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619자)

웨딩홀 총회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웨딩홀 3층 그랜드볼룸 입구에는 오전 예식의 안내판이 아직 치워지지 않고 있었다⁠. 「⁠축 결혼 ○○♥○○ 12⁠:00⁠」 안내판 옆에 협의회가 세운 현수막이 반쯤 겹쳐 있었다⁠. 「⁠휘담 리버파크 입주예정자 협의회 제1차 정기총회⁠」 두 글자판 사이의 하트가 협의회 현수막의 「⁠총⁠」 자 위에 걸쳐 있어서⁠, 멀리서 보면 「⁠♥회⁠」로 읽혔다⁠.

2021년 11월 27일 토요일 오후 세 시였다⁠. 이틀 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퍼센트로 올렸다⁠. 볼룸의 원형 테이블 마흔 개가 거의 다 찼다⁠. 이천 가구 가운데 사백 명 남짓이 왔다고 서흔이 입구에서 숫자를 세며 말했다⁠. 테이블마다 새마루은행 로고가 박힌 물티슈와 홍삼 사탕 봉지가 놓여 있었다⁠. 물티슈는 지점에서⁠, 사탕은 단비하우징에서 협찬한 것이었다⁠.

형우는 무대 옆 폐백실에서 발표 원고를 넘기고 있었다⁠. 신부 한복이 걸려 있던 옷걸이가 벽에 줄지어 비어 있었다⁠. 서흔이 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밀었다⁠.

“⁠형부⁠, 네 번째 순서예요⁠. 지점장님 인사⁠, 시행사 공사 현황⁠, 형부⁠, 그다음 구 대표님⁠. 십 분이에요⁠. 넘으면 마이크 꺼요⁠. 진짜로 꺼요⁠.⁠”

“⁠처형이 왜 저한테 자리를 줬어요⁠?⁠”

“⁠형부가 지난달에 그랬잖아요⁠. 11월 말에 금리 또 오른다고⁠.⁠” 서흔이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그저께 진짜 올랐어요⁠. 두 번째로 맞힌 거예요⁠. 세 번 맞히면 나 형부 따라갈게⁠.⁠”

서흔이 나가고⁠, 해린이 들어왔다⁠. 해린은 폐백실 문을 등 뒤로 닫고 형우 앞의 원고를 내려다보았다⁠. 원고 첫 장에 형우가 굵게 쓴 문장이 있었다⁠. 「⁠입주 후 시세는 분양가를 밑돈다⁠」

“⁠이거 읽을 거야⁠?⁠”

“⁠읽으려고⁠.⁠”

“⁠여기 사백 명이 다 웃돈 보고 왔어⁠. 당신이 이거 읽으면 오늘 단톡방이 조용해지고⁠, 다음 주 호가가 내려가⁠.⁠” 해린이 원고 첫 장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상담실에서 형우가 계약서를 덮던 손 모양 그대로였다⁠. “⁠우리는 꼭대기에서 팔아야 돼⁠. 꼭대기를 당신 손으로 깎지 마⁠.⁠”

“⁠해린아⁠. 꼭대기에서 우리가 팔면⁠, 누군가 꼭대기에서 사⁠.⁠”

“⁠알아⁠.⁠” 해린이 원고를 놓지 않았다⁠. “⁠그 사람도 두 해 뒤에 또 누구한테 팔면 돼⁠. 다들 그렇게 해⁠. 당신이 처음 살았다는 그 2027년엔 다들 그렇게 못 해서 망한 거잖아⁠.⁠”

밖에서 마이크가 울렸다⁠. 사회자가 새마루은행 동탄중앙지점장님을 소개했다⁠. 해린이 손을 떼고 폐백실을 나갔다⁠. 원고 첫 장에 해린 손바닥의 습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

함덕규는 골프 브랜드 로고가 박힌 회색 니트를 입고 단상에 올랐다⁠. 인사말은 짧았다⁠. “⁠새마루은행은 여러분의 꿈을 끝까지 함께합니다⁠. 잔금 대출도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박수가 나왔다⁠. 단상을 내려가던 덕규가 맨 앞 테이블의 경렬과 주먹을 부딪쳤다⁠. “⁠대표님⁠, 다음 주 수요일 일곱 시 티업이요⁠.⁠” 덕규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끄기 전에 스피커로 새어 나갔다⁠. 앞자리 몇 사람이 웃었다⁠.

시행사 직원이 공사 사진을 넘겼다⁠. 골조가 18층까지 올라간 102동 사진에서 해린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1503호 자리는 아직 하늘이었다⁠.

“⁠다음은 새마루은행 반형우 과장님의 금리 이야기입니다⁠. 계약자 가족이시기도 해요⁠!⁠” 사회자가 말했다⁠. 객석 어디선가 누가 외쳤다⁠. “⁠부린이 형부다⁠!⁠” 웃음이 테이블 몇 개를 건너 퍼졌다⁠.

형우는 마이크 앞으로 갔다⁠. 무대 조명이 은테 안경에 반사되어 객석의 얼굴들이 하얗게 번졌다⁠. 원고 첫 장의 문장이 보였다⁠. 형우는 첫 장을 넘겼다⁠.

“⁠이틀 전 기준금리가 1퍼센트가 됐습니다⁠. 내년에는 미국이 크게 올리고⁠, 우리도 따라 올립니다⁠. 여러분의 잔금은 2023년 봄입니다⁠. 그때 잔금 대출 금리를 지금 금리로 계산하지 마십시오⁠. 두 배로 계산하십시오⁠. 두 배로 계산해서 한 달 이자가 감당이 되는지⁠, 오늘 집에 가서 꼭 한 번 해 보십시오⁠.⁠”

객석이 조용했다⁠. 몇 사람이 휴대전화 계산기를 열었다⁠. 학교 앞 엄마가 옆 사람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뒤쪽 테이블에서 젊은 여자가 손을 들었다⁠. 사회자가 무선 마이크를 가져다주자 여자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은 채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저희 신혼부부인데요⁠, 지금도 중도금 이자 후불이라 괜찮다고 해서 들어왔거든요⁠. 방금 계산해 보니까⁠, 두 배면 한 달에 이백사십이 넘어요⁠. 저희 둘이 버는 거 합쳐도 반이 날아가요⁠.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요⁠?⁠”

볼룸이 잠깐 조용해졌다⁠. 형우는 처음 살았던 2023년 봄⁠, 지점 창구에서 같은 질문을 수십 번 들었다⁠. 창구의 형우가 한 대답은 늘 같았다⁠. 대출 기간을 늘리시면 한 달 부담은 줄어듭니다⁠. 형우는 같은 대답을 지금 하지 않았다⁠.

“⁠입주 전까지 갚을 수 있는 건 갚으시고⁠, 갚을 수 없으면 계산이 맞는 동안에 결정하십시오⁠. 계산이 안 맞는 날이 오면 그때는 고를 수가 없습니다⁠.⁠”

여자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옆자리 남편이 여자의 등을 쓸었다⁠. 테이블 몇 개 건너에서 누군가 혀를 찼다⁠. 분위기 깨는 소리 그만하라는 말이 낮게 들렸다⁠. 형우는 원고를 내려놓고 객석을 보았다⁠. 맨 앞 테이블에서 경렬이 사탕을 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립니다⁠. 지금 이 단지 분양권 웃돈은 실제 사려는 사람들만 만든 숫자가 아닙니다⁠.⁠”

볼룸이 술렁였다⁠. 서흔이 무대 옆에서 형우를 향해 손으로 엑스를 그렸다⁠.

“⁠제가 본 승계 서류 가운데⁠, 웃돈이 오천 넘게 붙은 거래 두 건의 매수인이 같은 연락처를 씁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다른 집을 비싸게 사면서 연락처가 같습니다⁠.⁠”

“⁠가족이면 같죠⁠!⁠” 객석에서 누가 외쳤다⁠.

“⁠은행원이 고객 서류를 이런 데서 말해도 돼요⁠?⁠” 다른 테이블에서 누가 외쳤다⁠.

서흔이 마이크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그보다 먼저 경렬이 맨 앞 테이블에서 일어나 단상 계단을 올라왔다⁠. 사회자가 무선 마이크를 경렬에게 건넸다⁠. 경렬은 형우 옆에 서서 객석을 향해 웃었다⁠.

“⁠과장님 말씀 맞아요⁠. 연락처 같은 거래 있어요⁠. 형이 동생 거 사 주고⁠, 엄마가 딸 거 사 주고⁠. 동탄에 가족끼리 모여 살고 싶은 분들 많거든요⁠. 그게 나쁜 거예요⁠?⁠” 객석에서 웃음이 났다⁠. 경렬이 형우를 돌아보았다⁠. “⁠과장님도 처형분이랑 같은 단지 하셨잖아요⁠. 107동⁠, 102동⁠. 걸어서 삼 분⁠.⁠”

웃음이 커졌다⁠. 서흔의 얼굴이 빨개졌다⁠. 경렬은 휴대전화를 들어 객석을 향해 흔들었다⁠.

“⁠그리고 여러분⁠, 오늘 좋은 소식 가져왔습니다⁠. 어제 102동 1203호 분양권⁠, 웃돈 일억에 거래됐습니다⁠.⁠”

볼룸이 터졌다⁠. 사백 명이 한꺼번에 박수를 쳤다⁠. 누가 테이블 위 물티슈를 위로 던졌다⁠. 휴대전화 수백 대가 한꺼번에 울렸고⁠, 형우의 바지 주머니도 떨었다⁠. 무대 스크린에 시행사 로고와 함께 휘담디앤씨 주가 그래프가 떠올랐다⁠. 빨간 선이 오른쪽 위로 올라갔다⁠. 경렬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두 해 뒤에 웃으면서 다시 만납시다⁠. 지금 안 팔면⁠, 영영 못 팔아요⁠.⁠”

형우는 단상 옆에 서 있었다⁠. 1203호는 해린의 1503호에서 세 층 아래였다⁠. 같은 라인⁠, 같은 남향이었다⁠.

*

무대 뒤 복도에는 예식장 꽃장식이 담긴 수레가 줄지어 있었다⁠. 시든 장미 냄새가 났다⁠. 경렬이 복도 끝까지 형우를 따라와 꽃수레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과장님⁠, 오늘 용감하셨어요⁠.⁠” 경렬이 말했다⁠. “⁠근데 은행원이 고객 서류를 무대에서 말하는 건⁠, 과장님 지점장님이 좋아하실 일은 아니죠⁠.⁠”

“⁠대표님이 저 연락처를 아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판 집이니까요⁠.⁠” 경렬이 웃었다⁠. “⁠과장님⁠, 저는 과장님 같은 분 좋아해요⁠. 숫자 보는 눈이 있잖아요⁠. 2차 열 때 금융 자문 한 분 모시려고 하는데⁠, 은행보다 대우 낫게 해 드릴게요⁠.⁠” 경렬이 손을 내밀었다⁠. “⁠두 해 뒤에 과장님 말이 맞으면⁠, 그때는 과장님이 저를 쓰세요⁠. 그 전까지는 제가 과장님을 쓰고⁠.⁠”

형우는 내민 손을 보았다⁠. 경렬의 손을 잡으면 숫자가 보일 것이었다⁠. 지난 8월에 본 사십일억이 그대로인지⁠, 더 커졌는지⁠. 형우는 손을 잡지 않았다⁠.

“⁠두 해 뒤에 뵙겠습니다⁠.⁠”

경렬은 손을 거두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모님한테 안부 전해 주세요⁠. 사모님이 과장님보다 시장을 잘 아세요⁠.⁠”

경렬이 볼룸으로 돌아가고⁠, 복도 반대편에서 덕규가 걸어왔다⁠. 회색 니트 소매에 물티슈 포장지가 붙어 있었다⁠. 덕규는 형우 앞에서 멈추고 꽃수레의 시든 장미 한 송이를 뽑아 냄새를 맡았다⁠.

“⁠반 과장⁠. 무대에서 승계 서류 이야기 했다며⁠.⁠” 덕규가 장미를 도로 꽂았다⁠. “⁠고객 연락처를 사백 명 앞에서⁠. 나 방금 대표님한테 사과했다⁠. 우리 지점 고객이 우리 지점 직원 때문에 웃음거리가 됐다고⁠.⁠”

“⁠연락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같다고만 했습니다⁠.⁠”

“⁠같다고만⁠.⁠” 덕규가 웃었다⁠. 너털웃음이었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다음 주 비 온다더라⁠. 우산 챙겨⁠. 월요일 아침에 지점장실로 와⁠.⁠”

*

웨딩홀 지하 주차장은 차 빼는 사람들로 붐볐다⁠. 주차 요원이 경광봉을 흔들며 「⁠축 결혼⁠」 하객 차와 협의회 차를 갈라 세웠다⁠. 해린은 차 옆에 서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형우가 다가가자 해린이 화면을 꺼서 주머니에 넣었다⁠.

“⁠말하지 말랬잖아⁠.⁠” 해린의 목소리는 낮았다⁠. “⁠연락처 이야기는 원고에도 없었잖아⁠.⁠”

“⁠있었어⁠. 마지막 장에⁠.⁠”

“⁠당신 그거 말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 사람들이 와⁠, 은행원이 비리를 밝혔다⁠, 우리 집 팔자⁠, 그럴 줄 알았어⁠?⁠” 해린이 차 키를 쥔 손으로 이마를 눌렀다⁠. “⁠아무도 안 믿어⁠. 오늘 다들 일억 소리만 듣고 갔어⁠. 당신만 단톡방에서 또 웃음거리가 됐고⁠.⁠”

“⁠일억이 진짜 사려는 사람이 만든 숫자가 아니면⁠, 꼭대기도 진짜 꼭대기가 아니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해린이 형우를 똑바로 보았다⁠. “⁠누가 만들었든 다음 사람이 그 숫자에 사⁠. 숫자는 그냥 숫자야⁠. 당신 은행에서 매일 하는 거잖아⁠. 감정가 보고 대출 내주는 거⁠. 감정가는 누가 만들어⁠?⁠”

형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옆 차의 하객이 꽃바구니를 트렁크에 싣다가 두 사람을 힐끔 보았다⁠. 형우는 손목을 보았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마이너스 이억 이천육백만 원⁠. 사백 명 앞에서 말을 했는데도 2027년은 한 자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해린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다시 꺼냈다⁠. 부동산 앱 화면이었다⁠. 매물 목록 맨 위에 해린의 동호수가 있었다⁠.

「⁠휘담 리버파크 102동 1503호 분양권 · 웃돈 1억 2천 · 단비부동산⁠」

“⁠나 내놨어⁠.⁠” 해린이 말했다⁠. “⁠어제 오후에⁠. 구 대표님이 소개해 준 부동산이야⁠. 1203호 일억 거래한 데⁠. 우리 라인이 더 높으니까 이천 더 받을 수 있대⁠.⁠”

“⁠단비부동산⁠.⁠” 형우가 화면의 글자를 읽었다⁠. “⁠단비하우징이랑 같은 이름이야⁠.⁠”

“⁠그러니까 빨리 팔리지⁠.⁠” 해린이 휴대전화를 형우 손에 쥐여 주었다⁠. “⁠당신이 그랬지⁠. 2023년 여름부터 떨어진다고⁠. 지금은 2021년 11월이야⁠. 꼭대기까지 기다리면 사려는 사람이 줄어⁠. 일억 이천이면 충분해⁠. 우리 대출 다 갚고도 남아⁠. 그리고 떨어지면⁠, 당신 말대로 다시 사⁠.⁠”

주차 요원의 경광봉이 두 사람 앞에서 빨갛게 흔들렸다⁠. 차를 빼라는 신호였다⁠. 해린이 운전석에 올랐다⁠. 형우는 손 안의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1503호 위에 붙은 웃돈 일억 이천은⁠, 경렬의 사람들이 만든 일억 위에 이천을 더 얹은 숫자였다⁠.

“⁠매수인이 나타나면⁠.⁠” 형우가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내가 만나 볼 거야⁠. 계약하기 전에⁠.⁠”

“⁠만나서 뭐 하게⁠?⁠”

“⁠얼굴 보고 팔게⁠.⁠”

해린이 시동을 걸었다⁠. 지하 주차장 천장의 형광등 아래⁠, 계기판 시계가 오후 다섯 시 십일 분을 가리켰다⁠. 형우의 시계는 여전히 세 시 십일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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