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46자)

주문 들어왔습니다

마흔에 다시 입대했다, 분대장은 스무 살 · 백해원

논산 시외버스 터미널 대합실은 금요일 오후 두 시에 군복 입은 아저씨들로 북적였다. 지원중대 1분대의 첫 외박이었다.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지 오 분 만에 대합실 곳곳에서 알림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소리가 너무 많아 다른 승객들이 돌아볼 정도였다.

고봉구가 의자에 앉아 다초점 안경을 코끝에 걸고 단톡방을 내렸다. 내리고, 또 내렸다. “나 없는 동안 동창들이 아침 인사를 안 올렸어. 다들 내가 올리는 거 기다렸대.” 그가 감격한 얼굴로 꽃 그림 열네 장을 한꺼번에 올렸다. 일주일 치였다.

배영철은 은행 앱을 열어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명예퇴직 신청 마감이 다음 달이래. 군대에서 그걸 어떻게 신청해.”

“분대장님한테 물어봐요. 규정 다 알잖아.” 탁기중이 말했다.

“은행 규정은 모를걸.”

남궁철은 목발을 짚고 서울행 버스표를 끊었다. 수술은 다음 달로 잡혀 있었다. 그는 버스에 오르기 전에 아저씨들을 돌아보고 경례 대신 목발을 들어 보였다. 우형래는 대전에 결혼식 사회가 잡혀 있다며 화장실에서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머리만 빡빡이였다.

“형래 씨, 그 머리로 사회 봐요?”

“신랑이 재복무자예요. 2기로 들어간대요. 오늘이 장가가는 날이고 다음 달이 입대하는 날이에요.” 우형래가 넥타이를 고쳐 맸다. “빡빡이 사회자가 딱이죠.”

이준은 터미널 앞까지만 따라 나왔다. 그는 외박이 없었다. 휴가가 2기 입소 뒤로 밀린 뒤로 이준은 외박 날짜를 묻지 않았다. 만복이 버스에 오르기 전에 이준을 돌아보았다.

“분대장님, 밥 거르지 마요. 할머님한테 봐 준다고 했어요.”

“예. 훈련병, 아니 이병님도 허리 조심하세요.”

“가게 가면 허리 쓸 일밖에 없어요.”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이준이 손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흔들지 않고 그냥 들고만 있었다.

*

수원 매탄동 상가 앞에 버스가 선 것은 오후 다섯 시 십 분이었다. 만복은 군복 차림 그대로 더플백을 메고 상가 1층 유리문 앞에 섰다. 문 위의 「치킨대첩」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윤정의 뒷모습이 보였다. 튀김기 앞에서 바구니를 흔들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어서 오세…….”

윤정이 돌아보다가 말을 멈췄다. 바구니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둘은 주방 입구와 계산대 사이, 세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서로를 보았다.

“일찍 왔네.”

“버스가 안 막혔어.”

“배고파?”

“아니.”

“그럼 앞치마 해. 여섯 시부터 밀려.”

만복은 더플백을 계산대 밑에 밀어 넣고 벽의 못에 걸린 앞치마를 집었다. 끈이 없었다. 잘려 나간 자리에 실밥이 너덜거렸다. 그 끈은 지금 그의 허리 보호대에 달려 있었다. 그는 계산대 서랍에서 고무줄 두 개를 꺼내 앞치마 양 끝에 묶고, 그 고무줄을 뒤에서 이었다.

계산대 뒤 벽에 노란 종이 왕관이 압정으로 꽂혀 있었다. 기름때에 바래 크레파스 글씨가 「사장님 아」까지만 보였다.

*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만복은 멈칫했다. 반죽 통이 튀김기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있었다. 소스 통은 냉장고 위 칸이 아니라 아래 칸에 있었다. 주문서 꽂이도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여보, 반죽 통이……”

“옮겼어.”

“왜?”

“당신 키에 맞춰져 있었잖아. 나는 왼쪽으로 손 뻗으면 어깨가 아파. 오른쪽에 두니까 세 걸음이 두 걸음 반 돼.”

만복은 반죽 통 앞에 서 보았다. 그의 키로는 반죽 통이 조금 낮았다. 허리를 반 뼘 더 숙여야 했다. 그런데 윤정이 그 자리에 서니 팔이 꼭 맞게 떨어졌다. 그는 반죽 통을 원래 자리로 옮기려다 손을 거두었다.

“그럼 내가 튀길게. 당신이 반죽해.”

“그래. 오늘은 내 주방이야. 당신이 알바야.”

여섯 시부터 주문이 밀려들었다. 배달 앱 알림음이 띵, 띵, 띵 연달아 울렸다. 만복은 튀김기 두 대 사이에 섰다. 기름 위에 손바닥을 대고 이 초 만에 온도를 짐작했다. 170도였다. 윤정이 반죽 묻힌 닭을 바구니에 담아 건네면, 만복이 넣고, 흔들고, 빼고, 두 번째로 넣었다. 둘은 말을 하지 않았다. 열다섯 해를 같은 주방에서 보낸 사람들은 말없이도 손이 엇갈리지 않았다. 딱 한 번, 윤정이 바뀐 자리로 손을 뻗었을 때 만복이 옛 자리로 손을 뻗어 둘의 팔꿈치가 부딪쳤다. 윤정이 그를 흘겨보았다.

“알바가 사장 팔꿈치를 치네.”

“죄송합니다, 사장님.”

여덟 시, 단골 배달 기사가 포장을 받으러 들어왔다. 그가 주방 안을 들여다보다가 눈이 커졌다.

“어? 사장님? 사장님 머리가 왜 그래요? 출가하셨어요?”

“군대 갔어요.”

“사장님 연세에요? 아니, 그 뉴스에 나오던 거? 와, 사장님이 그거셨구나.” 배달 기사가 포장 봉지를 받아 들며 경례 흉내를 냈다. “충성! 닭 두 마리 배달 다녀오겠습니다!”

윤정이 반죽 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떨었다.

*

여덟 시 사십 분, 유리문의 종이 딸랑 울렸다. 마성훈이었다. 사복 차림이었는데 바지 주름은 그대로 빳빳했다. 그 뒤로 카메라를 멘 촬영병 둘과 마이크 막대를 든 사람 하나가 줄줄이 들어왔다. 좁은 홀이 꽉 찼다. 탁자에 앉아 있던 손님 둘이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사모님. 안녕하세요.” 마성훈이 계산대 너머로 웃었다. “「다시, 대한민국」 가족 편 찍으러 왔습니다. 금방 끝나요. 사모님하고 선배님이 주방에서 일하시는 모습 조금, 그리고 저기 테이블에서 가족 식사 장면 하나.”

만복은 튀김기 앞에서 돌아보지 않았다. 바구니를 흔들며 말했다.

“지금 주문 마흔 건 밀려 있습니다. 줄 서세요.”

“예?”

“포장 손님 줄이 저기 있습니다.”

마성훈이 계산대 옆을 보았다. 배달 기사 셋과 포장 손님 둘이 줄을 서 있었다. 마성훈은 잠깐 그 줄을 보다가, 웃음을 유지한 채 맨 뒤에 섰다. 촬영병들이 어쩔 줄 몰라 그 뒤에 섰다. 배달 기사 하나가 마성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국방부 홍보 촬영입니다.”

“아, 그럼 반반 시키세요. 여기 반반이 제일 잘 나가요.”

이십 분 뒤, 마성훈은 계산대 앞에서 반반 한 마리 값을 카드로 냈다. 촬영병 하나가 포장 봉지를 받아 들고 냄새를 맡더니 마성훈 몰래 다리 하나를 꺼내 물었다.

*

열 시가 지나 주문이 잦아들었다. 마성훈이 다시 계산대 앞에 섰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선배님, 이제 찍죠. 가족 식사 장면. 따님은 독서실이죠? 저희가 차로 모셔 올게요.”

“애는 공부합니다.”

“삼십 분이면 돼요.” 마성훈이 윤정을 보았다. “사모님, 혹시 아세요? 선배님이 자영업자 면제 신청을 할 수 있었는데 안 하셨다는 거요. 인사 서류에 나와 있더라고요. 가게가 있으면 생계 곤란으로 면제 신청이 됐거든요. 근데 안 하시고 오셨어요.” 그가 다시 웃었다. “사실상 자원입대예요. 그게 이번 편 핵심이에요. 사모님이 그 얘기 들으시고 우시는 장면, 그거 하나면 돼요.”

주방이 조용해졌다. 튀김기만 끓었다. 만복은 바구니를 든 채 굳어 있었다. 그는 윤정 쪽을 보지 못했다. 입소 넉 달 전 우편으로 온 면제 신청서를 그는 서랍 맨 밑에 넣어 두었고, 끝내 내지 않았고, 윤정에게 말하지 않았다.

윤정이 반죽 묻은 고무장갑을 벗었다. 한 짝씩, 천천히. 그리고 계산대 앞으로 나와 마성훈 앞에 섰다.

“알아요.”

마성훈의 웃음이 멈췄다. 만복이 고개를 돌렸다.

“서랍 맨 밑에 있던 거, 저 봤어요. 이 사람이 왜 안 냈는지도 알아요. 재복무 수당이 우리 가게 한 달 남는 돈보다 많아요. 요즘 닭값이 올라서요.” 윤정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떨리지 않았다. “이 사람 그 수당으로 가게 대출 이자 내려고 간 거예요. 나라 사랑으로 간 거 아니에요.”

“사모님, 그것도 충분히 감동적인……”

“그러니까 그걸 나라 사랑이라고 찍지 마세요. 우리 가게 대출 이자예요.” 윤정이 계산대 위의 반반 영수증을 마성훈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우리 가게에서 우리 남편 울리는 거 찍으시려면 광고비 내세요. 반반 한 마리 값으로는 안 돼요.”

홀에 남아 있던 손님 하나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박수를 쳤다. 촬영병 하나가 카메라를 슬그머니 내렸다.

마성훈은 오래 윤정을 보았다. 그러다 만복을 보았다.

“선배님. 오늘 촬영 협조가 안 됐으니까, 1분대 다음 외박은 홍보 일정 미이행으로 연기하겠습니다. 11월 둘째 주요.”

만복의 손에서 바구니가 기울었다. 기름 한 방울이 튀김기 가장자리에서 치익 하고 탔다. 11월 둘째 주 외박은 수능 바로 전 주였다. 그 외박 끝에 휴가를 하루 붙여서 수능 날 아침 예진을 시험장에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중대장님, 그 주는……”

“압니다.” 마성훈이 반반 봉지를 들었다. “그러니까 다음엔 협조해 주세요.”

유리문의 종이 딸랑 울리고 닫혔다.

*

새벽 한 시 반, 마지막 주문이 나갔다. 윤정은 홀 구석 평상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댔다. 만복은 튀김기 기름을 걸렀다. 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언제 봤어?” 만복이 먼저 물었다.

“당신 입소하기 한 달 전. 서랍에서 가위 찾다가.”

“왜 말 안 했어?”

“당신이 말 안 했잖아.” 윤정이 눈을 감았다. “당신 그거 내고 남았으면, 우리 가게 석 달 안에 문 닫았어. 나 계산할 줄 알아.”

만복은 기름 거르던 손을 멈추었다. 할 말을 찾다가 찾지 못했다. 평상에서 윤정의 숨소리가 고르게 바뀌었다. 잠이 들어 있었다.

계단에서 슬리퍼 소리가 났다. 예진이 문제집을 끼고 내려왔다. 독서실에서 열두 시에 돌아와 위층에서 공부하다가 냄새를 맡고 내려왔다고 했다. 예진이 평상에서 잠든 엄마를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아빠, 배고파.”

만복은 걸러 놓은 깨끗한 기름에 닭다리 두 개를 튀겼다. 예진이 계산대 의자에 앉아 문제집을 펴 놓고 그 닭다리를 뜯었다. 첫입을 먹고 예진이 멈췄다.

“맛 달라.”

“뭐가?”

“엄마가 튀긴 거랑. 엄마 거는 엄마 맛이고 아빠 거는 아빠 맛이야.”

“어느 게 나아?”

“말 안 해. 말하면 둘 중 하나 삐질 거잖아.”

예진이 닭다리 하나를 다 먹고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그러고는 문제집에 눈을 둔 채 물었다.

“아빠, 수능 날 와?”

만복은 기름 냄새 나는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고무줄로 이은 끈이 등 뒤에서 늘어나 있었다.

“……봐서.”

예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문제집 한 장을 넘겼다. 넘기는 손이 조금 오래 종이 끝을 잡고 있었다.

“봐서면 못 오는 거잖아. 알아. 괜찮아.” 예진이 두 번째 닭다리를 집었다. “아빠 맛 하나 더 먹고 올라갈게.”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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