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29자)

거래정지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새마루은행 동탄중앙지점 객장 벽의 금리판은 아침 여덟 시 사십 분에 불이 들어왔다⁠. 정기예금 1⁠.2퍼센트⁠,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3⁠.1퍼센트⁠. 형우는 출근하자마자 두 숫자부터 읽었다⁠. 처음 살았던 2023년 겨울⁠, 같은 판의 대출금리 칸은 7로 시작했다⁠. 고객 한 사람이 금리판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형우 창구로 와서 물었다⁠. 이게 맞는 숫자냐고⁠.

옆자리의 왕상칠은 모니터 두 대를 켜 두었다⁠. 왼쪽 화면은 대출 심사 프로그램이었고⁠, 오른쪽 화면은 초록색 칸과 숫자가 빼곡한 엑셀이었다⁠. 형우가 지나가며 들여다보자 엑셀 칸 안의 숫자가 일 초마다 바뀌었다⁠.

“⁠엑셀이 왜 움직여⁠?⁠”

“⁠형⁠, 이건 엑셀 아니야⁠. 주식 창에 엑셀 옷 입힌 거야⁠.⁠” 상칠이 목소리를 낮췄다⁠. “⁠지점장님 지나가면 그냥 엑셀로 보여⁠. 내가 주말에 이거 만드느라 잠을 못 잤어⁠. 벼리셀 봤지⁠? 31퍼센트⁠. 오늘도 시초가 빨간불이야⁠.⁠”

“⁠상칠아⁠, 너 벼리셀 언제 팔 거야⁠?⁠”

“⁠십 퍼센트만 더 먹고⁠.⁠” 상칠이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욕심 안 부려⁠.⁠”

처음 살았던 2021년에도 상칠은 십 퍼센트만 더 먹고 팔았다⁠. 두 해 뒤 같은 종목이 열 배가 됐을 때 상칠은 사흘 동안 점심을 굶었다⁠. 형우는 상칠의 어깨를 한 번 짚고 지나갔다⁠. 상칠이 이유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점장실 문이 열려 있었다⁠. 함덕규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카펫 위에 깐 퍼팅 매트 끝에서 공을 굴리고 있었다⁠. 공이 플라스틱 컵 가장자리를 돌다가 빠졌다⁠. 덕규가 혀를 차고 책상 옆 상자 두 개를 퍼터 머리로 가리켰다⁠.

“⁠반 과장⁠, 휘담 리버파크 집단대출⁠. 이천 가구⁠. 네가 맡아⁠.⁠”

상자에는 「⁠휘담 리버파크 중도금 대출 — 1차분⁠」이라고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처음 살 때도 이 상자는 형우 책상으로 왔다⁠. 형우는 두 해 동안 이천 가구의 소득 증빙과 재직 증명을 넘겼고⁠, 마지막 상자에 해린의 서류가 있었다⁠.

“⁠지점장님⁠, 저는 빠지는 게 맞습니다⁠. 집사람이 이 단지 계약자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잘 알지⁠.⁠” 덕규가 퍼터를 어깨에 걸쳤다⁠. “⁠본부에서 이번 분기 지점 평가를 이걸로 본대⁠. 우리 지점 통폐합 명단에 올라가 있는 거 알지⁠? 이천 가구 집단대출이면 명단에서 빠져⁠. 직원 여섯 명 밥줄이야⁠. 네 와이프 대출도 네가 보면 얼마나 깔끔해⁠.⁠”

“⁠규정상 이해 상충이라⁠.⁠”

“⁠규정은 내가 볼게⁠.⁠” 덕규가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 반 과장⁠.⁠”

형우는 왼손을 내밀었다⁠. 덕규가 웃으며 왼손으로 받았다⁠. 퍼터 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이라 손바닥이 끈적했다⁠. 시계 위의 빨간 숫자가 지워지고 검은 숫자가 떠올랐다⁠.

「⁠+2⁠,870⁠,000⁠,000⁠」

이십팔억 칠천만 원⁠. 덕규는 지금 수원의 오래된 아파트에 전세를 산다고 회식 때마다 말했다⁠. 처음 살았던 2024년 봄에 덕규는 명예퇴직을 했고⁠, 송별회에서 제주도 골프장 앞에 단독주택을 지었다고 했다⁠. 직원들은 퇴직금이 많이 나왔나 보다고 했다⁠. 형우는 손을 놓고 상자 두 개를 안아 들었다⁠. 상자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

화요일 아침⁠, 직원 주식 계좌 신고가 처리됐다는 메일이 왔다⁠. 신용대출 삼천만 원이 통장에 들어와 있었다⁠. 형우는 아홉 시 정각에 벼리셀 매수 버튼을 눌렀다⁠. 휴대전화가 짧게 떨었다⁠. 「⁠체결⁠」 형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손목을 보았다⁠.

「⁠−186⁠,000⁠,000⁠」

이천사백만 원이 줄었다⁠. 줄기는 줄었다⁠. 형우는 숫자를 두 번 읽고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처음 살았던 날들의 벼리셀은 2023년 여름까지 열 배 가까이 올랐다⁠. 삼천만 원이 꼭대기까지 버티면 이억이 넘는 돈이었다⁠. 숫자는 이천사백만 원만 줄었다⁠. 이대로 가면 2027년의 반형우는 벼리셀을 일찍 팔았다⁠. 아마 팔십 퍼센트쯤 올랐을 때⁠, 아마 상칠처럼 십 퍼센트만 더 먹고⁠.

형우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2020년 봄에 처음 산 주식을 십 퍼센트 오르자마자 판 손이었다⁠. 해린이 저녁에 치킨을 시켜 주며 우리 남편 주식 천재라고 했다⁠. 석 달 뒤 같은 주식은 두 배가 됐고⁠, 두 사람은 치킨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형⁠.⁠” 상칠이 의자를 밀고 와서 형우의 휴대전화 화면을 훔쳐보았다⁠. “⁠형이 벼리셀을 샀어⁠? 형 주식 안 하잖아⁠. 적금 풍차 돌리는 사람이잖아⁠. 형 왜 그래⁠. 무서워⁠.⁠”

“⁠십 퍼센트 먹고 팔 거야⁠.⁠”

“⁠그치⁠? 형도 나랑 같은 과구나⁠.⁠” 상칠이 안심한 얼굴로 돌아갔다⁠. 형우는 매도 버튼이 있는 자리를 엄지로 가렸다⁠.

오후에 상칠이 회사 메신저로 한 줄을 더 보냈다⁠. 「⁠형 존버 알지⁠? 존나 버틴다의 줄임말인데 은행 메신저라 존중하며 버틴다로 하자⁠」 형우는 답장 칸에 「⁠그래 존중하며 버티자⁠」라고 쳤다가 지웠다⁠. 버티는 것이 말처럼 쉬웠다면 2021년의 반형우도 벼리셀을 끝까지 쥐고 있었을 것이다⁠. 형우는 메신저 창을 닫고 이천 가구 서류 상자의 테이프를 뜯었다⁠.

*

8월 26일 목요일 오전⁠, 객장 텔레비전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회견을 했다⁠. 기준금리를 0⁠.5퍼센트에서 0⁠.75퍼센트로 올린다는 자막이 떴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고객들이 텔레비전을 올려다보았다⁠. 한 할머니가 형우 창구에 앉으며 말했다⁠. “⁠올린다며⁠. 예금 이자도 올려 주는 거지⁠?⁠” 형우는 다음 달부터 조금 오를 것이라고 대답했다⁠. 대출 이자가 훨씬 많이 오를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형우는 지점 뒤 비상계단으로 나가 해린에게 전화했다⁠. 해린은 돌봄교실에서 아이들 점심을 먹이는 중이라 뒤가 시끄러웠다⁠.

“⁠금리 올랐지⁠?⁠” 해린이 먼저 말했다⁠. “⁠나 뉴스 봤어⁠. 근데 그건 다들 맞혔다니까⁠.⁠”

“⁠하나 더 말한다고 했잖아⁠.⁠” 형우는 계단 난간을 잡았다⁠. “⁠윤슬바이오⁠. 갖고 있지⁠? 오늘 장 끝나기 전에 팔아⁠. 내일 아침에 거래정지 돼⁠.⁠”

전화 너머에서 아이들 소리만 들렸다⁠. 누가 숟가락을 떨어뜨렸고⁠, 해린이 “⁠괜찮아⁠, 선생님이 새거 줄게⁠” 하고 말했다⁠. 한참 뒤에 해린의 목소리가 다시 왔다⁠. 아까보다 낮았다⁠.

“⁠당신 내 폰 봤어⁠?⁠”

“⁠안 봤어⁠.⁠”

“⁠증권 앱 비밀번호⁠, 새결이 생일 아닌데⁠.⁠”

“⁠안 봤다니까⁠. 2023년 봄에 당신이 말해 줬어⁠. 울면서⁠.⁠”

“⁠내가 울었다고⁠? 당신 앞에서⁠?⁠” 해린의 목소리가 한 칸 올라갔다⁠. “⁠나 당신 앞에서 운 거 결혼식 때 한 번이야⁠.⁠”

“⁠2023년에 두 번 더 울어⁠.⁠”

“⁠그건 당신이 미래를 엉터리로 기억하는 거고⁠.⁠” 해린이 숨을 골랐다⁠. “⁠지금 반토막이야⁠. 지금 팔면 이천만 원 버리는 거야⁠. 나는 오히려 더 사서 평균 가격을 낮출 거야⁠.⁠”

물타기였다⁠. 떨어진 주식을 더 사서 산 가격의 평균을 끌어내리는 일⁠. 처음 살았던 2021년의 해린도 그랬다⁠. 거래정지 전날 오후에 해린은 남은 비상금을 털어 윤슬바이오를 더 샀다⁠.

“⁠더 사지 마⁠. 부탁이야⁠. 팔기 싫으면 그냥 두기만 해⁠.⁠”

“⁠끊어⁠. 애들 양치시켜야 돼⁠.⁠”

전화가 끊겼다⁠. 형우는 시계를 보았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해린이 아직 아무것도 사지도 팔지도 않았다는 뜻이었다⁠. 형우는 숫자가 움직이지 않기를 바라며 오후 내내 창구에 앉아 있었다⁠. 세 시 반⁠, 장이 닫히는 시각에 손목을 보았다⁠.

「⁠−226⁠,000⁠,000⁠」

사천만 원이 더 빨갛게 늘어 있었다⁠. 해린이 샀다⁠. 형우는 창구 밑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

밤 열 시⁠, 새결이 잠든 뒤 식탁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해린이 휴대전화를 식탁 가운데 엎어 놓았다⁠.

“⁠다 말해⁠.⁠”

“⁠당신부터 말해⁠.⁠” 형우가 말했다⁠. “⁠얼마야⁠?⁠”

해린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식탁 위 형광등이 미세하게 떨었다⁠. 이 집에 이사 온 날부터 떨던 등이었다⁠. 집주인에게 세 번 말했고⁠, 집주인은 세 번 다음 주에 바꿔 주겠다고 했다⁠.

“⁠올봄에 사천⁠. 엄마가 나 결혼할 때 준 적금이랑 내 비상금이랑⁠.⁠” 해린이 손톱으로 식탁 모서리를 긁었다⁠. “⁠오늘 오후에 이천 더⁠. 마이너스 통장에서⁠.⁠”

“⁠왜 말 안 했어⁠?⁠”

“⁠당신이 말렸을 거잖아⁠. 당신은 예금 이자 1⁠.2퍼센트 보고 사는 사람이잖아⁠.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어⁠. 우리 둘이 아무리 모아도 전세금 올려 주면 끝이야⁠. 오산에서 오천⁠, 병점에서 오천⁠. 우리가 모은 돈은 다 집주인들한테 갔어⁠. 그래서 샀어⁠. 오르면 집 계약금 하려고⁠.⁠” 해린이 엎어 둔 휴대전화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반토막 났을 때 알았어⁠. 주식은 영 원이 될 수도 있구나⁠. 집은 영 원이 안 되잖아⁠. 그래서 집을 산 거야⁠. 그것도 당신한테 말 못 했어⁠.⁠”

형우는 처음 살았던 2023년 봄의 식탁을 기억했다⁠. 같은 식탁이었고⁠, 같은 형광등이었다⁠. 식탁 앞에서 해린은 윤슬바이오가 상장폐지됐다고⁠, 육천만 원이 다 없어졌다고 말하며 처음으로 형우 앞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형우는 위로하는 대신 왜 이제 말하느냐고 물었다⁠. 형우는 이 말을 네 해 동안 후회했다⁠.

“⁠내일 아침 여덟 시 반에 공시가 떠⁠.⁠” 형우가 말했다⁠. “⁠횡령⁠. 대표가 회삿돈을 빼돌렸어⁠. 거래정지 되고⁠, 다시는 안 열려⁠. 내년 봄에 상장폐지야⁠.⁠”

“⁠당신 지금 그거 증명할 수 있어⁠?⁠”

“⁠내일 아침에⁠.⁠”

해린이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증권 앱 화면에 파란 숫자가 떠 있었다⁠. 윤슬바이오 마이너스 51퍼센트⁠. 해린은 화면을 끄고 일어났다⁠. “⁠여덟 시 반에 봐⁠.⁠”

*

8월 27일 금요일 아침 여덟 시 삼십일 분⁠. 형우는 지점 탕비실에서 커피 믹스를 젓다가 휴대전화가 울리는 것을 보았다⁠. 해린이었다⁠. 전화를 받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숨소리만 왔다⁠.

“⁠봤어⁠?⁠” 형우가 물었다⁠.

“⁠「⁠윤슬바이오⁠, 횡령·배임 혐의 발생에 따른 매매거래정지⁠」⁠” 해린이 화면의 글자를 그대로 읽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당신⁠, 진짜 어디서 온 거야⁠?⁠”

“⁠2027년 10월 16일⁠. 오후 세 시 십일 분⁠.⁠”

해린이 다시 말이 없었다⁠. 탕비실 문밖으로 상칠이 지나가며 외쳤다⁠. “⁠형⁠, 미국 잭슨홀 오늘 밤이래⁠! 연준 의장 입만 보고 있어⁠!⁠” 형우는 문을 닫았다⁠.

“⁠우리 집은⁠.⁠” 해린이 말했다⁠. “⁠우리 집은 어떻게 돼⁠. 다 말해⁠. 이번엔 진짜로⁠.⁠”

형우는 다 말했다⁠. 입주가 2023년 봄이라는 것⁠. 입주 전 두 해 동안 웃돈이 계속 붙는다는 것⁠. 2023년 여름부터 시세가 꺾이고⁠, 금리는 해마다 오른다는 것⁠. 2027년 가을⁠, 집을 넉 달 동안 내놔도 아무도 보러 오지 않는다는 것⁠. 형우가 견본주택 상담실 바닥에 쓰러진다는 것까지⁠.

전화 너머 해린의 숨이 길게 늘어났다가 짧아졌다⁠. 울음이 아니었다⁠. 해린이 계산할 때 내는 숨이었다⁠.

“⁠두 해 동안은 오른다고 했지⁠.⁠”

“⁠응⁠.⁠”

“⁠그럼 두 해 동안 갖고 있다가⁠, 꼭대기에서 팔자⁠.⁠” 해린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그리고 떨어지면 다시 사⁠. 같은 단지⁠, 같은 동⁠. 새결이 학교 그대로⁠. 그 사이 벌어진 돈으로 대출 줄이고⁠. 당신이 날짜를 알잖아⁠.⁠”

형우는 커피 믹스 막대를 컵에 꽂아 둔 채 서 있었다⁠. 집을 막으려고 돌아왔는데⁠, 아내는 집으로 판을 키우자고 했다⁠.

“⁠꼭대기에서 팔면⁠.⁠” 형우가 천천히 말했다⁠. “⁠누가 사는데⁠.⁠”

“⁠사고 싶은 사람이 사겠지⁠. 지난 토요일의 우리처럼⁠.⁠” 해린이 말했다⁠. “⁠오늘 저녁에 처형네 가자⁠. 언니한테는 내가 말할게⁠. 당신은 날짜만 정확하게 말해 줘⁠.⁠”

전화가 끊겼다⁠. 형우는 시계를 보았다⁠. 빨간 숫자는 어젯밤 그대로 마이너스 이억 이천육백만 원이었다⁠. 아내가 마음을 바꾼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숫자는 도장과 돈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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