만 원으로 돌아왔다⁠.

하솜이 가방을 챙기며 해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 집 예쁘게 쓸게요⁠. 저희 애도 그 학교 보낼 거예요⁠.⁠” 해린이 웃으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 해린의 웃음이 입가에서만 끝났다는 것을 형우는 보았다⁠.

부부가 나가고⁠, 실장이 해린 앞에 서류 한 장을 따로 내밀었다⁠. 형우가 서류를 보려고 몸을 기울이자 실장이 웃으며 서류를 해린 쪽으로 조금 더 밀었다⁠.

“⁠사모님 서명만 받으면 돼요⁠. 과장님은 저기 사탕 드시고 계세요⁠.⁠”

형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통유리 너머로 치윤과 하솜이 상담실 쪽으로 길을 건너는 것이 보였다⁠. 치윤이 하솜의 손을 잡고 공사장 크레인을 가리켰다⁠. 크레인 끝에 1503호가 될 높이의 철근이 매달려 있었다⁠. 하솜이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형우는 왼손목을 탁자 밑으로 내렸다⁠. 검은 숫자는 시계 위에 그대로 떠 있었다⁠. 처음으로 형우의 숫자가 빨갛지 않은 날이었고⁠, 형우는 검은 숫자를 보지 않으려고 손목을 무릎 사이에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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