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423자)

하한가

영끌 전날로 회귀했다 · 문채겸

휘담디앤씨는 사흘 내리 하한가를 맞고⁠, 나흘째 아침에야 거래가 붙었다⁠. 해린은 나흘째 오전 아홉 시 일 분에 오산 어머니 집에서 남은 주식을 전부 팔았다⁠. 형우는 해린이 판 것을 시계로 먼저 알았다⁠. 왼손목이 뜨거워졌고⁠, 빨간 숫자가 마이너스 육천백만 원에서 마이너스 오천팔백만 원으로 바뀌었다⁠. 삼백만 원만큼 덜 빨갰다⁠. 바닥에서 판 주식이 2027년에 남긴 차이는 이만큼이었다⁠.

해린은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저녁에 새결이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화면 속 새결 뒤로 외할머니 집의 자개장이 보였다⁠. 새결은 받아쓰기 백 점 받은 공책을 화면에 바짝 들이댔다⁠. 형우 눈에는 공책의 줄 무늬밖에 안 보였다⁠.

“⁠아빠⁠, 백 점이야⁠.⁠”

“⁠어떤 글자 나왔어⁠?⁠”

“⁠집⁠. 비읍 받침⁠.⁠” 새결이 공책을 내렸다⁠. “⁠엄마가 아빠한테 백 점 보여 주지 말랬는데⁠, 보여 주는 거야⁠. 엄마 지금 목욕해⁠.⁠”

*

경렬의 변호사는 수요일에 기자들 앞에서 종이를 읽었다⁠. 「⁠제보된 녹음 파일은 여러 대화를 짜깁기한 것으로 보이며⁠, 제보자인 시중은행 직원은 시행사 주식의 공매도 세력과 연관된 정황이 있어 법적 대응을 검토 중⁠」 기사 제목은 둘로 갈렸다⁠. 「⁠분양권 자전거래 의혹⁠」과 「⁠공매도 세력 개입설⁠」 자전거래는 같은 편끼리 사고팔아 가격을 띄우는 거래를 일컫는 말이었다⁠. 단톡방은 두 기사를 번갈아 올리며 하루를 보냈다⁠.

목요일에는 금융감독원이 동탄 일대 분양권 대출을 들여다보겠다는 기사가 났다⁠. 기사 끝에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일부 시중은행 지점의 예외 승인 대출도 점검 대상⁠」 목요일 오후 상칠이 메신저를 보냈다⁠. 「⁠형 본부 감사실에서 우리 지점 왔어⁠」「⁠지점장님 방 문 닫고 두 시간째⁠」「⁠퍼팅 소리 안 나⁠」「⁠형 나 무서운데 좀 시원해⁠」 형우는 답장으로 우산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상칠이 바로 답했다⁠. 「⁠ㅋㅋ 비 온다⁠」

토요일 아침 아홉 시⁠, 빌라 1층 현관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하나가 아니었다⁠. 형우가 3층 현관문을 열자 계단참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열다섯 명쯤이었다⁠. 다들 연두색 에코백을 메고 있었다⁠. 「⁠휘담 리버파크 — 우리가 만드는 동탄의 내일⁠」 맨 앞에 부회장이 있었고⁠, 부회장 뒤에 총무가 노트북 대신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학교 앞 엄마는 맨 뒤 계단에서 난간을 잡고 있었다⁠.

부회장이 손에 든 종이를 펼쳤다⁠. 문구점에서 산 우드락에 매직으로 쓴 글씨였다⁠. 「⁠반형우는 우리 웃돈 물어내라⁠」 총무가 확성기를 입에 댔다⁠. 버튼을 눌렀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총무가 확성기를 흔들고 다시 눌렀다⁠. 지지직 하는 소리만 났다⁠.

“⁠건전지 넣었어⁠?⁠” 부회장이 물었다⁠.

“⁠어제 샀는데⁠.⁠” 총무가 확성기 뒤 뚜껑을 열었다⁠. 건전지가 거꾸로 들어가 있었다⁠. 총무가 건전지를 바로 끼우는 동안 계단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2층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교회 사람들이야⁠?⁠”

총무가 확성기를 다시 입에 댔다⁠. 이번에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총무 자신이 깜짝 놀랐다⁠. “⁠반형우 씨⁠! 우리 웃돈 일억 칠천⁠! 사흘 만에 반토막⁠!⁠”

“⁠확성기 끄세요⁠.⁠” 형우가 말했다⁠. “⁠아래층에 아기 있습니다⁠.⁠”

총무가 확성기를 내렸다⁠. 부회장이 한 계단 올라왔다⁠.

“⁠과장님⁠. 저 수원 집 팔고 들어왔어요⁠. 스물두 해 산 집이에요⁠. 그 집 판 돈에 대출 얹어서 107동 산 거예요⁠. 웃돈이 붙으니까 그래도 내가 잘 판단했구나⁠, 했어요⁠. 근데 지난 월요일에 과장님 메일 한 통으로 일억 칠천이 사라졌어요⁠. 은행원이 메일 한 통으로⁠.⁠” 부회장의 우드락이 떨렸다⁠. “⁠과장님이 뭔데요⁠?⁠”

“⁠제가 안 냈으면⁠.⁠” 형우가 말했다⁠. “⁠내년 여름에 같은 일이 났습니다⁠. 그때는 오늘 2차 상담실에서 줄 서서 도장 찍은 사람들까지 같이 떨어집니다⁠. 웃돈이 진짜 사람들이 붙인 숫자가 아니어서요⁠.⁠”

“⁠내년 여름에 무슨 일이 날지 과장님이 어떻게 알아요⁠?⁠” 총무가 말했다⁠. “⁠증명해 봐요⁠. 미래를⁠. 부린이 형부⁠.⁠”

계단에 낮은 웃음이 났다가 금방 잦아들었다⁠. 아무도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학교 앞 엄마가 맨 뒤에서 말했다⁠.

“⁠과장님⁠. 잔금 대출 감정가가 나왔어요⁠. 웃돈 빠진 가격으로요⁠. 대출이 모자라요⁠. 칠천이 모자라요⁠.⁠”

형우는 학교 앞 엄마를 보았다⁠. 처음 살았던 2023년 가을의 단톡방 글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입주 포기 글이 올라올 날이 반년 당겨졌을 뿐인지⁠, 아예 안 올라올지 형우는 알 수 없었다⁠.

1층 현관에서 다시 비밀번호가 눌렸다⁠.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발소리가 났다⁠. 서흔이었다⁠. 서흔은 협의회장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는데⁠, 이름표가 뒤집혀서 하얀 뒷면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여러분⁠.⁠” 서흔이 숨을 몰아쉬며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여기서 이러시는 거 협의회 이름으로 하시면 안 돼요⁠. 에코백 메고 오시면 협의회 이름이에요⁠. 이분 집 앞에서 이러는 거⁠, 단톡방에 사진 올라가면 경찰 수사에 우리가 불리해져요⁠. 대행사 변호사가 제일 좋아할 사진이에요⁠.⁠”

“⁠회장님은 누구 편이에요⁠?⁠” 부회장이 물었다⁠.

서흔이 이름표를 바로 뒤집었다⁠. 「⁠협의회장 맹서흔⁠」 서흔이 계단 위의 형우를 한 번 보고⁠, 계단 아래 사람들을 보았다⁠.

“⁠나도 휘담디앤씨 넣었어요⁠. 처음에 이천⁠, 작년에 이천 더⁠. 남편 몰래⁠. 반토막 났어요⁠. 운영진 열한 명한테 사라고 한 것도 나예요⁠.⁠” 서흔이 말했다⁠. “⁠나는 지금 누구 편인지 몰라요⁠. 근데 이분 집 앞에서 확성기 들고 서 있는 건 우리 편이 아니에요⁠. 내려가요⁠. 커피는 내가 살게요⁠.⁠”

부회장이 우드락을 접었다⁠. 접히지 않아서 반으로 쪼갰다⁠. 사람들이 하나둘 계단을 내려갔다⁠. 2층 할머니가 현관문을 닫으며 말했다⁠. “⁠교회 사람들 아니네⁠.⁠”

*

계단에는 서흔과 형우만 남았다⁠. 서흔이 계단참 창턱에 걸터앉았다⁠. 창밖으로 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토요일이라 비어 있었다⁠.

“⁠형부⁠. 해린이가 오산에서 그러는데⁠.⁠” 서흔이 말했다⁠. “⁠형부 진짜 미래에서 왔대요⁠. 2027년⁠. 해린이가 울면서 말했어요⁠. 처음 산 날에도 자기가 울었다고 형부가 그랬다면서⁠.⁠” 서흔이 형우를 올려다보았다⁠. “⁠말해 봐요⁠. 2027년⁠. 우리 단지⁠. 나⁠.⁠”

형우는 창턱 옆 계단에 앉았다⁠. 처음으로 처형에게 다 말했다⁠. 2023년 여름부터 웃돈이 빠지고 가을에는 분양가 밑으로 가는 것⁠. 입주 포기 글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는 것⁠. 서흔이 협의회장을 그만두는 것⁠, 사임 글에 아무도 이모티콘을 달지 않는 것⁠. 2027년 10월⁠, 형우가 2차 상담실에서 쓰러지던 날 서흔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형우는 몰랐다⁠. 2027년의 두 집은 명절에도 만나지 않았다⁠.

“⁠그럼 형부는 우리 집 숫자 알아요⁠?⁠” 서흔이 물었다⁠. “⁠작년에 내 손 잡고 무슨 숫자를 말했잖아요⁠. 삼억 육천⁠.⁠”

“⁠2027년 10월 16일⁠, 처형네가 집을 팔고 빚을 다 갚으면 남는 돈이요⁠. 마이너스로⁠.⁠”

서흔이 오래 말이 없었다⁠. 창밖 운동장에서 비둘기 몇 마리가 내려앉았다⁠. 한 마리가 철봉 위로 날아올랐다가 발이 미끄러져 도로 모래밭에 내려왔다⁠. 서흔이 비둘기를 보고 짧게 웃었다⁠. 웃음이 금방 꺼졌다⁠.

“⁠지금은요⁠?⁠”

형우가 왼손을 내밀었다⁠. 서흔이 형우의 손을 잡았다⁠. 숫자가 바뀌었다⁠.

「⁠−290⁠,000⁠,000⁠」

“⁠이억 구천이요⁠.⁠” 형우가 말했다⁠. “⁠칠천 줄었어요⁠.⁠”

“⁠웃돈이 다 빠졌는데 왜 줄어요⁠?⁠”

“⁠처형이 내년 여름까지 안 버텨도 되니까요⁠. 지금 빠진 거라서⁠. 내년에 더 비싸게 빠질 걸 지금 빠진 거라서요⁠.⁠”

서흔이 손을 놓았다⁠. 서흔은 이름표를 목에서 벗어 손바닥 위에 놓고 한참 보았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형부⁠, 구 대표 만나 봤어요⁠? 압수수색 뒤에⁠?⁠”

“⁠월요일에 주차장에서 잠깐요⁠.⁠”

“⁠한 번 더 만나요⁠. 나랑 같이⁠.⁠” 서흔이 일어났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직접 들어야겠어요⁠.⁠”

*

1차 상담실은 압수수색 뒤로 문을 닫았지만⁠, 뒷문은 열려 있었다⁠. 경렬은 상담실 뒤편 작은 방에 있었다⁠. 창고처럼 쓰는 방이었다⁠. 접이식 침대 하나⁠, 전기 주전자⁠, 벽에 붙은 오래된 달력⁠. 달력은 2008년 12월에 멈춰 있었다⁠. 용인의 어느 아파트 단지 이름이 찍힌 판촉용 달력이었다⁠.

경렬은 접이식 침대에 앉아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서흔과 형우가 방문 앞에 서자 경렬은 일어나지 않고 손짓으로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가리켰다⁠.

“⁠회장님까지 오셨네⁠.⁠” 경렬이 말했다⁠. “⁠커피 믹스밖에 없어요⁠.⁠”

“⁠이 방 뭐예요⁠?⁠” 서흔이 물었다⁠.

“⁠제 방이요⁠. 2008년에 이 방 같은 데서 두 해 살았어요⁠.⁠” 경렬이 달력을 턱으로 가리켰다⁠. “⁠용인에 아파트 하나 계약했어요⁠. 저도 영끌이었죠⁠. 그때는 그런 말도 없었지만⁠. 리먼 터지고 그 단지가 미분양으로 반값이 됐어요⁠. 계약금 날리고⁠, 와이프는 애들 데리고 처가로 갔고⁠. 저는 그 단지 미분양 팔러 대행사에 들어갔어요⁠. 남의 집 팔면서 상담실 뒷방에서 잤어요⁠. 이런 방에서⁠.⁠”

물이 끓었다⁠. 경렬이 커피 믹스 세 봉지를 종이컵에 털었다⁠.

“⁠그 단지 2021년에 얼마 됐는지 아세요⁠? 분양가의 두 배요⁠. 2008년에 버틴 사람들⁠, 다 이겼어요⁠. 저처럼 계약금 날리고 나간 사람만 졌어요⁠.⁠” 경렬이 종이컵을 하나씩 건넸다⁠. “⁠집값은 사는 사람이 이겨요⁠. 버티는 사람이 이겨요⁠. 저는 사람들한테 그걸 팔았어요⁠. 내일을⁠. 내일이 없으면 사람은 오늘도 못 버텨요⁠. 웃돈은 내일이 있다는 표시고요⁠. 제가 직원들 명의로 사고판 건⁠, 사람들이 내일을 믿게 받쳐 준 거예요⁠.⁠”

“⁠그 받침이 가짜였잖아요⁠.⁠” 서흔이 말했다⁠.

“⁠회장님 이천 가구 모은 것도 다 진짜였어요⁠? 회장님이 보험 고객한테 학교 가깝다⁠, 강 보인다⁠, 대표님이 웃돈 책임진다⁠,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 말 듣고 들어온 마흔 가구는요⁠?⁠” 경렬이 부드럽게 말했다⁠. “⁠회장님도 내일을 파셨어요⁠. 과장님도요⁠. 과장님은 1503호를 파셨고⁠.⁠”

서흔의 종이컵이 손에서 기울었다⁠. 커피가 손등에 쏟아졌다⁠. 서흔은 손을 털지 않았다⁠.

“⁠과장님⁠.⁠” 경렬이 형우를 보았다⁠. “⁠저는 안 망해요⁠. 변호사 있고⁠, 직원들 명의는 직원들 거고⁠, 웃돈은 시장이 매긴 거예요⁠. 과장님은 대기 발령 받으셨고⁠, 사모님은 나가셨고⁠, 단톡방은 과장님 얼굴 사진을 돌려요⁠. 누가 이기고 있는지 보세요⁠.⁠”

형우는 종이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표님⁠, 이 방 달력 왜 안 떼셨어요⁠?⁠”

경렬이 달력을 보았다⁠. 2008년 12월⁠. 대답이 늦었다⁠.

“⁠잊으면 안 되니까요⁠.⁠” 경렬이 말했다⁠. “⁠지는 게 어떤 건지⁠.⁠”

*

뒷문을 나와 주차장을 건너는 동안 서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흔의 차 앞에서 서흔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단톡방을 열었다⁠. 이번에는 엄지가 화면 위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임시총회 공지 —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세 시⁠. 장소는 2차 견본주택 대회의실(⁠대행사 측 제공⁠)⁠. 단비하우징 구경렬 대표님과 제보자 반형우 씨를 함께 모십니다⁠. 양쪽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듣겠습니다⁠. — 협의회장 맹서흔⁠」

“⁠2차 견본주택이요⁠?⁠” 형우가 물었다⁠.

“⁠구 대표가 문 안 닫는다면서요⁠. 그럼 그 문 안에서 하죠⁠.⁠” 서흔이 차 문을 열었다⁠. “⁠형부⁠, 증명해요⁠. 미래를 말고⁠, 지금을⁠.⁠”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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